〈 113화 〉 제 14화. 용사의 선봉대. (3)
* * *
루루와 에슬리, 그리고 아우라스와 세라자드, 그리고 미노타우르스 걸들과 함께 언데드 전초기지에 도착했다.
오는 도중에 갱도 같이 길게 주욱 이어져 있던 통로가 전보다 제법 넓어져 있었는데, 넓어진 것 때문에 오히려 싸우기 복잡해지지 않을까 싶었는데.
오는 도중에 사린과 루루가 설치해 놓은 함정들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처음과 달리 어느 정도 보초로 보이는 언데드들도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는데, 뭐, 믿음직스럽지는 않았다.
그냥 시선 끌기용이랄까?
창과 방패를 든 해골 병사나 몽둥이를 들고 있는 해골 병사들이 서 있었는데.
경보기 대용이라고 말하는 루루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전초 기지에 도착해 연구실 위에 있던 천막 모양의 사령관 실에 기다리고 있자니, 요네와 야리 그리고 사린까지 합류하게 되었다.
뭐, 요네나 야리, 사린 또한 나와 만나니 화들짝 놀란 얼굴로 권속으로써 무언가 권능이 생기는 기분이 들었는데.
그것까지 확인할 시간이 없었다.
루루가 사용하는 천리안을 보니 이미 공동묘로 진입한 40명 가량 되는 용사의 선봉대가 다시금 숨겨 놓은 지하 1층으로 향하는 길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어서. 움직여야 할 것 같은데."
내 말에 루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오빠."
입고 있던 로브 가슴팍에 어울리지 않는 주머니를 달아서 그 안에 수첩을 꽂아 넣은 모습의 루루가 스윽 마력을 휘두르자, 동굴 입구의 모습이 커다란 스크린 처럼 하공에 나타났다.
방금 루루가 했던 것처럼 나도 마력을 스윽 움직여보자, 살짝 내 시야에 흐릿하게 입구의 모습 같은 자그마한 창이 떠올랐다.
루루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손바닥 크기의 천리안이 발동하는 것을 확인한 나는 루루에게 받은 권능이 제법 다양함을 알게 되었다.
전처럼 인터페이스 창처럼 세세하게 스킬이나 사용하는 기술에 대한 것에 설명해주는 나레이션 같은 것은 사라졌지만.
마치 오랫동안 기억해 놓거나 연습해 놓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능력이 펼쳐지면서 머리에 각인 되는 것이 오히려 편하게 느껴졌다.
전에 시스템은 오히려 그 보여주는 기능과 설명 때문에 중간 중간 생각해야 하는 복잡한 과정이 있었으니까.
지금은 다이렉트하게 내가 원할 때 되겠다 싶은 능력이 편하게 이뤄진다고 해야 하나?
잠시 눈 앞에 펼쳐진 자그마한 내 천리안의 화면을 보다가 다시 루루의 천리안 화면에 집중했다.
"이제 곧 입구에 있던 함정이 발동하면 최소 10분 정도 발을 묶어 놓을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최소 10분 내에는 정비를 마쳐야 돼. 오빠. 세라자드와 아우렌씨는 아직이야?"
잠시 권능에 집중하자, 곧 주변의 환경이 스윽 물감 번지듯이 숲으로 변했다.
그리고 초상화들이 걸려 있는 숲으로 돌아오자, 초상화들 앞에 마치 마네킹처럼 서 있는 린의 모습이 보였다.
누군가가 알려주거나 한 능력은 아니지만, 내 육체의 일부로 만들어진 린이라면 이 곳에서 마치 눈 앞에 두고 대화하듯이 말을 주고 받을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린. 아직이야?"
"응. 아직. 있는 위치는 찾았어."
"어딘데?"
"71층."
"71층?"
"응. 잠깐. 집중해야 할 일이 있어서. 일단 지금 바로 데려가긴 어려울 것 같고 최대한 빠르게 해결해 볼게."
스윽.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니 순간 시야가 현실의 배경으로 바뀌면서, 들려오는 린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오빠 뭐래?"
루루가 궁금증을 품은 얼굴로 묻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는 우리끼리 해결해야 할 것 같은데?"
스윽 주변을 훑어보았다.
전력은 나쁘지 않았다. 물론 부딪혀 봐야 알겠지만.
나와 세라자드. 아우라스, 에슬리가 전방에서 소드마스터들을 맡고, 나머지 미노타우르스 걸들이 30명의 소드 익스퍼트 병사들을 맡고.
루루와 야리가 후방 지원, 사린이 함정으로 보조를.
그리고 전과 다르게 루루의 준비된 해골 병사들이 활과 마법으로 원거리 지원을 할 예정이었다.
가능하긴 할 것 같은데.
문제는 나였다.
얼마나 강해졌는지 권능을 어떻게 활용해야 최적화일지?
아직 아무것도 테스트를 해보지 못했다.
시간만 있었다면 요네에게 부탁을 해봤겠지만.
요네를 바라보자, 그녀가 갑자기 나를 지긋이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해졌네. 갑자기 강해진 게 조금 이상하긴 한데, 이 정도면 굳이 내가 무언가를 알려줄 필요가 없겠는걸?"
그러더니 요네가 삼지창을 꺼내 땅을 한번 가볍게 두드렸다.
"나도 이번 전투에는 참가할게."
소드마스터를 상대할 수 있다는 라미아 전사 출신인 요네의 합류에 루루의 얼굴 표정이 확 밝아졌다.
"이정도면 전위는 문제 없겠는데!"
확실히. 요네의 실력은 내가 직접 창술을 배워 봐서 안다. 적어도 세라자드의 전성기 시절까지는 아니더라도, 지난번 단신으로 쳐들어왔던 가짜 소드마스터라면 충분히 셋 이상은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그 가짜 소드마스터들이 숨겨진 비기 같은 게 있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쿠르릉.
천장이 무너지듯이 떨리면서 충격과 굉음이 주변을 훑고 지나갔다.
아마 지하 1층으로 향하는 입구 일부가 엄청 강한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일단 내가 거미줄 덫을 설치해 놨으니까."
사린이 살짝 앞으로 나서면서 주변에 말했다. 그러자 루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일단 다들 정비부터."
그 말과 함께 등에 포대 자루들을 메고 온 미노타우르스걸들이 자신의 신체 크기 만한 무기들을 꺼내면서 뾰족한 강철로 만들어진 가죽 갑옷을 몸 위에 입기 시작했다.
세라자드는 부러진 검을 대신할 것을 루루에게 지급 받으러 밖으로 나섰고, 야리는 주변에 뛰어다니면서 비상용으로 사용할 포션들을 나눠주고 있었다.
내 손에도 형형 색색의 다섯 개의 포션을 내밀었는데, 미리 섭취하라는 말에 하나씩 쭈욱 쭈욱 들이켰다.
그러자 뭔가 비타민 음료를 먹은 것 같이 몸에 살짝 활력이 도는 것이 느껴졌다.
물론 그 양이 미미해서 이게 콜라시보 효과로 그런 느낌이 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조금 몸이 더 나아진 것 인지 판단은 어려웠다.
그리고 나서 짙은 푸른색에서 살짝 하늘색으로 변한 에슬리에게 이상한 가호 같은 것을 받은 후에.
요네에게서 삼지창 지도를 가볍게 받았다.
물론 내가 삼지창을 이리저리 휘두르는 모습을 보고는 문제 없겠네. 라고 말하는 것이.
어떤 점에서 문제가 없겠다 라고 말한 건지 이해가 좀 어려웠다.
다만 라미아들에게서 얻은 권능 때문이랄까?
전보다 창을 다루는 점에서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검을 구하고 돌아온 세라자드에게서 살짝 미묘한 시선을 받은 후에 아우라스가 나에게 찾아왔다.
"반신님."
현재 일행 중에서 유일하게 반신님이라고 나를 부르는 아우라스가 내 앞으로 다가와 내가 쥐고 있는 삼지창을 바라보았다.
"라미아족의 삼지창보다 저희 언니의 능력을 얻으셨다면 맨 손으로 싸우시는 게 더 좋을 수 있습니다."
그 말에 옆에서 몸을 풀고 있던 요네가 스르륵 다가오더니 나를 두고 아우라스와 마주 섰다.
"그게 무슨 말이지?"
"말 그대로. 반신님께서 저희 언니의 능력인 괴력을 얻으셨다면, 거추장스러운 삼지창 따위가 아닌 맨손으로 싸우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추천했습니다."
"삼지창 따위?"
순간 요네의 두 눈에서 불똥이 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시선을 정면에서 아우라스가 받아쳤다.
"무기는 자신의 육체의 강함에 자신이 없는 이들이 사용하는 호신용 도구일 뿐입니다."
아우라스의 말에 요네가 뭔가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뭔가 말을 꺼내려 하자, 어느새 사령실로 돌아온 세라자드가 그 둘 사이에 유령처럼 끼어들었다.
그리고 그 둘을 무시하듯이 지나쳐 내 앞에 가까이 다가왔다.
"지호님."
요네와 아우라스가 아직까지 눈싸움을 하고 있는 동안 세라자드가 내 앞에 검 한자루를 두 손으로 받든 자세로 스윽 내밀었다.
"제법 좋은 검이 보여서 가져왔습니다. 이제 발키리 검술을 사용하실 줄 아시는 지호님이라면 반드시 검이 어울리실 겁니다."
"뭐?"
"흠. 그 말 그대로 지나칠 수 없겠군요."
순간 세라자드의 난입에 요네와 아우라스가 신경전을 멈추고 세라자드 양 옆에 다가오더니 이내 세 사람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했다.
"지호. 너한테는 삼지창이 제일 어울려. 지난번에 소드 마스터를 상대로도 삼지창을 사용했었잖아?"
"지호님. 권능으로 진일보한 발키리 검술의 능력이 궁금하지 않으세요?"
"반신님. 제 언니의 능력인 괴력이라면 무기 따위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세 사람이 서로 경쟁하듯이 내 앞에서 의견을 피력하자, 하하하 하고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도와줄 사람이 없나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루루와 야리와 시선을 마주치자 고개를 휙 돌리며 외면하는 모습이 보였다.
에슬리라면...
저 멀리 있는 에슬리를 바라보니, 이미 사린과 함께 머리끄댕이를 붙잡고 뭔가로 싸우는 모습이 보였다.
응. 저긴 뭔지 몰라도 이미 틀렸구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