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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마왕 간부에게 소환당해 착취당하고 있다-114화 (114/220)

〈 114화 〉 제 14화. 용사의 선봉대. (4)

* * *

길쭉한 동굴.

마치 남산터널과도 같이 변한 널찍한 동굴을 걸어가면서, 주변에 새겨진 마법진들을 확인했다.

대부분이 등불 대신 생명에 반응해서 켜지는 화염의 마법진이었는데, 걔 중 함정용으로 설치해놓은 것들도 보였다.

물론 수동으로 조종해야지 발동하는 조건의 마법진이었기에 현재 천리안으로 보고 있는 루루만이 발동 시킬 수 있는 마법진이었다.

이야. 그나저나 루루가 따로 설명한 것도 아닌데, 머릿속에 마법진을 보자마자 원리부터 쓰임새까지 딱 떠오르는게 확실히 권능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머리가 좋아진 것인지.

따로 설명이 필요 없어져서 굉장히 편했다.

물론 그것들 말고도 지금 나와 함께 이 동굴을 걸어가는 세라자드, 에슬리, 아우라스, 미노타우르스 걸들에 대한 정보도 실시간으로 내 머릿속에서 떠오르고 정리 되었는데.

대부분이 전력이나 파티 구성 혹은 전투의 양상에 대한 것들이었다.

특히 아우라스나 미노타우르스 걸들은 관계를 맺지 않았는데도, 아우렌 때문인지 사소한 정보 하나만으로도 이것이 왜 그런것인지에 대한 결과 값이 머릿속에 도출되었다.

일단 아우렌의 기억과 정보. 그리고 권능으로 대부분의 미노타우르스 걸들에 대한 성향이나 전투 방식을 알 수 있었는데, 아우라스나 아우렌을 제외한 미노타우르스 걸들은.

마치 지구에서 했던 게임에서 나오는 바바리안처럼 격돌에 사용하는 대형 무기 하나를 제외하고는 거의 맨손으로 싸우는 방식을 선호했는데.

체격도 크고 힘이 쌔기 때문에 그런가 싶었는데, 그것이 아니라 대체적으로 미노타우르스 걸들은 무기가 없이 싸우는 상황이 많기 때문에 그렇게 전투 방식이 변한 것처럼 보였다.

무기술은 나쁜편은 아니지만 세라자드나 요네처럼 정교한 편은 아니고, 괴력 외에 거력도 있기에 소드 익스퍼트 정도 수준은 충분히 무기로만 맞댈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러다가 수틀리면 육탄전으로 돌입하겠지만.

그래서 그런지 미노타우르스 걸들의 몸을 자세히 보면 생채기 처럼 보이는 흉터들이 몸 구석구석에 보였다.

가슴에 신경이 쓰여서 제대로 못 본 것일까?

흠.

"지호님."

곁에 다가온 세라자드가 내 허리춤에 걸려 있는 검을 잠시 바라보았다가 내 목 쪽으로 시선을 옮기더니 이내, 까치발을 세워 옷깃을 만지기 시작했다.

"옷매무새가 흐트러지셨습니다."

어차피 전투를 하러 가는 도중에도 흐트러진 내 옷 상태가 신경쓰였는지, 세라자드가 그리 말하면서 정장의 구겨진 주름 부분까지 마나를 불어넣어 반듯하게 펼쳤다.

그러고도 부족했는지, 잠시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던 세라자드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생각해도 지금 상황에 옷매무새에 신경 쓸 필요는 없는 거겠지.

"새로 보는 옷이다 보니, 원형이 어떻게 생겼는지 잘 모르겠군요."

음. 그거였냐?

"지호님. 전투가 끝나는대로 지금 입으신 옷을 잠시 제가 맡아도 될까요?"

난 알몸으로 다니라고?

"왜?"

"옷의 원형이 궁금하기도 하고, 지호님이 만드신 옷인 만큼 옷에 대한 연구도 하고 싶습니다."

옷이라면 전문가 사린이 있긴 한데, 그거랑은 조금 다른 의미인 것 같다.

패션이라고 해야하나?

옷 자체가 아니라 그 옷의 패션이 세라자드에겐 중요한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린도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잠시 린의 옷을 벗기는 상상을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뭐랄까? 야한 상상을 한다는 것 보다 생리적으로 거부감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린의 육체는 내게서 떨어져나간 육체의 일부기도 했으니까.

"그냥 내가 비슷한 옷으로 하나 만들어 줄게."

"그럼 저도 한 벌 부탁드려요. 서방님."

스르륵.

무언가가 귓가를 간지럽히는 소름돋는 기분과 함께 고개를 휙 돌려보니 거꾸로 뒤집힌 얼굴의 사린이 방긋 웃고 있었다.

히익.

긴 머리를 땅바닥에 늘어뜨리고 마치 천장에 매달린 사람처럼 거미줄에 거꾸로 매달려 있던 사린이 가볍게 몸을 뒤집더니 바닥에 착지했다.

"서방님. 듣기에 그 슬라임 계집년한테 말도 안되는 약속을 하신 것 같던데. 설마 그걸 정말 들어주실 생각은 아니시겠죠?"

눈꺼풀이 손가락 마디만큼 긴 사린이 사람 좋은 얼굴 표정으로 시익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고 보니 하반신이 거미였을 때와 달리 이제 등에 난 여섯 개의 거미 다리와 인간의 육체를 가진 사린은 소유욕을 포함해서 뭔가 얀데레 같은 성격이 생겨버린 것 같은데.

전에는 소극적이고 엄청 순진했던 것 같은데. 왜 갑자기 성격이 돌변한 걸까?

"그게 말이지..."

슬쩍 도움을 요청하고자 세라자드를 바라보자 세라자드가 조용히 눈을 감은 채 침묵했다.

에슬리 쪽을 바라보니 이제 슬슬 동굴 입구쪽으로 도착해서 그런지 바쁘게 미노타우르스 걸들 사이를 누비며 축복 같은 것을 걸어주고 있었다.

다시 사린을 바라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순간 사린이 각성해서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뒤에 나를 따라 쫒아오던 그 기억이 떠올랐다.

여러 의미로 잡아먹힐 것 같던 그 때의 광기에 젖은 듯한 그녀의 눈빛.

그리고 그 눈빛이 굉장히 억눌려서 웃고 있는 사린의 가느다란 눈동자에서 새어나오고 있었다.

이럴때는 대답을 잘 해야 한다.

"어쩌다 보..."

사린의 웃고 있는 가느다란 눈동자가 살짝 커지면서 그 안에서 쌀 한톨만큼 자그마해진 동공이 나를 가둬버릴 듯이 광기에 물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니까 에슬리와 만났는데."

어물쩡 넘기려던 대화의 노선을 급 틀었다.

"그건 내 의지가 아니라... 주변의 분위기에 휩쓸려서."

거짓말 하면 티나는 성격이기 때문에 하다가 다시 어물쩡 대화를 넘겨버렸다.

그러자 내 의지가 아니라는 말에 입술을 할짝 핥은 사린이 에슬리를 잠시 빠르게 노려보다가 다시금 나를 바라보았다.

"서방님. 그러면 안 되요. 아무리 서방님의 정력이 훌륭하다고 해도, 아무 여자나 품으면 헤퍼보인다고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사린이 내게 다가와 품에 안기듯이 바짝 달라붙어 손가락으로 내 몸을 야릇하게 훑었다.

진득진득한 기운.

주변이 확 트이는 느낌과 동시에 평소에 무디게 느껴지던 오감이 민감하게 변화했다.

동시에 사린과 짤막한 감정공유와 동시에 편집증 환자처럼 보일 정도로 나만을 생각하는 사린의 격한 감정이 내 마음속으로 물 밀듯이 흘러 들어왔다.

대충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모든 것을 잃고 홀로 숨어 지내던 사린에게 나는 자신보다 더 소중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별. 동경의 대상. 사랑. 아껴야 할 존재.

뒤죽박죽. 사린이 살아가면서 느꼈던 소중한 모든 것들이 집약되어 나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동시에 사린의 기억이 살짝 내 머릿속에 흘러 들어오며, 다시금 아라아라와 아우렌의 기억이 이들의 왕국에서 벌어졌던 사건들과 이어져 있음이 확인됐다.

아직까지도 잠들어 있는 그아라를 바라보았다가, 사린을 바라보자 황홀해하는 표정의 사린의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나와 감정공유. 그리고 일부의 기억을 주고 받은 것으로 추가로 유대감이 생겨서 행복해 모습처럼 보였다.

사린의 손에서 마치 껌처럼 주욱 늘어지듯이 굵은 거미줄이 흘러나와 그것이 마치 채찍처럼 길게 늘어지다가 이내 단단하게 굳어갔다.

양 손에 채찍을 쥔 사린이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서방님. 저도 이제 싸울 수 있답니다. 서방님이 오신 지구라는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게 제가 반드시 곁에서 도와드릴게요."

행복해하는 표정의 사린과 함께 잠시 세라자드의 수그렸던 시선이 사린의 채찍을 향했다가 내 검을 향하는 모습이 보였다.

좀 전의 기감이라면 못 느꼈겠지만, 사린과의 권능이 조금 더 강해져서랄까? 미묘한 동공의 움직임조차 지금 내게는 마치 앞에서 지켜보는 것 처럼 선명하게 느껴졌다.

"응? 김지호?"

미노타우르스 걸들에게 축복을 전부 내린 것인지 마치 성녀의 외모처럼 변한 외모를 가진 에슬리가 내 쪽으로 다가오다가 이내 얼굴을 구겼다.

사린의 변한 모습을 봐서 그런걸까? 아니면 사린이 내게 안기듯이 바짝 붙어있어서 그런 걸까?

아마도 후자에 가까워 보였지만, 잠시 얼굴을 구겼다는게 거짓말이라는 것 같이 에슬리가 활짝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김지호. 이제 전투 준비는 끝났어."

할말을 하면서 에슬리가 내게 바짝 달라붙어 있는 사린을 스윽 밀어 뜨렸다.

그러자 표정이 날카롭게 변한 사린이 그런 에슬리의 천사링을 여섯 개의 거미 팔 중 하나로 붙잡는 모습이 보였다.

마치 머리채를 붙잡힌 것처럼 머리가 기우뚱하는 에슬리의 모습과 동시에, 액체 상태로 변한 에슬리가 순식간에 사린과 캣파이트를 벌이기 시작했다.

서로의 몸을 쥐어 뜯어버릴 듯이 과격하게 뒤엉키는 그녀들을 뒤로 하고, 어느새 전투 준비를 마친 아우라스와 미노타우르스 걸들의 지나쳐 선두에 섰다.

[오빠. 이제 곧 천장에 있는 입구를 통해 용사의 선봉대가 들이닥칠 거야.]

루루의 목소리와 함께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전에 있던 45도 각도로 내려오는 굴처럼 생긴 입구가 아닌, 이번엔 천장에서 직통으로 떨어지게 끔 입구를 바꾼 모양이었다.

­쿠르릉.­

그리고 입구를 확인함과 동시에 천장에 그려진 거대한 마법진이 발동하면서 중심을 잃고 쓰러질듯이 수직 낙하하는 인간들의 모습이 보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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