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3화 〉 제 16화. 이상한 현상.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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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강해졌다는 말을 내 뱉은 사린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했다. 분명 웃고는 있는데 뭔가 섬뜩하게 웃고 있는 것이 처음 보는 기묘한 표정이었다.
뭐랄까?
현실에서는 한번도 본 적도 없는 진짜 독특한 표정.
어떻게 보면 광기마저 느껴지는 그런 눈빛에 오히려 호기심이 들었다.
질투심에 이은 소유욕이랄까?
처음 사린이 각성하여 진화했을 때 보였던 그런 느낌의 집착같은 집요함이 눈빛과 기세에서 느껴졌다.
살짝 소름이 돋는것을 느끼며, 사린을 바라보았다.
내 권능 때문인지 한층 강화된 거미 다리가 유독 눈에 띄었는데, 입고 있는 옷 또한 약간 개량 한복풍의 옷을 입고 있었다.
나와 관계를 맺으며 기억 일부를 공유해서 그럴까? 아니면 반신에 오르면서 얻은 권능으로 인해 기억이 추가 된 걸까?
확실히 내가 어디선가 본 적 있는 개량형 한복을 입은 사린의 모습을 보면서 잠시 생각에 빠져있다 보니, 사린이 집요하게 나를 쳐다보다가 문득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이 가볍게 두 손으로 깍지를 꼈다.
"아아... 서방님. 그러고 보니 지금 급한 일이 생겼어요."
"급한 일?"
"네. 지금 루루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지하 2층을 담당하는 사령관이 내려왔어요."
"2층의 사령관?"
사린의 말에 지난번 아이린의 도서관에 보았던 마왕군에 대략적인 편성도가 적혀 있던 책의 내용이 떠올랐다.
책의 제목은 그다지 중요해서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분명 층마다 있는 마왕군 간부와 내부 병력에 관한 이야기가 간략하게 적혀 있었다.
1층과 2층은 언데드 관련 군대로 사령관으로 군림해 있었고, 3층은 총사령관인 간부가 배정되어 있었다.
대충 보았다 보니 세부적인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분명 같은 사령관인 루루보다 실질적인 직급은 높다고는 했지.
그리고 참고로 루루의 기억을 일부 엿본 결과. 루루의 어릴 적. 즉 마녀였을 적의 기억을 엿볼 수 있었다.
잠시 심상세계에 집중해보았다.
반신에 오르면서 루루의 어렸을 적 기억을 좀 더 자세하게 떠올릴 수 있었는데.
심상세계에 있던 루루의 초상화가 반짝 반짝이며 외곽의 테두리가 빛나기 시작했다.
마녀이면서 리치인 그녀.
어째서인지 에슬리의 의해 성격이 일부 개조 된 이후 나를 오빠라 부르며 따라다니던 루루의 행동이 납득이 되는 과거의 기억이 서서히 머릿속에 흘러 들어왔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서는 나는 통나무로 만들어진 산속 깊은 오두막 집에서 눈을 뜰 수 있었다.
방금 전까지 눈 앞에 있던 사린이 사라지고 새로이 나타난 결이 울퉁불퉁한 오두막의 문과 손잡이.
평소의 눈높이라면 이 정도 높이의 문 손잡이라면 허리에도 오지 않을 높이였지만, 어째서 인지 눈 높이가 낮아져 있었다.
혹시 가상 체험 그런 걸까? 어째서? 라는 의문이 들기 전에 무언가 꼭 필요한 과정이라는 개념의 독특한 감각이 내 의문점을 잠재워 나갔다.
손잡이로 뻗은 손이 새하얗고 여려 있었다.
남자치고는 가느다랗고 힘줄 하나 보이지 않는 말랑말랑한 피부.
살짝 발 아래를 내려다 보니 확실히 입고 있는 옷이나 피부 같은 것이 분명 내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과거의 모습도아니었고.
스윽.
뒤로 돌아보자 오두막 내부의 모습이 보였는데, 낡고 해진 침대 하나와 결이 많이 상해 보이는 나무 탁자 하나, 그리고 벽에는 사냥 도구로 보이는 것들과 낡고 해진 옷들이 주렁주렁 걸려 있었다.
걔 중 높은 곳 일부에는 동물의 박제나 가죽 따위가 걸려 있었는데, 쓸모 있어보이기 보다는 버리기 아까워 걸어 놓은 것 같았다.
끼익.
주위를 살펴보는 동안 오두막의 경첩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는 인기척이 들려와 뒤를 돌아보았다.
그 곳에는 내 눈높이보다 좀 더 작은 자그마한 여자아이가 문을 밀고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허리 아래까지 내려오는 바이올렛 머리가 인상적인 여자아이였는데, 꼬질꼬질하게 생긴 낡은 원피스 하나를 입고 코를 훌쩍이면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오빠. 배고파..."
오밀조밀하게 생긴 이목구비와 작고 여린 몸뚱이. 그리고 나를 쳐다보는 맑은 눈망울.
그래. 이건 루루의 기억 속. 즉 어렸을 적의 루루의 기억 안이었다.
루루의 기억 안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머릿속에 각인 되자, 조금 전까지 내 몸 같이 느껴졌던 루루의 오빠라는 아이의 몸이 자동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안. 루루. 이제 집에 먹을 게 없어."
그러면서 루루의 오빠라는 아이의 기억이 루루의 기억을 통해 투영 된다.
원래는 마녀의 숲이라는 곳의 숲지기와 아이들. 이들은 숲지기인 아버지를 포함해. 루루, 그리고 루루의 오빠. 이렇게 3인 가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숲지기는 보통 사냥꾼과 다르게 마물 사냥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독특한 사냥꾼이었는데.
얼마전 불어난 마물로 인하여 사냥꾼인 아버지가 행방불명에 놓인 상태였다.
진실은 이미 마물에게 죽임을 당한지 오래였지만, 그런 사실을 아이들은 알 수 없었다.
오로지 돌아올 아버지만 기다리며 하루하루 오두막에 쌓여 있던 식량을 아껴 먹던 이 두 아이는 결국 아버자의 약속을 어기고 마녀의 숲에 들어가 이것 저것 주워 먹기 시작한지도 며칠 째.
이윽고 오두막 주변에 주워 먹을 것이 사라지자 주변을 탐색하던 루루가 빈손으로 집에 돌아온 것이었다.
그런 루루를 바라보면서 루루의 오빠는 결의를 다졌다.
"루루."
"응. 오빠."
"숲으로 들어가자."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부드러운 목소리와 함께 눈 앞에 있던 루루의 표정이 삽시간에 변했다.
처음에는 걱정하는 표정이었다가, 당황하는 표정 그리고 급격히 어두워지는 표정과 살짝 수그리는 머리.
"하...하지만 오빠. 아빠가 숲은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이대로 있다가는 우리 둘 다 굶어 죽을 거야. 그 전에 숲에서 먹을 것을 찾아야 돼."
시야가 스윽 돌아가면서 오두막 외벽에 걸려 있는 활과 부츠 그리고 가죽으로 만들어진 망토에 손이 향한다.
아슬아슬하게 닿는 높이에 있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잡아 내리면서, 망토 중에 가장 부드러워 보이는 망토를 루루에게 내민다.
담비로 만든 것인지 부드럽게 가죽 세공이 되어 있는 갈색 빛 털 망토를 걸친 루루와 곰의 것으로 보이는 투박한 형태의 가죽 망토를 걸친 루루의 오빠가 자신의 키에 맞춰 만들어진 활을 이리저리 만져본다.
잠시 활 시위를 잡아당겨 보거나 오두막 방 구석에 놓여 있는 화살통과 나무로 깎아 만든 투박한 나무 화살 몇 개를 시위에 걸어 본다든지.
사냥꾼이었던 아빠에게 배운 기술대로 여러가지를 점검하던 루루의 오빠가 가만히 침대 위에 걸터 앉아 기다리던 루루에게 시선을 준다.
"가자 루루."
"응. 오빠."
온 몸을 뒤 덮는 가죽 망토를 마치 로브처럼 입은 채 두 아이가 숲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숲지기의 오두막이 멀어질 수록 두 아이는 점점 숲이 그늘에 가리워진 것처럼 어두워 지는 것이 느껴졌다.
여기까지는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는 곳.
그늘이 진 것처럼 어두워진 숲이 마치 밤배경을 품은 것 같이 신비로운 어둠으로 변화하는 그 경계선에서 루루와 오빠는 걸음을 멈췄다.
식량으로 쓸 만해 보이는 버섯과 나물들이 잔뜩 자라나 있는 숲의 초입.
하지만 무슨 경계선이라도 그어져 있듯이 그늘진 숲과 밤하늘의 숲은 분위기를 포함하여 그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그리고 밤하늘의 숲을 통틀어 마녀의 숲이라고 부르는 것을 두 아이는 알고 있었고.
오빠의 시선이 잠시 마녀의 숲을 훑는다.
내가 느끼기에도 경이로울 정도로 아름다우면서 몽환적인 배경.
오빠의 걸음이 경계선을 넘는다.
잠시 꼬옥 하고 루루의 손이 오빠의 옷소매를 붙잡는 것이 느껴졌지만, 오빠의 발걸음은 이어졌다.
그리고 짙은 밤하늘의 숲에서 일순간 하얀 빛줄기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두 아이를 숲으로 유혹하듯이 흘러나오는 빛줄기들은 숲 전체로 퍼지며 나무의 줄기마다 은색의 아름다운 가지가 되었고.
주변에 먹을 만하던 버섯들은 다양한 색깔의 형광색으로 빛나면서, 식욕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동시에 먹을만해 보이던 나물 따위도 순식간에 푸른빛이나 하얀빛을 머금은 형광색으로 변해버렸고.
그 모습에 내 뒤를 따라오던 루루의 입에서 작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신기하다는 것보다는 뭔가 두려운 표정.
일 순간 오빠인 내 몸에도 이질적인 감각이 들었다.
뭔가 오감이 뒤집힌다고 해야 하나?
반신에 이르르면서도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기묘한 감각이 온 몸으로 느껴졌다.
추움과 더움이라는 단일화적인 감각이 아니었다.
3차원에서 4차원으로 진화 하는 것 같은 기묘하면서도 알 수 없는 느낌. 그리고 동시에 내 몸에서 그것에 대항하듯이 무언가 뿜어져 나와 온 몸을 휘감았다.
그러자 오빠인 내 몸에서 흘러나온 푸르스름한 기운이 온 몸의 감각을 되찾게 도와줌과 동시에 내 주변으로 다가올 듯이 변화하던 주변의 배경이 마치 자석처럼 멀어지기 시작했다.
신기한 느낌.
물리적으로 멀어진 것이 아니라 위화감이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
그리고 내 손을 붙잡고 있던 루루의 몸에서도 푸르스름한 기운이 흘러나와 나와 연결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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