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화 〉 제 16화. 이상한 현상.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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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산의 떨리는 두 손이 부러진 화살 촉을 붙잡는다.
아직 남아 있는 바람 마법으로 인해 부서진 육편이 흩날리고, 와일드 보어의 등쪽이 쩍 갈라지면서 안에 있는 장기 따위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장기 따위의 너저분한 신체 내부 사이에 또 다른 물건이 보였다.
피 하나 묻지 않은 두 손으로 또 다른 물건을 집어드는 루산의 눈 앞에 보이는 것은 자그마한 포켓이 달린 목걸이었다.
설마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는데, 내 생각이 맞는 듯 목걸이를 들고 있는 루산의 손이 가느다랗게 떨려왔다.
바람 마법을 덧댄 두 손 위로 몽글몽글한 물방울이 피어오르며, 곧 피로 얼룩진 포켓 목걸이를 깨끗하게 씻겨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잎사귀와 나무줄기를 형상화 한 포켓 부분이 살짝 벌어지며, 그 안에서 낡은 초상화가 나타났다.
엄지손가락 만한 크기의 포켓 안에 있는 초상화는 낡은 양피지 위에 검은색 자수로 새겨진 두 아이와 두 어른의 모습이 어설프게 그려져 있었는데.
그걸 보는 순간 루산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 주룩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
아마도 당황한 루루가 등 뒤로 다가온 것 같은데, 시선을 돌리지 않은 루산이 포켓을 닫아 목걸이를 깨끗하게 갈무리 한 후에 그것을 품안에 집어넣었다.
혹시 그것이 루산의 아버지. 즉 숲지기였던 아버지의 유품이 아닐까? 싶었는데. 역시나 루산이 자신의 머리 위에 물을 한바가지 뿌리며, 눈물을 감추는 모습을 보며 확신으로 바뀌었다.
"오빠?"
당황한 루루의 시선.
루산이 물기에 젖은 머리를 허공에 털면서 시익 웃는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렇게 여느 때와 다름 없는 하루가 지나갔다.
1년, 2년.
쓸모 있는 지식과 쓸데 없는 지식들이 쌓이기 시작한다.
대부분이 마치 빠른 재생을 틀어놓은 동영상처럼 스윽 스윽 지나갔지만, 그것들 중 잃어버리는 기억 따위는 없었다.
내 것이 아닌 경험과 기억이지만, 마치 내가 겪고 배운 것처럼 기억들이 쌓여나가고.
마법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과 함께 마녀 안드레아의 권능에 대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권능은 이상한 현상.
이상 현상도 아니라 이상한 현상이라는 권능이었는데, 그것은 지금의 현상을 다른 것으로 왜곡하거나 뒤트는 힘을 말했다.
한마디로 현실을 초현실로 바꾼다고 해야 할까?
머리로는 완벽하게 이해하기 어려운 권능이었는데.
그 중 눈에 띄는 것이 마녀 안드레아가 평소에 항상 펼쳐놓는 결계, 그리고 간혹가다가 사용하는 차원 통로였다.
아공간과는 별개로 차원 통로는 다른 차원과 차원을 연결해주는 통로였는데.
마녀 안드레아의 말로는 다른 반신은 물론이고 신조차 탐내는 권능의 능력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아이린이 말했던 이상한 현상. 즉 검은 이상한 공간에 에슬리의 아이들이 빨려 들어갔다는 그 상황.
어쩌면 그것이 지금 안드레아가 펼치는 이상한 현상의 차원 통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루루가 그 현상을 조사하러 갔다는 사실이 왠지 그 추측에 신빙성을 더하고 있었다.
수백번 루산의 눈으로 지켜보고 배우는 과정도 보았기에 대충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루산. 루루의 오빠는 말그대로 천재 마법사였던 것 같다.
해가 거듭될수록 반신인 안드레아에게서 배워가는 마법의 수준과 실력이 점차 늘어가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처음에는 해가 거듭 되는 것을 셋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새지 않게 되었다.
대충 10년 정도라고 해야 하나?
루산의 몸이 소년에서 거의 청년 정도로 자라나 있었고, 루루의 몸도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수준에서 살짝 더 성숙한 모습으로 성장해 있었다.
어째서 지금이 더 어려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루산의 실력이 안드레아 못지 않게 성장했을 때.
안드레아는 자신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루산에게 알려주었다.
지금 내가 린에게 부여 했던 권속의 능력.
그것이 루산에게 생겨나면서 갑자기 기억이 뚝 끊어졌다.
루산의 몸에서 내 영혼이 멀어지는 것 같은 기분.
그리고 제 3자의 시점에서 또 다시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의 루산의 모습이 보였다.
완전히 성인이 된 루산의 몸.
그리고 루산은 피투성이가 된 루루의 어려진 몸뚱이를 두 팔로 끌어안은 채 오열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어째서?
라는 의문이 끝나기 전에 비가 쏟아져 내리며, 숲이 아닌 거대한 왕성이 눈 앞에 나타났다.
어디선가 익숙한 모습의 왕성.
그래.
지금 이 시점은 아우렌과 아우라스의 기억속에서 보았던 그 인간들의 왕성이었다.
꽃을 사랑하던 공주가 있으며, 어리석은 왕자가 존재했던 곳이고 이윽고 그 이후가 어떻게 된지를 모르던 그 왕국.
이름을 모르지만 이 모든 비극과 희극이 연결된 인간 왕국.
그 왕성의 입구 앞에서 광기에 젖어든 루산이 앞을 향해 손을 뻗는 것이 보였다.
검은 통로.
이상한 현상이라 불리던 마녀 안드레아의 권능이 루산의 손에서 펼쳐졌다.
"서방님?"
눈을 번뜩 뜨니. 눈 앞에 사린이 나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검은 머리에 검은 동공.
자세히 보니 동공의 모양이 마치 자그마한 거미를 형상화 해 놓은 것 같이 생겼다.
"어... 잠깐. 머리가 어지럽네."
오랫동안 기억을 엿봐서 그럴까? 순간 현실감각이 살짝 떨어지면서 뒤 늦게 흡수된 기억들이 내 머릿속에 자리 잡히는 과정으로 머리가 어지로워졌다.
"앗!"
사린이 재빨리 등 뒤에 달린 여섯 개의 거미 다리로 나를 붙잡아준다. 물론 사심이 가득한 덕분인지 왠지 끌어 안아 포옹하는 자세가 되었지만.
"서방님. 괜찮으세요?"
살짝 수그려 안긴 탓인지 얼굴 위로 풍만한 사린의 가슴의 감촉이 느껴진다. 폭신폭신해야 하다고 해야하나?
잘 익은 호빵처럼 따뜻하면서 폭신폭신한 감촉.
그러고 보니 사린이 내 기억을 뒤져서 개량 한복을 입은 모습이었는데, 약간 기녀풍? 이라고 해야 하나? 앞섬이 크게 틔여 있는 탓에 가슴 골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이제 괜찮아..."
가볍게 사린을 밀어내자, 사린이 아쉬운 눈빛과 요염한 눈빛으로 나를 번갈아 쳐다본다.
그러고 보니 사린은 각성한 이후에 섹스를 해본 적이 없었지?
몸통이 거미였을 적에 말고 지금 같이 인간형으로 바뀐 이후에는 해본 적이 없었다.
"서방님?"
내 시선을 느꼈는지 사린이 지금 당장이라도 옷을 벗을 것처럼 상의를 살짝 옆으로 풀어헤친다.
"잠깐... 지금은 말고."
그러고 보니 저번 전투 때 모두에게 섹스를 해준다고 약속을 한 준 탓인지 다들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뜨겁다.
"본녀는 언제든 준비 되어 있답니다?"
그러면서 슬쩍 벗으려던 상의를 우아한 손짓으로 여미면서 사린이 가볍게 윙크를 했다.
"그나저나 사린. 지금 뭔가 다들 급해 보이는데. 2층의 사령관이 와서 그런 거야?"
질문으로 대화의 주체를 돌리자, 사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서방님. 지금 2층의 사령관이..."
"윽!"
갑자기 사린의 등 뒤로 무언가 툭 하고 내 품 안에 날아든다.
아슬아슬하게 두 손으로 받아내니 이를 악문 표정의 세라자드의 머리가 들려 있다.
그리고 순간 내 몸안에 있던 기운 일부가 뭉태기로 빠져나가 어디론가 흘러가는 것이 느껴졌다.
잠시 눈을 감고 집중하자, 심상세계에 아우렌의 초상화 앞에 린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테두리가 활성화한 상태에서 린은 악문 채 서 있다가 내 시선을 느꼈는지 휙 돌아보면서 입을 열었다.
도와줘.
말은 들리지 않지만 의미가 전달됐다.
눈을 뜨자마자 나는 다급하게 들고 있던 세라자드의 몸통을 눈 앞에 있던 사린에게 맡기며, 재빨리 막사 안으로 뛰쳐 들어갔다.
뭔가 투닥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아서 몰랐지만, 사령관 막사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온 몸이 거센 바람을 맞는 것 같은 저항감을 한 차례 느낀 후에 내부를 확인 할 수 있었다.
검은 막.
마치 검은 먹물을 먹은 한지처럼 얇은 막을 지나치자, 냉병장기가 거세게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내 옆으로 세라자드의 몸통이 날아와 막사의 벽에 쳐박히는 모습이 보였다.
막사 내부의 모습은 처참했다.
일단 듀라한인 세라자드야 사지가 잘려나가도 멀쩡하다고 해도, 눈 앞에 있는 사지가 잘려나가 바닥에 뒹굴고 있는 룽룽인지 율리시아인지 모를 좀비의 육체.
그리고 반대로 룽룽인지 율리시아인지 모를 좀비가 입고 있는 검은 정장이 넝마가 된 채인 린의 멱살을 붙잡고 들어올린 상태였다.
"서방님?"
"오빠야?"
뒤 늦게 나를 따라 들어온 사린과 아이린의 목소리와 함께 룽룽인지 율리시아인지 모를 좀비의 시선이 내 쪽을 향했다.
"아아... 조용히 처리하려고 했는데. 일이 틀어졌군요."
어색하면서 어눌한 중성적인 목소리가 좀비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그리고 녀석이 멱살이 잡힌 채 피를 토해내는 린을 내 쪽으로 휙 집어 던진다.
아슬아슬하게 린의 몸을 두 손으로 받자, 녀석이 한 손으로 빙글빙글 돌고 있는 새하얀 기운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기다린 보람이 있군요. 나머지 재료들이 전부 모였습니다."
"지호... 저 녀석 엄청 강해."
내 품 안에서 피를 토하는 린의 몸에서 내 권능과 함께 기운이 빠져나가 내게 다시금 흡수 되는 것이 느껴졌다.
아우렌의 능력을 빌렸는대도 린이 밀렸다라.
순간 눈 앞에 있는 존재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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