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8화 〉 제 16화. 이상한 현상. (8)
* * *
다시금 눈 앞에 있는 상대를 시선에 담았다.
이제는 린을 집어 던진 후라 한손에는 기괴한 하얀 솜사탕 같은 덩어리를 들고 있는 룽룽인지 율리시아인지 모를 좀비.
기감이 여러가지의 가능성을 내게 알려주고 있었지만, 확실한 것은 눈 앞에 있는 것이 적이라는 사실과 만만치 않다는 사실.
그리고 저 손 안에 있는 솜사탕 같은 기운 덩어리가 어마어마한 힘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좋아. 그럼 시작해볼까요?"
막아야 한다.
시작하기 전에 무조건 막아야 한다는 위기감이 나를 엄습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본능에 따라 재빨리 심상세계로 들어가 가능한 권능 전부 활성화 했다.
모든 초상화의 사각형의 테두리 한쪽 선이 반짝이며 활성화 된다.
평소라면 하나의 초상화를 완전히 활성화 시키는 것이 한계지만, 이번에 루루의 기억 속에서 보았던 마나 안드레아의 권능을 보고 배운대로 이상한 현상을 적용 시켜보았다.
야매로 배운 권능의 초월 방법이지만, 이 것을 활성화 하는 순간 몸에 부하가 걸리기 시작한다.
여러가지의 능력들이 몸 안에 뒤죽박죽 섞여 활성화 된다.
처음으로 비슷한 성질의 능력들이 권능 안에서 뒤섞여 조합된다.
안고 있던 린을 바닥에 조심스럽게 내려 놓은 후에 그 앞에 나서듯이 걸음을 옮겼다.
진각.
소설이나 만화에서 보았던 그런 어마어마한 근력이 터져나오며 발로 내려찍은 바닥이 쩌적 갈라지며, 막사 내부가 흔들린다.
순간 살짝 중심을 잃은 좀비 녀석의 몸이 휘청 거릴 때 폭발적으로 아우렌의 능력과 세라자드의 능력이 어우러져 순식간에 근육질로 변한 몸 위로 마나로 빚어진 오라가 맺힌다.
바람 같이 빨라진 몸과 터질듯한 근력으로 인해 소닉붐이 일어나듯이 주먹에서 바람을 찢는 소리가 들려왔다.
휘청거리던 좀비 녀석의 몸이 내 모습을 보고 시익 웃는다.
여러가지 신체로 기워졌지만 기본적으로 글래머한 여성의 몸을 한 녀석이 마치 공중에서 곡예를 하듯이 내가 지르는 주먹을 공중제비로 아슬아슬하게 피한다.
펑.
그리고 녀석이 서 있던 자리에 멈춘 주먹에서 파동 같은 것이 흘러나와 막사의 벽을 찢어놓는다.
"휘유~"
초승달 같은 자세로 부드럽게 내 주먹을 피한 녀석이 마치 기계체조를 하듯이 뒤로 덤블링을 돌다가 나를 쳐다보고 사악하게 웃기 시작했다.
"룽룽이냐? 율리시아냐?"
쌍둥이 처럼 만들어진 루루의 수하 좀비였기에 누구인지 구분은 안 됐지만, 자신의 쌍둥이 같은 한쪽 좀비를 저렇게 잔혹하게 찢여 죽였다는 것은 무엇인가 작정하고 벌일 일이라는 것이 확실했다.
더욱이 실력조차 숨기고 있었는지, 내 권능을 섞은 주먹도 가볍게 회피한다.
팡.
하고 몸 안에서 여러가지로 섞인 마나가 아지랑이처럼 형상화 해 내 몸에서 흘러나온다.
오라와, 마나, 그리고 발달한 오감, 강력한 신체, 검은 마나와 진한 풀내음. 마지막으로 내 가부장의 권능이 이 모든 것을 묶어 내 몸안에서 조화롭게 만들어 내고 있었다.
마치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은 느낌.
그리고 자신감이 넘치기 시작했다.
눈 앞의 상대가 만만치 않을 거란 생각과 반대로 나도 질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룽룽? 율리시아? 아... 그런 이름이었던가? 이 빙의 능력은 다 좋은데 조건을 맞추기 까다롭단 말이지."
그러면서 말한 좀비 녀석이 품 안에서 무언가를 스윽 꺼냈다.
"어디보자. 그래. 율리시아. 내가 빙의했던 녀석의 이름이군."
그리고 그 손 위에는 몇번 기워 놓은 흔적이 있는 심장이 쥐어져 있었다.
퍽!
하지만 곧 율리시아의 몸에 빙의 했다는 녀석이 주먹을 꽉 쥐자 심장이 터져버렸다.
그리고 숨이 넘어갈 듯 웃기 시작한 녀석이 다른 한손에 들고 있던 솜사탕 같은 것을 방금 심장이 있던 품 안에 스윽 집어 넣었다.
"이제는 뭐 필요 없으니까."
그리고 스윽 율리시아의 신체가 나비의 허물을 벗듯이 벗겨지면서 그 안에서 검은 로브를 입은 누군가가 나타났다.
중성적인 목소리에서 마지막에 어디선가 들어보았던 남성의 목소리로 변하는 것을 느끼며, 나는 눈 앞에 있는 남자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루산."
루루의 친오빠이자, 마녀 안드레아의 제자 및 권속이며, 대마법사이기도 한 그가 성인의 몸으로 나타나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구지? 내 이름은 어떻게 아는 거냐?"
누구란 질문을 이제야 던진 루산을 보며, 나는 왜 루루의 기억이 그 순간 떠올랐는지 알 것 같았다.
반신이라는 존재는 말그대로 신의 영역에 한발 걸친 상태.
전에 만났던 레미처럼 알기 싫어도 가끔 예지 같은 능력이 펼쳐지는데 그 중에 나는 과거에 기억을 엿봄으로써 그 예지 능력을 대신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알짜배기 기억들은 전부 뺴놓고 보여준 것 같은 느낌인데...
"뭐. 좋아. 내 이름 따위야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니까. 그나저나 너, 율리시아 때의 기억은 전부 날려 버려서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제법 강해 보이는 구나?"
"뭐, 그렇지. 그나저나 루산 네가 왜 여기에 있지?"
"왜 있기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여기 있는 거지."
"목적?"
순순히 물어볼 것 같지 않지만 일단 혹시나 해서 물어보았다.
"그래. 이 곳에 내가 있는 목적. 그건 바로 이걸 위해서지."
다시금 품 안에서 솜사탕 같은 하얀 기운 덩어리를 꺼낸 루산이 그것을 단숨에 자신의 심장을 향해 쿡 박아 넣자, 이내 몸 속으로 그 하얀색 기운이 스윽 빨려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좋아. 좋아. 이제 됐어. 나머지 넷에게도 전부 전달 됐으니까. 이제 나는 이 곳을 정리하면 되겠군."
"정리를 한다고?"
"그래. 물론 나 혼자 이 곳에 있는 모든 마왕군을 상대한다는 게 아니야."
그러면서 루산이 손을 뻗어서 허공에 손을 휘 휘 저었다.
"윽! 서방님!"
"지호!"
등 뒤에 막사의 입구가 있던 곳에 검은색의 차원 통로가 생기며 순식간에 그 안으로 사린과 아이린이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내가 뭔가 해보기도 전에 갑작스럽게 벌어진 현상.
그리고 곧 바닥에 누워 있던 부상당한 린과 세라자드의 머리와 몸통도 그 안으로 빨려들어가고 말았다.
까득.
손 써볼 새도 없이 내 주변인들이 차원 통로로 빨려 들어가자마자 나는 있는 힘껏 녀석을 향해 도약했다.
루산.
루루의 친오빠.
분명 지금 같이 맛탱이가 가기 전에 뭔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 것에 대한 기억은 마치 하이라이트 부분을 편집해 놓은 영상마냥 짤막짤막한 결과만 보여주고 있었다.
루루의 죽음 때문일까?
분명 비오는 날 지금 같이 어려진 루루의 몸을 끌어안고 오열하던 루산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스승인 마녀 안드레아와 싸우는 장면, 그리고 문제의 그 왕국의 장면.
어느 왕국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라아라와 사린 아우렌과도 접점이 있는 왕국이었다.
멸망했을까? 아니면 아직도 건재할까?
당장 아우렌만 보아도 그 왕국이 멀쩡할 거란 생각이 들지 않지만, 그 이전에 루산의 손에 멸망이 됐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것도 예지의 하나일까?
아니면 반신에 오르면서 날카로워진 감각 중에 하나일까?
팡!
녀석을 향해 스트레이트로 주먹을 뻗자, 녀석의 실드에 막혀 주먹이 멎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내 주먹은 현재 오러와 마나, 거기에 권능까지 섞인 탓이라 그런지 손 쉽게 루산의 실드가 깨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캉! 캉! 캉!
마치 두꺼운 얼음을 깨 나가듯이 중첩된 실드가 주먹에 박살나면서 녀석의 면상에 닿을 때 쯤. 녀석의 모습이 순간 흐릿 하게 변하더니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마법.
그래 이 곳에 와서 제대로 된 마법을 사용하는 자와는 싸워 본적이 없다.
용사의 부하들이래봤자 대부분 기사들이었고, 마법사라고는 딱 한번 봤는데, 그저 내 판타지 상식 내에 있던 단순한 마법만 사용하는 마법사였다.
지금 같이...
집중한 오감 속에서 느껴지는 미미한 소리와 진동에 그대로 몸을 휙 돌려 녀석이 있을 자리로 다시금 주먹을 뻗었다.
쾅!
이번에는 실드 말고도 무언가 사용했는지 실드가 쩌저적 금이 감과 동시에 내 주먹이 거기에 막혔다.
간담이 서늘한지 안심하는 녀석의 얼굴이 정면에서 보인다.
곧 바로 팔을 회수 한 뒤 연속으로 좌, 우 스트레이트를 날렸다.
캉!
캉!
순식간에 깨져 나가는 실드와 함께 녀석의 모습이 다시금 신기루 처럼 흩어지더니 이번에는 막사 내에서 완전 기척이 사라져 버렸다.
"젠장."
어디로 도망쳤지?
반신에 오르고 마녀 안드레아에게서 기본적인 마법에 대해서 배우긴 했지만, 머릿속으로만 이해할 뿐 실제적으로 써본 적은 없는 나였다.
곧 바로 막사 밖으로 뛰쳐나가려다가 문 앞을 막고 있는 차원 통로를 보고는 막사 옆을 몸으로 있는 힘껏 들이 박았다.
파각!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엄청나게 단단해 보이던 뼈로 이루어진 막사 벽이 박살나며, 몸이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뼛가루가 시야를 가렸지만, 곧 막사 밖인 사령실로 뛰쳐나오자 변화된 전초기지의 모습이 다시금 보였다.
방금 전 전초기지가 어수선한 분위기였다면 지금은 유령처럼 삭막하게 변해 있었다.
전초기지를 지키던 해골 병사들도, 노역을 하던 좀비와 해골들도 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삭막할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전초기지의 모습에 나는 돌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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