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화 〉 제 16화. 이상한 현상.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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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적이 있는 것 만이 아니지.
이 숲 이 형태. 그리고 이 이상하리만큼 기괴한 현상.
감각이 느껴지지 않고 시야만 공유됐기에 이제야 내가 보던 루산이 느꼈던 감각과 기분이 뒤늦게 내게서 느껴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상한 현상.
이상현상이 아닌 말 그대로 이상한 현상.
숲이 마치 성경에 나오던 홍해와 같이 갈라지며, 커다란 원통형의 길을 만들어냈다.
"어서오렴. 내 세번째 제자야."
귓가를 간지럽히는 목소리.
분명 살짝 약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는데, 그것이 소리가 되어 내 귓가에 맴돈다.
이치에 맞지도 않고, 이해를 하려면 불가사의에 가까운 권능. 이상한 현상.
그나저나 방금 세번째 제자라고?
"그럼. 비록 눈으로 밖에 배우지 못했지만 제자는 제자이지 않느냐?"
귓가에 맴돌던 바람이 빙글빙글 돌면서 새로운 목소리를 토해냈다.
그저 과거의 기억을 읽는 것인줄 알았는데, 여자 용사 때와 같이 마녀 안드레아는 나를 알고 있고 인지하고 있었다.
"내 이름은 알테니. 어서 오너라. 네 소개를 듣고 싶구나."
갈라진 숲 너머로 통나무로 만들어진 오두막이 보였다.
루루나 루산이 처음 만났던 그 나무의 뿌리로 만들어진 오두막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것처럼 인위적으로 지어진 통나무 집.
그런 오두막을 향해 걷자, 내 몸에서 흘러나오는 다양한 색깔의 마나가 내 주변을 보호하듯이 감쌌다.
본능적으로 그런 것을 알면서도 흘러나오는 내 마나의 흐름에 잠시 흠칫거렸다.
권능을 얻고 난 후로 처음으로 보게 되는 내 마나의 색.
그 전에는 초상화를 보고 하나씩 마나의 색이 바뀌는 것을 보았다면, 지금은 완전히 색이 뒤섞여서 무지개색으로 빛나는 내 마나의 흐름을 보면서 나는 오두막을 향해 계속해서 걸었다.
이질적인 지면의 느낌. 그리고 일반의 공기가 아닌 묵직하면서 따뜻한 공기.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숲이라 그런지 나무나 풀 따위에서도 안드레아의 붉은 마나가 흘러나와 내 주변을 빙빙돌았다가 사라졌다.
그러고 보니 내 마나중에 붉은색도 있었던 것 같은데, 루루의 마나였던가?
검은 마나와 붉은 마나 두 가지의 색을 가진 루루의 마나 덕분인지 주위를 빙빙 돌던 안드레아의 마나에 따라 내 주변을 감싼 마나중 붉은색이 도드라지게 반짝거렸다.
"어서오려무나."
오두막 집 앞에 도착하자, 위로 난 굴뚝 위로 붉은 안개가 자욱히 피어나기 시작했다.
뭔가 붉은색 가루가 섞여 나오는 것 같은 붉은 안개가 서서히 하늘로 피어오르고, 그것이 숲으로 퍼지는 것을 보면서 오두막 문 앞에 있던 나무 문을 안쪽으로 밀고 들어갔다.
끼익.
낡은 경첩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그 안에 다양한 화분과 자그마한 서재들이 잔뜩 들어선 독특한 분위기의 오두막 내부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 바닥에 가죽 카페트가 깔린 그 위로 흔들 의자에 앉아 있는 마녀 안드레아의 모습이 나타났다.
보기 좋게 마른 체형에 길쭉 길쭉 시원하게 뻗은 팔다리와 얼굴.
마치 마른 목각인형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살짝 들었다가 이내 반쪽짜리 백색 피부에 시선이 이끌렸다.
평범한 외모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깔끔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모습. 다만 반월 모양으로 흉측한 몰골로 반쪽이 나뉘어 있기 때문일까? 근데 유심히 보면 흉측하다기 보다는 뭔가 짝이 안맞다는 느낌이랄까?
화상자국이라고 하기에는 살짝 검고 죽은 피부라고 하기엔 또 붉다.
더욱이 피부만 그런 것 뿐이라 그런지 입술이나 눈은 또 정상이어서 뭔가 아름답다는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흉측한 반쪽 때문에 사랑스럽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고.
"그렇게 쳐다만 볼 거니?"
커다란 눈동자에 박혀 있는 좁쌀만한 동공이 나를 바라본다.
뭐라고 해야 할까? 만화 같은 것에 보면 가끔 광기에 젖은 캐릭터들이 갖을 만할 것 같은 눈동자랄까?
뭔가 동공이 작고 흰자 부위가 크게 보이다 보니 뭔가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집중적으로 노려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잠깐만요... 마녀. 안드레아 맞죠?"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그나저나 오두막 안을 들어서자 상쾌한 풀내음과 함께 따끔따끔하게 붉은 마나가 내 몸을 찔러오기 시작했다.
기분 좋은 향과 기분 나쁜 감각이 뒤 섞인 이상한 느낌.
"그래. 내가 마녀 안드레아란다. 그래. 네 이름은 어떻게 되니? 내 세 번째 제자야."
라미아들이 모시는 반신 레미와 또 다른 느낌의 어마어마한 힘이 느껴지는 존재가 마치 비좁은 공간에 숨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감각.
그리고 그 비좁은 공간에서 세어나오는 어마어마한 힘이 같은 반신이라도 격이 다르다는 느낌을 전해주고 있었다.
"제... 제 이름은 김지호입니다."
"김지호?"
"네."
이세계로 와서 존댓말은 거의 해본적이 없었는데, 눈 앞에 있는 안드레아에게는 자동적으로 존댓말이 튀어나왔다.
아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압박감이 느껴졌으니까.
"제법 격은 갖춘듯 하나. 허물만 그러하구나? 누군가 개입한 흔적도 있고..."
나를 품평하듯이 몸 이곳 저곳을 살펴보던 안드레아의 시선이 마지막에 내 똘똘이가 있는 사타구니 사이에서 멈췄다.
"보통 반신에 오를 때에는 그만한 격과 그릇이 필요한 법인데, 네 경우에는 한쪽에만 쏠려 있구나. 더욱이 그..."
순간 안드레아의 얼굴이 붉게 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이내 차분하게 가라앉은 그녀의 표정과 동시에 시선이 살짝 옆으로 움직였다.
"어쨌거나, 김지호. 내 세번째 제자야. 루루의 기억을 엿보았으면 알겠지만, 그 기억의 후반부는 아마 거의 남아있지 않았겠지."
안드레아의 말에 루산의 시점에서 보았던 루루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자신의 아비를 잃고, 마녀의 숲으로 들어와 마녀 안드레아의 제자가 된 후에 몇 년 동안 이 곳에 머물면서 제자로서의 역량을 키웠고, 차후에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대부분이 증발해버린 기억.
아마도 안드레아는 그 기억 부분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 기억을 보지 못했으니, 지금 상황이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권능의 능력상 일부의 기억은 보지 못한 걸로 착각했는데, 안드레아가 말하는 것을 보면 그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내 기억을 통해서 그 나머지의 상황들을 알았으면 좋겠구나."
그러면서 흔들의자에서 일어난 안드레아가 내게 다가왔다.
거의 나랑 비교해도 비슷할 정도로 커다란 키의 그녀. 아니 어쩌면 나보다 조금 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며 눈 앞까지 다가온 그녀가 늘씬한 목을 살짝 수그려 나와 눈 높이를 맞췄다.
가까이서 보니, 흉측하다고 생각했던 반쪽 짜리 검붉은 피부가 어째서인지 흉측하다기 보다는 무언가 어색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 본질적으로 잘못 되었다고 해야하나?
마치 색이 다른 블록을 끼워 맞춘 블록 인형처럼.
그런 이질감이 드는 것과 동시에 그녀가 내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살짝 가져다 댔다.
이어짐.
머리가 개통한다고 해야하나?
아니면 맑게 개인 정신이 머릿속을 관통한다고 해야 할까?
무언가 머릿속을 관통한다는 느낌과 함께 자동적으로 잠시 감았던 눈을 떠보니 은색의 대리석으로 온통 이루어진 건물이 시야에 나타났다.
끝을 알 수 없는 새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기둥들과 복도, 그 끝이 어둠인 것을 보니 이곳에 제대로 된 불빛이 없기에 시야가 짧은 것으로 보였는데.
잠시 기둥 사이를 자세히 살펴보니 기둥 사이사이 마다 마치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새하얀 대리석으로 된 여인들의 석상들이 존재했는데, 대부분이 전신이 정교하게 제작되어 마치 살아있는 것 처럼 느껴졌다.
잠시 내부를 살펴보고 있자니 복도의 어둠 끝자락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새하얀 나신의 여인이 걸어나오기 시작했다.
중요한 부위만 아슬아슬하게 머리카락에 가려져 있는 모습에 대리석처럼 새하얀 피부와 반쪽이 검붉은 피부로 이루어져 있는 여인의 모습.
한 눈에 그것이 안드레아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그리스 신전처럼 생긴 그 복도를 조용히 거닐던 안드레아가 근처에 있던 여인상중에 하나에 손을 뻗자, 그 여인상이 입고 있던 새하얀 프릴 원피스가 옷감으로 변해 그녀의 손에 날아들었다.
그리고 마치 원래부터 그 옷을 입고 있던 것처럼 몸을 한바퀴 빙 돌리는 것만으로 몸에 새하얀 원피스가 걸쳐졌고 서서히 그녀의 밤하늘 빛깔의 머리카락이 마치 바람에 휘날리듯이 한번 허공에 팔랑 하고 휘날렸다.
"내 세번째 제자. 김지호. 지금부터 내 기억의 일부를 보여주는 대신에 너는 내 기억속에 있는 모순을 찾아야 한단다."
갑자기 머릿속에 들려오는 안드레아의 목소리에 눈 앞에 있는 안드레아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시선은 커녕 눈을 감은 채로 입도 뻥긋 하지 않은 채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 모순을 찾게 된다면 네 격에 맞는 영혼의 그릇을 찾을 수 있겠지."
이어지는 그녀의 목소리에 나는 그녀가 말하는 영혼의 그릇에 대한 이야기를 곧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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