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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마왕 간부에게 소환당해 착취당하고 있다-142화 (142/220)

〈 142화 〉 제 17화. 영혼의 그릇.(2)

* * *

난생 처음 빛을 보는 사람처럼 하염없이 뻥 뚫린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안드레아가 앞으로 발을 내 딛자, 대리석이 아닌 흙먼지가 새하얀 다리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새하얗던 도화지 위에 모래를 뿌리는 것처럼, 그렇게 순백처럼 새하얗던 그녀의 다리가 갈색과 검은색으로 얼룩지자, 곧 불어온 바람이 그녀의 피부에 색을 입히기 시작했다.

대리석처럼 하얗던 피부 일부가 그늘에 가리어져 검게 변했고, 바람에 섞인 먼지와 풀잎따위가 그녀의 피부와 부딪히며 약간의 바랜 색을 만들어냈다.

누군가가 본다면 그냥 집 안에만 있던 사람이 바깥에 나와 겪는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치부할 수 있었게지만, 그녀는 그런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뚝. 뚝.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어째서인지 그녀또한 영문을 모르는 듯 표정이 기이하게 뒤틀렸지만, 대충 나는 알 수 있었다.

이건 안드레아의 탄생 그 이후, 처음으로 갖게 된 기억과 바깥으로 나오게 된 이후의 과거의 이야기라는 것을.

내가 뒤를 돌아보자, 그녀와 내가 있던 대리석으로 가득한 공간의 출구가 거짓말 같이 사라져 있었다.

마법? 이라기 보다는 권능에 가까운 그런 기적 같은 현상.

존재했지만, 존재하지 않는... 그런 기묘한 느낌과 함께 햇볓을 쬐고 있던 안드레아가 코를 킁킁 거리면서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후에는 손을 허우적대며 주변의 것들을 붙잡으려는 듯 낑낑대다가, 이내 자리에 쭈그려 앉더니 발 밑에 있는 흙은 한움큼 집어 들었다.

흙으로 인해 지저분하게 바뀐 두 손위로 생기 있는 흙더미 위로 안드레아가 코를 박고 냄새를 맡는다.

어른이 된 안드레아와 다르게 보통의 사람처럼 단편적인 감정이 드러나는 표정.

약간 찡그린 표정의 안드레아가 흙을 다시금 바닥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두 손을 턴다.

그리고 다시금 자리에서 일어난 안드레아가 주변을 살폈다.

숲.

간간히 나무가 심어져 있고, 덤블 같은 것들이 안드레아의 무릎까지 올라와 있는 일반의 평범한 숲이었다.

동물은 보이지 않지만 곳곳에 풀이나 꽃이 피어 있었고, 곤충이나 새 같은 것이 간간히 주위를 배회하고 있었다.

머리 위로 떨어지는 햇살. 그리고 그늘에 가리어진 피부의 일부.

어느새 숲 한복판에 덩그러니 떨어진 모습이 되 안드레아는 주위를 계속해서 살피다가 이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곤 새하얀 맨발로 계속해서 걸었다.

딱히 정해진 방향 없이 제대로 된 길이 아닌 길을 걸으면서, 그녀의 새하얀 맨발이 흙으로 더럽혀지고, 온 몸 곳곳에 생채기들이 나기 시작했다.

느리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은 걸음으로 계속해서 묵묵히 주변을 살피며 걷던 안드레아의 앞에 처음으로 동물이란 것이 나타났다.

다람쥐? 아니면 햄스터?

지구의 동물 중에 이런 것이 있을까 싶을정도로 동글동글하고 귀엽게 생긴 설치류가 안드레아의 앞에 나타나 재롱을 떨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호기심을 갖고 접촉한 것 같으나, 어느 순간 부터 그녀를 따라 걸으며 재롱을 피우고, 그런 녀석을 위해 안드레아는 가는길에 간간히 보이는 열매따위를 따서 녀석에게 던져주었다.

중간중간 자신도 맛을 보기 위해서인지 사과 크기의 큼지막한 열매를 따 먹으며, 맛이나 향에 따라 표정이 풍부하게 변하던 그녀가, 그 다음에 마주한 것은 맹금류 새였다.

날카로운 부리에, 큼지막한 눈, 그리고 설치류 따위의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자라난 맹금류의 발톱.

부엉이와 매를 합성해 놓은 것 같은 그 녀석은 나무 위에 걸터 앉아 안드레아를 따르는 설치류 녀석을 상시 노려댔다.

안드레아가 걷는 길을 따라 나무를 옮겨 다니며 기회를 엿보는 녀석 탓에 안드레아는 자그마한 설치류를 자신의 품에 안고 다녔다.

그러다 어느순간 비가 오기 시작한 시점으로부터 숲에 커다란 돌부리 같은 것이 생겨났고, 조심스럽게 그 돌부리를 넘던 안드레아는 실수로 발을 헛디디면서 품에 안고 있던 설치류를 놓쳤다.

그 순간을 노렸다는 듯이 맹금류 새가 설치류를 발톱으로 낚아 채 하늘로 날아올랐다.

허무함과 슬픔의 감정이 안드레아의 얼굴에서 나타났다.

그러다 문득 그 모습을 숲 속에서 누군가가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안드레아의 곁에서 살짝 떨어져 숲의 안쪽을 보니 하얀 여신상이 그녀를 따라 몰래 미행하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 소름이 돋았지만, 악의를 가지고 미행하는 것 같이 보이진 않았다.

조용히 따라다니면서 지켜보는데, 간혹 안드레아가 다치거나 상처 입을 때마다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아무래도 미행보다는 지켜본다는 것이 더 맞아 보였다.

여신상에서 시선을 떼서 다시 안드레아를 바라보았다.

설치류를 품에서 놓친 안드레아는 상처 받은 얼굴로 다시금 숲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름 모를 아름다운 꽃을 발견하고 화사하게 웃기도 하고, 잘못된 열매를 먹었는지 떫은 표정을 짓다가도 우웩하고 뱉기까지 했다.

평범한 인간 소녀처럼 숲을 거닐던 그녀에게 곧 그녀의 주먹보다 커다란 짐승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개와 고양이를 합쳐 놓은 것 같은 포유류 동물부터 시작해서, 거의 안드레아의 크기의 늑대까지, 마지막에는 거의 오토바이 크기의 맷돼지까지 그녀의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그녀는 여러가지 표정을 지으며, 숲을 계속 걸어나갔다.

가끔씩 시비를 걸어오는 포유류 동물도 있었지만, 그것이 위협으로 와닿지는 않았다.

그렇게 그녀가 걷고 걷자, 숲이 끝나는 지점에서 푸른 들판이 펼쳐졌다.

그 곳만큼은 여신상도 따라오지 못하는지, 나무 뒤에서 한참을 들판으로 들어서는 안드레아를 바라보던 여신상이 이제서야 걸음을 돌렸다.

물론 신기루처럼 순식간에 증발하듯이 사라져서 걸음을 돌렸다는 이야기보다는 사라졌다는 표현이 옳겠지만 말이다.

푸른 들판에 도착한 안드레아는 다시금 그 들판을 걷기 시작했다.

혹시모를 사과 같은 과일 하나를 손에 쥔 채, 그녀는 걷고 걸었다.

숲에서는 아무리 걸어도 나타나지 않던 밤하늘이 이제야 그녀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새하얀 달빛. 그리고 하늘을 수 놓은 수 많은 별들.

안드레아의 시선이 하늘에 닿아 내려오지 않았다.

그렇게 안드레아의 들판에서의 하루가 지나고, 잠을 자지 않는 안드레아는 계속 해서 들판을 걸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녀의 몸보다 훨씬 커다란 말이 나타나고, 그것을 노리는 맹수들이 나타났으며.

그런 맹수들은 안드레아를 경게하듯이 쳐다 만 보다가 목표물을 향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 것들을 지켜보며 안드레아는 계속 해서 걸었다.

마치 모든 생명들이 그녀를 기점으로 나타나고 탄생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그녀는 수 없이 많은 동물과 식물들을 맞이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서 그녀를 닮은 이족 보행의 생물체가 나타났다.

어린 나무들로 이루어진 자그마한 숲.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나무 기둥이라고 생각하기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엄청나게 거대한 나무 기둥이 나타났다.

하늘을 올려다보아도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나무 기둥.

전에 보았던 여신상처럼 무언가 신성이 느껴지는 나무 기둥은 안드레아가 다가오지 못하게 강렬하게 기운을 내뿜었다.

숨이 턱 하고 막힐정도의 거부감이 드는 신성력과 함께 그 자그마한 나무들 사이로 안드레아 또래의 인간 형상들이 나타났다.

안드레아의 시선을 따라 그 인간 형상들에 다가가 보니, 뭔가 기괴 하게 생긴 나무 인간들이 서 있었다.

분명 인간처럼 살결과 팔 다리는 구현이 되어 있는데, 그것에 나무 뿌리나 줄기 같은 것이 달라 붙어 있고, 피부색은 진녹색에 귀까지 뾰족하고 길었다.

아직 덜자라서인지 아니면 실패한 것인지 모를 인간을 닮은 생물체를 피해 안드레아는 들판을 계속 해서 걸었다.

자그마한 숲을 지나 이번에는 누런 곡식이 들어찬 곡창지대에 들어섰다.

곡창지대에 들어서자 안드레아의 무릎까지 닿는 곡식들이 풍성하게 자나라 있었는데, 안드레아가 그 사이를 걷다 보니 온갖 종류의 곤충들이 곡식 위로 뛰어 오르기 시작했다.

신기한 표정을 짓는 안드레아가 어린 아이마냥 발을 이리저리 놀리며 곡식을 헤집자, 메뚜기 같이 생긴 곤충부터 시작해서, 자그마한 새와 곤충들이 펄쩍 펄쩍 뛰어올랐다.

몇몇 종류는 안드레아를 향해 뛰어 오르기도 했는데, 무언가 벽에 막힌 것 마냥 안드레아의 앞에서 툭 하고 허공에 부딪혀 튕겨져 나갔다.

중간 중간 안드레아가 그런 곤충들을 잡아보려고 손을 뻗어보았지만, 워낙 날쌘 것인지 이내 손가락 사이나, 손이 닿기 전에 휙 휙 도망쳐 다녔다.

어느 정도 그렇게 곤충들과 놀던 안드레아가 저 멀리 곡창지대에 보이는 커다란 나무 기둥을 발견하고 선 곤충들에게서 흥미가 떨어져 그 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숲이나 들판과도 또 다른 발자국 소리가 울려 퍼지며, 곡창지대 한 가운데에 세워진 나무 기둥을 향해 안드레아가 다가서자 어느 순간 으르렁 거리는 소리와 함께 경차 정도의 크기를 자랑하는 집체만 한 늑대가 눈 앞에 나타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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