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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마왕 간부에게 소환당해 착취당하고 있다-144화 (144/220)

〈 144화 〉 제 17화. 영혼의 그릇.(4)

* * *

무언가 이름이 있다는 것이 특별한 것인가?

잠시 고민해보았다. 세계수와 엘프들 같은 경우. 둘 다 신격과 태초의 존재들이었음에도 이름이 없었다.

"이름이 있다는 것은, 넌 신인가?"

이어진 미노타우르스의 말.

그 제일 앞에 선 누런 황소를 연상케 할 정도의 색깔에 3M는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커다란 미노타우르스의 질문에 안드레아는 그 절반이나 될 법한 자그마한 키로 그를 올려다보며 시선을 마주했다.

"아니. 난 신을 찾고 있어."

신을 찾고 있다는 말에 안드레아의 말에 미노타우르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넌 태초의 존재인가?"

태초의 존재라는 말에 안드레아는 고개를 저었다.

"잘 모르겠어."

그 말에 안드레아와 마주하던 미노타우르스가 고개로 주변의 미노타우르스들을 물렸다.

그리고 잠시 뒤에 아우렌을 닮은 것 같은 소보다 인간에 가깝게 생긴 미노타우르스 걸 하나가 걸어왔다.

머리에 자라난 뿔이나 몸 곳곳에 자라난 짐승의 털을 제외한 관절이나 발과 손, 얼굴이 인간을 닮아 있었는데, 아우렌만큼 키가 2미터 50센티는 되어 보이는 바람에 거인족처럼 보이기도 했다.

"내 아내요."

그 말과 함께 거대한 흉부를 가진 미노타우르스 걸이 가까이 다가와 안드레아를 향해 시선을 맞췄다.

허리를 살짝 수그렸음에도 얼굴보다 커다란 흉부 때문인지 안드레아의 시선이 잠시 흔들렸지만, 이내 눈 앞에 허리를 숙인 미노타우르스 걸과 시선을 맞췄다.

"만나서 반가워요."

말을 하며 살짝 머리를 수그리더니 이마를 내밀어 안드레아의 이마에 맞댔다.

순간 악수를 하기 위해 손을 내밀려던 안드레아의 손이 머쓱하게도 말이다.

"만나서 반가워요."

서로 이마를 맞댄 상태에서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안드레아의 모습에 미노타우르스 걸이 방긋 웃으면서 수그렸던 허리를 폈다.

"뒤에서 듣자하니, 이름이 있다고 하던데..."

담갈색의 머리카락이 산발하는 그녀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안드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맞아. 내 이름은 안드레아야."

그 말에 살짝 놀란 얼굴이 된 미노타우르스 걸이 자신을 아내라고 부른 미노타우르스를 보고 눈빛으로 무언가 신호를 주고 받았다.

그 모습에 안드레아가 잠시 둘을 번갈아 보다가 이내 아내라고 불렀던 미노타우르스 걸이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짓다가 어쩔수 없다는 듯이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안드레아에게 다가가더니 이내 허리를 숙여 시선을 맞췄다.

"저희에게 아이들이 있습니다. 혹시 그 아이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아이요?"

질문의 요지가 갈리는 둘의 반응에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현재 미노타우르스와 그의 아내인 미노타우르스 걸은 계속 이름에 집착하고 있었다.

이름... 이름에 무언가가 있는 걸까?

"네. 저희 아이들이요."

간절해 보이기까지 하는 미노타우르스 걸의 말에 안드레아는 살짝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마도 처음 내가 했던 생각을 똑같이 하는 듯, 잠시 고민에 빠진 것 같던 안드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이 필요한 거야?"

그 말에 화색이 도는 미노타우르스 걸의 얼굴 표정에 안드레아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꼭 필요합니다."

"혹시 너희는 이름이 없는 거야?"

안드레아의 질문에 미노타우르스 걸과 미노타우르스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네. 저희는 따로 이름을 부여 받지 못했습니다."

"그럼 평소에 뭐라고 부르는데?"

그 말에 미노타우르스 부부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저희는 그냥 수호자라고 불립니다."

안드레아가 두 미노타우르스 부부를 따라가 도착한 곳은 봉우리 끝 부분만 살짝 눈이 덮여 있는 거대한 산맥의 초입 부분이었다.

그 산맥의 초입 부분에는 거의 지하철이 지날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터널이 존재하고 있었는데, 바닥이 전부 새하얀 대리석으로 되어 있었고, 중간중간 입구와 동굴 내부에 새하얀 대리석 기둥이 박혀 있었다.

"여기는 미궁입니다. 저희는 수호자로써 신에게 만들어져 그저 이 곳을 지키고 있을 뿐이죠."

미노타우르스가 앞장서고 미노타우르스 걸이 안드레아의 옆에 서서 동굴 안으로 들어서며 내부를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신이 어떠한 이유로 인하여 만들었다던 미궁.

그 곳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종족 미노타우르스.

미궁을 지키는 미노타우르스들은 전부다 수호자로 불리며, 별다른 이름이 없었다.

한번은 각자의 이름을 만들어볼까도 싶었는데, 무언가 내부에서 느껴지는 불길함과 불안함에 시도조차 못해봤다고 한다.

이름을 얻으면 미궁을 지키던 수호자의 근본이 사라질 것 같다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미궁을 지키는 미노타우르스는 세를 거듭해가며 그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 미궁에만 머무르기에 그 숫자나 먹는 것이 감당이 되지 않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 같이 미궁 밖으로 나와 사냥을 하기는 했는데, 수호자 본연의 직책 때문인지 오래 있지는 못한다고 했다.

"저희 아이들만이라도 이름을 얻어 자유로워 졌으면 좋겠습니다."

솔직 담백한 미노타우르스 걸의 말에 안드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을 얻으면 그게 가능 한 거야?"

"아마도요?"

"그넘 너도 이름을 가지면."

"안됩니다. 저희는 이미 늦었어요."

"늦었다니?"

"그게 뭐라고 해야 하지 본능적으로 그게 느껴집니다."

그 말에 안드레아가 미노타우르스 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들을 조합해 이름을 지어보았다.

"미노리아. 미노리아가 어때?"

안드레아의 말에 미노타우르스 걸이 잠시 서 있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뭐라고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응? 방금 네 이름을 지어줬는데."

"그렇습니까?"

약간 찹찹한 표정의 미노타우르스 걸의 모습에 안드레아가 이리저리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불가능한가 보구나."

문득 둘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나도 이 현상을 두고 뭔가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왜 어째서 안드레아가 이름을 지어줬는데, 미노타우르 걸은 이름을 듣질 못하는 걸까?

그리고 안드레아는 이런 현상을 이해해 버린 걸까?

잠시 생각을 원초적인 시점으로 돌려보았다.

생각해보면 애초에 미노타우르스 걸과 처음 만나는 안드레아가 서로 말이 통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제대로 된 언어라는 것도 없고, 발성 기관이나 생태계는 물론 종족조차 다르다.

그런데 말이 통한다.

그러나 이름을 얻지 못한다.

이름. 말.

그냥 평범하게 생각했던 이 모든 것이 혹시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면, 이름조차 강제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것이 신인가?

아니면 이세계의 법칙 중 하나인가?

애초에 내가 지구에 있을 때의 기본적인 법칙들을 깡그리 무시하는 이세계였다.

그러니까 가능하지 않을까?

내가 알지 못하는 법칙. 혹은 신의 권능.

문득 안드레아가 들렸던 투루카가 있던 오크 마을이 떠올랐다.

그 곳의 마을의 오크들은 태어날 때마다 이름 대신 주변의 상황과 환경에 따라 별명 같은 이름을 얻었다.

마치 지구의 인디안들처럼 제대로 된 이름 대신 별칭 같은 것을 얻은 그들과 달리 세계수에 머물던 엘프들은 완전히 이름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문명이라는 것이 존재하지도 않는 것 같기도 했지만, 그렇게 따지면 이 미노타우르스 종족도 문명이라는 것이 거의 존재하지 상태였다.

하지만 그들과 달리 이름을 갖고 싶어했다.

무엇이 차이가 나길래 이러는 걸까?

엘프들에게는 세계수가 있었고, 미노타우르스는 지켜야 할 미궁이 있었다.

한쪽은 이름에 관심이 없었고, 다른 한쪽은 이름을 갖길 원한다.

왜? 어째서?

미노타우르스들은 말했다. 이름을 가지게 된다면 자유로워 진다.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 걸까?

신에게서 자유로워 진다는 걸까? 아니면 신이 부여한 사명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걸까?

그러면 이름을 가진 투루카는 자유로웠던가?

지금의 안드레아는 자유로운가?

모르겠다. 머리로 이해하기엔 너무나 어려운 문제였다. 간단하게 이렇지 않을까? 하고 생각할 때마다 마음속에서 피어오르는 신적 감각이 그것들을 실시간으로 부정했다.

"아이들에게 데려다 줘."

잠시 멈춰 있던 미노타우르스 걸에게 안드레아가 말을 걸자, 앞에 서 있던 미노타우르스가 가볍게 콧김을 내 뱉으며, 미궁 깊숙한 곳으로 안드레아를 안내했다.

자수정 보석이 곳곳에 박혀 기묘한 빛을 밝히는 어둠이 가득한 미궁 내부를 빙글빙글 돌듯이 지나가면서 몇 개의 기믹들을 작동해 원래라면 들어설 수 없는 공간까지 들어섰다.

조금 전 있던 미궁과 다르게 이 곳은 자그마한 학교의 강당 크기만한 공간으로, 두꺼운 대리석 바닥과 천장은 대리석으로 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어 마치 자그마한 야구장처럼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공간의 중앙에는 손가락 두께의 계단 식으로 둔턱으로 대리석 바닥의 둔턱이 있었고, 그 위에는 거대한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요람이 있었다.

그 중앙에서 무언가 꼬물꼬물 대는 인기척을 느낀 안드레아가 천천히 그쪽으로 걸어갔다.

요람 위에는 자그마한 인간의 아이 크기의 미노타우르스들이 들어차 있었는데, 숫자로는 대충 스물을 넘어보였다.

꼬물꼬물거리며 팔 다리를 허우적 대는 미노타우르스 아기들과 그 중에 섞여 있는 인간의 모습을 반 쯤 섞어 놓은 모습의 미노타우르스 걸 아기들.

그 모습에 안드레아의 얼굴이 화사하게 변했다.

오크 때도 그렇지만 안드레아는 아기들을 보는 것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인지 그 요람 안에 꼬물꼬물 거리고 있던 미노타우르스 아기 하나를 두 손으로 번쩍 집어 올렸다.

"귀엽다."

그리고 뒤 늦게 다가온 미노타우르스 부부가 약간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안드레아에게 들린 아기의 모습을 보다가, 이내 그 부부를 향해 몸을 휙 뒤돌린 후 아기를 내민 안드레아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이 아이의 이름은 이제부터 마노스야."

그리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기에게서 휘황찬란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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