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화 〉 제 17화. 영혼의 그릇.(6)
* * *
"아 참 아기자기하군요."
안드레아의 시점에서는 조금은 낮은 천장과 가구들을 보면서 천천히 병사가 안내한 의자에 걸터 앉았다.
살짝 무릎이 들리는 높이의 의자에 앉아 안드레아는 맞은 편에 앉은 한스라는 병사를 바라보았다.
"거... 눈빛이 좀 무섭구려."
안드레아의 입장에서는 그저 바라보는 정도였지만 커다란 키나 자신을 압도하는 것 같은 시선을 받은 병사 한스는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뚝. 뚝. 실시간으로 떨어지는 땀을 보면 확실히 일반인에게 반신이라는 존재가 어떠한 존재인지 각인 되는 느낌이었다.
그나마 나 같은 경우는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몬스터 아가씨들이 그 정도였던 걸까?
반신에 오르고 나서 내 앞에서 쭈뼛쭈뼛하던 아가씨들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섭다는 게 어떤 점이 그렇습니까?"
여러 종족을 거치면서 매력적이다, 아름답다 라는 말만 들어오던 그녀였기에 한스의 반응을 보며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꺾으며 물었다.
"그건!... 아...아니오."
다리를 달달 떨면서 한스는 깍지를 낀 손으로 안드레아와 마주 앉아서 고개를 숙였다.
"궁금한 점이 몇 가지 있어서 그런데 대답해 주실수 있으실지요?"
"마...말해보시오."
"사람이라는 종족은 당신네를 지칭하는 단어입니까?"
"거 마치 인간이 아니라는 듯 말하는데... 아니지 인간이 아닐 수가 있나? 사람이라는 것은 그냥 인간을 뭉뚱그려 말하는 단어고 굳이 종족으로 분류하자면 나는 인간이오."
아직까지 자신이 인간이 아닐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안드레아가 인간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은 채 계속 중얼거렸다.
나쁘지 않은 어감이라고 생각하는 듯 표정에서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그 모습에 한스의 얼굴이 더욱 더 새하애졌고.
잠시 인간의 기원이나 습성에 대해서 천천히 묻기 시작하는 안드레아나 어쩔 수 없이 뭉뚱그려 설명해주는 한스의 대화가 1시간 정도 이어졌을까?
초소의 문이 벌컥 열리면서 금발의 여인이 들어섰다.
어디서 본 것 같은 모습의 금발 머리의 여인.
안드레아의 시선과 한스의 시선이 그 쪽으로 향한 틈에 금발 머리 여인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모습을 살펴보았다.
전신을 덮는 은색의 플레이트 갑옷에 수려한 외모와 시원하게 쭉 쭉 뻗은 기럭지.
잠시 그 여인의 모습을 보던 나는 설마 하는 생각에 초소 밖으로 빠져나와 왕국과 성문을 다시 살펴보았다.
내 기억 깊숙히 남아 있는 일부의 잔재들.
지금보다 성은 훨씬 커지고, 성벽은 넓었으며, 성문 또한 거대한 도개교와 여러 마법 장치들로 도배 되어 있는 탑들.
그래... 이 곳은 분명 아우렌에게 고통을 안겨주었으며, 사린의 고향을 짓밟고, 아라아라의 모든 것을 앗아간 그 왕국이 틀림 없었다.
누군가가 보면 비극이라고 할 수 있겠고, 누군가에겐 인과응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피와 복수로 얼룩진 왕국.
이름은 모르겠지만, 확실히 이 왕국의 끝은 알고 있었다.
존속을 일은 알라우네 족은 왕국의 푸르름을 빼았었고, 거의 멸족을 당하다시피한 아라크네에게선 마왕군의 침공을 당했으며, 어미를 빼았아간 미노타우르스 걸에겐 피의 복수를 당했다.
그런 와중에도 여차저차 존속을 유지하던 왕국은 마지막에 루산의 손에 멸망을 당했다.
다시 초소로 돌아오자, 어느새 대화의 물꼬를 튼 것 처럼 보이는 여인과 안드레아가 서로를 마주보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잘 보니 어느새 여인의 머리에는 왕관이 씌여져 있었는데, 장식물은 아닌 듯 주변의 병사들이 바짝 긴장을 한 채 거수를 한 채 기립하고 있었다.
군기가 잘 들어있다고 하기엔 처음 안드레아를 만나고 기겁하던 장면에 피식 웃음이 나왔지만, 왕관을 쓴 여인에게서 피어나는 기세는 그 웃음을 지우기에 충분했다.
안드레아의 기묘한 표정과 동공을 보고도 한치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으로 앉아있는 여인.
그 여인을 보고 있던 안드레아는 살짝 감정을 흘렸다.
아마도 여기서 인간이라는 종족도 자신의 종족이라는 것을 알아차렸겠지.
물론 전체적으로 닮은 것은 틀림없었지만, 똑같냐는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신을 찾고 계시다는 말씀이시죠?"
"맞아. 나는 나를 만든 신을 찾고 있어. 너희 인간은 뭐라고 했지? 신이 신전에 모셔져 있다고 했나?"
"네. 맞습니다. 신탁을 받을 때에 신전을 이용하죠."
어느새 인간이 아닐거란 확신이 든 안드레아는 다른 종족을 만났을 때 처럼 다시금 반말로 대화를 바꾸었다.
그녀에게 있어 존댓말. 즉 존중이라는 것은 같은 격을 가지거나 같은 수준의 종족이 아니면 의미가 없었다.
그렇기에 인간은 격도 떨어지고, 같은 수준의 종족이라고 하기에 미천했다.
비록 가구나 이런 도구를 만드는 것에 손재주는 그녀와 비슷하겠지만, 거기까지였다. 그 정도 손재주는 자신의 격으로 커버가 가능했으니까.
그녀의 가벼운 손짓에 둥그런 탁자 위에 검은 차원 통로가 열리더니, 이내 그 안에서 그녀가 필요한 도구를 툭 툭 튀어나왔다.
"혹시 이렇게 생긴 신이니?"
그러면서 내민 것은 그녀가 처음 태어났을 때 만났던 여신상의 모습을 한 대리석의 자그마한 조각상이었다.
"아니요."
차원 통로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여인에게 안드레아는 양피지와 목탄으로 만들어진 필기도구를 건넸다.
"그럼 여기에 대충 어떻게 생겼는지 그려주겠어?"
그리고 왕관을 쓴 여인은 안드레아에게서 양피지와 목탄을 건네 받은 뒤 잠시 그것을 차원 통로가 사라진 탁자 위에 다시 위에 올려놓았다.
"일단 늦었지만 제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전 케인샤파 왕국의 여왕 린스 하고 합니다."
케인샤파 왕국이라...
"나는 안드레아. 처음만났을 때 부터 말했지만 나를 만든 신을 찾고 있지."
"일단 방금 전 보여주셨던 조각상과 같이 생긴 신은 아니지만."
린스 여왕이 목탄을 쥐고 잠시 결을 보더니 곧 그것을 양피지에 대고 그림을 스윽 스윽 그려나갔다.
지금 막 안드레아가 보여주었던 조각상만큼은 아니지만 아름다움에 기준에 있어 좀 더 자애로워 보이는 여인의 모습이 그려진 양피지 위에 그려졌다.
완벽함에 있어서 안드레아가 처음 만났던 신만큼은 아니지만 그 정도의 기품은 충분히 느껴지는 모습의 그림.
그 그림을 보고 있던 안드레아가 상어처럼 톱날로 이루어진 이를 스윽 드러내며 양피지를 집어 들었다.
"그렇군. 인간들의 신은 그래... 역시 만든 이들을 닮았군."
그러면서 안드레아는 지금껏 자신이 만나왔던 신들을 떠올렸다.
살아있는 신을 직접적으로 본 것은 아니지만, 신의 모습이나, 성물. 혹은 태초의 존재들이 말하거나 그려주는 신의 모습을 보면 대게 태초의 존재 혹은 그 종족의 특징을 빼닮은 모습들이었다.
신이 여럿인가? 혹은 신은 모습을 바꿀 수 있는 건가?
안드레아의 생각 또한 나와 같은지 기묘한 표정으로 양피지를 집어 들고 감상에 빠져 있자, 린스 여왕이 그런 안드레아를 묵묵히 지켜보다가 이내 손에 깎지를 꼈다.
"혹시 저희 신전에 가보시지 않겠습니까?"
린스 여왕의 말에 잠시 안드레아가 양피지를 바라보던 것을 멈추고 조각상과 양피지 목탄을 재빨리 재소환한 차원 통로에 던져 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후에 안드레아는 린스 여왕을 따라 케인샤파 왕국에 있는 신전으로 향했다.
그리고 양피지에 그려진 똑같은 모습의 신의 조각상과 신전의 내부를 살펴보다가 이내 흥미가 식은 표정으로 신전에서 빠져나왔다.
그런 후에 안드레아는 린스 여왕에게 제안을 받았다.
혹시 인간들과 함께 살지 않겠냐? 라는 제안.
그 제안을 안드레아는 거절했다. 이 인간들의 왕국 너머에 있는 숲에 신이 있을 지 모른다며 만나러 가겠다고 하고. 그녀는 숲으로 향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
나는 다시금 안드레아가 태어났던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공간에 서 있었다.
안드레아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완벽해 보이는 여신상 앞에 서 있었다.
이제는 지금의 여인의 모습만큼 자라나 여신상과 거의 키의 차이도 없는 모습.
안드레아는 차분하게 여신상.
즉 자신을 만든 창조신 앞에 섰다.
그리고 그 순간 내 마음속에서 무언가 가득 차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고치지도 못할 거면서."
그리고 처음 안드레아의 기억을 엿보았을 때의 장면이 재생되었다.
손을 뻗어 안드레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다 그것을 거절 당한 여신상.
그리고 그런 여신상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안드레아.
"어째서 저를 만든 겁니까?"
이어지는 다른 기억의 파편에 공간이 흔들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 여기부터는 안드레아가... 아니지 창조신이 허락한 부분의 영역이었다.
"저는... 왜 저는..."
안드레아가 차원의 통로에서 누군가에게 받았던 망치를 꺼내 들었다.
영혼의 진동이 마치 흔들리는 공간처럼 울렁거리며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추측하던 것. 그녀가 확신 하던 것...
"키메라로 만들어진 겁니까?"
격분에 찬 그녀가 휘두른 망치와 함께 슬퍼 보이는 여신상의 몸이 산산 조각 나면서 박살 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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