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화 〉 제 17화. 영혼의 그릇.(7) 1부 끝.
* * *
창조신은 아무것도 없던 이세계에 여러가지 생명체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비록 다른 세계에서 만든 것을 보고 모방한 것들이었지만, 그것들은 창조신의 손을 거치며 조금씩 다르게 고쳐졌고. 그것은 여러 종족들을 탄생시켰다.
오크, 트롤, 미노타우르스, 리자드맨, 고블린, 엘프 등등.
창조신의 손에서 태어난 존재들은 창조신이 꾸미기 시작한 정원에서 부터 시작하여 행성이라는 커다란 공간을 만듦과 동시에 곳곳에 흩어졌다.
그리고 창조신은 마지막으로 인간을 만들기로 했다.
모든 행성에 베이스가 되는 생명체인 인간.
비록 각 행성의 지배자들은 외모나 신체적인 구조가 다르더라도 결은 하나 같이 인간이라는 영장류가 베이스였고.
신 또한 그런 인간들을 만드려고 여러번 노력하였다.
하지만 창조신이 모방에 가까운 창조만 이어가서였을까?
창조신이 원하던 인간은 좀처럼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런 과정에서 창조신은 마지막으로 자신들이 만든 종족들의 신체 하나하나와 특징들을 가려내 가장 인간과 흡사한 것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완성된 것이 그녀였다.
"아하하..."
부서지는 여신상과 눈부심을 잃어가는 신성력.
마치 반짝이는 보석들 사이에서 여신상을 부숴버린 망치를 땅바닥에 떨어뜨린 그녀는 미친듯이 웃기 시작했다.
잔여물처럼 남은 창조신의 기억이 그녀의 정신을 어그리뜨린다.
모방품. 실패작. 그런 것들이 그녀의 머릿속에 아른거린다.
"세번째 제자야..."
그런 그녀가 여러 감정이 휘몰아치는 표정으로 광적으로 웃기 시작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복수는 끝났단다."
순간 모든 것이 붕괴하면서 주변이 다시금 통나무 오두막 안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안드레아의 기억을 공유하면서 성장한 영혼의 그릇이 내게 위험하다고 경종을 울리기 시작했다.
그래. 이제야 알수 있을 것 같았다.
재빨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눈 앞에 두 눈을 지긋이 감고 앉아 있는 안드레아를 향해 덮치듯이 달려들었다.
그리고 두 손으로 그녀의 목을 졸랐다.
모든 것이 그녀의 농간이었다.
창조신을 저주한 그녀는 이 모든 것을 계획 했다.
그런 와중에 변수가 되었던 것이 나였고. 나를 반신에 올려놓음과 동시에 창조신을 다시금 조롱할 기회가 온 것이었다.
부서지는 세계.
어느새 구멍이 뻥 뚫린 오두막 위로 루산이 만든 것으로 보이는 차원 통로가 거대한 아귀 입이 되어 이 공간조차 집어삼키고 있었다.
창조신이 만든 키메라...
그것이 키메라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그녀는 창조신이 모방한 이세계를 부숴버리기로 마음 먹은 상태였다.
"김지호. 내 세번째 제자야."
목이 졸리고 있음에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두 눈을 번쩍 뜬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평범한 인간이었으면 목이 졸리는 와중에 절대로 하지 못할 행동.
그런 행동을 서슴치 하는 그녀가 내 두 팔을 가볍게 툭 툭 치며 말했다.
"이 곳이 마지막이란다. 아마도 너와 내가 네 세계에 도착하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나 있겠지."
그녀가 말하는 끝나 있다는 게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자세히는 알 수 없었다.
그것이 지구인지 아니면 이세계인지...
아니면 그 둘 다 일수도 있고.
갑자기 이성의 끈이 끊어질 것 같이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이... 미친년이."
한 손으로 목을 조른 채 주먹을 내 뻗으려는 순간 오두막의 천장이 갑자기 박살나는 소리가 들린다.
잠시 위를 올려다 보니 거대한 얼굴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라미아 특유의 바다냄새가 하늘 위에서 쏟아져 내린다.
그리고 그 거대한 얼굴과 마주한 나는 그게 누구인지 금방 알아차렸다.
"레미!"
설마 안드레아와 한통속인가?
연푸른빛의 거대한 라미아의 얼굴이 나와 안드레아를 번갈아 쳐다본다.
"약속을 지킬 때군."
그러면서 거대한 손아귀가 나를 붙잡는다.
순간 괴력을 발휘하려하자 오히려 안드레아가 거센 기세를 쏟아부으며, 레미를 검은 기운으로 공격한다.
나를 붙잡은 팔은 물론이고, 거대한 레미의 몸 전체로 퍼부어지는 나오는 검은 기운.
"용사여. 그대의 길을 가거라."
한손으로 나를 붙잡은 채로 다른 한 손으로 처음 만났을 때 들고 있던 물 담배를 입으로 가져다 대더니 이내 물방울 같은 것을 후 하고 불어서 만들어서 나를 그 안에 밀어넣었다.
"그리고 우리 라미아 일족의 명운을 너에게 맡기마."
슬퍼 보이는 레미의 얼굴 위로 안드레아의 검은 기운이 쏟아져 내리며 그녀의 피부가 검붉게 썩어들어가기 시작한다.
"절대 못 보낸다."
안드레아의 악귀나찰 같은 얼굴 표정과 함께 레미가 몸을 날려 내가 갇혀 있는 물방울을 온 몸으로 막아낸다.
순식간에 그녀의 피부가 검붉게 썩어들어가며, 오두막 전체가 점토가 되듯이 흐물흐물 녹아내린다.
"레미!"
원통함에 사무친 내 목소리가 물방울 안에 울려퍼진다.
"가라. 용사여."
거대한 비눗방울에 갇힌 것 같은 모양으로 내 몸이 하늘로 두둥실 떠오른다.
그것도 천장에 있는 거대한 차원 통로를 향해.
"안 돼!"
안드레아의 절규에 가까운 외침과 동시에 나를 지켜주던 거대한 레미의 몸이 허물어진다.
그리고 동시에 레미를 처음 만났을 때 보았던 별이 가득한 밤하늘 같은 배경이 차원 통로 위로 펼쳐지더니 이내 차원 통로로 빨려들어감과 동시에 빨대 입구와 같은 통로를 만들어냈다.
수 많은 별로 이루어진 밤하늘로 된 길쭉한 통로.
그 안으로 내 몸이 빨려들어간다.
순식간에 레미와 안드레아가 있는 공간이 멀어지면서 끝 없이 펼쳐진 별들이 나를 스쳐지나간다.
팡.
순간 내 몸을 감싸던 물방울이 터져나가며 내 몸이 마치 아무런 저항을 못하고 물에 빠지듯이 축 늘어진다.
어째서... 레미가...
순간적으로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안드레아는 그래. 창조신의 기억으로 인하면 모든 것을 계획해왔고, 지금만을 노려왔다.
애초에 내가 소환된 것 조차 안드레아의 계획 아래에 있었다.
인간들의 신이 미친것처럼 행동 했던 것 또한 인간들의 태초의 존재라 불리던 린스 여왕의 타락 때부터 이어져 왔다.
안드레아가 창조신을 해치고 나서 처음으로 한 것이 인간들을 타락시키는 것이었다.
처음 린스 여왕이 타락하며 반신에 자리에 올라 인간들의 신 자리를 찬탈하였으며, 그녀의 후손들은 대대 손손 타락하여 파괴와 전쟁을 일삼케 했다.
물론 그 와중에 제대로 된 후손이 태어나는 경우도 있었으나, 그들의 운명은 곧바로 죽음으로 대체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을 받은 각 종족의 아이들중 타락한 이들이 마왕이나 마물이 되어 세상을 어지럽히니, 지금의 세상이 된 것이었다.
그녀는 창조신만이 아니라 각 종족의 신들을 찾아내 제거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에 남은 것은 타락한 인간들의 신과, 마족의 신 뿐.
창조신은 자신이 죽기 이전에 지금의 내게 기억과 내가 이세계에 불려 올 수 있는 안배를 준비했다.
이는 창조신이기에 가능한 능력이었다.
내가 과거를 보고 왔듯이 창조신은 지금의 나를 과거에 인식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내게 안배를 남겼고, 그것은 외우주의 신의 눈에 띄어 준비한대로 이세계로 오게 되었다.
창조신의 기억으로 진실을 알게 된 나는 조금 허무한 느낌을 받았다.
애초에 창조신은 내가 이렇게 될 것을. 그리고 안드레아가 벌일 일을 알고 있었다.
충분히 막고 피할 수 있음에도 창조신은 왜 이러한 선택을 한 것일까?
자신의 죽음을 댓가로 내게 미래를 넘긴 것은 어떠한 선택에 의한 것일까?
왜 나는 선택받았는가?
생각이 길어질 수록 내 몸이 밤하늘로 이루어진 원통형의 통로를 유영하듯이 떠내려가는 것이 느껴진다.
그 속도가 생각보다 빠름에도 몸이 편안한 것이 아마 레미의 능력 때문인 것 같았다.
레미는 죽었을까?
갑자기 그녀가 나타나서 놀랐지만, 어떻게 보면 그녀는 미래를 보는 능력을 가진 탓에 분명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반신에 이르러서 내가 알게된 사실은 꽤나 심플했다.
반신은 권능 외에도 한가지의 능력을 추가로 부여 받는다.
과거를 볼 수 있는 능력.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
현재를 비틀 수 있는 능력.
그 중 나는 과거를, 레미는 미래를, 안드레아는 현재를 비틀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었다.
내가 안드레아의 과거를 보게 된 것도 그녀가 현재를 비틀었고, 그에 따라 내가 무의식적으로 과거를 보았기 때문에 가능했겠지.
순간 내 앞에 거대한 거인 소녀가 몸을 웅크린 채 잠들어 있는 것이 보였다.
붉은 머리에 머리 위에 달린 무소처럼 거대한 검은색 뿔 두개.
붉은색 홍염을 생각케 하는 비키니 식 갑옷과 함께 등에 메어져 있는 해골이 박힌 거대한 쌍검.
그래.
거의 반신에 가까운 기운이 느껴지는 것을 보니, 이 소녀가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왕.
마신이 아끼는 최고의 마족이자, 여자 용사와 싸워 아슬아슬하게 패배했던 마왕.
그녀의 눈꺼풀이 움찔하는 것이 느껴지며, 순간 그녀의 몸이 뒤로 확 밀려나듯이 사라진다.
만약 이세계에 계속 있었다면 언젠간 그녀와 만날 수 있었겠지.
순식간에 몇 몇 인간처럼 생긴 괴물의 외형이 섞인 몬스터 아가씨들이 시야에 휙 휙 지나친다.
걔중에는 내가 알고 있던 서큐버스 같이 생긴 여인도 있었고, 아우렌보다 커다란 덩치를 가진 외눈의 소녀도 있었다.
더욱이 중간 중간에는 판타지 몬스터의 특징을 섞어 놓은 몬스터 아가씨들이 휙 휙 지나쳤는데, 중간에 잠들어 있는 아라아라의 모습과 당황한 표정의 루루와 에슬리의 모습이 휙 지나쳤다.
마치 전신마비라도 걸린 것 처럼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그녀들을 지나치고 나서 얼마 후에는 소중하게 알을 품고 있는 라미아들의 모습이 순식간에 지나쳤다.
잠들어 있는 아우렌, 아우라스.
비몽사몽한 눈으로 상체를 일으킨 상태의 야리와 요네의 모습이 지나가고, 또 다시 한번도 만난 적 없던 몬스터 아가씨들의 모습이 휙 휙 지나간다.
그리고 머리 위에서 따스한 빛이 느껴질 때 쯤.
부상을 당한 린과 아이린, 사린의 모습이 휙 지나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지가 분해 된 세라자드를 끝으로.
휘익.
몸이 허공에 던져지듯이 가볍게 어디론가 던져지는 느낌과 동시에 하얀 구름 같은 것이 몸에 부딪혀 흩어진다. 그리고 그 아래로 익숙한 현대 도시의 배경이 펼쳐졌다.
높디 높은 고층 빌딩. 그리고 도로 위에 빼곡히 들어찬 자동차들과 도보 위에 사람들.
그리고 그 중에 무슨 폭탄이라도 터진 것 같이 거대한 크리에이터가 있는 광화문 광장 위로 내 몸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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