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화 〉 특별편. 미궁 소환 92일 전.
* * *
딸깍. 딸깍.
마우스가 딸깍 거리는 소리와 함께.
모니터의 화면이 점멸했다.
"슬하!"
헤드셋을 낀 푸른색의 슬라임 소녀가 모니터 화면에 큼지막하게 나타났다.
[슬하!]
[슬하!]
[슬하!]
곧바로 방송을 알리는 버튼의 붉은색 버튼의 점멸과 함께 슬라임 소녀가 관리하는 방송 채팅방에 수 없이 많은 알림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오늘 방쏭은 헌떠에 대한 방송을 할검미따."
마치 에니메이션에 나오는 귀여운 소녀처럼 얼굴 모양을 바꾼 슬라임 소녀가 트윈테일 머리를 흔들 흔들 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 시작하자마자 미소녀 모드로 나오는 거 실화냐고!]
[에실리 리얼 슬라임 아니야? ㅋㅋㅋㅋ]
[맞는데? 슬라임?]
순식간에 자신이 슬라임이냐, 아니면 버츄얼 캐릭터냐 하는 뜨거운 논란이 시작되는 것을 보며, 슬라임 소녀가 단호한 얼굴로 검지로 화면 중앙을 꾸욱 눌렀다.
"슬라임 논란은 1시간 밴임미따!"
단호한 그녀의 표정과 대사에 순식간에 채팅방이 시끌벅적해진다.
다행인 건 에실리가 슬라임에 대한 내용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귀여워 라는 채팅으로 도배 되어다는 게 또 다른 문제가 되었지만.
오늘로써 일주일이 된 초보 스트리머 에실리는 핸드폰을 가져와 그 안에 적혀 있는 내용을 읽으면서 화면 한편에 동영상을 띄웠다.
"헌떠가 생긴거슨 2030년도 태초의 차원문이 열리면서 부터임미따!"
에실리의 코맹맹이 같은 혀 짧은 목소리와 함께 에실리가 준비한 영상이 화면 위로 떠올랐다.
헌터.
차원문.
몬스터.
그런것이 생긴 것은 정확히 2030년도 여름에서 가을이 넘어가는 시기에 뜬금없이 생겨났다.
처음 차원문이 열리고 몬스터들이 튀어나왔으며, 그에 맞춰 헌터라는 각성자들이 등장했다.
헌터들은 마치 소설이나 만화에서 볼 법한 초능력이나 마법을 사용했는데, 어떻게 보면 지구의 모든이들이 각성했지만, 헌터가 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능력을 지닌 일부였다.
마법을 부리는 자들은 마법사.
초능력을 부리는 자들은 능력자.
신체적인 능력이 뛰어난 자들은 기사.
세 가지로 분류된 헌터의 종류와 함께, 세상은 대격변의 시대를 겪었다.
몬스터에게서 나오는 마석은 신에너지의 자원이 되었고, 일부 몬스터가 아닌 아인종들과 교류를 시도하는 자들도 있었으며, 심지어 그런 아인종 중에는 헌터일을 하거나 현대판 배우나 아이돌이 되는 경우도 생겼다.
그런 와중에 헌터들이나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시스템이라는 것이 생겼으며, 그 이후 시스템은 차원문을 넘어온 자들을 전부 적으로 규정하였다.
이미 지구로 넘어온 아인종 경우에도 전부 적으로 규정되는 대규모의 사건이 있은 후에, 아인종들과 헌터들은 결국 대립 끝에 적대 관계로 돌아섰다.
지구의 일부 사람들은 그런 아인종을 따르는 경우도 생겼고, 아인종에서도 지구인들과 계속해서 화평을 주장하는 이들이 생겨났지만 아직 그것이 가시화 된 상태가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그런 시대에서 다시금 대규모의 차원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지금껏 규모를 달리한 대규모의 차원문.
통칭 시스템이 말한 대규모의 침공.
그리고 자신이 신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스템에서는 그들을 이세계에 소환된 용사라 지칭했는데, 그들은 시스템을 부정하며, 오히려 지구의 침략을 개시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는 한국에서 제주도가 어떤 여자 용사에게 점령당하는 사태에 이어, 그들의 세력이 광주를 맹공격하고 있는 시점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 역대급으로 거대한 차원문이 허공에 생겨났다.
"구로니까! 여기가 제가 태어난 미궁이라는 검미따!"
영상이 끝나자 어설프게 그림판으로 미궁의 외부구조를 그린 에실리가 흥분한 얼굴로 미궁의 그림을 손바닥으로 팡팡 쳤다.
[미쳤네. 그럼 진짜 마왕이 있는 미궁이란 말이야?]
[잠깐. 그러면 서울 사람들 좆된 거 아니야?]
[에실리는 내 미래의 아내.]
[ㄷㄷㄷ...]
에실리다이스키님이 강제 퇴장당하셨습니다.
"선넘지 마세욧."
에실리가 강제버튼을 꾹 누른 자세로 콧김을 킁 킁 내 뱉으며, 화면 내부로 손을 뻗더니 이내 사진 한장을 가져왔다.
"내 아빠도 미궁에 있씀미따. 그러니까 곧 아빠도 나타날 검미따."
[에실리 아빠면 슬라임이야?]
[너 방송 처음 보냐? 아빠는 인간, 엄마가 슬라임이라고 했잖아.]
[아 그래?]
"맞슴미따. 우리 아빠는 인간임미따. 요기 사진 보면 우리 아빠 사진임미따."
김지호의 회사원 때의 명찰이 에실리의 손 끝에서 달랑달랑 거리며 춤을 쳤다.
"우리 아빠 보시면 꼭 말씀해주세욤!"
끝으로 에실리와 시청자들이 소통하는 시간을 끝으로 슬라임 헌터단의 오늘 일정을 알려주는 것을 마지막으로 방송이 종료되었다.
"슬바!"
[슬바!]
[슬바!]
[슬바!]
종료 멘트 후에 후우 하고 한숨을 내 뱉은 에실리가 헤듯세을 벗고는 곧바로 방을 나섰다.
그러자 나타난 캠핑 카 내부처럼 길쭉하게 이어진 거실의 모습이 나타났다.
에실리가 고개를 왼쪽으로 휙 돌리니 한쪽 켠에서 소파에 누워서 슬라임 상태가 되어 있는 보미의 모습이 보였고, 정면에 거실 끝 부분을 바라보니 맏언니인 하나가 오늘 사냥에 쓸 장비들을 점검하는 모습이 보였다.
거실과 정비실이 섞여 있는 모습이 아이러니하긴 했지만, 헌터 전용 벤으로 일반의 캠핑카보다 좀 더 큰 트레일러 형식의 차였기에 이런 형태의 내부가 가능했다.
"하나 언니."
도도도.
유치원 생 정도 되어 보이는 4등신 모습의 짜리몽땅한 키를 가진 에실리가 하나의 뒤에 찰싹 달라 붙으며 엉덩이에 얼굴을 파 묻었다.
사람 형태의 슬라임의 점액으로 되어 있는 푸르딩딩한 몸의 에실리.
그리고 에실리를 닮아 좀 더 짙은 푸른색의 빛을 띄는 슬라임 점액으로 되어 있는 6등신 정도의 미소녀 하나.
둘의 다른점이라면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자매처럼 보인다는 느낌이었지만, 사실은 태어난 날이 같고 서로가 추구하는 성장의 방향성이 다르기 때문에 신체적인 차이가 많이 나 보이는 것 뿐이었다.
"왜 그러니? 에실리?"
하나가 들고 있던 장비들을 내려놓은 뒤 뒤로 돌아 말했다.
"언니. 아빠랑 엄마 진짜 지구로 오게찌?"
"음..."
에실리 말고도 보미나 하나도 알고 있었다.
최초의 소환된 아인종 중에 그녀 슬라임 삼남매도 해당 되어, 이미 길드라고 불리는 헌터 단체에 등록되어 있는 아인종 헌터였고.
아인종 자체가 현재는 적대관계에 들어서면서 당분간 활동을 쉬는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 그녀들이 태어난 미궁이 광화문에 소환된다는 시스템의 메시지가 나타났고.
현재 미궁의 소환까지는 92일이 남아있었다.
"당연히 아빠랑 엄마도 오겠지. 지아 이모가 그랬잖아. 미궁이 소환되면 그 안에 있던 존재들도 함께 지구로 넘어오게 될 거라고."
"그러치?"
시무룩한 표정이 된 에실리의 머리를 스윽 스윽 쓰다듬은 하나가 창문 너머로 보이는 광화문 광장의 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응. 분명히 넘어올거야."
그렇게 창가 밖을 바라보던 하나의 눈에 하늘에서 무언가 유성우 처럼 떨어지는 모습이 포착됐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