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마왕 간부에게 소환당해 착취당하고 있다-149화 (149/220)

〈 149화 〉 제 1화. 귀환.

* * *

소리 없는 진동이 주변에 울려퍼졌다.

찰퍽.

인간이 떨어졌다고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충돌음이었지만. 그것이 인간을 뛰어넘은 반신이라면 가능한 현상이었다.

진득한 액체처럼 녹아내린 발과 다리. 마치 어렸을 적 가지고 놀던 액체괴물을 바닥에 전속력으로 내 던진 것 같은 모양이 되어 있었다.

마치 녹아버린 밀랍인형처럼 변해버린 다리에 기운을 집중하자, 서서히 발이 원래의 형태를 찾아가며, 단단하게 굳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점액질.

이세계의 용사로 소환되었던 나는 반신에 오르르며, 많은 능력을 얻게 되었다.

대부분이 나와 관계를 맺었던 몬스터 아가씨들의 능력이었고, 지금 이 점액질로 변해서 충격을 흡수한 것은 슬라임의 능력 중 하나였다.

뭔가 폭탄이 터진 것 처럼 주변이 움푹 파인 크레이터로 이루어진 바닥을 디디고 서서 주변을 살펴보았다.

드디어 지구로 돌아왔구나...

혼잣말을 삼키면서 둘러본 주변의 배경은 내 기억 속에 있는 광화문 한복판의 모습이었다.

비록 건물의 외형이 조금 바뀐 곳은 있었지만, 등 뒤로 보이는 이순신 동상과 경복궁. 그리고 정면에 보이는 거대한 사차로의 도로와 함께 늘어선 건물과 길을 건너는 사람들.

순간 내가 공중에서 떨어지자, 주변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내 쪽을 바라보는 모습이 보였지만, 뭔가 당황하거나 그런 것 대신 돌연 핸드폰을 불쑥 불쑥 꺼내드는 것을 보니 내가 아는 지구가 맞나 의심이 들었다.

물론 기묘한 현상이나 특이한 모습이 발견되면 핸드폰을 꺼내드는 사람이야 응당 있다지만, 그렇다고 하기에 너무나들 침착했다.

"어머어머. 각성자인가봐?"

"신체 각성자인가? 몸이 자유자재로 변해."

"아니야. 혹시 마법사 아닐까?"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

각성자? 신체 각성자는 또 뭐고, 마법사는 또 뭐야?

핸드폰에서 반짝 반짝 불이 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몸이 스윽 뒤로 물러나 달아날 준비를 했다.

근데 그 순간, 앞에서 경찰차 사이렌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눈 앞에 허공에서 누군가 펄쩍 뛰어 내 쪽으로 날아드는 모습이 보였다.

한 눈에 보아도 절대로 정상적인 인간이 뛸 수 없는 높이와 사정거리.

단숨에 내 앞에 세 명의 남녀가 턱 턱 턱 착지하더니 이내 나를 향해 무언가를 내밀었다.

"헌터 형사 김미나입니다. 사람이 맞으신지요?"

형사 뱃지와 함께 지갑 내부에 있는 형사 사진을 스윽 들이 민 김미나라는 형사가 곧바로 지갑을 뒤로 빼더니 이내 허리춤에 있던 3단 봉을 뽑아 들었다.

"김준호 형사 감식."

김미나가 3단 봉을 뽑아들자, 그 위에서 노란색 스파크가 팍 하고 일어난다. 그리고 동시에 우측 뒤쪽에 있던 김준호 라는 형사가 관자놀이에 스윽 손가락을 올리더니 이내 나를 노려보았다.

뭐지? 이건?

혹시 몰라서 일단 대꾸를 하지 않고 있자 심각해진 표정의 김미나가 좌측에 있던 여 형사에게 뭔가 스윽 신호를 보내자, 뭔가 SF 영화에서나 볼 법한 권총 크기의 광선총 같은 것을 꺼내 들었다.

"아... 일단 인간은 맞는 것 같습니다..."

김준호라는 형사가 그렇게 말하면서 계속 나를 노려본다.

뭔가 몸 주변으로 간질 간질 거리는 느낌이 들어 어깨를 툭 털듯이 힘을 주자, 갑자기 김준호라는 형사가 이맛살을 팍 찌푸리더니 이내 살짝 뒷걸음질 쳤다.

"윽... 자세한 정체를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이세계인 같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김미나라는 형사가 3단봉을 치켜세우며 내 쪽으로 달려들었다.

"붙잡아!"

그리고 동시에 좌측에 있던 여형사가 광선총으로 날 조준하더니 이내 방아쇠를 당겼다.

파직.

찰나의 순간에 총구에 맺힌 번개 같은 것이 내쪽으로 튀어나오기 전에 미리 몸을 움직였다.

왼발을 스윽. 뒤로 내미는 것으로 몸을 틀어 광선총에서 튀어나온 에너지 덩어리를 피하자마자, 얼굴이 거칠게 변한 김미나 라는 형사의 3단봉이 머리 위로 꽂히는 모습이 보였다

"준호!"

오른팔을 들어서 3단봉을 막아내자, 곧바로 오른쪽에서 날카로운 발차기가 내 등쪽을 노리고 들어온다.

완전히 사각 지대.

오른팔로 3단봉을 막자마자 들어오느 발차기에 제법 합격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면서 그대로 등판으로 발차기를 맞아주었다.

­턱.­

미노타우르스 걸의 신체의 특성을 불러온 탓인지, 단단해진 육체 위에 무언가 턱 하고 얹히는 느낌이 들었다.

솜방망이 그 이하.

곧바로 오른팔로 3단봉을 밀어내며, 휘젓는 팔 그대로 김미나 형사의 손목을 붙잡았다.

"윽!"

­우득.­

"아악!"

부러지지 않을 정도로 힘을 조절했다고 생각했는데, 뼈가 아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김미나 형사의 팔이 꺾인다.

이런...

이세게에서도 인간이 아닌 상대로만 힘을 써본 탓인지 완전히 힘 조절에 실패했다.

잠시 말을 해볼까 하고 입술을 달싹이려는 찰나에 이번에는 이마에 서늘한 감각이 들어 고개를 휙 꺾자, 아슬아슬하게 귀 옆으로 노란 에너지 덩어리가 팟 하고 스쳐지나가는 감각이 들었다.

노란 에너지 덩어리... 분명 전기나 폭발 에너지 같은 것이 아닌 순수한 마나로 이루어진 에너지였다.

이세계에서 익숙하게 다루었던 감각이었기에 단숨에 광선총에서 나오는 것이 마나인 것을 확인한 나는 그냥 그 다음 사격을 이마로 받아쳤다.

­퍽.­

물폭탄 같은 것이 이마에 퍽 하고 터지는 느낌과 동시에 따끔거리는 느낌이 살짝 들었다.

그 찰나에 당황한 김미나 형사의 무릎차기가 턱 끝에 들이닥치는 것이 느껴졌다.

지금 부러진 손목을 붙잡고 있는 상태임에도 이를 악물고 기예를 발휘하는 그녀의 대담함에 놀라웠다.

­턱.­

하지만 내 턱에 올려친 무릎이 애석하게도 가볍게 내 턱뼈에 가로막히면서 오히려 그녀가 더 고통스러워 하는 표정으로 신체의 중심을 잃는 것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검은 타이즈 같은 바지를 입고 있어서인지 매끈하게 뻗은 다리가 눈 앞에 아른 거리는 것을 보고 손목을 잡고 있던 손을 놓고 곧바로 다리를 붙잡아 그대로 잡아 당겨 상체를 넘어뜨렸다.

살짝 쿵 하는 소리와 그녀의 뒤통수가 땅바닥에 부딪히자마자 잡고 있던 다리에 손을 놓았다.

­휙.­

마치 태권도 국가선수처럼 재빠르게 날아오는 발차기를 김준호 형사의 발등을 그대로 붙잡아, 김미나 형사와 마찬가지로 땅바닥을 향해 들어 던졌다.

­퍽.­

"윽!"

팔목으로 바닥에 충격을 줄이려고 했는지 팔목을 붙잡고 바닥을 한바퀴 뒹굴면서 낙법을 취한 김준호 형사가 그대로 뒤로 물러서더니, 광선총을 들고 서 있던 여형사를 바라보았다.

"쏴!"

"하...하지만 저거 완전 괴물인데요!"

소리 없는 에너지탄이 다시금 터져나왔다.

내 머리와 손에서 다시금 물풍선이 터지는 느낌과 동시에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이 핸드폰을 집어들고 연신 사진을 촬영해대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순식간에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듯한 느낌에 왠지 기분이 팍 상하기 시작했다.

물론 내가 대답을 미루고 이 사단을 낸 이유도 있고, 갑자기 광화문 한복판에 뚝 떨어진 이유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나쁜 것은 나쁜 것이었다.

더욱이 슬라임 형태로 신체가 잠깐 변했었지만, 그래도 지금은 완벽하게 사람의 몸에다가 회사원 생활때 입던 검은 양복 차림이라 오히려 이들이 말하는 이세계인보다는 현대인에 가까운 차림새였다.

"짜증나는군."

기분 나쁜 응어리를 담아 말을 내 뱉자, 순간 내 주변을 둘러쌌던 인파들이 머리를 붙잡고 제자리에 쓰러지기 시작했다.

"으윽... 머리가."

"꺄악... 머리가 깨질 것 같아."

라미아 일족의 음파 관련된 능력을 불러와 쏘아낸 것인데 효과가 제법 출중했다.

미궁에서 듣기에 라미아 일족은 그저 세이렌 종족의 음파를 살짝 흉내낼 뿐이라고 했었는데, 세이렌의 능력까지 가질 수 있었다면 아마 즉사까지 가능할 정도로 음파를 쏘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초 근거리에서 음파를 맞은 형사 셋도 이맛살을 구기며 머리를 붙잡고 있었는데, 그 중 광선총을 들고 있는 여 형사는 그 때문에 내게 겨누고 있던 총구또한 물린 상태였다.

­탁. 탁.­

가볍게 달려가 여형사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으며, 거칠게 그 뒤에 있던 김준호 형사의 옆구리에 미들킥을 날리니 곧바로 기절하듯이 자리에 허물어졌다.

시발... 이거 좆 된 건 아니겠지?

정당방위다. 정당방위.

순간 미궁에서 오랫동안 있다보니 잊고 있던 지구 생활의 감각이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뭔가 세상이 조금 변한 것 같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지금 공권력을 폭력으로 두들겨 팬 참 이었다.

이럴 때는 일단 튀는 게 상책인 것 같은데?

점차 지구에서의 감각이 돌아옴과 동시에 오랫동안 미궁에서 있었던 기본 지식 대신 기존에 있었던 지구의 지식들이 서서히 떠올르기 시작했다.

촬영. 폭행...

스윽 주변을 둘러보니 음파 공격 때문인지 이순신 동상도 살짝 기우뚱 해진 것 같았다.

기물 파손.

그리고 더 생각이 이어지기 전에 나는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미궁에 얼마나 오래 있었고, 이종족 아가씨들 기억들을 왔다갔다 하다보니 많은 것을 잊고 있었다.

그래. 일단은 튀자.

미노타우르스 걸의 힘을 빌린 채로 발목에 거세게 힘을 탁 하고 주자, 바닥이 움푹 파이면서 몸이 마치 축구공 같이 튀어 올랐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