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2화 〉 제 1화. 귀환. (4)
* * *
스윽. 들여다본 집 내부는 의외로 깔끔했다.
밖에 먼지가 수북히 쌓여 있는 택배들을 보며, 혹시 집 내부도 먼지투성이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괴상하게도 거실에 있는 가구들이 전부 윤이 날 정도로 반짝 반짝이고 있었다.
뭐지? 누가 내 집을 쓰고 있는 걸까?
거실을 주욱 훑어보았는데, 크게 바뀐 것은 없어보였다. TV며 옷장이며, 소파며 할 것 없이.
다만 내 기억에 있던 그 상태보다 훨씬 깨끗해지고 깔끔해졌다는 점이 달라진 점이었다.
뭐지? 진짜 뭐지?
잠시 문 틈 사이를 닫고, 내가 지구에 있던 마지막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분명. 저녁에 퇴근을 하고 집에 와서 로또를 맞춰봤는데 1등이었고, 당첨금이 대략 30억. 그리고 그 때 거실에서 사표를 쓰면서 뭔가 먹을 거를 시키려고 했나? 아니면 이미 시킨 후였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기억이 나는 거라곤 갑자기 천장에 검은 통로가 생겼고, 그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는 것 밖에.
그리고 깨어났을 때 죽을 뻔 한 일뿐이라 그 전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기억력 같은 건 반신의 경지에 이르렀어도 어쩔 수 없는 걸까?
딴 문을 그대로 열고 들어섰다.
먼지 한 톨 없는 기이한 내 집의 광경이 잠시 위기감을 불러일으켰으나, 자세히 보면 내가 아닌 누군가가 사용했다는 흔적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깔끔하게 정리 되어 있는 소파와 탁자 위.
심지어 집 안에 들어서서 문틈으로는 안보였던 곳들을 둘러보니 확실히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일단 베란다 밖에 있는 세탁기에 알 수 없는 옷가지들이 보였고. 거실 싱크대가 있는 부엌 쪽은 난생 처음 보는 기계들과 그릇, 컵 등이 보였다.
뭐야 이거?
심지어 컵이나 그릇 색깔이 핑크, 파랑, 노랑으로 단색으로 화사한 색깔로 뒤덮여 있었다.
스윽 스윽 주위를 둘러보다가 굳게 닫혀 있는 두 개의 방과 화장실 문을 바라보았다.
큰 방은 침대와 함께 옷장이 있고, 작은방은 컴퓨터와 갖가지 책이 꽂혀 있는 책장이 있었지.
설마 방안까지 크게 바뀌었을까 싶어, 일단 컴퓨터가 있는 작은방부터 열어보았다.
큰방이야 그렇다 쳐도 지금 시대에 대한 정보를 더 억으려면 작은방에 컴퓨터를 먼저 써야 할 것 같았으니까.
응?
온통 핑크 핑크하다.
분홍색의 벽지에 분홍색과 하얀색으로 얼룩진 컴퓨터 의자와 컴퓨터 책상.
그리고 원래 있던 내 책장은 사라지고 새로이 생겨난 알록달록한 선반과 그 위로 잔뜩 늘어선 트로피나 피규어들.
잘보니 제일 아랫줄에 고개를 숙여야 잘 보인 정도의 높이에 내가 가지고 있던 물건들이 우겨 넣어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대학생때 공부하던 책이나 읽던 소설책, 또는 CD나 전자기기들.
버리지 않았다는 게 다행이랄까?
아니 그나저나 이게 무슨 꼴이야...
핑크핑크한 배경에 발을 디디면서 갑자기 코 끝을 찌르는 복숭아 향에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평소에 향 같은 것을 싫어해서 방향제도 무향으로 쓰던 난데. 이건 뭐... 전보다 더 후각이 민감해진 탓에 코가 뻥 뚫리는 느낌이 든다.
킁.
작은방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컴퓨터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검은색이었던 본체 대신에 핑크색으로 도배된 본체가 놓여 있고, 의자는 물론이고 키보드나 마우스도 핑크색이다. 다행이 모니터는 내가 쓰던 하얀색 테두리의 모니터라 다행인데.
내껀 그럼?...
아 보니 전자기기들이 모여있는데 곳에 내가 쓰던 마우스나 키보드도 보인다. 본체는 보이지 않는데 뭐...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본체에 전원 버튼을 누르자, 모니터에 확 하고 불이 들어온다. 의자를 당겨서 그 위에 앉자 다시금 진한 복숭아향이 확 하고 올라온다.
음... 스멜.
정신을 차리고, 내가 즐겨 쓰던 감도보다 떨어지는 마우슬르 움직여 부팅이 끝나 떠오른 바탕화면 위에서 인터넷 창을 불러왔다.
바로 떠오르는 간편한 검색창 위에 마우스를 올려놓자 뭔가 최근 검색했던 것들이 주르륵 떠올랐다.
광화문 미궁.
미궁 소환.
슬라임걸즈.
미궁 레벨.
미궁 남은 날자.
응?
다섯 개의 검색어들 밑으로도 비슷한 단어들이 검색 된 것들이 보였다.
미궁... 설마 광화문에 미궁이?
잠깐... 방금까지 내가 있던 곳이 광화문인데?
검색어 중 광화문 미궁을 클릭해 눌러보았다.
그러자 어마어마하게 많은 기사들이 최근 실시간으로 갱신되고 있었다.
모니터 한 화면 전체가 20초 전부터 2분 전까지 기사로 도배 되어 있었으니까.
그 중 가장 많은 자료가 있을 것 같은 기사를 클릭했다.
제목이 미궁의 처음부터 현재까지 라고 나와 있는 걸 보니 과장을 좀 섞더라도 거의 다 나와 있겠지.
광화문 미궁.
광화문 미궁은 현재 94일의 소환 기간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현재 1년 여간의 나타난 소환 차원문 중에 초대형의 아래인 대형의 던전으로 확인되오며, 필드형이면서 그 위에 소환 되는 형식의 던전으로 확인 됩니다.
대형 길드에서 연일 광화문 주변으로 전진 기지를 설치하고 있으며, 현재 관리는 정부에서 맡고 있습니다.
수준은 대략 100~999레벨의 던전으로 확인되며, 대부분의 이세계인들이 이 미궁을 일컬어 마왕의 미궁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최종 보스는 마왕으로 추정되오며, 제주도에 있는 이세계의 용사. 자칭 신이라 불리는 이정혜양이 증언한 내용이며, 현재 그녀는 미궁으로 가겠다는 이유로 광주를 침공하여 현재 나주까지 점령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현재 그녀가 점령한 영역은 제주도, 진도, 완도, 목포, 나주로 확인되며, 광주에 있는 길드에서는...
광화문 미궁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이세계의 용사라 불리는 여자에 대한 기사로 내용이 바뀌었다.
잠깐. 이세계의 용사...
설마 내가 있던 이세계에서 소환된 그 여자 용사는 아니겠지?
이세계에 있을 때 나를 죽이고자 미궁에 선봉대를 보내고, 인간들의 왕국을 전복하여 제국을 침공하던...
아니... 아니겠지. 설마.
이세계에서 제국을 침공하고 있어야 할 여자가 왜 여기 지구에 와 있겠어? 그것도 제주도에 말이야.
이세계의 용사라는 것을 인터넷에 검색해보았지만, 이름과 제주도를 점령하고 광주를 침공중이라는 이야기만 나왔다.
그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거의 없고, 그녀가 가끔씩 내 뱉는 발언이나, 그녀가 끌고 다니는 이세계인들에 대한 정보만 나와 있었다.
근데 이세계인들 대부분이 여자로 이루어져 있는게... 설마 아니겠지?
검색어창을 지우고 그 다음, 헌터나 길드, 여러가지에 대해 검색했다.
그러다가 문득 검색어 창에 로또 당첨 수령금 기간을 써 봤다가, 이내 아차 하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또 부터 찾아야지?
곧바로 방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분명 내가 이세계로 소환되기 전에 컴퓨터 책상 위에 지갑을 올려놓았고, 그 안에 로또 용지가 들어 있었다.
일단 지갑과, 핸드폰부터.
작은 방 안을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컴퓨터 책상 서랍부터 시작해서 선반 아래에 있는 내 물건들을 다 꺼내서 일일이 확인해보고도, 지갑과 핸드폰이 나오지 않자 서서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메타버스."
대답이 없다. 아직 가상화폐를 구하러 간 걸까?
아니 가상세계의 신이면 그 정도는 뚝딱 만들 수 있는 거 아닐까?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생각해보니 창조신도 무엇을 만들거나 변경할 때 뚝딱 해치우는 것을 못봤다. 더욱이 내 권능도 그렇지만 가부장. 즉 가족을 꾸릴 수 있는 능력임에도 애를 만드는 것은...
잠깐. 애?
다시 컴퓨터 앞으로 후다닥 달려가 앉았다.
먼지하나 없는 집의 모습. 그리고 수상하기 짝이 없을 정도로 바뀌어 있으면서도 깔끔하게 정리된 집의 모습.
더욱이 내 물건 또한 버리지 않고 잘 간직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내 가족이나 친척은 아니다.
컴퓨터 안에 있는 폴더를 뒤적거리다보니 에실리의 인터넷 방송이라는 폴더가 보였다.
에실리?
잠깐...
에실리... 에슬리... 아!
폴더 안을 더블클릭해서 들어가자 그 안에 또 여러가지 폴더가 보였는데, 그 중에 사진 관련한 폴더를 클릭하자, 슬라임의 모습이 잔뜩 찍혀 있는 모습의 사진이 보였다.
푸른색의 어린 소녀를 닮은 모습의 슬라임.
더욱이 인간처럼 여러가지 모습의 옷들을 입고 방송을 찍는 모습이 사진에 있었고, 그 중 일부에는 다른 슬라임의 사진들이 찍혀 있었다.
이거...
내가 미궁에 있을 적에 엔젤 슬라임이었던 에슬리 관계를 가진 후에 태어난 수 많은 슬라임 아이들 중에 유독 성장이 빨랐던 세 슬라임 아이들이 떠올랐다.
하나, 보미, 에실리.
그래. 내가 직접 이름까지 지어주었던 탓에 확실히 기억났다.
설마... 나보다 지구로 빨리 날아온 것일까?
기억을 뒤져 보다가 이내 지구로 돌아오는 차원문의 통로 안에서 이 아이들을 본 적이 없는 것이 떠올랐다.
뭐지?
물론 내가 그 때보았다면 나보다 지구로 늦게 날아오는 것이 맞았지만, 그렇다면 어떻게 나보다 지구에 빨리 날아올 수 있었던 거지?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딱 하고 뭔가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어느 순간 부터 미궁에서 이 세 아이가 보이지 않았던 기억은 나는데...
사진 폴더들을 좀 더 뒤져보니 제법 지구에 오래 있었는지 끝이 보이지 않는 사진폴더들이 나열된다.
더욱이 계절이 바뀔 때 마다 입는 옷도 바뀌고, 중간 중간에는 선글라스에 힙합 모자를 쓰고 노래를 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이 녀석... 제법 지구 생활을 충실히 즐겼잖아?
사진들을 주욱 내려보다가, 다른 폴더를 뒤져보기 전에 생각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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