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마왕 간부에게 소환당해 착취당하고 있다-154화 (154/220)

〈 154화 〉 제 1화. 귀환. (6)

* * *

창조신의 기억의 파편이 새록새록 머릿속에 깨어난다. 그러면서 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개념이 머릿속에 새록새록 나타나기 시작했다.

안드레아.

이세계를 만든 창조신이 만든 키메라의 신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

처음 만났을 때부터 뭔가 기묘하다고는 느꼈지만, 기억을 파고들기 전까지는 그저 반신 정도의 존재라고만 알고 있었지만.

죽은 창조신의 기억이 내게 전달되면서 그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안드레아는 이세계의 신들을 하나하나 죽이거나 이세계에서 추방시켰다.

마지막으로 내가 이세계에 남아있던 마신이 이세계에서 추방당한 것은 아마 안드레아가 한 짓일 확률이 높았다. 마신의 사도격인 마왕조차 거의 봉인되다시피 상처를 입은 상태였으니까.

더욱이 안드레아의 제자인 루슈는 그녀의 사도가 되어 이상한 현상의 하나인 차원문을 열어 미궁을 삼켜버렸다.

예상으로는 그 루슈 혹은 안드레아가 이세계 자체를 조각내 차원문을 통해 지구로 전송시켜 버린 것 같은데, 그것까지는 확실하다고 말할 수 는 없을 것 같았다.

다만 예상임으로 그럴 확률이 높다 생각이 들은 거지.

천천히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제 컴퓨터로 알 수 있는 것은 없을 것 같으니, 남은 것은 메타버스와 대화하면서 끼워 맞춰보는 수 밖에.

"메타버스."

[네. 김지호씨.]

"그럼 내가 지구를 구해주는 일이 결국 널 지켜주는 일이 되겠네?"

[네. 맞아요.]

"그러니까 내가 너의 신격. 즉 권능인 시스템을 지켜줘야 하니까. 결국 헌터, 즉 인류를 보호해야 하는 거고?"

[네. 맞아요.]

창조신의 기억의 파편에서 본 신이라는 존재는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신앙에서 비롯하여 탄생하는 것이 신이었고, 간혹 신앙이 아닌 새로이 창조된 세계에서 탄생하는 신들도 있었다.

아마 메타버스는 이 중 후자에 선택되는 신이었고. 이 창조된 세계라는 것도 어떻게 보면 하나의 신화로 취급되기 때문에 결국 신앙의 일부라고 볼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보자면 부처나 예수 관우 같은 경우가 전자에 속하고, 올림푸스나 북유럽 신화 같은 것이 지금의 메타버스 같은 후자의 경우라고 볼 수 있다.

가상세계의 신.

어찌보면 좀 독특해보이지만, 가상세계라는게 거의 현실세계의 거울 버전이라는 지금에서는 어떻게 보면 신이 탄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몰라다.

그렇다면 다른 멀티 버스 지구에는 그런 가상세계가 활성화가 안된 걸까?

메타버스에게 물어볼까 싶었는데, 그녀도 아마 알지 못하겠지란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내가 앞으로 뭘 어떻게 하면 좋겠어?"

[일단. 김지호씨 이름으로 길드에 등록을 해드릴 예정이에요.]

"그리고?"

[길드 마스터의 권한으로 김지호씨를 간부로 올려서 길드 단위의 공략이 필요한 곳에 투입할 예정이에요.]

"한마디로 용병으로 써먹겠다는 말이네?"

[네. 맞아요.]

썩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낙하산이긴 해도 길드의 간부쯤 되면 거의 대기업 부사장쯤 되는 자리 아닐까?

그나저나 좀 전에 메타버스가 가상화폐를 내 지갑으로 넘겼다니까. 일단 핸드폰 부터 빨리 찾아봐야겠는데.

"돈은 넉넉하게 넣어둔 거지?"

[네. 급하게 마련한거라 큰 돈은 아니어도, 당장 김지호씨가 필요한 물건을 사는데에는 지장이 없을거에요.]

"내가 뭘 살 줄 알고."

내 혼잣말에 메타버스가 잠시 말이 없다.

일단 작은방을 빠져나와 큰방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스윽. 닫혀 있는 문의 손잡이를 열어 문을 열어젖히자, 기존에 있던 내 침대와 옷장 대신에 방 대부분을 차지하는 거대한 킹 사이즈 침대와 나머지 공간을 가득 메운 옷장들이 보였다.

이건 뭐...

말 그대로 발디딜곳 없이 침대와 옷장으로 가득찬 공간.

문을 딱 열자마자 무릎 위의 높이까지 오는 굉장히 큰 사이즈의 침대. 근데, 이거 킹 사이즈 침대를 몇 개를 합친 크기로 어마어마하게 크다. 애초에 큰 방 면적을 전부 잡아먹을 정도니 어마어마하게 크긴 한데. 이런 사이즈의 침대도 팔긴 파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문을 열자마자 드러난 침대 위로 올라가, 그 맞은편 구석에 있는 옷장으로 다가갔다.

옷장의 문 또한 침대의 높이에 맞춰서 위쪽에 위치해 있어서 여는 것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스윽.

옷장의 문을 열자, 옷걸이에 걸린 수북히 많은 여성복 의상이 나타났다.

크기와 재질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용도로 보이는 옷들.

옆의 옷장을 열자, 똑같은 모습의 수 많은 여성복들이 보였다.

그러다 문득 옷장 바닥에 개어있는 옷들 중에 뭔가 사각형의 옷장 바구니가 보여 꺼내보자, 그 안에 옷 대신 들어있는 내 물건들이 보였다.

지갑부터 시작해서 핸드폰 사진, 수첩, 심지어 회사 명찰까지.

내가 쓰던 물건들을 포함해서 가끔 사용하는 물건들까지 전부 들어있는 바구니.

그 중 제일 먼저 지갑을 꺼내 펼쳐보았다.

텅텅 비어 있는 지갑.

로또 용지는 커녕 들고 다니는 비상금조차 보이지 않는 지갑의 모습에 허 하고 혀를 찼다.

이건 내 딸들이나 여동생한테 일단 물어 봐야 할 것 같고.

그 다음 핸드폰을 집어 전원 버튼을 키자, 배터리가 없어서 종료된다는 메시지와 함께 핸드폰의 전원이 곧바로 꺼져버렸다.

배터리가 방전되었군...

바구니에 핸드폰 충전기가 들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선 지갑과 핸드폰을 다시 바구니 안에 넣고 그 바구니채 거실로 들고 나왔다.

거실의 소파에 앉아, 그 옆에 벽에 있던 콘센트에 충전기를 연결했다.

그리곤 배터리가 나간 핸드폰을 연결한 후에 소파에 몸을 편하게 기댔다.

­딱. 끼릭.­

그 순간 갑자기 잠가놨던 현관문 쪽에서 누군가 문을 따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곤 문을 따는 소리와 함께 다급하게 문을 여는 느낌과 함께 누군가 문을 박차고 들어서듯이 들어섰다.

"오빠?!"

검은 포니테일의 머리에 하얀색 셔츠에 검은색 멜빵 투피스를 입은 캐쥬얼한 모습의 여동생.

오랜만에 보는 동생의 모습에 반갑다가도 허벅지까지 닿는 스커트 길이 때문인지 뭔가 꼴보기 싫은 느낌이 같이 올라왔다.

"오랜만."

가볍게 손을 흔들어주자, 곧 이어 내 동생 뒤로 무언가 꿀렁 꿀렁이면서 집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세 명이 보였다.

푸른색의 슬라임 에슬리를 닮은 소녀 형태의 슬라임들.

대충 딱 보아도 독특한 머리스타일 때문에 누가 누구인지 구분이 됐는데.

"아빠!"

제일 먼저 내가 있는 소파로 몸을 던져오는 것이 막내 에실리.

보니 컷이라고 해야 하나? 간혹 TV에 보면 연예인들이 하던 단발 머리를 한 초등학생 쯤 되어 보이는 체형의 에실리가 내 품에 안겨 오고 나서, 두 명의 딸 긴 장발 머리의 하나와 짧은 포니테일의 머리인 보미가 내 쪽을 달려와 안기듯이 품에 쓰러져 나왔다.

말캉말캉한 느낌.

입고 있는 옷을 떠나서 신체 자체가 푸른색의 슬라임 몸에 인간의 모습을 따라한 탓인지.

피부 부분이 탱글탱글한 실리콘처럼 뭉컹 거리는 느낌과 동시에 이 집안에서 나던 복숭아향이 확하고 코 끝을 자극했다.

엄마인 에슬리보다 말캉말캉한 느낌보다 탱글탱글한 느낌이 더 나네.

에슬리가 손가락을 쿡 누르면 스윽 파고 들어가는 말캉거림이었다면 딸들은 손가락을 대면 살짝 물컹하고 탄력감이 느껴지는 차이?

인간과 오래지내서 인간의 피부를 좀 더 따라하게 된 걸까?

아니면 에슬리와 진화 과정이 달라서 그런걸까?

여러가지 의문이 들었지만, 이내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로 각자의 얼굴을 내 쪽으로 들이미는 세 딸의 모습에 살짝 곤란한 느낌이 들었다.

"아빠! 보고 싶었어요."

"아빠 언제 지구로 돌아온 거에요?"

"아빠. 어떻게 돌아온 거에요?"

보고 싶었다는 에실리를 제외하고 보미와 하나는 내가 언제 어떻게 돌아온지가 궁금한 것 같았다.

"그건..."

내가 뭐부터 대답해줘야 할까 잠시 고민하는 찰나 집 안에 들어온 내 여동생이 에실리와 보미, 하나의 뒷덜미를 순서대로 착 착 붙잡더니 뒤로 잡아당겼다.

순식간에 끌려가듯이 떨어져 나가는 내 세 딸의 모습과 함께 골치 아프다는 식으로 얼굴을 구기고 있는 내 여동생의 모습이 보였다.

"오빠. 설마했는데. 진짜 구나."

뭐를 말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대충 분위기를 보자니 내가 슬라임들의 아빠가 된 것을 말하는 듯 싶었다.

"하하하..."

멋쩍게 웃자 여동생의 눈에서 순간 분노의 기운이 감돌았다.

그리고 지금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습이 살짝 겹쳐 보이면서 양손을 허리에 얹은 여동생이 잔소리 모드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아니! 오빠. 지금 웃음이 나와? 갑자기 사라져버리더니 집 안에는 난생 처음 보는 슬라임 세 명이 있고. 오빠가 자기 아빠라고 하는데. 어? 오빠는 없지. 아빠가 미궁에 있다니, 아빠가 언제 오냐니 하고 있는데. 어? 오빠는 코빼기도 안보이고."

쉬지도 않고 속사포로 이야기를 내 뱉는 여동생의 모습을 보다 보니 뭔가 코웃음이 피식 하고 흘러나왔다.

그래. 진짜 지구로 돌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뒤 늦게 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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