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화 〉 제 2화. 서울 지부 헌터 길드. (6)
* * *
안드레아의 계획은 꽤나 완벽했다.
창조신을 죽인 시점으로부터 그녀는 이세계에 있던 모든 신들을 추방하려고 했으니까.
다만 인간의 신인 인신과 마신이 꽤 세력이 강했던 터라 오랫동안 버텼고, 인신은 계속해서 벌어지는 신의 실종에 대해 마신에게 의문을 품었고.
마신은 그런 인신으로부터 어쩔 수 없이 미움을 살 수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안드레아는 그 강력한 두 신을 마지막으로 추방하기 위해 인신이 소환한 용사들을 이용했고, 결과적으로 인신과 마신을 추방하는데까지 성공하지.
하지만 그런 계획에도 어설픈 점이 몇가지 있었으니, 남은 용사들이 신이 되기 위해 대륙을 날뛰기 시작했으며, 자신의 제자였던 루산이 인간들의 증오로 인하여 이세계의 모든 생명체를 차원문을 통해 다른 세계로 추방하는 일까지 해버린 것이었지.
결과적으로 루산의 행동은 안드레아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지만, 결국 받아들였다.
그렇기에 나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면서도 루산을 돕기 위해 나를 저지하려는 이중적인 면을 보였던 것이지.
아니, 애초에 그녀가 그런 이중성을 보이는 것은 그녀가 키메라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나가 아닌 혼돈 그 자체라고 부를 수 있는 근원인 그녀는 어떻게 보면 인간의 조상일 수도 있었으니까.
"흠. 그러면 그 제주도에 나타난 용사인, 이정혜양을 토벌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협회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주고 싶은데. 지금 당장은 안 돼."
"지금 당장 안된다는 말씀은..."
"그래. 적어도 미궁이 이쪽으로 소환 될때까지는 안 돼."
미궁은 어떻게 보면 내 힘의 원천이 되는 곳이었다. 지금은 비록 권능을 통해 내 가족들의 일부 능력을 빌려오는 것이 가능했지만.
좀 더 강력하고 여러 능력을 빌려오기 위해서는 내 근처에 그녀들이 존재해야만 했다.
지금 거의 거리가 가늠되지 않을 정도로 멀어져 있기에 초상화 자체가 흑백으로 돌아가 있었는데, 이런 경우에는 능력도 어느정도 감소하고, 중복하여 여러 특성을 가져올 수도 없었다.
예를 들어서 내가 좀 전에 지하실에서 아라아라의 능력을 빌려오면서 동시에 다른 능력을 빌려오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지금 인간의 용사인 이정혜를 쓰러뜨리는 것은 어려웠다.
더욱이 지금 듣기로 이정혜는 제주도를 점령할 당시 이세계에 있던 자신의 왕국을 통채로 이 곳으로 이전해 왔으며, 병력또한 만만치 않은 상태였다.
오히려 지금 헌터 수준으로 어떻게 그녀들을 막는 게 궁금할 정도였는데, 아무리 마나가 있다고 해도 아직 군대가 있으니까, 어느정도 저지가 가능한게 아닌가 싶었다.
총알의 물리력이 반감된다고 해도 폭탄이나 대포는 또 다른 것 아닌가?
심지어 수십 대의 탱크로 밀어버리면 제 아무리 소드 마스터라고 해도 물리력에 의해 밀려날 것이다.
물론 물릴 뿐이지 죽일수 있다거나 하는건 또 별개의 일이겠지만.
아마도 그런 군대의 물리력 때문에 저지선이 생겨나 어느정도 대치할 뿐인 것이지 진압은 어려울 것이다.
"그럼 미궁이 소환되면 가능하다는 말씀이신가요?"
"그건 그 때 가봐야 알 것 같은데. 확실하게 제거가 가능한 거는 미궁이 나타나고 나서 조금 지나야 가능할 거야. 그 동안 나도 준비해야 되는 게 있으니까."
내 말에 협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현재까지는 정부에서 파견한 군대와 헌터들로 어느 정도 저지선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간혹 여자 용사가 나서서 저지선을 무너뜨릴때가 있는데, 그럴때마다 반대로 저희도 제주도를 공략하고 있거든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전에 TV를 통해서 이미 그 여자 용사가 한국 남쪽 땅을 침공한 것과 정부에서 제주도를 공격하고 있다는 소식은 전해들었으니까.
그나저나 그런 정부와 척을 지고 있다라... 지금은 크게 문제 없겠지만, 나중에 내 존재가 알려지면 글쎄? 과연 어떻게 될까?
"일단 그럼 그 일은 둘째로 치고, 지금 당장 용사님께서 해주셔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협회장이 화사하게 웃으면서 에실리와 잡답을 하고 있던 비서실장을 향해 헛기침을 가볍게 내 뱉자, 후다닥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그녀가 무표정한 얼굴로 내게 종이 한장을 내밀었다.
"일단 급하게 해결해야 할 일들입니다. 현재 저희 헌터들로는 당장 해결이 어려운 일들만 정리해놓은 목록입니다."
A4 용지에 가득하게 적혀 있는 문장들을 주르륵 일어내려갔다.
대부분이 한 줄로 이루어진 문장으로 그 가지수가 수십 개는 되어 보였는데, 그 중 제일 위에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이세계의 신을 사칭하는 천사가 잡혀 있다고?"
"네. 자신이 이세계에 있던 인간들의 신이라고 말하는 존재인데, 원래는 미 국방부에 붙잡혀 있다가, 이번에 저희쪽으로 인계가 되었습니다. 듣기론 저희 쪽에 곧 나타날 존재가 자신이 신이라는 걸 증명해 줄거라고 말이지요."
그러면서 나를 바라보는 협회장의 시선이 그게 혹시 내가 아니냐 라는 확신을 담고 있었다.
근데. 나도 그 쪽 세계에 인간들의 신이 있다고만 마신에게 들었을 뿐이지 생김새나 존재에 대해서는 자세히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그나마 파편으로 남아있는 창조신의 기억에도 인간들의 신에 대해서는 기록되어 있는 것이 없고.
문득 메타버스라면 무언가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애초에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 메타버스도 내게 무언가 미리 언질을 해 놓지 않았을까 싶었다.
"일단 한 번 만나 보도록 하지."
넘겨 받은 A4 용지를 접어서 안주머니에 스윽 넣어두었다.
이세계의 인간들의 신.
애초에 창조신이 지구를 비롯한 여러 신들이 만든 인간들을 본 떠 만든 인간이자, 그들의 신이 되는 존재.
아마 협회장을 비롯해 미국에서도 그녀를 천사로 보았다는 것은 아마도 하얀 날개와 머리 위에 있는 고리 때문이었을 것이다.
에실리와 나, 협회장, 그리고 비서실장만이 협회장실을 빠져나와 복도에 있던 수 많은 문 중에 하나를 열고 들어갔다.
두 사람이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은 좁은 길과 함께 왼쪽으로 협회장실 정도 되어 보이는 커다란 철창 감옥 하나가 들어서 있었는데.
길 끝에는 앉아서 쉴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책상과 의자, 그리고 이 곳이 어떤 용도의 공간인지 적혀 있는 팻말 같은 것이 놓여 있었다.
취조실.
원래는 감옥이 아니라 중범죄자들을 협회장이 직접 심문하는 밀실이라고 했는데, 현재는 중범죄자들은 다른 곳에 수용하고 이 곳을 그녀의 독방으로 만든 상황이라고 했다.
"안전 장치를 해제하도록 하겠습니다."
내 앞으로 성큼 나선 협회장이 거대한 철창 감옥으로 이루어진 공간에 벽면을 스윽 손바닥으로 문대자, 이내 그 곳에서 마나의 격류가 일어나면서 감옥 주위를 밝게 밝혔다.
뭐라고 해야 할까? 게임에서 보면 고대유적지 같은 곳을 보면 커다란 벽 틈 사이로 고대문자 같은 것이 야광으로 빛나면서 묘한 분위기를 풍겨내는 그런 분위기?
그런 느낌이 철창 주변의 벽 위로 나타났다.
야광으로 빛이 나던 벽이 이내 검은 색 벽으로 탈바꿈하고 야광으로 빛나던 마나의 줄기가 감옥 전체를 휘감더니 이내 잠겨있던 철장 몇 개가 위로 주르륵 올라가더니 사람 하나가 지나갈 길이 만들어졌다.
"어떻게 내게 이 따위 취급을 할 수 있지?"
그러자 감옥 안에서 어떤 여자가 휙 하고 튀어나와 좁은 길 위에 섰다.
"아앗. 아빠. 저기 나랑 똑같은 거 달고 있는 여자가 있써!"
에실리가 자신에게 생긴 천사의 고리를 만지작 거리면서 앞에 감옥 같은 철창 사이에 갇혀 있는 여자를 향해 삿대질을 했다.
"정말이네. 에실리랑 똑같이 생긴 고리가 달려 있네?"
에실리의 머리를 스윽 스윽 쓰다듬으면서, 말하자 얼굴이 발그레하게 변한 에실리가 실실 쪼개면서 좋아한다.
그 모습에 뒤에 따라오던 비서실장의 얼굴이 헤벌쭉 하게 변하는 것이 보였는데, 나와 시선을 마주치자 이내 표정을 무표정한 얼굴로 싹 바꾸었다.
잠시 눈 앞에 나타난 자칭 인간들의 신이라 말하는 천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감히 이 몸을 이 딴 곳에 가둬 두다니."
은발? 아니 연보랏빛 머리카락이라고 해야 하나? 약간 보랏빛이 맴도는 인발 머리에 금색의 천사의 고리.
그리고, 교복처럼 보이는 노란색의 가디건과 하얀색의 긴셔츠, 그리고 체크무늬의 회색빛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이 우리를 쏘아보고 있었다.
그리고 어깨 너머로 보이는 하얀색의 비둘기 같은 날개 같은 것이 보였는데, 아마도 저게 그녀를 천사의 이미지로 만든 원인이겠지.
"신의 분노가 무섭지도 않더냐!"
딱 보아도 제 잘난 맛에 산다는 성격의 느낌이 강한 그녀가 나를 비롯해 협회장과 비서실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에실리를 향해 시선을 바꿨다.
"뭐냐? 저 흉측한 괴물 녀석은?"
그 말에 비서실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동시에 나 또한 얼굴 표정이 자연스럽게 구겨지는 것이 느껴졌고.
"야!"
에실리를 뒤에 둔 채 녀석을 향해 걸어갔다.
감히 남의 딸을 보고 괴물 녀석이라고? 자칭 신이면 다야?
"뭐냐? 인간...? 응?"
녀석이 나를 보더니 무언가 느낀 것이 있는지 등 뒤의 날개를 파르르 떨었다.
좀 전까지는 천사의 날개로 보이던 것이 갑자기 비둘기 날개처럼 보인다. 그리고 동시에 천사가 아니라 그냥 힘 없는 닭둘기처럼 보이기 시작하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어떻게 고작 인간 따위가 이렇게 강할 수 있지?"
그러고 보니 이녀석이 이세계의 인간의 신이 맞다면 나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내 존재 자체를 모를 수가 있다.
근데 신이 맞긴 한가? 방금 닭둘기처럼 보이던 것이 맞다면 아무 힘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쪽 세계의 신이 보낸 사자인가?"
갑자기 자기멋대로 추리를 마친 녀석의 바들바들 떨던 몸이 경직되면서 곧 당당해지기 시작했다.
뭐랄까? 기세가 변했다고 할까나?
자연스럽게 당당해지는 기세에 나는 피식 웃었다.
"착각도 유분수지."
어깨를 으쓱하면서 등 뒤에 있던 에실리를 잡아당겨 내 앞에 세웠다.
"일단 내 딸한테 사과해라. 그럼 어느정도 잘못은 참작을 해주지."
내 말에 그녀가 이맛살을 구기며 팔장을 끼기 시작했다.
"허... 무슨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하는 거지? 저 딴 괴물 녀석이 인간의 딸이라고? 지금 내가 신의 자리에서 잠시 내려와 있다고 해서 그런 궤변이나 듣고 있을 위치인 줄 아나?"
오히려 화를 내는 그녀의 모습에 이제 확실해 졌다.
그래. 저 녀석은 이세계에 있던 인간들의 신이 맞는 것 같다.
마신이 그랬지. 인신 녀석은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모르는 것 같다고. 그래. 이토록 자만하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너. 이세계의 신이 보낸 사자 같은데, 정식으로 항명하지. 당장 이세계의 신을 만나게 해주지 않으면..."
뭐라 더 지껄이기 전에 발이 먼저 나섰다.
순식간에 내면의 세계에서 아우라스의 권능을 빌려온 나는 흘러 넘치는 미노타우르스 걸의 힘을 토대로 녀석의 목을 한 손으로 붙잡아 들어올렸다.
깃털처럼 가벼운 몸과 동시에 녀석의 발과 날개가 파닥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전부 다 나가있어. 이 녀석과 할 얘기가 있으니."
내 말에 뒤에서 묵묵히 상황을 지켜보던 협회장과 비서실장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보였다.
"커...컥."
내 손에 붙잡힌 녀석이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상태에서 입가에 침을 질질 흘려대기 시작했다.
과거에 신이였다고 해도 자신의 세계에서 일방적으로 추방당하게 되면 이렇게 되는군.
안드레아가 원했던 것이 이런 복수였을 것이다.
직접 세계를 손에서 놓는 것이 아니라 추방당하듯이 쫒겨나게 되면 신은 권능을 비롯하여 격을 잃게 된다.
그 증거가 눈 앞에 있었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신은 이렇게 영락할 수 밖에 없었다.
비참하다는 말이 그토록 어울릴 수 밖에 없는 이 녀석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런 녀석을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아주 원초적인 방법으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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