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3화 〉 제 4화. 스트리머 에실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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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실리가 하는 방송을 지켜보다보니 서서히 졸음이 쏟아졌다.그러고 보니 내가 내 의지로 피곤을 느껴서 편하게 잠들었던 적은 거의 없던 것 같은데.
보통은 체력이 떨어져서 쓰러지듯이 잠들거나, 강제로 잠이 들거나 했던 기억 밖에 없었다.
지금같이 편안하게 한가로이 잠이 들려하는 것은 정말 오랜만인 것 같았다.
서서히 감기는 눈꺼풀에 맞춰서 눈을 감고 있다보니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미궁에 처음 떨어졌을 때부터 시작해서 안드레아와 루산으로 인하여 이세계가 산산조각 나는 것까지.
"아빠?"
"으응?..."
조심스러운 목소리에 눈을 떠 보니, 어느새 내 앞에 다가온 에실리가 나를 안쓰러운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게임 방송은... 끝났어?"
"응. 아빠. 피곤해?"
방송을 시작하기 전에 게임 방송 이후에 내가 출연하는 방송을 하면 안되냐는 이야기를 했던 에실리였다.
그때 에실리에게 그건 생각해보고 말해주겠다 라고 말했는데, 지금이 그 대답을 해줄때 인 것 같았다.
"아니. 괜찮아."
여러가지 말이 떠올랐다가 입안에 감겨 사라졌다.
사실 내 딸이 이렇게 열심히 방송하는데 졸면 안됐었는데, 뭐라고 해야할까? 너무 오랜만에 드는 편안한 수면이다보니, 뒷 일은 잠시 잊었던 것 같다.
거기에 오히려 내가 걱정 된다는 듯이 물어오는 에실리를 보니 뭔가 막막하기도 하고.
"아빠가 출연하는 방송을 하면 안되냐고 물었지?"
"응. 아빠. 지금 잠깐 쉬는 시간이라 아빠가 된다고 하면 바로 시작하려고."
그 말에 모니터쪽을 바라보니 쉼 없이 채팅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내용은 다양하게 방금 전 게임을 플레이했던 에실리의 내용부터, 천사링, 그리고 내 존재에 대한 것 까지.
물론 그 외에도 다양한 이야기로 채팅창이 쉼 없이 올라가고 있었다.
잠시 생각을 했다.
메타버스에게나 협회에서나 왠만하면 정체를 감추는 편이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 점은 지금도 마찬가지로 드는 생각이었지만.
왠지 지금은 오히려 이 생각이 위험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위화감이라고 해야하나? 정상적이라면 정체를 감추고 활동하는 것이 여러모로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르데나와 만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지금 내게 위험한 것은 실질적으로 이 지구를 노리는 다른 차원의 지구에서 온 용사들이 맞지만.
그 전에 내가 살던 이 지구에서 나타난 신인 메타버스 또한 위험한 녀석이긴 마찬가지였다.
처음 만났을때부터 지금까지 내 기분에 맞춰주면서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고 있지만, 사실 다른 차원의 지구의 용사나 나나 메타버스의 입장에서는 똑같은 용사나 마찬가지였다.
지구를 떠나서 자신의 신격에 위험을 줄 수 있는 자들로 분류하자면 그건 나 또한 포함이 되는 것이었기에.
애초에 나한테 이런저런 해택을 주면서 일방적인 믿음을 주는 행동도 수상한 것이었다.
이것이 흔한 이세게 판타지 소설이나 만화였다면 그럴수도 있겠지만, 이건 현실이었다.
당장 자신을 만든 창조신 조차 찢어죽이고, 그 신이 만든 세계를 갈갈이 찢어놓는 싸이코패스 같은 녀석이 있는 게 현실이다.
별의 별 또라이가 다 있고, 별의 별 특이한 생각을 갖는 이가 있는 현실.
그러니까 안일하게 잘풀릴 것이라 생각하거나 고삐가 없는 상대를 무방비하게 믿는 짓 따위는 안한다.
"그래. 하자. 방송."
곧 미남형으로 바꾸었던 얼굴을 원래의 모습으로 바꾸었다.
내 본 모습은 보여주고, 숨길 일이 있을 때에만 얼굴을 바꾸면 되겠지. 그리고 그것은 일종의 메타버스의 족쇄가 될 것이다.
왜냐면 에실리의 방송에서 메타버스에 대한 내용을 일부 공개해버릴거거든.
"앗! 아빠 최고야!"
그러면서 두 팔로 내 목을 감싸 안는 에실리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래. 그래."
기쁜 얼굴로 나를 끌어안고 방방 뛰던 에실리가 곧 장 컴퓨터로 달려가더니 이내 카메라를 향해 입을 열었다.
"여러분 울 아빠가 드뎌 방송에 출연할 예정임미따! 미궁에서 돌아온지 얼마 안됐으니 박수로 맞이해쥬세욤!"
뭐랄까? 멘트가 어딘가에 TV에서 본 것 같은 멘트인 것 같은데.
머리를 긁적이며 에실리의 신호에 따라 컴퓨터 앞으로 다가갔다.
"안녕"
에실리가 미리 마련해 놓은 옆자리 의자에 앉으면서 카메라 시야 안에 들어왔다.
그러자 오른쪽 길쭉한 모니터 안에 나와 에실리가 반씩 갈라서 들어찬 화면과 함께 길쭉한 채팅 방에서 수도 없는 채팅이 주르륵 올라왔다.
평범한 동체시력으로는 그저 지나가는 것만 캐취 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는데, 내게는 그 채팅 내역들이 어느 정도 보였다.
절반 이상은 이모티콘 혹은 ㅋㅋ, ㅎㅎ, ㅎㅇ 등의 초성체로 되어 있었는데, 걔 중 간간히 내 정체에 대해 추리하는 채팅들도 보였다.
에실리 아빠 미궁에 있다는 용사라고 하지 않았음? 그럼 제주도 용사녀 처럼 위험한 거 아님?
미궁에서 어떻게 왔어요?
아버님 따님을 제게 주십쇼.
마지막은 무시하고, 제주도 용사녀라. 아마 그 녀석을 말하는 거겠지?
"아빠는 미궁에서 돌아온 용사야. 엄청 쎄다구! 지금은 반신이라고 했어! 대단하지?"
살짝 방송 컨셉에서 벗어난 말투로 돌아온 에실리가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나를 칭찬해대기 시작했다.
반신?
ㄹㅇ?
반신이면 개쌘거 아냐? 그 대부분 용사들이 반신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맞음. 용사들 대부분 반신이고 지금 신이 된다고 날뛰는거잖아.
"하하... 나는 신이 되고 싶은 마음이 없어."
신이 되면 좋은 점도 생기지만 안 좋은점도 생긴다.
그건 창조신에게서 들었던 내용이기도 하고, 안드레아가 자신의 격을 반신으로 까지 떨어뜨려야 했던 이유와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신이 되면 세상의 물리력에서 한발자국 멀리 떨어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신들은 대부분 사도로 자신이 속한 행성에 초월적인 물리력을 발휘한다.
내 말에 순식간에 또 채팅창이 우르르 올라간다.
대부분이 나에 대한 질문이었는데, 에실리가 면밀하게 채팅창을 살펴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조용. 조용. 아빠한테는 내가 직접 질문할검미따. 어떤게 가장 궁금함미까?"
그 말에 채팅 매니져가 채팅창을 얼렸다는 메시지 이후에 투표 창이 떠올랐다.
아마도 미리 질문 내용을 적어놓고 투표를 해놓는 것 같은데.
질문 내용들이 대부분 내가 용사라는 점과 미궁이라는 곳에 대한 질문내용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질문은 투표로 나오는 내용 중 다섯가지를 진행할 예정임미따. 추가 질문은 제가 직접 선별한 질문으로 한 두가지 더 이뤄질 검미따."
스르륵 쌓여가는 투표바와 함께 곧 에실리가 투표 마감 시간을 모니터에 띄웠다.
마감 시간 3분 전.
곧 어마어마한 속도로 투표들이 쌓여가기 시작했다.
처음 방송할때만 해도 800명 정도 보던 채널이 어느새 2만을 넘어 3만 가까이 까지 늘어나 있었다.
아까 게임 도중에 얼추 봤을 때도 2천명은 안 됐던 것 같은데. 아마도 나 때문일까?
채널에 사람들이 점점 늘어남에 따라 매니저에 의해 조용해진 채팅방과 달리 투표 속도는 가속도가 붙어서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질문의 순위가 바뀌기 시작했다.
투표 결과를 지켜보다가 결국 마감이라는 단어와 함께 투표가 멈추자, 매니저에 의해 채팅방이 해제되었다는 메시지와 함께 어마어마한 양의 채팅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까 전 간간히 볼 수 있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내 엄청난 동체시력으로도 따라가기 힘들 정도의 채팅 양이 쏟아져 나왔다.
이러면 채팅을 확인할 수 있나? 싶었을 때 쯤. 무언가 매니저가 또 다른 설정을 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채팅이 1초 단위로 하나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러면 보기는 좋은데, 채팅이 밀리지 않을까 싶었는데 뭐 어차피 일일이 채팅을 확인할 것 까지는 없으니 그러려니 했다.
"자 결과가 나왔씀미따."
에실리가 마우스를 딸깍 거리면서 투표 결과를 클릭하자, 이내 1위부터 시작해서 30위까지의 목록과 투표결과가 나타났다.
"1위는 울 아빠가 정말로 2년 동안 미궁에서 살았냐는 질문임미따. 아빠?"
역시나 제일 정석정인 질문이랄까? 미궁에서 2년이라고 하기에는 길고 긴 시간을 보내긴 했지만, 그건 정신적인 시간이기 때문에 2년을 넘는다고 말하기에는 좀 그렇지.
"그래. 음... 맞아. 나는 2년 동안 미궁에 갇혀 있었지. 물론 나갈 기회는 여러번 있긴 했지만, 미궁에서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 곳에 머물고 있었지."
내 말에 밀려 있던 채팅창이 서서히 투표에 대한 내용에서 내 질문으로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내가 2년이 맞냐는 질문부터 시작해서 영양가 없는 질문들이 우후죽순 올라오기 시작했다.
에실리도 채팅 내역을 보고 있었는지, 내 대답에 추가 적인 질문을 요청하는 채팅 중 하나를 유심히 보더니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아빠. 미궁에서 2년동안 지내는 동안 대체로 뭘 하고 지냈냐고 물어보는데?"
그 말에 잠시 생각을 했다. 여러가지 일이 있었지만, 굳이 세세하게 얘기할 필요는 없겠지.
더욱이 에실리의 방송은 성인방송도 아니라 전연령대가 시청가능한 방송 채널이었다.
잠시간의 생각 뒤에 정리된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 에실리를 만났을때를 뭉뚱그려 말한 후에, 그 다음 아가씨들과 만나게 된 이야기와 현재 제주도 용사녀라 불리는 그 여자의 이야기.
그리고 안드레아의 이야기 대신 루산에 대한 이야기만 한 후에, 지구에 돌아와 메타버스를 만나게 된 이야기까지.
"자...잠깐만요!"
메타버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곧바로 꺼두었던 핸드폰이 지잉 울리면서 그 위로 메타쨩이 허겁지겁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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