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7화 〉 제 4화. 스트리머 에실리. (8)
* * *
잠시 뜸을 들인 에실리가 내 표정을 확인하듯이 지긋이 나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내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에실리가 모니터에 떠오른 다섯 번째 질문을 읽어나갔다.
"다섯 번째 질문임미따. 약간 19금이 될 수도 있는 문제인데. 아빠. 미궁에서 몬스터들과 진짜로 관계를 맺은 것이 맞슴미까?"
도대체 이 이야기가 어떻게 새어나간지는 몰라도, 아마 에실리를 보고 이야기를 하는 거라면 그럴 싸한 질문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물론 에실리의 아빠로써 이미 슬라임과 관계를 맺은 것은 분명. 그러니 시청자들 입장에서도 그것이 궁금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근데, 왜 하필 저런 질문은 어마어마한 돈을 써면서까지 질문하느냐 라는게 궁금한데.
에실리가 이번에는 아이디를 알려주지 않길래 슬쩍 모니터를 보니, 아이디가 슬라임 놀이터라고 되어 있었다.
슬라임 놀이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어디서 봤더라? 하는 짧막한 생각과 동시에 기억이 떠올랐다.
분명 좀 전에 핸드폰에서 에실리의 방송에 대한 것과 나에 대한 정체를 추리를 거의 놀랍도록 해놨던 블로거.
근데 고작 블로거가 이런 질문에 17억 4200만원이나 쓴다고?
이정도면 집 한 채 가격인데? 이게 가능한가? 아니면 슬라님 놀이터란 사람도 혹시 헌터거나...
계속해서 추측을 하는 동안 에실리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마이크를 끄고는 내게 물었다.
"아빠. 질문 넘길까?"
"아니 괜찮아. 다시 마이크 켜도 돼."
아마도 에실리가 내 걱정을 해서 그런 것 같아 보이는데, 아마도 내가 몬스터와 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만으로 주위의 평판이 부정적으로 바뀔 것을 걱정한 것 같았다.
이미 에실리가 자신의 아빠가 인간이란 얘기는 줄곧 해왔겠지만, 주위의 인식이 몬스터는 괴물로 보는 시선이 많은 것을 깨달은 것은 아마 그 후에 깨닫게 된 거겠지.
그 전에는 아마 생각 없이 나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겠지만, 곧 주변의 시선이나 말해오는 것을 보니 그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나는 몬스터들과 관계를 가진 상태고, 나는 그녀들이 몬스터라고 보기보다는 몬스터를 닮은 아가씨들이라 생각했다.
솔직히 몬스터의 특성이 있어서 그렇지, 생김새나 습성은 내 이상형과 가까운 경우가 많았으니까.
특히... 모르겠다. 평범한 일반인이라면 이해를 못할 수 있겠지만, 나는 오히려 몬스터 아가씨들이 지금은 달가운 편이었으니까.
이걸 취향이라고 해야하나? 물론 내가 원래부터 몬스터 아가씨들 같은 특이한 취향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하다보니 그렇게 됐고, 결과적으로 좋아졌다고 해야하나?
물론 그것이 지구까지 이어질 줄은 몰랐던 것이고, 내 여동생도 처음에 하나, 보미, 에실리를 보고 얼마나 당황했다고 했었나.
특히 처음에는 나에 대한 경멸에 가까운 감정까지 느꼈다고 했으니, 뭐.
지금에 와서야 그 감정이 내 딸들에 의해 지워진 탓에 나를 처음 만났을 때 아무렇지 않다고 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뭐, 그게 정상이겠지.
마이크를 켠 에실리를 보며,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흔히들 판타지 소설이나 만화를 보면 나오는 다양한 몬스터 아가씨들과 관계를 가졌지. 그리고 나름 가족도 이룬 상태고."
채팅을 막아놓은게 다행이라고 할 정도로 거실 밖에서 울리는 핸드폰 소리가 거의 진동에 가까워졌다.
더욱이 에실리의 개인 쪽지함에도 빨간불이 마구 켜지기 시작했다.
물론 다섯 가지 질문을 할 때까지도 개인 쪽지함에 수시로 불이 들어왔으나, 지금은 거의 꺼지지 않을 정도로 계속해서 켜지고 있었다.
"근데. 에실리 슬라임 놀이터라는 사람은 누구야?"
"응. 내 팬클럽 회장? 아마도 이 금액 보니까 어휴... 팬클럽에 모아놨던 후원금은 다 써버린 거 같은데."
내 질문에 잠시 에실리가 마이크를 끄더니 대답했다.
"팬클럽?"
"응. 아빠. 헌터들 위주로 이루어진 팬클럽이야. 가끔 헌팅 나가면 도와주기도 하고, 이것 저것 공략이나 도구 같은 것도 후원해 줘."
에실리의 대답에 살짝 의문이 들었다.
팬클럽... 그래 내가 알고 있는 팬클럽이라면 아이돌이나 가수의 팬클럽 정도를 생각했는데, 헌터들도 팬클럽이 있는 건가?
"물론 상위 길드에 있는 헌터들은 아니야, 대부분이 각성자에서 뛰어난 보조 능력을 가져서 헌터 명함만 갖고 있는 이들이야."
"보조 능력?"
"아, 오빠. 그러니까 생산계 헌터들을 말하는 거야."
"생산계 헌터?"
"응. 그러니까 헌터라는 게 몬스터를 사냥하는 헌터들만 있는게 아니라, 가끔 장인이나 자신의 특기의 심화 계열로 각성한 헌터들이 있거든."
게임으로 따지면 생활형 헌터 같은 건가?
예전에 했던 온라인 게임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사냥을 즐기는 유저와 생활을 즐기는 유저로 나뉘어 있던 오픈월드형 게임이.
그리고 그 게임에서도 그렇지만 사냥을 하는 헌터와 생활을 하는 헌터의 성향은 거의 극과 극이었다.
다만 서로가 필요했기에 금전적으로 이루어진 관계로 묶여 있었지.
아마도 실제 현실에서도 그런 관계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그런 헌터들은 많아?"
"아니. 그렇게 많지는 않아."
여동생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 일단 방송 끌까?"
왠지 내가 대화를 길게 할 것 같은 분위기를 읽은 것인지 에실리가 물어왔다.
"문제 없으면 이제 끄자."
"응. 알았써. 아빠."
에실리의 대답과 함께 다시금 마이크를 켠 에실리가 방송을 종료한다는 깔끔한 멘트와 함께, 슬바를 외치고는 방송을 껐다.
그 후에 쉼 없이 울리던 개인 쪽지함을 열어 본 에실리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난 망했써... 이거 언제 다 봐... 하는 볼멘소리를 내 뱉었다.
그 모습에 자업자득이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면서도 쪽지함을 살펴보는 에실리를 보면서 머리나 잔뜩 쓰다듬어 주었다.
내가 여동생과 메타버스에게 현 지구에 대해 설명을 들었던 것은 정말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도 큰 줄기만 대충 설명해 준 것이고, 바뀐 생활에 관한 것을 들어보니 거의 폴더폰에서 스마트폰으로 핸드폰이 바뀌는 수준의 변화가 있었다.
자세히 더 설명을 들어볼까 했는데, 세세하게 파고 드니 바뀐 것이 너무 나도 많아서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예시로 내가 아는 대기업 몇군데가 망하고, 새로운 신생 사업이 대기업이 되었다는 점도 있었고, 시대의 흐름을 타서 그 이상의 성장을 한 회사도 보였다.
그 예시로 반도체에 마법진을 새기거나, 지금 여동생이 타고 다니는 마나 캠핑카 등.
심지어 안드로이드도 골렘을 만드는 마법과 융합해서 어느 정도 터를 잡았다고 할 정도니 2년이 아니라 20년이 지났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안드로이드라..."
안드로이드를 말하자 마자 바로 생각난 것이 메타버스면... 아마도 그렇겠지?
현재는 가성비가 떨어져서 실험용으로만 계속해서 만들고 있다는데, 결국에는 그것도 무기화가 되겠지. 인류 문명이 그래왔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을까?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털었다.
로봇이니 골렘이니 결국 한계는 있다. 그걸 메타버스가 이용한다고 해도 터미네잇 같은 공상 과학 같은 세계는 오지 않을 것이다.
이미 판타지가 섞였는데 SF가 파고들 틈은 없지.
어찌 되었든 간에 일단은 조심해야 할 것이 하나 생겼다.
그 후로 여동생이 말한 것은 생활형 헌터에 관한 것이었는데, 이 부분은 판타지 세계관에 존재하는 연금술사나 대장장이 같은 것과 비슷했다.
마법진을 사용해 물건을 만들거나, 아니면 헌터들이 쓸 수 있는 헌터 전용 장비를 만들거나, 마법공학이라고 하여 마법에 과학을 더해 괴상한 것들을 만드는 이들까지.
심지어 그 중에는 초능력을 닮은 신기한 기술들을 사용하는 이들도 있었다.
물론 공격으로 활용할 수 있는 초능력이 아닌 소소한 능력들이라고 해야 할까? 예를 들어서 제한이 있는 장거리 순간이동을 쓰는 자들이거나, 텔레파시 같은 능력을 사용하는 자들.
더욱이 예지력을 가진 이들까지 있었다. 물론 이들은 메타버스 조차 뭐라 정의를 못했는지 뭉뚱그려서 초능력 헌터로 분류하고 있었는데, 메타버스가 관리하는 체계에서 아예 벗어난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많은가 싶었는데, 여동생의 말로는 그 수가 국회의원 수보다 적다고 했으니, 정말 소수라고 느껴졌다.
물론 밝히지 않은 능력을 가진 자들도 있겠지만, 그것 또한 포함해서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필요하다면 순간이동 능력자는 데려다가 쓰고 싶을 정도로? 물론 마법으로도 텔레포트 같은 순간이동 마법을 쓸 수는 있지만, 소설이나 만화처럼 그런 기적적인 순간이동을 가진 마법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서 아이린이 사용하던 버섯 엘리베이터 조차 텔레포트 마법 중에서도 거의 최상급에 가깝다고 말했으니, 이동시간이나 필요한 마법과 조건을 따지자면 그리 좋은 마법은 아니었다.
준비에 준비를 거듭해 많은 것을 소모해야 이동할 수 있는 것이 텔레포트.
그것도 텔레포트로 이동하고자 하는 이가 강하면 강할 수록 소모해야 하는 것들이 많았다.
그런 것을 아무 조건 없이 쓸 수 있다는 자들이 있다고 하니 군침이 돌았다.
이건 한 명 정도 어떻게든 손에 넣어야겠는데?
앞으로 있을 용사들과의 싸움이나, 바뀐 지구에 대한 많은 것을 알아내고 바꿔내려면 내게 꼭 필요한 인재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