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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마왕 간부에게 소환당해 착취당하고 있다-178화 (178/220)

〈 178화 〉 제 5화. 에실리 팬클럽.

* * *

소파에 앉아 잠시간의 생각을 마치고 나자, 어느새 앞치마를 두른 하나가 소파 앞에 있던 거실 탁자 위에 무언가 잔뜩 옮기는 장면이 보였다.

고소한 냄새와 더불어 달달한 향이 코 끝을 간지럽히는데, 하나가 스윽 또 다시 무언가를 나르기 위해 주방으로 가자, 거실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갈비찜이 보였다.

그새 갈비찜을 했다고? 하는 생각에 거실을 보니 몸을 변형시켜서 팔을 여러개로 늘린 하나가 후라이팬 두 개와 찜기 하나 그리고 도마와 밥솥까지 한번에 여러명이 해야하는 조리 작업을 혼자서 척척 해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심지어 그것도 익숙한 것인지 거의 시선을 주고 있지 않은 조리 과정도 몇 개 보였는데, 걔 중 인상적인 것은 도마에 야채를 써는 데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야채들이 균일하게 썰려나가는 모습이었다.

저런 기술은 나도 불가능 할 것 같은데, 마치 베테랑 요리사처럼 그런 일을 척척 해나가는 하나의 모습을 보다보니 확실히 맏언니는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여동생이 생각나서 고개를 두리번 거리니, 거실 한편에 있는 널찍한 베란다 쪽에서 보미와 함께 무언가를 만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뒤통수 밖에 보이지 않아서 뭘 만지는지 정확히 보이진 않았지만, 베란다에 있는 것들이 대부분 하얀색의 창과, 방패, 검, 메이스 같은 것을 보니 아마도 헌팅을 나갈때 쓴다는 장비 같았다.

아까 캠핑카 내부에도 몇 개 있던 것 같은데, 베란다에 있는 장비는 좀 더 본격적으로 거치대 같은 곳에 진열 되어 있었다.

좀 있다가 장비 같은 것도 한 번 봐둬야 겠어.

미궁에 있을 때 사용 했던 무기는 요네에게 받은 창이 전부였다.

지금 또한 거의 마찬가지나 다름 없었는데, 그나마 검을 들면 발키리 검술로 어느정도 검술 흉내 정도는 낼 수 있었고, 박투술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외에는 잼병이라고 볼 수 있었는데, 그렇다고 딱히 익혀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 자체가 전투에는 별로 재능이 없기도 했고, 솔직히 지금 기술을 익히는 것 보다는 내 권능 쪽을 강화하거나 관계를 맺는 이들을 늘리는 쪽이 나았다.

그러고 보니 순간이동을 쓸 수 있다는 헌터와 관계를 맺으면 그 순간이동도 내가 쓸 수 있게 되는 걸까?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는 동안, 다시금 하나가 반찬 몇가지를 가져와 식탁 위에 올려놓는 모습이 보였다.

"하나야 옮기는 거 도와 줄까?"

혼자서도 잘하고 있길래 그냥 보고만 있었는데, 그래도 예의상 한번 말은 꺼내 봐야 할 것 같아서 말을 꺼냈다.

"아니요. 아빠. 이 정도는 저 혼자서도 할 수 있어요. 그것보다 슬슬 식사 준비가 거의 끝났으니까, 이모랑 보미, 그리고 에실리좀 불러와 주세요."

"그래."

소파에서 일어나 천천히 베란다 쪽으로 걸어갔다.

닫혀 있는 유리문을 휙 하고 열어 젖히니, 뒤로 돌아 쭈그려 앉아 있던 보미와 여동생의 시선이 내 쪽으로 휙 돌아섰다.

"밥 먹으래."

내 목소리에 둘이 자리를 툭 툭 털고 일어나더니 이내 들고 있던 도구들을 바닥에 내려 놓는 모습이 보였다.

뭔가 기름통 같은 것들과 처음 보는 기계들이 잔뜩 바닥에 놓여져 있는 것을 보니 좀 신기했다.

옆에 자세히 보니 설명서 같은 것도 있었는데, 도구들 마다 일정한 패턴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마법진과는 또 다른 느낌의 특이한 힘이 느껴지는 문양.

"응. 오빠."

"네. 아빠."

보미와 여동생이 후다닥 손을 툭 툭 털고는 거실로 들어와 화장실로 향하는 것을 보면서 잠시 바닥에 놓여 있는 도구들을 보다가 베란다 문을 닫고 에실리의 방으로 향했다.

원래는 내 컴퓨터방이었기도 한 에실리의 방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개인 쪽지함을 잔뜩 열어놓은 모니터 앞에 축 늘어져 앉아 있는 에실리의 모습이 보였다.

"아빠?"

"응. 밥 먹으렴."

모니터의 시선을 좀 더 집중하니, 개인 쪽지함 중에 아까 질문보다 심화된 질문 여럿이 보였는데, 걔 중 반절은 에실리의 사생활에 대한 질문으로 보였다.

내 딸 고생이 많네.

어느새 자리에 일어나 축 늘어진 모습으로 걸어오는 에실리의 머리를 낚아채듯이 붙잡아 쓰윽 쓰윽 쓰다듬자, 이내 에실리가 내게 엉겨붙듯이 달라붙어 나와 함께 거실로 나왔다.

거의 내 배꼽에 닿을까 말까 한 키의 에실리를 어느새 손을 씻고 나온 보미가 축축해진 두 손으로 에실리의 볼을 양 손으로 툭 툭 두들겼다.

근데 슬라임인데 굳이 손을 씼을 필요가 있나? 싶었는데 그냥 여동생을 따라 습관적으로 씼는 모양 인 것 같았다.

"앗... 차가워. 보미 언니."

보미의 두 손에 볼을 붙 잡힌 에실리가 흘겨 보듯이 보미를 바라보자, 쾌활한 모습의 보미가 한층 신난 표정으로 꺄하핫 하면서 재빨리 두 손을 털고 탁자가 있는 쪽으로 도망갔다.

에실리가 조용하고 귀여운 성격이라면, 그 반대 선상에 서 있는 것이 보미 같았다. 시끄럽고 쾌활하면서 에너지가 넘치는 그런 말광량이 스타일인 것 같았다.

덕분에 거실의 분위기가 살아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이내 앞치마를 한 하나가 보미에게 다가가 뭐라 언질을 하자, 더욱 더 꺄하핫 웃는 보미의 모습이 보였다.

"오빠. 밥은 이 곳에 와서 처음 먹는 거지?"

어느새 가볍게 손을 씼은 여동생이 내게 다가와 물었는데, 보아하니 얼굴에도 물을 묻힌 듯 진한 화장이 대부분 지워져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추녀의 얼굴은 아니었지만, 거의 민낮이 되었다 보니 화장 했을 때와는 또 완전히 분위기가 달라보였다.

"응. 그렇지."

"그래? 하나의 요리 솜씨가 수준급이거든. 한 번 먹어 봐. 맛있을 거야."

보이는 음식들이나 풍기는 냄새만 맡아도 식욕을 한 층 돋구는 것이 여동생의 말이 틀릴 것 같지는 않았는데.

음식은 먹어보기 전까지 정확한 맛을 모르는 법.

여동생을 따라서 에실리를 앞 세운 채 탁자 쪽으로 다가갔다.

탁자 맞은 편에 보미와 여동생이 앉고, 왼쪽에 에실리를 앉혔다.

제법 크고 넓은 거실 식탁이다 보니 이렇게 넷이 앉았는데도 제법 앉을 곳이 여유로웠는데, 곧 여러 개의 손으로 한 꺼번에 밥이 들어 있는 밥그릇 다섯 개와 수저, 그리고 물컵과 물통을 들고 온 하나가 내 오른쪽에 앉았다.

"아빠. 여기."

하나가 각자의 앞에 밥그릇을 내려 놓은 후, 곧 물통에서 물을 따른 물컵을 내게 내밀었다.

"고마워."

내 말에 베시시 웃는 하나의 얼굴을 보면서 천천히 식탁 위를 살폈다.

달달해보이는 갈비찜부터 시작해서, 해물전, 두부김치, 미역국, 동치미 등등 딱 보아도 한식으로만 되어 있는 반찬이 열가지가 넘었다.

"이야..."

내 입에서 절로 탄성이 흘러나올만큼 화려하게 차려진 밥상에 침을 꼴깍 삼켰다. 보기도 좋은 떡이 맛에 좋은 법이지.

음. 음. 그렇고 말고.

바로 젓가락을 들고 갈비찜을 집어 들었다. 얼마만에 고기인가?

실질적으로는 2년이라고 해도, 남의 기억에서 해맸던 기간까지 더하면 수백 년.

맛을 포기하기도, 맛을 느끼지도 못했던 그 긴 기간동안을 거쳐서 드디어 내 코 앞까지 드리운 갈비찜에서는 그리운 냄새가 코 끝을 간지럽혔다.

향을 음미하기도 전에 재빠르게 입을 벌려서 갈비찜을 한입에 쑤셔 넣었다.

그러자 혀끝을 통해서 내가 기억하던 갈비찜 양념의 그 깊은 짭짤함과 달달함이 한 순간에 입안을 점령했다.

배즙 까지 넣은 것인지 달달한 부분에서 살짝 배향이 묻어 나왔는데, 딱 보아도 소고기? 아니 소고기라기 보다 훨씬 부드럽고 결이 부서지듯이 흩어지는 부드러움에 햐 하는 탄성이 입 끝에서 흘러나왔다.

"먹자."

내가 먹을 때까지 기다린 것인지 내가 갈비찜을 먹고 감동하는 동안 잠시 기다리고 있던 여동생을 포함한 내 세딸이 동시에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번개 같이 내가 먹은 갈비찜에 젓가락을 쑤셔 넣는 보미의 모습이 인상깊게 보였다.

그리고 여동생이 그런 보미를 이어서 갈비찜에 젓가락을 내 밀었고, 에실리는 그 옆에 있던 해물전을 집어들더니 입안에 쏘옥 넣었다.

그러자 마치 물속에 해물전을 던져 넣듯이 입안에 던져진 해물전이 순식간에 에실리의 배꼽 부근에 있는 핵 주변까지 퐁당 빠져들더니 이내 순식간에 녹아들었다.

그러고 보니 엄마인 에슬리가 이런 음식 같은 것을 먹는 모습을 못 봐서 몰랐는데, 저렇게 핵 주변에 녹여서 영양분을 흡수 하는 거였구나.

나중에 에슬리도 이렇게 음식 같은 것을 먹긴 하겠지? 내 정액을 먹는 모습 밖에 못봐서 확신을 못하겠네..

순식간에 에실리와 같은 방식으로 갈비찜을 집어 삼킨 보미가 연달아 갈비찜을 집어서 입 안에 던져 넣기 시작했다.

잠깐... 이건 너무 빠른데?

수북히 쌓여 있던 갈비찜의 윗 부분이 순식간에 사라지자, 겨우 갈비찜 하나를 삼킨 나도 젓가락을 빠르게 놀렸다.

그러면서 하나가 먹는 모습 또한 슬쩍 보았는데, 하나는 에실리나 보미와 달리 인간의 모습을 한 상태에서 나처럼 천천히 입 안에 음식물을 넣고 씹고 있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 일부러 인간을 따라 하는 모습이 어색하다거나 하진 않았는데, 아마 각성해서 완전히 인간의 모습을 갖기 전에도 이런 습관이 있었던 것 같았다.

근데 자세히 보니 먹는 속도나 씹는 속도가 여동생과 비슷한 것이 아마 내 여동생의 먹는 습관을 따라하는 것 같았다.

음식을 흡입하는 속도가 빠른 보미를 따라서 나도 젓가락을 열심히 놀려서 먹고 싶었던 반찬들을 하나 하나 맛보았다.

중간에 식사를 하던 하나가 일어나서 추가로 갈비찜을 가져오는 일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하나가 만든 음식은 하나 같이 맛있었다.

하나는 확실히 맛을 음미하면서 먹는 것이 식도락을 즐기는 것 같아 보였는데, 반대로 에실리나 보미는 맛을 느끼는 대신 공복감을 달래는 정도의 식사를 하는 것 같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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