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마왕 간부에게 소환당해 착취당하고 있다-182화 (182/220)

〈 182화 〉 제 6화. 서울의 밤.

* * *

긁적.

습관적으로 머리를 긁으면서 안드레아와 루산의 계획을 떠올려 보았다.

창조신까지 제거하면서 까지 자신이 머물던 세계를 파괴하려던 안드레아.

이유.

뭐라고 해야 할까? 순수한 분노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순수한 악의라고 해야 할까? 나로써는 이해하기 조금 힘든 사건이었지만 안드레아는 충동적으로 창조신을 살해한 것이 아니었다.

창조신 또한 그녀의 순수한 악의를 받아들였다.

그럼으로써 내가 반신에서도 거의 신에 가깝게끔 격이 상승 할 수 있었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안드레아가 하려는 짓.

창조신이 만든 세계를 파괴하는 것.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었지만, 안드레아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저 순수하게 자신으로 있어주기를 바랬던 그녀의 바램은 결국 파국으로 치달았다.

감정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머리로는 이해 할 수 없는 그녀의 행동.

존재 자체가 부정된 순간 그녀는 모든 것을 부정하는 대신 제거해 버리기로 마음 먹은 것이었다.

어째서? 라는 이유는 없었다. 그건 너무나도 철학적이며 이론적인 이야기이며, 그녀의 감정은 어째서? 라는 반문이 전혀 없는 순수한 감정에서 우러나온 결과물이었다.

너무나 감정적이다고 보면 될까?

아니면 존재 자체가 다르기에 생각하는 개념 자체가 다르다고 봐야 할까?

확실한 것은 그녀는 창조신이 만든 세계를 파괴하는 데에 성공했고, 그 조각, 파편마저 없애버리기 위해 지구를 끌여들였다.

아마도 그녀는 파괴하면서 남아버린 이세계의 파편을 지구를 통해 제거할 생각일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지금의 상황이 어느정도 설명이 됐고, 그녀 또한 미궁을 통해 넘어오는 것. 그리고 진실을 알고 있는 내가 먼저 오기를 거부하는 것 또한 마지막 미궁에서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그럴싸하다.

창조신이 추가로 나에게 남긴 것을 보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본래 있던 가부장이라는 권능 아래에 몰래 추가된 권능.

아마도 창조신의 것으로 추정 되었지만 지금은 그 기능이나 능력이 어떠한 것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 그것은 현재 내 권능을 강화시켜주고 있었다.

그렇기에 빠르게 반신의 끝자락에 달할 수 있었지만, 아직까지 그 정체에 대해서 전혀 단서가 잡히지 않았다.

다만 창조신이 남긴 안배가 내게 깃들었음만을 알 뿐.

살짝 짐을 떠맡은 것 같아서 기분이 안 좋기도 했는데,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없는 것 보단 낫기에 그저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미 존재하지 않는 존재에게 하소연 해봤자 변하는 것은 없기에.

근데 그렇게 보면 외우주의 신인 삼신 할매 또한 문제가 있긴 하지.

어째서 날 선택해서 이런 권능을 줬는지. 물론 그럴 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용사였는데.

아마 용사였을 때의 상태로 지금같이 반신에 올랐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개인적인 무력이 뛰어난 반신이 되었을 것이다.

여러가지를 생각하다보니 어느새 밤이 되었는지 서서히 해가 저물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미궁에서 지내면서 시간 개념이 없어져서 그럴까? 해가 지는 모습을 보니 진짜로 지구로 돌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높게 세워진 빌딩과 건물들 위로 서서히 지는 해의 모습과 저 너머로 보이는 남산 타워의 배경.

시간을 보니 오후 6시 반.

살짝 날씨가 쌀쌀하기보다는 텁텁한 것이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일까?

아니면 여름 끝자락일까?

날짜를 보니 6월 중순.

내가 이세계로 소환당했을 때도 이 무렵이었던 것 같다.

정확히 2년 후에 지구로 돌아왔다니까. 그 때도 살짝 더웠던 날인 기억이 있다.

그것도 밤에 팬티 한장만 입고 있을 때 끌려 갔으니까.

잠시 마지막에 다니던 회사를 떠올리며, 핸드폰 기록을 뒤져보자 저장되어 있는 회사 이름과 상사의 이름.

그리고 잔뜩 찍혀 있는 과거의 부재 전화가 보였다.

그러고보니 관둔다고 하고 실제로 관둔다는 이야기를 못하고 이세계로 끌려 갔었지.

조금 더 핸드폰을 의미 없이 들여다보다 보니 무언가 공허한 느낌이 들었다.

허무하게 터치를 거듭하면서 인터넷을 뒤져 보다가 이내 부엌에서 흘러나오는 음식 냄새에 천천히 고민을 접었다.

하나의 요리 솜씨는 뭐라고 해야 할까?

내가 지구에 있을 때 시켜 먹었던 그 어떤 배달 음식보다 맛있고 다양했다.

듣기로는 거의 1년 동안 취미로 요리를 배웠다고 했는데, 이 정도면 음식점을 차려도 무조건 맛집으로 등록 될 정도였다.

소파에 드러누운 상태로 천장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지구로 돌아오면 분명 하고 싶은 일이나 하고 싶은 것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을 것 같았는데, 실질 적으로 돌아오고 나니 피곤함에 몸이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워 지는 느낌이 들었다.

더욱이 격이 오른 탓인지 아니면 이성이 없어서 그런지 미궁에서는 흘러 넘치던 성욕 또한 잠잠하게 가라 앉았다.

생활계 헌터들.

생각 외로 내 딸들을 따르는 팬카페 회원들 대부분이 여성이었다.

채팅창이나 분위기로 봤을때 남성 회원이 99% 정도 아닐까 싶었는데, 현실은 그 반대였다.

어째서일까? 하고 잠시 의문이 들었지만, 덕분에 만약 팬까페 회원 중에 생활계 헌터.

그것도 내게 필요한 능력을 가진 이가 있다면 대부분이 여성이랄 것이란 생각을 하고 보니 또 나쁘지 않았다.

물론 이곳이 지구이고, 엄연히 지구의 법과 상식을 따르는 만큼 무분별한 관계는 어렵겠지만, 어떻게든 납득시킨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만약에 납득을 못 시킨다고 해도 그것을 추가로 납득시킬 만한 돈이라면 얼마든지 있으니까 납득의 과정을 축소시킬 수도 있을지 모르고.

돈으로 산 관계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필요하다면 돈도 충분히 쓸 생각이 있었다.

어찌 됐든 내 권능을 강화시키는 일이었고, 그것이 나, 그리고 우리 가족을 지킬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었으니까.

그래 비유를 하자면 나는 세기말의 방주였다.

이미 어느정도 판타지 세계와 뒤죽박죽 섞여버린 세상에서 유일한 구원의 수단이 될지도 모르는 것이 나였으니까.

나는 방주로써 내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들어온 이들을 꼭 지켜야 할 의무가 있었다.

여러가지 생각과 철학적인 이념이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섞여 어지럽혔다.

그러다 피식 웃었다.

모르겠다.

사실 지구로 오는 것만이 목표였고, 지구가 이렇게 변했을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니까.

변수는 많다.

내가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선 해야 할 일도 많았고 준비해야 할 것도 많았다.

그 과정에서 지켜야 할 것들도 많았고, 많아질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잡음 정도야 얼마든지 해결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럴 것이라 믿었다.

잠이 필요 없어진 몸이 되어서 그럴까?

깊게 생각하면서 주위의 변화가 느껴진다. 시간이 흐르고, 주변이 부스럭 거리고 누군가가 왔다갔다 하면서 나를 의식한 채로 시선을 주었다가 거둔다.

그러다가 주위가 고요해지고 누군가가 내 몸 위에 담요를 덮어주는 것으로 완벽하게 주변의 인기척이 사라졌다.

그리고 밤이 깊어졌을 것이라 생각한 가운데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담요를 접어 소파 위에 갠 뒤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는 들고 있던 핸드폰을 담요 위에 올려놓고 나서 몸을 풀었다.

쌀쌀한 바람이 도는 밤하늘을 올려다 보며, 나는 닫혀 있는 베란다로 향했다.

4층 높이의 빌라의 높은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 보았다.

적막한 뒷 골목의 거리, 사람이 없고 주위가 어둠에 잠긴 것을 확인 한 나는 얼굴의 골격을 바꾸면서 베란다 문을 열고 밖을 향해 점프했다.

­탁.­

가벼운 착지 소리와 함께 마나로 만들어진 운동화가 내 발을 감쌌다.

마실을 돈다는 생각을 하며 몸을 감싸는 마나를 외부에 두르자, 입고 있던 정장이 검은색의 캐쥬얼 운동복으로 바뀐다.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면서 가물가물해진 뒷 골목을 달려 나갔다.

바뀐 지구의 모습을 눈에 담고 싶었다.

그렇기에 후드 까지 머리 위에 눌러 쓰면서 주위 골목 골목을 눈 여겨 보면서 혹시 크게 바뀐 것이 있는지 확인해보았다.

전과 다르게 들쑥날쑥하게 파인 뒷 골목의 도보.

그리고 중간 중간 급하게 보수 한 것 같은 건물이 보이고, 금이 쩍 쩍 간 것을 급하게 보수한 흔적이 보이는 가로등이 보였다.

골목 끝자락에 있던 자그마한 구멍가게는 폭삭 주저앉아 폐허가 되어 있었고, 큰 길로 나가는 길에는 예전처럼 무분별하게 주차되어 있는 불법 주정차들 대신에 새로 만들어진 커다란 도보가 눈에 띄였다.

주위의 모든 것을 눈에 담으며, 커다란 도보 위를 가볍게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큰 길이 끝나면서 커다란 도로가 나타났다.

좌로는 공원으로 향하는 길, 우측으로는 서대문 사거리로 향하는 길.

아까 전에 차로 서대문 사거리를 다녀왔었기에 나는 이번에 공원이 있는 길을 향해 내달렸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공원이 있던 자리에 새로이 생긴 커다란 시장을 발견 할 수 있었다.

블랙마켓이라 하는 화려한 불빛의 간판을 달고 있는 대형 시장 처럼 보이는 공간.

예전에 있던 공원은 이제 입구에 흔적만이 남아 있었고, 대신 그 이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 곳을 배회하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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