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화 〉 제 7화 세계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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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가 개벽한다고 해야 하나?
어두컴컴했던 밤하늘이 안개가 낀 새벽녘처럼 뿌옇게 변하더니 이내 그 하늘 아래에서 태양 빛이 내려쬐기 시작했다.
명백히 날씨를 거스르는 기적같은 모습에서 세계수가 가진 신성력이 느껴졌다.
[죽어 내 양분이 되어라.]
김지호 막는 데 집중할게!
온 천지를 울리는 것 같은 쩌렁쩌렁한 세계수의 목소리와 함께 태양 빛이 내리쬐는 하늘에서 세계수의 큰 가지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가지 하나가 나와 렌시아를 가르키더니 이내 그 끝에서 하늘에서 내리쬐는 태양 빛 같은 것이 응어리지듯이 뭉치더니 마치 레이저처럼 쏘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빛줄기. 물론 당황하여 재빨리 낫을 휘두르며 주위에 무언가를 펼치는 렌시아와 달리 나는 가볍게 뛰어올라 나를 향해 날아오는 빛줄기 앞에 마주했다.
검은 마력을 휘둘러 내 앞에 거대한 막을 생성해내자, 곧 검은 장막 위로 어마어마한 빛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검은 막에 부딪혀서 유리 파편처럼 터져 나가는 빛줄기.
그리고 뒤에서 놀란 렌시아가 그림자처럼 내 뒤로 숨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아니 진짜 그림자에 숨어든 걸까? 잠시 기척이 사라지는 기분이 들어서 살짝 고개를 돌려보니 빛 때문에 길게 늘어진 내 그림자 위로 코 위의 머리 부분만 살짝 드러내는 렌시아의 모습이 보였다.
서서히 줄어드는 빛줄기에 어둠의 장막 너머를 보니 세계수가 빛을 내뿜던 가지를 거둬 들이고 이번에는 거대한 기둥 중간쯤에 달려 있던 어마어마하게 큰 가지를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딱 보아도 굵기만 거의 웬만한 빌딩 크기쯤 되어 보이는 나뭇가지.
더욱이 움직이는 속도가 그 거대함에 비해 빠르다 보니 보고 피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막을 거라도 있다면 어떻게든 몸을 가려보겠지만, 어쩔 수 없지.
몸 밖으로 넘실거리던 검은 마력이 내 몸 안으로 흡수되며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그것이 손으로 뻗어 나가는 느낌과 동시에 내 두 팔이 검게 물들었다.
김지호 이번 것도 막을 거야?
응.
린에게 대답하면서 내가 가진 권능을 이용해 내 신체 능력을 최대한 까지 끌어올렸다.
순식간에 부풀어 오르는 신체. 그러고 보니 똘똘이 말고 다른 신체를 키워 볼 생각은 해 보질 않았네.
지금에서야 테스트해보는 게 조금 웃겼지만, 그러고 보니 이렇게 신체를 키워 볼 기회도 없었던 것 같다.
점차 커지던 내 몸이 거의 미노타우로스 걸이던 아우렌 급으로 커졌다.
몸도 마르면서 탄탄했던 몸 대신 보디빌더처럼 근육이 잔뜩 부풀어 올랐고, 키 또한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곳까지 껑충 솟아올랐다.
몸을 키우는 동안 어느새 눈앞까지 곡선을 그리며 떨어져 내리는 거대한 빌딩 크기의 나뭇가지.
"흡."
두 손을 뻗어서 나뭇가지를 받아 듦과 함께 어마어마한 중력이 두 손 위로 느껴졌다.
갓 반신에 올랐을 때 와 달리 창조신의 기억과 능력을 일부 흡수한 내 신체에서 어마어마한 신성력이 피어올랐다.
뭐랄까? 물 위에서 가만히 있을 때 몸이 떠오르는 부유력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것이 내 손에서 느껴지면서 어마어마한 기세로 내려오는 세계수의 나뭇가지를 막아 냈다.
무겁다기보다는 위에서 느껴지는 중압감 때문에 살짝 심장이 쫄렸지만,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뒷받쳐 주는 바람에 해내버렸다.
실질적으로 내 몸에 느껴지는 무게는 대충 어렸을 때 학교 교실 앞에서 벌을 서며 두 팔로 들어 올렸던 양동이 같은 정도?
허리에 바짝 힘을 주고 두 팔로 나뭇가지를 옆으로 크게 흘려 냈다.
[맙소사...]
세계수가 경악하는 목소리와 함께 건물 크기 정도 되어 보이는 나뭇가지가 공기를 찢어 버리는 것 같은 파공음과 함께 쾅 하고 바닥에 내리꽂혔다.
바닥에 처박히자마자 땅바닥에 균열을 일으키며 다시금 올라오려는 나뭇가지를 재빨리 손에서 피어오른 검은 마력으로 지져 버렸다.
순식간에 구겨진 오징어 다리처럼 뒤틀리는 세계수의 나뭇가지.
[으아아악!]
세계수에서 자라난 나뭇가지중에 가장 크면서도 아래쪽에 위치한 나뭇가지이다 보니 순식간에 검은 마력의 불길이 그 결을 타고 불타올라 세계수에 옮겨 붙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 하늘에서 거대한 나뭇잎들이 우수수 떨어져 세계수 기둥에 붙은 내 검은 마력의 불길을 지우려는 모습이 보였는데, 이때다 싶어 불타서 축 늘어진 나뭇가지 위로 올라타 세계수 쪽으로 달려 나갔다.
등 뒤에 그림자에서 특이하게 무언가 잡아당기는 것 같은 무게감이 들었는데, 내가 슬쩍 시선을 던지자 곧 그림자가 짧게 줄어들더니 잡아당긴다 보다는 무게감이 등 뒤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 들었다.
타닥. 타닥.
마력의 불길에 의해 타버린 나뭇가지에서 재가 흩날리는 모습을 보며 한참을 달리다 보니 어느새 기둥에 옮겨붙은 불을 진압한 세계수가 나를 굽어보듯이 그 거대한 나무 기둥이 앞으로 기울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죽어!]
이번에는 아까보다 조금 작지만 굵기만 화물차 정도 되어 보이는 커다란 두께의 나뭇가지 여럿이 겹치듯이 내게 쏟아져 내린다.
하늘을 까마득하게 가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의 나뭇가지. 더욱이 빼곡히 잎까지 달려 피할 공간조차 보이지도 않았다.
김지호 어떻게 할까?
욕설이 절로 나올 법한 광경속에서 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렇게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맞는다고 죽거나 할 거 같진 않지만 아프긴 엄청나게 아플 것 같았다.
등 뒤에 달라붙은 그림자에서 순간 달콤한 귤 향과 함께 검은 머리가 흔들거리며 나타났다.
"도와 드릴까요?"
렌시아의 말에 잠시 고민했다. 굳이 도움까지 받을 필요는 없었지만, 지금은 딱히 저 무수한 나뭇가지를 효과적으로 피할 방법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 서큐버스 남의 그림자에 자연스럽게 숨는 것도 그렇고 갖춘 능력이 궁금하기도 했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그림자 속에서 머리만 내 놓고 있던 렌시아가 요염하게 웃음을 흘리며 미소를 지었다.
김지호... 저 여잔 또 누구야?
약간 날이 선 것 같은 린의 목소리와 함께 내 그림자에서 완벽하게 빠져나온 렌시아가 빠르게 내 등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내 몸에 넘실 거리던 검은 마력이 그녀의 손에 이동하듯이 쭈욱 빨려 들어가더니 이내 내 그림자가 검은 마력으로 강화되는 것이 느껴졌다.
비록 내가 마력을 빨아들이는 것을 허락했지만, 이렇게 능숙하게 마력을 뽑아다가 활용할지는 몰랐다.
"자. 이제 됐어요."
맨눈으로는 천천히지만 넓이로는 이 모든 것을 덮을 것처럼 보이던 세계수의 가지들이 거의 내 머리 까지 닿았을 때 내 등 뒤에 달려 있던 그림자가 마치 후드티처럼 내 머리를 뒤 덮었다.
그리고 곧 바닥이 훅하고 꺼지는 것 같은 감각과 함께 랜시아가 내 손을 붙잡고 어디론가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온몸에 기름칠을 한 것처럼 순식간에 몸이 어디론가 끌려가더니 곧 머리에서 무언가가 잡아당기는 느낌과 함께 눈앞을 가로막던 어둠이 걷혔다.
거대한 나무껍질.
결 하나하나가 거대한 건물의 한 단면을 보듯이 엄청난 크기의 나무 껍질이 쩍 하고 벌어지는 것이 보이면서 그 안에서 엄청난 풍압이 훅하고 불어나왔다.
시선을 올려다 보니 앞으로 구부러진 거대한 세계수의 모습과 함께 수많은 나뭇가지들이 부채꼴 형태로 저 앞을 가득 메운 것이 보였다.
먼지구름이 일어날 정도로 어마어마한 풍압에 세계수의 나무 껍질로 보이는 것을 붙잡고 제자리를 버텼다.
쩌적. 하고 결이 갈라지며 나무 껍질이 하나 벗겨지자 맨들맨들한 속살이 드러났는데, 그곳에 곧바로 검은 마력의 불길을 주먹에 일으켜 지져 버리듯이 갈겨 버렸다.
퍽.
[으악!]
주먹이 야들야들한 나무 속살에 박히면서 순식간에 주변을 불태우기 시작하자, 앞으로 고꾸라지듯이 숙이고 있던 세계수의 기둥이 내 쪽으로 확하고 휘면서 휘청거렸다.
덕분에 바닥을 내려쳤던 나뭇가지 또한 방향을 잃고 이리저리 휘둘러지기 시작하자, 다시금 머리 위에 그림자가 뒤덮이면서 어둠으로 시야가 가려졌다.
기묘하면서도 신기한 감각에 렌시아가 이끄는 대로 다시금 자리를 이동하고 나니 어두웠던 시야가 걷히면서 세계수의 기둥으로 보이는 곳 어딘가에 비스듬하게 몸이 매달린 것 같은 감각이 느껴졌다.
그림자가 마치 접착제처럼 질펀하게 변해 세계수의 기둥에 붙어 있는 모습.
일직선으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수가 구부정하게 서 있는 모습이다 보니 모든 시선이 기울어진 수평선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후우... 후우... 제 능력은 여기까지..."
지쳐 보이는 렌시아의 모습이 등 뒤에 그림자로 스르륵 사라지면서 원래의 내 그림자 상태로 돌아왔다.
잠시 방금 있었던 감각을 되새기면서 주변의 상황을 파악했다.
내가 서 있는 곳은 거의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은 위치였는데, 저 아래에서 세계수의 기둥이 검은 마력으로 불타는 모습과, 위로는 지금 아래의 높이만큼 올라가면 기둥의 끝으로 보이는 큰 가지가 시작되는 부분이 보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