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화 〉 제 7화 세계수.(5)
* * *
큰 가지와 작은 나뭇 가지... 라고 불러야 하나?
아주 작은 나뭇 가지가 내 몸통 정도의 굵기라서 작은 나뭇 가지라고 부르기엔 어폐가 있지만, 그런 나뭇 가지들이 마치 낙지 다리처럼 꾸물거리면서 온 몸을 뒤틀고 있는 모습을 보니 기괴했다.
척.
바닥에 달라 붙은 그림자를 이용해 마치 산악을 하듯이 45도 보다 높아 보이는 각도의 세계수를 등반하기 시작했다.
걷기보다는 뛴다는 느낌으로, 발의 뒷꿈치보다는 앞 발가락에 힘을 강하게 싣는 느낌으로 툭 툭 튀어오르듯이 세계수의 기둥을 타고 올라갔다.
그러다가 아래에서 올라오는 연기가 점점 사그라드는 느낌과 함께 발을 딛고 서 있던 세계수의 나무 껍질이 나를 떼어내려는 듯 파삭하고 벗겨지기 시작했다.
재빠르게 나무 껍질과 함께 떨어져 내리기 전에 몸을 날려 바로 옆에 있는 나무 껍질에 발을 디뎠다.
마치 암반 클라이밍을 하듯이 세계수 기둥에 붙어 있는 4평 정도 크기의 나무 껍질을 이리 저리 옮겨다니면서 세계수의 기둥을 계속해서 올라갔다.
한 5분 정도 됐을까? 중간 정도 높이에서 약 반 정도 올랐을 때, 대각선 하늘에 떠 있던 수 많은 나뭇 가지들이 나를 노리고 날아들기 시작했다.
마치 채찍처럼 휙 휘면서 내가 있는 자리를 때리는 나뭇 가지들.
아슬아슬하게 나뭇 가지들을 회피하면서 벗겨지는 나무 껍질까지 신경쓰면서 오르다 보니, 어느새 기둥의 끝으로 보이는 가지가 시작하는 부분에 도달했다.
단숨에 수 많은 가지들이 뻗어나가는 꼭대기에 도착한 나는 기울어져 있던 세계수의 몸뚱이가 천천히 곧게 바로 서는 느낌이 들었다.
점점 경사가 가파라지며, 뻗어오는 가지의 갯수가 눈 앞을 완전히 가로막을 떄 쯤.
거의 끝자락으로 보이는 울퉁불퉁한 나무 껍질을 두 손으로 붙잡아 끌어당기면서 점프해 올라갔다.
방금 전에 거의 90도에 가까워진 경사였다면 지금은 반대로 평평하다 못해 반대쪽으로 살짝 깎아내리는 경사가 있었는데, 보아하니 가지들이 시작되는 나무의 꼭대기 같았다.
[안 돼!]
"돼!"
세계수의 절박한 목소리가 등 뒤를 타고 올라왔는데, 가볍게 무시하면서 가지들이 시작되는 세계수의 중심쪽으로 미끄러지듯이 내려갔다.
독특하게 보통의 나무들과 다르게 보통은 이런 구덩이 같은 꼭대기 대신 길쭉하게 하늘을 향해 쇠꼬챙이처럼 자라나, 작은 나뭇 가지들까지 자라난 것이 보통의 나무였다면.
세계수는 마치 대나무처럼 딱 안쪽으로 살짝 모여드는 것 같은 꼭대기로 이루어져 있었다. 골프장에 보이는 홈이라고 해야하나?
그런식으로 움푹하게 들어가고, 자세히 보명 구멍 같은 것도 보였는데 그 구멍이 사람 하나는 들어갈 것 같은 공간처럼 보였다.
혹시 저쪽을 통해서 세계수 안쪽으로 파고 들 수 있나?
생각을 마무리하며 안쪽을 향해 달렸다.
[그 곳은 안 된다!]
김지호 왠지 세계수의 반응을 보니까 저기가 약점 같은데.
그러게. 나도 그 생각을 했어.
린의 말에 동감을 하면서 제자리를 한번 껑충 뛰어올라 무언가 날아오는 것을 피해냈다.
물?
등 뒤에 팟 하고 튕겨 나오는 물방울들을 보면서 구멍쪽을 바라보니, 어느새 자그마한 연못처럼 물이 고여들기 시작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구멍 바로 앞에서는 물로 만들어진 여인이 물 위로 상반신만 드러낸 채. 내쪽을 노려보고 있었고.
정령인가? 아니면 세계수의 의지인가?
[크큭. 이 곳이 너의 무덤이다!]
길게 생각할 것 없이 마치 이 것이 함정이었다는 듯이 말해오는 세계수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구멍이 있는 연못으로 달려들어갔다.
촥. 촥.
주먹크기의 어마어마한 수압이 담긴 물줄기가 총알 보다 더 빠르게 내 쪽으로 연이어 날아온다.
눈으로 피하기보다는 감각으로 피하듯이 몸을 뒤틀면서 연못으로 달려가다 보니 구멍의 크기가 생각보다 작아졌다는 느낌과 함께 연못이었던 물가의 크기가 거의 자그마한 호숫가처럼 변해 있었다.
좀 더 달려나가는 속도를 높이자, 어느새 발끝에 물이 닿기 시작했는데, 평범한 물은 아닌듯 물이 닿은 발끝이 아릿해지기 시작했다.
마력으로 만들어진 구두를 신고 있음에도 느껴지는 아릿함에 잠시 몸 안에 흘러 넘치던 검은 마력을 발 끝으로 응축시켰는데.
그것과 달리 아릿함은 사라지지 않고 내 몸에 계속해서 느껴졌다.
근데 특이한 것이 내 뉴불알에서 흘러나오는 기운과 비슷한 것이 발 끝에 느껴지던 아릿함이 점점 불타오르는 통증으로 격상하고 그것이 곧 발을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김지호.
"윽..."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신음소리에 꾹 다물고 있던 입이 벌어졌다. 동시에 이 때다 싶은건지 저 멀리 있던 물로 만들어진 여인이 수십 갈래의 물줄기를 쏘아보내기 시작했다.
통증에 휩싸인 발을 고정 시킨 상태에서 거의 매트릭스 뺨치게 몸을 틀어대며 물줄기를 피해내자, 곧 다리 위로 느껴지던 통증이 사타구니까지 올라갔다.
그런데 그 순간 사타구니까지 차오른 통증이 돌연 어디론가 빨려들어가는 느낌과 함께 시선을 아래로 내려보자, 뉴불알이 있는 쪽에서 무언가 웅웅 거리는 감각과 함께 통증이 사악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째서?
라는 의문이 들기 전에 사타구니로 날아드는 물줄기를 보고 통증이 사라진 하체를 가볍게 틀었다.
물줄기를 가볍게 스탭을 밟으면서 피하면서 물로 만들어진 여인쪽으로 다가가자, 점점 작아지는 구멍과 달리 점점 몸집이 커지는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처음에 보았을 때 나보다 조금 작은 모습의 여인의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덩치를 키운 내 모습보다도 두 배는 더 커보였다.
물론 물 위에 배꼽 위부터 이루어진 헐벗은 상체만 내놓고 있는 모습이라 물줄기 말고는 아직까지 위협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김지호 서둘러야 돼.
전과 달리 훨씬 강력해진 권능 때문인지 점점 린과 결속된 무언가가 약해지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것이 완전히 약해져버린다면 당분간 린과의 결속은 힘들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슨 변신 시간 제한도 아니고.
조금 더 신체 쪽에 권능을 치중하면서 호수가를 달려나갔다.
처음과 달리 통증도 사라진 탓인지 움직임이 더디던 것도 해결이 됐는데. 그렇게 단숨에 호수가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구멍 까지 도달하자, 눈 앞에 거대해진 여인의 모습이 다시금 눈에 들어왔다.
예정 미궁에서 에슬리가 거대화의 모습을 했을 때 정도의 크기랄까?
봉긋하게 솟아오른 거대한 가슴 한 짝이 거의 내 몸의 크기와 맘 먹는다.
이런...
거기에다가 그 거대한 몸으로 구멍 앞을 가로막은 상태.
심지어 조금 전에 물줄기가 날아오던 것이 멎어서 왜 그런건가 싶었는데, 그 물줄기들을 전부 몸에 흡수해서 크기를 키운 것 같았다.
좀 전에 우려하던 상황이 닥치자, 몸 안에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던 린과의 결속이 끊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김지호... 너무 잠깐 졸려서...
그리고 끊어지는 목소리와 함께 몸 안에서 흘러나오던 검은 마력이 뚝 끊겨버렸다.
다만 몸을 키운 권능이나 원래 육체에 남아있던 신성력과 능력으로 인하여 기세가 죽거나 하진 않았는데, 세계수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하던 검은 마력을 쓰지 못하는 건 좀 그런데.
[크크... 그 이상한 기운은 더 이상 쓰지 못하는 가 보구나.]
세계수의 중성적인 목소리가 물로 만들어진 여인의 쭉 찢어진 입가에서 흘러나왔다.
뭐라고 해야하지? 반쪽 가르마를 길게 탄 것 같은 동글동글한 얼굴에 입은 귓가에 닿을 정도로 쭉 찢어진 모습.
옛날에 빨간 마스크를 그린 그림들 중 하나를 볼 정도로 입가가 섬뜩해 보이는 린의 결속이 끊어진 후 남아있던 권능을 골고루 분포했다.
순식간에 몸의 크기를 키운 탓인지 눈높이가 올라가고, 커진 만큼 둔해진 것 같은 온 몸에 유연함이 깃들었다.
마력을 일으켜서 마나로 이루어진 검을 만들어낸 후, 그것을 한 손에 쥐고 다른 손에는 임시로 마력으로 만들어진 책 뭉치를 쥐었다.
책은 푸른색, 검은 회색빛의 마나. 서로 다른 마나들이 충돌하지 않고 내 몸에서 뿜어져 나왔는데, 뿜어져 나오는 양에 비해 성능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을 다 더해도 아까의 린과 결속하여 만들어낸 검은 마력에 비하지 않을 정도.
애초에 반신은 내 바로 아래 격인 준신의 격을 불태워 고통을 줄 정도로 힘이었다.
지금 내 반신의 능력을 솔직히 말해서 전투에 어울리는 권능은 아니었고, 보조를 해주는 정도의 능력.
지금 준신인 세계수를 상대로... 글쎄?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금은 상태는 판단하기 어려웠다.
아까 린 처럼 또 누군가와 결속을 한다면 모를까. 지금으로써는 어떻게든 내 순수한 육체의 능력으로만 돌파해야 할 지경.
순식간에 거대한 기둥 같은 두 팔이 괴물의 입처럼 쩍 하고 늘어나더니 마치 벌레를 잡듯이 합장하는 자세로 내게 닥쳐온다.
재빠르게 위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그것이 정답이라는 듯이 내 허벅지까지 차올랐던 물이 나를 붙잡으려는 듯이 쭉 늘어나면서 달라 붙었고, 동시에 합장하듯이 퍽 하고 부딪힌 두 팔과 손은 날카로운 물줄기가 되어 사방팔방으로 튀었다.
좀 전에 쏘던 물총같은 것이 아니라 날카로운 칼날 형태로 폭탄이 터지듯이 사방 팔방으로 튀어 오르는 물 줄기.
순식간에 하체를 슬라임처럼 액체화 시키자, 발에 닿은 물줄기가 액체로 변한 내 발을 난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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