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마왕 간부에게 소환당해 착취당하고 있다-212화 (212/220)

〈 212화 〉 제 7화 세계수.(15)

* * *

잠시 내 포켓 주머니에서 만드라고라가 된 세계수를 바라보다가, 이내 생각을 정리하고는 주변을 살폈다.

정령들이 힘써 주었는지 세계수가 사라지고 양지바른 땅이 된 바닥 위에 겹치지 않도록 정렬된 채 누워 있는 엘프들.

그리고 내가 방금 땅바닥에 눕혀 놓은 렌시아가 보였다.

세계수가 나타난 후 세계수의 범위 밖으로 둘러싸여 있던 구름 같은 것이 사라지면서 서서히 주변 배경이 물감에 젖은 수채화처럼 일그러지더니 이내 세계수가 나타나기 이전에 보았던 블랙마켓의 배경으로 돌아왔다.

그것도 엘프들이 운영하던 건물들 보다 조금 더 안쪽 부근.

"김지호님."

그리고 그 건물들이 보이는 곳에서 밀레느가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어느새 정신을 차린 것인지 곁에는 녹색의 빛이 찬란하게 빛나는 정령 또한 있었는데, 처음 만났을 때보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더 커진 것 같았다.

"어떻게... 이런."

아마도 밀레느 같은 경우는 처음에 기절한 탓인지 세계수의 조종을 받은 엘프와 달리 쌩쌩해 보였는데 주위에 쓰러져 있는 엘프들을 발견하고선 다급하게 엘프의 생사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나 또한 곁에 누워 있는 렌시아의 상태를 확인하다가 이내 상태를 회복하는 듯 조금씩 꿈틀대는 렌시아의 모습과 동시에 자기 그림자에 먹혀들듯이 땅바닥으로 가라앉는 모습을 동시에 확인했다.

"위대하신 분이시여... 다시 만나기를..."

몸을 회복하기 위해서 물러나는 것같이 힘겹게 말을 꺼내고 죽은 듯이 눈을 감고 사라지는 모습이 뭔가 독특했지만, 일단 블랙마켓의 주인 중 하나와 접점을 만들었으니 나머지는 어떻게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 해가 슬슬 뜨기도하고 말이지.

얼마나 오래 싸웠는지, 주변에 널브러져 있던 엘프들 중 한 명의 옷에서 핸드폰이 빠져나와 있는 것을 확인하고선 다가가서 핸드폰을 툭 쳤다.

잠겨 있는 화면과 동시에 새벽 4시 20분을 가리키는 숫자.

뭐, 반신에 오르면서 정상적인 수면과는 좀 동떨어졌지만, 그렇다고 시간 개념까지 말아먹은 것은 아니다.

뭔가 정신적으로 많이 피곤하긴 한데.

"김지호님. 어떻게 된 건가요?"

밀레느가 붉은색 실크로 된 차이나 드레스를 입은 상태로 내게 다가오며 물었다.

근데 엘프가 차이나 드레스를 입으니까 뭔가 좀 독특하긴 한데. 차라리 파티용 드레스면 더 어울릴 것 같기도하고.

감상은 여기까지 하고, 다가오는 밀레느를 보며 잠시 내면의 세계로 들어갔다.

정상으로 돌아온 저택의 모습과 함께 한가운데에 생긴 어마어마한 큰 사이즈 침대 위에 샤르와 린이 알몸 상태로 누워 있었다.

뭔가 둘이 이야기하듯이 재잘되는 것이 느껴졌는데, 살짝 옅게 내면의 세계로 들어가서인지 유령상태처럼 변한 몸을 이용해 저택 주변 곳곳을 살폈다.

린이 있던 방을 제외하고 모든 방의 문은 닫혀 있었고, 린의 방 안에서는 검은 마력이 살짝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그 안을 보려하니 뭔가 검은 안개에 가려져 있어 보이지 않았다.

들어가려 하니까 뭔가 솜뭉치 같은 것이 나를 밀어내는 느낌이 들었다.

완전히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조심스럽게 밀어낸다는 느낌. 린의 방을 들어가는 대신에 다시 저택 2층 복도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중앙 계단 쪽으로 내려왔다.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운 크기가 다양한 초상화들.

걔 중 불이 들어와 있는 것으로는 린의 초상화와 내 슬라임 딸들, 그리고 새로이 생긴 것으로 보인 밀레느의 자그마한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일단 초상화의 크기가 나와의 관계도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것과 별개로 능력도 관련이 있는 것인지 딱 보아도 미궁에서 보았던 아가씨들보다 훨씬 작고 외곽에 위치한 밀레느의 초상화를 보면 대충 느낌이 왔다.

그리고 새로이 린 옆에 세라자드 옆을 밀어내고 생겨난 세계수의 샤르.

근데 특이한 것이 세계수의 모습 대신에 마지막으로 섹스했던 거대 만드라고라 같던 몸의 상체가 그려져 있었다.

불이 켜진 것으로 보아 활성화도 되어 있고, 그 밑으로는 거의 좁쌀만해 보이는 크기의 수많은 정령들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었는데 반딧불이처럼 보이던 외형과 달리 지금은 하나하나 자그마한 요정 같은 몸체 전신이 그려져 있었다.

속성별로 정리한 것인지 앞에서부터 빨강, 노랑, 파랑 식으로 정렬이 쫘악 되어 있었는데. 뭐, 그리 중요해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걔 중 유독 큰 노란색의 정령이 있었는데, 아마 이 녀석이 내 똘똘이 안에 세계수의 정수를 박아 넣은 녀석 같았다.

스윽. 눈을 떠보니.

어느새 눈앞까지 다가온 밀레느가 내 앞에 마주 서서 조심스럽게 몸을 꼬고 있었다.

"김지호님?"

내가 깊은 생각에 잠긴 것이라 생각했는지 조심스럽게 말해 오는 밀레느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래."

"이게 어떻게 된 건가요?"

"그게 말이지?"

밀레느를 포함해서 엘프들 모두가 알아야 할 사실이고 이제 앞으로 자기 처지가 어떻게 변할 것이라고 알려 두어야 했기 때문에 나는 세계수에 대한 진실을 밀레느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시간으로 따지면 약 5분 정도 될까?

세계수에 대한 이야기와 엘프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세계수가 어떻게 되었고. 지금 엘프들이 이렇게 되었다는 이야기까지.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데,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들었지만 영민한 밀레느는 내 말을 찰떡 같이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저희가 세계수를 관리한다고 생각했는데. 그저 이용만 당하고 있던걸군요."

씁쓸한 표정을 짓는 밀레느를 보면서 서서히 블랙마켓에서 떠나야 할 시간이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첫 번째 거리 밖에 못 왔지만. 나머지는 금일 저녁에 다시 오면 되겠지.

생각을 정리하며 서서히 정신을 차리기 시작하는 엘프들을 바라보았다.

다양한 외모와 길쭉 길쭉한 체형을 가진 엘프들이 비몽사몽 한 얼굴로 깨기 시작하자, 마치 연예인 화보 같은 모습이곳곳에서 출현하기 시작했다.

역시 엘프라고 해야 할까?

눈을 뜨며 인상을 찌푸린 모습조차 아름답다.

점차 눈을 뜨는 엘프의 시선이 내게 모인다. 이건 또 별다른 의미로 부담스러운데.

그러다가 돌연 자기 품에 느껴지는 정령의 기운에 화들짝 놀라면서 자기 정령과 교감하는 모습이 보인다.

저 정령들 전부...

내 똘똘이에서 나왔는데 말이야.

조금 뭐랄까? 막장 소설 같은 느낌이 드는 상황이지만, 이게 현실이 되고 나니까 뭐랄까? 하하...

전혀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도 못 했는데 말이야.

쩝.

어느새 몸 안에 돌고 돌기 시작하는 신성력을 바탕으로 몸 안을 살펴보았다.

대부분의 장기는 멀쩡하고, 신성력이나 마나, 마력, 권능 또한 별 변화가 없다. 다만 이것들과 다르게 리드미컬 하게 바뀐 곳이 있다면.

역시 불알 쪽이라고 할까?

그것도 뉴 불알. 즉 세계수의 씨앗이 있는 곳에서 정령이 생산되는 것이 이제 확실하게 느껴졌다.

그것도 내 정자를 이용해서 정령을 만드는데, 처음과 다르게 내가 원하지 않으면 정자를 통해 정령을 더 이상 만들지 않았다.

그리고 세계수의 정수가 들어간 반대쪽 불알에서는 내 근원과 또 다른 신성력이 생성되는 것이 느껴졌다.

뭐라고 해야 하나?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신성력이 지금까지 나와 관계한 모든 아가씨들과의 관계에서 생성된다면, 이 신성력은 말 그대로 미묘하게 엘프들에게서 끌어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 신성력은 끌어쓴다기보다는 관계 그 자체. 즉 이미 한계가 정해져 있고, 그것이 빠르게 회복되는 것이라면.

세계수의 신성력은 믿음 혹은 존재로써 한계가 없고, 회복이 느렸다.

신성력의 근원이 달라서 그런 걸까?

내 신성력의 근원이 가부장이라는 권능 즉 가족이라는 근원에서 비롯된다고 한다면, 세계수의 신성력은 말 그대로 신앙에서 비롯되는 것 같았다.

잠시 내 상태를 점검하는 동안 어느새 정령들과의 교감을 마쳤는지 기절 상태에서 깨어난 엘프들이 나를 기준으로 빙 둘러싸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곧 밀레느가 그녀들에게 다가가 뭐라고 이야기해주자, 곧 엘프들이 마치 한 몸처럼 일제히 한쪽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중세 시대 영화에서나 볼 법만 기사들의 충성맹세 자세라고 해야 하나?

이걸 실제로 눈앞에서 보니까 뭔가 기분이 묘하다.

주변을 스윽 훑어보는데, 고개를 들고 나를 우러러보는 엘프의 시선이 따갑다.

"김지호님."

엘프의 가장 선두. 그러니까 내 가장 가까운 앞에 위치한 밀레느도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자세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무슨 말이 나올지 어떤 전개가 될지 대충은 예상은 갔으나, 혹시 모르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내가 갑자기 세계수를 만나서 이런 전개가 될 줄 누가 알았나

"말해."

내 말에 밀레느가 두 손을 모아 자그마한 손바가지를 만들어 내게 내밀었다.

"반신이신 당신께 저희들의 모든 것을 바칩니다."

그리고 동시에 모든 엘프들이 밀레느를 따라 똑같은 자세를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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