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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마왕 간부에게 소환당해 착취당하고 있다-215화 (215/220)

〈 215화 〉 제 8화. 헌터.(3)

* * *

어마어하게 넓어진 저택 로비 한가운데에 제일 먼저 맏언니인 하나를 소환했다.

순간 이동으로 몸이 이동한 것에 잠시 놀라는 하나가 주변을 둘러보다가 나를 보고 씨익 웃었다.

"아빠. 대단해요."

어느새 동요를 가라앉힌 모습이 조금 신기했다.

헌터라는 직업을 갖고 일한 것이 제법 돼서 그럴까? 아니면 인간이 아닌 슬라임이기 때문에 그런 걸까?

아니지 반은 슬라임이지만 반은 인간이다.

물론 생태적으로 보면 슬라임이지만, 하나의 경우에는 생태적으로 슬라임으로 보기에도 좀 뭐 했다.

도플갱어의 특성을 이용해 완전히 인간으로 의태했으니까.

아마 지금 상처를 입으면 인간처럼 상처가 생기고 피가 날 것이다.

"시작해볼까?"

내 말에 다시금 싱긋 웃는 하나.

모르는 남성이 보면 치명적일 정도로 순수해 보이는 미소였지만, 글쎄. 상대가 딸이다 보니 그냥 귀엽다.

까닥. 까닥. 손가락을 흔들자, 하나가 두 주먹에 마나를 불어넣는 모습이 보였다.

마력의 성질은 불과 얼음.

전과 다르게 마나의 색깔만 보고도 마력의 성질을 파악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오른 탓일까?

누구의 권능 가져올까 고민하다가, 심상 세계에 걸려 있는 내 딸들의 초상화가 돌연 떠올랐다.

잠깐만 혹시 가져올 수 있나?

하고 권능을 살짝 발현시켜보자 하나의 능력이 몸 안에 새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근데 뭐랄까? 너무나 초라한데?

초기에 아이린의 능력을 가져 왔을 때보다도 훨씬 약한 마나의 양이 내 안에서 제한되는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뭐랄까? 지금까지 내 마누라들에게 권능을 적용 했을 때는 순수하게 새로이 생겨나는 능력과 추가로 느껴지는 힘이 있었는데.

이번엔 반대로 내 힘이 제한 되면서 능력들의 한계가 느껴지는 느낌?

덕분에 지금 하나의 상태를 정확히 알 수 있게 되었다.

마나는 처음 아이린을 처음 만났을 때의 반 정도. 물의 성질은 라미아들을 처음 만났을 때의 물의 성질보다 정제되지 못했고.

불쪽은 경험이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이 쪽도 거친 느낌이 상당했다.

마나를 마력으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마나가 샌다고 해야 하나?

그 감각을 정확히 기억하고 권능을 해제했다.

그러고는 하나가 공격할 수 있게 끔 내 그림자를 이용해 내 앞에 나를 닮은 그림자 인형을 만들어냈다.

렌시아의 검은 마력을 응용해 만들어 낸 건데 제법 쓸 만해 보였다.

내가 움직이는 대로 정확히 움직이는 그림자 인형. 심지어 크기도 나와 비슷하게 만들어진 탓인지 제법 위협적으로 보였다.

휙. 휙. 섀도우 복싱하듯이 상상 속으로 움직여보니 그대로 움직임을 따라는 그림자 인형.

오호. 이건 나중에 제법 쓸 일이 있을 것 같은 능력인데?

"아빠. 시작해도 돼요?"

하나의 질문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곧 하나가 두 손에 모인 마력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두 손이 불과 얼음에 삼켜져 거대한 글로브가 되었다. 저 상태로 어떻게 마법을 쓰는 걸까? 하는 의문이 끝나기 전에 하나의 몸이 순간 어둠에 감싸듯이 흩어졌다.

마치 검은 먹물을 허공에 흩날리듯이 몸을 감추었던 하나의 몸이 곧 먹물 같은 검은 궤적을 남기며, 궤적 끝에 지금 보다 훨씬 오른쪽에서 나타나면서, 그대로 공중에 살짝 뜬 상태에서 두 손에 머금은 마력을 던지듯이 터뜨렸다.

마치 눈덩이 던지듯이 얼음과 불 속성을 띈 마력 덩어리가 그림자 인형을 향해 날아왔다.

가볍게 두 다리를 놀려 하나가 던진 마법들을 피해내자, 다시금 하나의 몸이 검은 먹물 같은 것에 휩싸이며 사라졌다.

마치 그 모습이 그림자를 매개체로 이동해대던 렌시아와도 비슷했지만, 원리나 성질은 전혀 달랐다.

렌시아의 능력이 그림자 끼리 이동하는 터널링 같은 기술이라면, 하나가 사용하는 기술은 카모플라쥬, 즉 은신술에 가까운 마력의 기술이었다.

그것도 자세히 보니 바람의 마력이 느껴지는 것이 지금 손에 사용하는 얼음과 불을 포함한다면 세 가지의 속성의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어째서 저렇게 마법을 사용하는걸까?

하는 의문이 들기 전에 다시금 그림자 인형을 움직였다.

헌터라는 직업이 생각보다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하는 직업일까? 저래서 저런 스타일의 싸움을 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길게 듦과 동시에 그림자 인형을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마법을 회피하던 것과 다르게 이번에는 요네에게서 배웠던 그 움직임을 떠올리면서 재빠르게 접근했다.

좌 우로 뱀이 몸을 흔들 듯이 스탭을 좌 우로 밟으면서 하나의 마법을 피하다 보니 어느새 거의 하나에게 근접해 있었다.

순간 하나의 손에 머물던 마력이 형태를 변형하면서 창 처럼 변했다.

그리고 그림자 인형을 꿰뚫려는 것처럼 바람의 마력을 이용해 투창했다.

평범한 인간의 육안이라면 도저히 보고 피 할 수 없을 것 같은 공격이었지만, 나는 하나의 마력이 변화하는 형태까지 볼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로운 상태였다.

물론 그것을 그림자 인형을 이용해 따라 하게 하는 것은 어려웠지만.

­퍽.­

심장을 노리고 날아간 얼음의 창이 그림자 인형의 어깨를 꿰뚫는다. 물론 그 상태 그대로 그림자 인형의 주먹이 하나의 명치를 향해 내 뻗는다.

순간적으로 살짝 당황한 하나가 재빠르게 몸을 허공에 감추며 묵빛의 선을 남기며, 옆자리로 도망친다.

말했지만 순간 이동이 아닌 카모플라쥬 즉. 은신 같이 몸을 빠르게 움직이는 거라 그림자 인형을 그 선을 따라 이동시켰다.

그리고 곧 나타나는 하나를 향해 다시금 주먹을 날렸다.

그러자 하나가 이번에는 합장을 하듯이 두 손을 짝하고 부딪치자, 강렬한 냉기의 파동이 생기면서 그림자 인형이 뒤로 쓰윽 밀려났다.

그다음 곧바로 그 자리 위로 피어나는 화염의 회오리.

크기가 회오리만큼 엄청 큰 것은 아니었지만 거의 1평 크기에 달할 정도로 컸기 때문에 회오리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그림자 인형을 움직이자, 그새 하나와의 거리가 어느 정도 생겨 버렸다.

그리고 다시금 시작되는 하나의 마력 투척.

가까스로 붙을 때에는 방금 처럼 다시 냉기로 그림자 인형을 밀어내고 회오리로 간격을 벌리는 식의 전투가 반복 됐다.

정형화 되어 있지만 제밥 공방일체가 잘 짜여져 있는 마법의 조합.

누군가에게 배웠다기보다 알아서 터득한 것처럼 보이는 조합에다가, 내가 아무리 전투에 거의 문외한이라고 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능숙하게 사용한다.

"일단 여기까지."

그림자 인형을 멈추자 하나가 숨을 고르면서 뭔가 기대하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고생했어. 하나야."

내 말에 싱긋 웃는 하나의 모습. 그리고 아직 마나가 많이 남는 것인지 차분하게 주변의 마력을 갈무리하는 모습이 보였다.

하나의 멀리 저편에서 잔뜩 안달 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몸을 풀고 있는 보미와 반대로 아무 생각 없이 만드라고라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에실리의 모습이 보였다.

근데... 응? 자세히 보니 만드라고라가 마치 영혼이 나간 것같이 축 늘어져 있는 것이, 순간 나와 하나의 사이. 즉 로비의 정중앙 아래의 바닥이 깨지면서 튤립 봉오리가 쑤욱 하고 솟아 나왔다.

그리고 그 튤립 봉오리가 화사하게 만개하면서 그 안에서 거대 만드라고라인 샤르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흠."

그리고 부끄럽다는 듯이 기침을 한번 하더니 내 쪽을 향해 짧은 다리를 도도도 하며 걸어왔다.

뭔가 할 말이 많은 것 같은 표정이었지만, 내가 말없이 무표정하게 서 있자, 살짝 안달 난 표정의 샤르가 발을 동동 구르다가 내게 바짝 다가와 귓속말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지금 가능할까?"

하면서 분위기를 읽는 것인지 하나와 아이들 사이에 나를 두고 곁눈질했다.

린쪽은 이제 대 놓고 팔짱을 끼고 심통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상태.

심지어 그 옆에는 내가 초대 하지 않은 이질적인 힘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설마 마신인가? 검은 화롱불같은 것이 동동 떠다니는데.

신성력이 아니면 별다른 위해를 가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가지가지하네.

물론 마신이 내 심상 세계에, 그것도 신성력이 충만한 상태인데도 자유롭게 드나드는 것 같은 상태가 마음에 안 들지만,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쫓아내기에는 조금 그랬다.

원하지는 않았지만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은 것도 있고 궁금하고 물어볼 것도 많았다.

다시금 시선을 샤르 쪽으로 돌리자 짜리몽땅한 만드라고라의 체형인 샤르가 보였다.

아까 전 세계수와의 격전 당시보다 훨씬 살이 통통하게 오른 만드라고라의 체형인 샤르. 심지어 마른 나무 같던 몸도 무말랭이처럼 말랑말랑하게 생긴 하얀색 풀뿌리가 되어 있었다.

잠깐.

확실히 자세히 보니까 현재 에실리의 두 손에 쥐어진 만드라고라와 거의 흡사한 모습.

아라아라 때를 떠올려 보자면 그 아이인 그아라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하나?

살짝 심상 세계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온 다음 거실에 있던 벽시계를 확인해 보았다.

심상 세계에서는 거의 20분 정도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현실 세계에서는 약 5분도 지나지 않은 시간.

다시금 심상 세계로 돌아와 곧바로 샤르를 보고 말했다.

"일단 애들부터 봐주고 나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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