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자, 잠깐만.”
이물감을 감지한 몸이 빠르게 조여들었다. 때늦은 망설임에 다급히 손을 뻗었으나 밀어낼 틈도 없이 손이 낚아채이고 말았다.
“잠깐은 무슨.”
단단하게 깍지 낀 손 마디마디에서 거스를 수 없는 단호함이 느껴졌다. 잡은 손을 시트 위로 밀어 잡은 그가 그길로 곧장 허리를 밀쳐 올렸다.
“잠!”
낯선 침입에 몸이 벌어지는 감각이 지나치게 생생했다.
10년째 타인을 받아낸 적 없는 몸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아, 흡···.”
생경한 고통에 울음 같은 신음이 목젖을 긁고 터졌다.
대체 이전엔 어떻게 받아냈을까 싶은 부피감에 다경은 명치까지 숨이 차올랐다. 그와 깍지 낀 손끝이 하얗게 질렸다.
흐읏, 가쁜 신음을 터트린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온몸이 한계까지 열리는 느낌에 다경이 아음, 안 돼 숨넘어갈 것처럼 끅끅댔다.
‘아직 반도 못 들어갔는데.’
나지막이 욕설을 삼킨 그가 뒤늦게 다경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보곤 난처한 듯 미간을 일그러트렸다.
“그간 만난 놈들이 어땠길래 고작 이 정도로 울어.”
그간 만난 놈들이 없었으니까 그러지. 라는 말이 고통스러운 신음에 묻혀 목 아래서 찰랑거렸다.
미치겠네, 하며 한숨을 뱉은 그가 헝클어진 머리칼을 신경질적으로 쓸어넘겼다. 곤혹스러운 듯 구겨진 이마가 땀으로 젖어 있었다.
이제라도 그만하자고 할까. 그를 올려다보는 물기 어린 눈에 때늦은 갈등이 넘실댔다.
실은 10년 전 그날 이후 네가 처음이라고. 그러니까 이 이상은 도저히 무리라고.
천박한 여자라도 자처하겠다 했던 그 다짐이 무색하게도, 익숙지 못한 감각에 몸부림치며 갈등을 반복하던 때였다.
“조금만 참아봐.”
“···!”
별안간 홱 잡아 올려진 왼쪽 다리가 도하의 어깨 위로 걸쳐졌다.
아! 비명 같은 소릴 터트린 입이 크게 벌어졌다. 버거운 이물감에 아랫배가 경련을 일으키듯 저려왔다.
아무 언어도 뱉을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시작부터 눈가에 맺혀 있던 눈물이 관자놀이를 긁고 툭 시트로 떨어졌다.
“하··· 돌겠네.”
바들거리는 가느다란 몸을 보며 도하가 거칠게 읊조렸다.
“눈 떠, 윤다경.”
고통을 감내하느라 파르르 떠는 눈가로 도하의 손이 닿았다.
“아직도 아파?”
아프지 그럼 안 아프겠니, 이 나쁜 놈아. 다경이 차마 말은 못 하고 하릴없이 눈물만 뚝뚝 떨구었다.
“뭐야, 너 진짜로 울어?”
이제 와 멈출 수는 없다며 다짜고짜 끝까지 몰아붙일 땐 언제고, 도하가 당황한 낯으로 그녀를 굽어본다.
“항상 이렇게 아팠어? 아니면 나랑만··· 하, 씨···.”
뭔가 말을 하려다 말곤 그가 자책하듯 욕설을 삼켰다.
그만둘 거 아니면 그냥 하라고. 참다못해 입술을 달싹이려던 찰나였다.
“어떻게 해줄까.”
“···뭐?”
“내가 어떻게 하면 좀 덜 아프겠냐고, 너.”
어떻게 하면 덜 아프겠냐니. 고통도 잊을 만큼 황당한 질문이라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술만 빵긋거렸다.
“그···게, 무슨···.”
“말해봐, 네가 뭘 좋아하는지.”
뭉근하고 사려 깊은 눈이 진득하게 동공을 파고들었다. 그러면서 열기 어린 손으로 바들대는 아랫배를 느리게 문질렀다.
마치 아픈 배를 달래주는 듯한 손길에 다경은 가슴이 둥둥 뛰었다. 힘이 바짝 들어간 발끝이 깃털이라도 스친 것처럼 간질댄다.
“좋아하는 체위, 뭐 그런 거 있잖아.”
그제야 도하가 지금 뭘 묻고 있는지 깨달은 얼굴이 뒤늦게 붉어졌다.
그러니까 도하는 지금, 저에게 뭘 어떻게 해줘야 느끼는지를 묻고 있었다.
‘제대로 된 경험도 없는데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귀 끝까지 화르륵 열이 오르며 심장이 정신없이 쿵쾅거렸다. 쓸데없는 부분에서 다정함을 보이는 그 의외성이 당혹스럽고도 가슴 떨렸다.
“너, 넌 무슨 그런걸···.”
차마, 해보지 않아 모른다는 말은 못 하고 어설피 대꾸를 뱉자 배꼽 아래에 머물던 손이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여기였나? 네가 느낀 데가.”
“···뭐?”
“너 아까 여길 제일 좋아하던데.”
손이 닿자마자 이는 감각에 다경은 안 그래도 빨갛던 얼굴이 용암이라도 뒤집어쓴 듯 달아오르고 말았다.
“···내, 내가 언제!”
하지 말라고 다급히 그의 팔을 붙잡았으나 소용없는 반항이었다.
“하··· 예쁜 소리 내는 거 보니까 여기가 맞나 보네.”
확신을 얻은 도하에게서 만족스러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고통에 가까운 쾌감에 허리 아래가 발발 떨렸다.
아니라고 신속한 부정의 말을 뱉었으나 확신하고 달려드는 짐승의 귀에 그 말이 진정성 있게 닿을 리 만무했다.
나른한 웃음을 지은 그가 멈춰 있던 몸을 짐승처럼 치대기 시작했다. 새하얀 발끝이 발작처럼 오므라들었다 펴진다.
치고 빠질 때마다 들려오는 소리에 귓속이 다 젖어드는 기분이었다.
“이상, 해···.”
“이상한 게 아니라 좋은 거겠지.”
“흣.”
“지금 나도 몸이 이상하다 싶게 좋아 죽겠거든.”
둥글게 허리를 굴리던 그가 다시 퍽 소리가 나도록 깊게 몸을 겹쳤다.
“원래 이렇게 다 좋은 건지, 네 몸이라 특별히 좋아 죽겠는 건지···.”
“아!”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너 하나뿐이라, 알 순 없지만.”
고백하듯 읊조린 그가 이윽고 다경의 입술을 집어삼켰다. 두툼한 이물감이 입 안을 가득 채웠다.
시트 위로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어지럽게 물결쳤다. 고통을 느낀 적은 있었나 싶게 피부를 타고 흐른 저릿함이 뇌마저 흐물흐물 녹이는 것 같다.
이 뒤로 닥칠 뒷감당이 두려워질 만큼, 분에 넘치는 쾌감.
“이름 불러.”
정신없이 다경을 몰아세우며 그가 요구했다.
집착 어린 손아귀로 흔들리는 몸을 움켜쥐곤 낮게 으르렁댔다.
“제대로 부를 때까지 안 끝낼 거야.”
원하는 바를 얻기 전까진 이 행위를 끝내지 않을 작정인 듯, 도하가 움직임을 조절해가며 그녀를 채근했다.
“제발···.”
빠르게 움직이다가도 그녀가 신음을 뱉으면 어느 순간 느려지는 몸짓에 다경은 애가 탔다. 희롱하듯 감질나는 움직임이 혀를 바짝 마르게 했다.
눈앞까지 다가왔다가 스러지는 쾌감의 잔상은 고통에 가까웠다. 닿을 듯 닿지 않는 절정이 이성마저 좀 먹는 듯했다.
“불러, 빨리.”
대체 어쩌자고 넌 이렇게나 날 몰아붙이는 건지 모르겠다.
“···도, 하···.”
더는 버티지 못한 입 밖으로 결국 그의 이름이 새어 나오고 말았다.
“도하야···.”
고작 이름 부르는 것 따위가 뭐 그리 힘들어서, 참고 또 참았던 두 글자가 울음처럼 입 밖으로 터져 흘렀다.
“다시.”
“···도하··· 야. 흣.”
쾌감 따윈 사치라던 합리화는 어느샌가 머릿속에서 휘발된 지 오래였다.
“도하, 권도하···. 제발.”
분명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해 택한 행위일 뿐이었는데, 어쩌다 이 지경이 돼버린 건지.
“그 밤도 이랬으면서.”
애원하듯 반복되는 음성에 줄곧 여유로운 척 굴던 단단한 낯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듯이 내 이름 불러놓고선.”
“아!”
“화대였다고, 하룻밤 대가였다고. 씹!”
거칠게 읊조린 그가 조절하고 있던 속도에 가속을 붙였다. 강인한 손에 붙잡혀 도망갈 곳을 잃은 몸이 부서질 것처럼 흔들렸다.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마찰음도 더는 수치심을 자극하지 못했다. 척추가 타들어 가는 듯한 쾌감에 이성마저 완전히 날아갔다.
“질리도록 먹을 거야, 너.”
과연, 이걸 끝으로 정말 홀가분해질 순 있는 걸까.
“더는 미련 따위 안 남게 원 없이 먹어 치울 거야.”
열 번의 밤이 날 자유롭게 만들어주긴 할까.
“그러니까 적당히 대주고 튈 생각은 일찌감치 버려.”
“아, 아!”
내가···. 분수도 모르고 너를 받으며 쾌감에 울부짖는 내가, 과연 자유를 누릴 주제나 되는 걸까.
“두 번 다신 그때처럼 병신 짓 안 해, 나.”
왈칵 솟구치는 감정과 함께 아뜩한 쾌감이 뒷머리를 덮친 찰나, 도하에게 집어삼켜진 입 안에서 막힌 울음이 터졌다. 그를 부여잡은 몸이 와락 조여들었다.
깊이 파묻은 채 움직임을 멈춘 그에게서도 거친 신음이 새어 나왔다.
황홀해서 더 고통 어린, 10년 만의 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