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두 분이 나눈 얘기가 대체 무슨 뜻이냐구요···!”
우레 같은 포효가 평화롭던 집안 공기를 산산조각 내고 말았다.
“도하··· 네가 이 시간에, 여긴 왜···.”
연수가 파리한 얼굴로 문 앞에 선 제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서릿발 같은 동공이 싸늘하게 제 어머니를 응시한다.
집까지 오는 내내, 김주미가 지껄인 그 말들이 모두 거짓이길 바랐다.
불길하게 피어오르는 의구심들을 짓누르듯, 절박한 마음으로 엑셀러레이터를 밟고 여기까지 왔다.
제발 내 어머니만은 아니게 해달라고.
그래선 안 된다고.
네 불행의 근원이 나였다는 사실만은 제발 아니어야 한다고, 그렇게 빌고 또 빌면서 들어선 집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어!’
계단에 막 발을 올린 순간, 어지럽게 울려퍼진 고함과 함께 애써 단전 아래까지 눌러놓았던 불안이 스멀스멀 등골을 타고 올라왔다.
‘그 불쌍한 애한테 어떻게!’
설마, 삼촌이 말하는 저 불쌍한 애가 다경인 아니겠지.
전화를 받지 않던 삼촌이, 이 시간에 집으로 들어와 어머니에게 따져 묻는 이유가 나와 같은 건 아니겠지.
끝의 끝까지 부정을 하며 비밀의 문에 다가서듯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닐 거다. 그것만은 아닐 거야.
내 어머니가, 다른 누구도 아닌··· 널 지켜주겠다 자신했던 날 낳은 내 어머니가 너에게 그런 짓을 해선 안 되는데···.
‘남자들 피빨아 먹으면서 살던 여자 딸이야.’
찌릿― 날카롭게 뇌리를 긋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깨질 것처럼 머리가 욱신거렸다.
‘내 아들 옆에 기생하면서 발목 잡을 게 뻔한데, 그럼 그냥 보고만 있어야 했니?’
공간 안에 존재하는 모든 소음이 사라지고, 어머니가 뱉은 말들만이 어지럽게 귓속을 휘돌았다.
“도하야.”
차마 미동조차 못 하고 있는 어머니 대신 삼촌인 정운이 도하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탁, 도하가 더는 다가오지 말라는 듯 오른손을 들어 정운과의 거리를 방어했다.
“도, 도하···.”
“어머니셨어요?”
가까스로 내뱉은 어머니의 목소리를 가로막으며, 도하가 감정이 비치지 않는 냉혹한 눈으로 다시 정면을 응시했다.
“정말 어머니께서 그러신 거예요?”
차마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는 제 모친을 향해 그가 또박또박, 목소리를 내뱉었다.
“10년 전···.”
“···도하야, 그게.”
“걔네 모녀 그렇게 사라진 게 정말 모두, 어머니가 사람들을 움직여서 만든 상황들이 맞아요?”
입 밖으로 뱉으면서도 도무지 말이 되질 않아서, 도하가 피식- 실소를 덧붙였다.
분명 본인 입으로 인정한 부분들이 맞는데, 그럼에도 현실감이 없어 자꾸만 헛웃음이 터졌다.
“그, 그런 게 아니라 도하야.”
웃고 있지만, 그래서 더 스산하게 보이는 입매가 연수의 가슴 끝을 파르르 흔든다.
“도하야. 진정해.”
어느 틈에 바로 곁으로 다가온 정운이 도하의 마음을 다독이듯 그의 팔을 붙잡았다.
“일단 진정하고, 나가서 나랑 얘기 좀.”
“이거 놔, 삼촌.”
저를 잡아끄는 삼촌의 손을 싸늘하게 내려다보며 그가 나직이 읊조렸다.
“도하야. 너 지금 당혹스럽고 화나는 마음인 건 나도 잘 알겠는데···.”
“놓으라고, 이거.”
한층 더 섬뜩하게 가라앉은 저음이 응접실 안을 채운 공기를 무겁게 뒤흔들었다.
정운이 움찔 몸을 뒤로 빼면서도, 차마 도하를 완전히 놓진 못한 그때였다.
“···야, 인마. 네 엄마한테도 뭔가 이유가.”
“놓으라잖아, 내가···!”
붙잡은 팔을 뿌리친 손이 돌연 탁자 위에 있던 화병을 집어 들어 그 위로 콱! 내리쳐버렸다.
쨍그랑···―! 날카롭게 흩어진 파편과 함께 엉망이 된 탁자 위로 뚝― 뚝, 핏방울이 붉게 떨어졌다.
“도하야아!!!!!”
시리게 푸른 수국 위로 손바닥을 찢고 흘러나온 피가 붉고 짙게 번져갔다. 자지러질 듯 놀란 연수가 다급히 다가와 도하의 손을 붙잡았다.
“어, 어떡해··· 이 피 좀 봐.”
깊게 찢겨 피가 낭자한 손 위로 연수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어떡하면 좋아···. 안성댁! 안성댁 빨리 구급함 좀!!”
탁! 다친 아들의 손을 붙잡은 채 밖을 향해 외치는 어머니의 손을, 도하가 야멸치게 떨쳐내버렸다. 소름이 돋도록 매정한 손길에 연수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아들을 올려다보았다.
“만족스러우셨다면서요.”
뚝뚝, 바닥을 적시는 핏물처럼 핏발 선 눈으로 그녀를 돌아보며 도하가 무감하게 물었다.
“하루하루 시들시들해져 가는 제 모습 보면서, 그래도 그런 애비 모를 애한테 발목 잡히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셨다면서요.”
조금 전, 제 어머니가 다경에게 저지른 짓에 대해 합리화하던 말을 그대로 돌려준 입매가 시리게 휘어졌다.
“도, 도하야···.”
연수가 후회와 공포로 범벅된 눈물을 흘리며 하릴없이 제 아들의 이름만 불렀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지긋― 바닥에 떨어진 꽃줄기를 밟아 짓이기며, 도하가 제 어머니의 앞으로 피로 범벅된 손을 들어 보였다.
“이 꼴을 보고도.”
아들의 피로 붉게 물든 가느다란 손이 파르르 떨렸다.
“피범벅이 된 절 보시고도··· 아직도 어머니께서 하신 그 짓들이 모두 그렇게 만족스러우세요?”
당신이 상처 낸 것은 비단 손만이 아니라는 듯, 도하가 넝마처럼 나부끼는 가슴을 움켜쥔 채 제 어머니를 향해 물었다.
“아. 아냐, 아냐, 도하야.”
연수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흘렀다.
피범벅이 된 손을 도저히 그냥 보고 있을 수만은 없어 바들거리는 손으로 도하의 손목을 붙잡으며 하염없이 울었다.
“그건 내가. 엄마가 아깐 너무···.”
“손대지 마세요.”
아까처럼 뿌리치지는 않은 도하의 입술이, 오히려 조금 전보다도 더욱 섬찟하게 가라앉았다.
“이대로 제 손목마저 확 그어버리기 전에.”
어머니가 잡은 곳을 그대로 도려내버리겠다는 듯 음산하게 읊조리는 경고에 연수가 발작처럼 도하에게서 손을 떼어냈다.
동시에 도하는 차갑게 몸을 돌렸다.
아무 말도 못 한 채 지켜만 보고 있는 삼촌과 어머니를 등진 채 방 밖으로 나섰다.
그가 지나는 곳 아래로 붉은 핏방울이 뚝, 뚝― 눈물처럼 떨어졌다.
“도, 도련님··· 손이 왜.”
대꾸 없는 그의 손이 고통을 삼키듯 꽉 조여들었다.
* * *
한참을 공원에서 버티다가 점심 무렵이 돼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왜 이렇게 일찍 왔어?”
평소보다 이른 퇴근에 엄마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몸이 좀 안 좋아서, 오늘 그냥 반차 쓰고 일찍 나왔어.”
다경이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얼굴로 태연하게 둘러댔다.
“몸이? 그러고 보니까 얼굴이 영 안 좋네. 왜, 어디가 어떻게 안 좋은데?”
“요며칠 일이 많았더니 좀 피곤해서 그래. 한숨 자면 나아질 거야.”
“그래··· 밥은 먹고 온 거야? ”
아침도 거른 데다가 물조차 입에 댄 적이 없었지만, 엄마가 무얼 챙겨준다 한들 목으로 들어갈 것 같진 않았다.
“회사에서 먹고 왔지. 엄마 나 들어가서 좀 쉴게요.”
“어, 그래. 뭐 필요한 거 있음 말하구.”
알겠다며 고개를 가벼이 끄덕이곤 방으로 들어왔다.
탁, 문을 닫자마자 몸이 흘러내리듯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다경은 닫힌 문에 등을 기댄 채 지그시 두 눈을 감았다. 행여나 부은 눈두덩을 엄마가 알아채면 어쩌나, 전전긍긍했던 마음이 별말 없이 들여 보내주는 엄마에게서 벗어나기 무섭게 힘이 풀리고 말았다.
겉으론 강한 척, 매정한 척 굴지만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러지 못한 엄마였다.
본인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하나뿐이라 가야 했던 길이었음에도, 혹독한 손가락질과 비난을 감내하며 저를 키워야 했던 엄마.
그런 엄마가, 이젠 그만 편해지길 바라는 그녀의 딸이 회사에서 또 그런 꼴을 당하고 돌아온 걸 안다면 얼마나 아파할지. 다경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매정한 듯이 굴었던 10년 전에도, 엄마는 제가 주제 모르고 품은 욕심으로 인해 누구보다 아파야 했으니까.
동시에, 묵직해진 머릿속으로 잊고 싶음에도 도저히 잊히지 않는 날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갈 곳 없고, 기댈 곳 없는 두 모녀가 도망치듯 하곡을 나서야 했던 10년 전 마지막 날의 기억이···.
* * *
“헐거워진 문은 바꿨어야죠. 아님, 버리든지. 안 그러니, 다경아?”
지독한 악몽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지금 제 눈앞에 있는 존재와, 그녀가 뱉는 말들이 하나같이 현실감이 없어서··· 다경은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하는 것 말고는 지금 이 상황을 받아들일 방법이 없었다.
“다, 당신은 또 누구야?”
하지만 그러기엔 눈앞에 있는 사람의 음성은 너무나 또렷했고.
“아, 따님은 종종 봤는데 우린 초면이네요. 반가워요. 정 마담님, 이라고 했나?”
처음 그녀의 집에서 봤던 그날처럼, 눈부시게 온화했다.
“그러니까, 그쪽이 대체 누군데 우리 딸을 봤냐고!”
멍하니 눈앞의 그녀를 바라만 볼뿐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다경을 밀치며, 엄마가 그녀의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저 여자들은 또 뭐고!”
삿대질 하며 외치는 엄마의 손 끝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여자가 립스틱이 짙게 발린 입술 끝을 픽, 당겨 웃었다.
“저분들이야 다경이 엄마한테 개인적인 볼일이 있으셔서 온 거라 전 잘 모르겠고, 전 다경이 친구 엄마로서 드릴 말씀이 있어서 잠깐 들렀어요.”
“다경이 친구 엄마?”
도하의 존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엄마가 의아한 얼굴로 눈초리를 구겼다.
“들어오면서 보는데 건물이 많이 노후되고 문도 헐겁더라구요.”
미술관을 돌보던 안목으로 다방 안을 둘러보던 여자에게서 곧 간결하고 단도직입적인 제안이 돌아왔다.
“다경이도 곧 있음 졸업이고, 이 참에 두 모녀가 새 터전에서 새 삶을 꾸리면 어떨까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