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 06. (94/98)

 외전 06.

 “가끔은 살인 충동도 느끼는데.”

 “뭐?”

 순진하게 그를 올려다보는 커다란 눈망울을 보며, 도하가 들은 말과는 매치 되지 않을 만큼 산뜻한 얼굴로 덧붙였다.

 “밖에서 윤 다경 널 힐끔대는 눈빛이 느껴질 때면, 이대로 저 주제도 모르는 새끼들 눈알을 파내버릴까···.”

 “흣···.”

 턱은 붙잡은 엄지의 끝으로 무방비하게 벌어진 아랫입술을 지그시 누르며 그가 달콤하게 속삭였다.

 “그런 끔찍한 살의가 들뜨거든. 내 안에서.”

 그 말을 끝으로 고개를 틀어 입술을 맞물린 그가 깊고 세게 다경의 숨결을 흡입했다. 베어 물 듯 빨아들인 아랫입술을 쪽- 놓아주며 도하가 웃지만 웃지 않는 것 같은 눈으로, 커다래진 갈색 눈동자를 바라본다.

 “미, 미쳤어···.”

 질투가 심하다는 건 알았지만, 그런 생각까지 하고 있을 거라곤 미처 생각지 못했다.

 “농담하지 마.”

 “넌 이게 농담 같아?”

 다경이 빨개진 얼굴로 중얼대는 소리에, 그가 유려한 입매 끝을 매끄럽게 당겨 웃었다.

 이 환장하게 예쁜 귀엔 제 이 끔찍한 질투와 소유욕이 그저 농담으로 들리는 모양이다.

 그럴 리가.

 “말 나온 김에 그냥 어디 나가지 말고 이 안에만 있을래?”

 도하가 제가 빨아들인 바람에 립스틱이 옅게 벗겨진 연한 입술을 엄지로 쓸며 다정히 말했다.

 “나갔다 하면 자꾸 이 새끼 저 새끼 눈으로 핥아대서 안 그래도 신경에 거슬렸는데, 이참에 그냥 아예 다 때려치우고 나랑 살아?”

 “무, 무슨···.”

 설마, 진담인 거야?

 “뭘 그렇게까지.”

 괜한 소릴 해서 소유욕 강한 권도하를 자극한 건가 싶어, 다경이 뒤늦은 수습에 나섰다.

 “어차피 너랑 나 연애 중인 거 이 회사에서 모르는 사람 없이 다 아는데.”

 “그거론 부족해.”

 단호한 목소리로 말허리를 가른 그가, 다시 다경의 입술을 삼키며 좀 더 탐욕스럽게 여린 입안을 헤집었다.

 “흡···.”

 입안 점막을 핥고 기민하게 파고든 두툼한 살덩이가 말랑한 혀끝을 끌어와 질척하게 돌기를 쓸었다. 으응, 참지 못하고 터져버린 앓는 소리가 둘의 타액으로 축축하게 젖은 입안을 달큰하게 데운다.

 이렇게 잡아먹을 듯이 네 입술을 흡입하고, 부족하다 말하는 순간에도 넌 아마 감히 내 마음을 짐작조차 못 하겠지.

 진심으로 뱉은 내 고백에 당연한 듯 농담이냐고 묻는 순진하고도 무구한 널 상대로, 내가 얼마나 탐욕스럽고 저질스런 생각들을 품고 있는지.

 “흣, 아··· 도하, 읍.”

 숨도 쉬기 버거울 만큼 짙어지는 키스에 다경이 아일랜드 식탁 끝을 쥔 손 끝에 꽈득 힘을 실으며 고개를 더 올렸다. 턱끝을 잡아 돌린 것만으론 모자라, 뒷머리마저 움켜쥐어버린 도하가 목구멍까지 들쑤셔 헤집을 기세로 혓바닥을 밀어 넣었다.

 가끔 그래서, 네 온몸을 물고 빨고 내 흔적들로 잔뜩 새겨놓고 싶은 걸. 감히 내 것에 눈독 들이지 말라고 내 냄새로 흠뻑 젖게 흩뿌려 놓고 싶은 걸.

 겨우 어디 나가지 말고 이 안에만 있자는 점잖은 내 한 마디에 파르르 떠는 너는, 감히 짐작조차 못하고 있을 거야.

 “하···, 오늘따라 더 맛있네. 윤다경 입술은.”

 게걸스럽기까지 한 입맞춤 후, 잠시 입술을 뗀 도하가 제 안에 깔린 저속한 마음을 감춘 채 다정히 속삭였다.

 고작 키스만으로도 귀 끝까지 발갛게 달아올라버린 다경의 어여쁜 눈동자가 어쩔 줄을 모르겠다는 듯 식탁 위로 떨궈진다.

 빤 건 입술인데, 사이즈 큰 제 티셔츠 덕에 드러난 쇄골까지 빨개진 꼴을 보고 있자니 도하는 대번에 하반신의 어딘가가 단단하게 불거졌다.

 씨발, 진짜. 예뻐서 환장하겠네.

 “저녁은 나중에 먹고 일단.”

 잠시 다경을 놓아주었던 손이 다시금 부러질 듯 가느다란 뒷 목덜미를 부드럽게 감싸쥐었다.

 “우리 맛있는 윤 다경부터 좀 먹어볼까?”

 “아니, 잠···.”

 일단은 다시 입술부터, 하고 다경의 의사완 관계없이 막 고개를 비스듬히 튼 순간.

 띵동―, 조용하던 방안으로 벨소리가 울려퍼졌다.

 “자, 잠깐만!”

 그 바람에 소스라치게 놀라고만 다경이 부리나케 그의 가슴팍을 밀어냈다.

 “누, 누구 온 거 아냐?”

 다경이 당황한 얼굴로 인터폰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도하의 매끄럽던 미간에 날카로운 주름이 잡혔다. 목적지를 잃고 허무하게 허공을 움켜쥔 손이 와득- 움켜쥐어진다.

 씹, 분위기 좋았는데.

 “이 시간에 오긴 누가.”

 띵동-, 띵동―!

 어떤 새끼가 잘못 누른 건가 싶어 신경질적으로 말을 읊조린 찰나. 다소 경박스러울 만큼 눌러지는 벨소리가 너른 집안을 어지럽게 휘돌았다.

 “뭐지··· 진짜 누구 온 것 같은데?”

 다경이 상기되어 있던 기색은 씻은 듯 사라지고 초조함만 남은 얼굴로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빠득, 반듯하던 이마 위로 깊은 빡침이 올라온다.

 아씨. 이 시간에 우리 집에 올 인간이 없는데, 대체 어떤 새끼야.

 “기다려.”

 결국 주방에서 나와 거실로 향하고 만 도하가 성난 걸음으로 한달음에 인터폰 앞에 다다랐다.

 ‘잘못 누른 거기만 해봐라, 이 겁대가리 없는 새낄.’

 이를 으득 갈고 화면을 들여다보자, 생각과는 달리 텅 빈 복도만이 눈에 들어왔다.

 “뭐야, 대체?”

 씨발, 어떤 간 큰 새끼가 이른 저녁 시간대부터 남의 집 문 부여잡고 장난질을 치나.

 행여 다경이 듣고 무서워할까 싶어 애써 욕을 눌러 참은 도하가 다시 한번 확인 차원에서 버튼을 누르며 화면을 들여다본 순간이었다.

 ― 권도하···!

 귓속을 할퀴듯 스피커를 빠져나온 어지러운 목소리와 함께 웬 커다란 콧구멍이 인터폰 화면을 강탈했다. 답지 않게 깜짝 놀란 도하가 흠칫하며 뒤로 물러섰다.

 뭐, 뭐지. 이건?

 “뭐야, 왜 그래?”

 덩달아 놀란 다경이 빠르게 인터폰 앞으로 다가와 도하의 옆에 섰다. 동시에 저도 모르게 한 걸음 주춤거렸던 도하가 황당한 얼굴로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여전히 카메라 앞에서 사라지지 않은 커다란 콧구멍이 음산하게 벌렁거린다.

 ― 문 열어, 인마! 너 그 안에 있는 거 다 알아!

 뭐야, 이 또라이 새낀?

 대관절 남의 집 인터폰에 대고 콧구멍을 들이대는 괴상한 객을 보며, 도하가 어이없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냥 집 잘못 찾아온 미친놈인가? 근데 이 빌라엔 아무나 이렇게 못 들어오는데?

 그러고 보니 방금 전 내 이름도 불렀고···.

 “누구야, 문 안 열어줘도 돼?”

 둘이 있을 때 한 번도 이런 적은 없었던 터라, 다경이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그냥 무시하고 경비실에 전화를 할까. 벌름거리는 콧구멍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던 순간.

 “도하야···.”

 ― 짠!

 인터폰 너머의 또라이가 갑자기 콩 뒤로 물러서며, 콧구멍 대신 본인 얼굴을 들이댔다.

 그러곤 나잇값 못하는 산뜻한 웃음과 함께 외쳤다.

 ― 네 하나 뿐인 외삼촌이다, 짜샤!

 * * *

 “그러게 왜 전화를 안 받아? 30분 전부터 전화통 불나게 걸었는데.”

 문을 열자마자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안으로 밀고 들어오던 정운이 도하의 옆에 선 낯 익은 얼굴을 알아보곤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어, 넌···.”

 “아, 안녕하세요. 선생님.”

 멋쩍은 표정의 다경이 꾸벅 허리를 숙여 예의를 갖춰 인사했다.

 “아, 다경이도 있었구나? 오랜만이네, 우리 다경이!”

 10년이 지났음에도 약간의 주름만 졌을 뿐 변함 없는 인상이 다경을 보자마자 활짝 미소를 짓는다.

 “그동안 잘 지냈어? 도하 녀석한테 얘길 듣긴 들었다만 통 보여주질 않아서.”

 “호칭 정리는 좀 똑바로 하죠?”

 악수라도 할 기세로 성큼 다가서는 정운의 앞을 턱, 막아서며 도하가 냉랭한 얼굴로 말했다.

 “얘가 왜 삼촌한테 우리 다경이야?”

 “이야, 이 한결같은 싸가지는 연애를 해도 좀처럼 나아지질 않는구나. 응?”

 경계할 사람을 경계해야지. 대상을 가리지 않는 도하의 방어에 정운이 기가 막히다는 듯 혀를 찬다.

 “갑자기 왜 왔어? 그것도 황금 같은 저녁 시간에.”

 예기치 않은 방해에 잔뜩 심기가 불편해진 도하가 불만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아무튼 짜식, 말하는 것 좀 봐라. 금쪽같은 조카 새끼가 하도 얼굴을 안 보여주길래 하늘 같은 삼촌께서 직접 생사 확인하러 와봤다!”

 냉랭한 조카의 말에도 말투만 서운해할 뿐 능청스레 받아치며, 정운이 서글서글한 얼굴로 앞에 선 다경을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우리 다경인 10년 전보다 더 예뻐졌네.”

 “우리 다경이 아니라니까.”

 “이 미친놈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야. 작작 좀 해라, 작작 좀! 다경이 너 회사에서 숨은 쉬고 사냐? 나 상대로도 이러는데, 이 미친놈 회사에선 정상이야?”

 “하하, 네···.”

 정운의 넉살에 다경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 끝을 흐렸다.

 당연히 정상은 아니었다.

 방금 전, 정운이 이 집안으로 들어서기 직전에도 저 정상적이지 못한 사고방식으로 뱉은 기가 찰 말들을 잔뜩 들은 참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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