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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09. (97/98)

 외전 09.

 국밥집 VIP가 되도록 매일매일 드나들 것 같다던 도하의 말은 결국 빈말이 아닌 진짜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오후 6시 반.

 “어머니 저희 왔습니다!”

 겨울이라 유독 짧은 해 때문에 식당 밖으로 노을이 짙게 질 무렵이면, 도하는 다경을 앞세운 채 여지없이 식당 문을 밀고 안으로 들이닥쳤다.

 “어, 왔어?”

 “오늘은 아직 한산하네요?”

 이젠 놀랍지도 않다는 듯 자연스레 도하를 맞이하는 엄마를 향해 그가 넉살 좋게 말했다. 그러곤 그 이상으로 자연스럽게 벽에 걸린 앞치마를 빼 허리에 두르는 걸 보며, 다경이 뒤에서 나직이 한숨을 삼켰다.

 하··· 어쩌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된 건지 모르겠다.

 가끔 국밥이나 먹으러 오라고 했지, 저 손에 식당일을 시킬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며칠은 그냥 국밥만 먹겠다며 드나드는 것 같더니 결국 이런 식으로 남의 식당 일자리까지 꿰차고 말다니.

 “어머니, 문밖에 음료수랑 술 내려져 있던데 냉장고에 채워놓을까요?”

 어느새 식당일 매뉴얼까지 익혀선 눈치 빠르게 움직이는 그를 보며 다경이 기가 찬 웃음을 내뱉었다.

 어쩌다가 저 고급 인력이 여기서 이러고 있게 된 건지 모르겠다. 오지 말라고 막아도 보고 국밥만 먹인 뒤 등을 떠밀어도 봤으나 도무지 먹히질 않는 터라, 보름쯤 지나자 결국 다경도 반포기 상태에 이르고 말았다.

 “저 인물 언제까지 이 허름한 식당 문에 드나들게 할 거야?”

 도하에게 대놓고 내색은 않지만 심란하긴 마찬가지인 듯, 엄마가 냉장고에 음료수를 채워 넣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어떡해요, 그럼. 아무리 말해도 듣는 척도 안 하는데.”

 다경이 저 역시 난감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앞치마 하나를 빼내었다. 그러자 엄마가 그녀가 목에 걸기도 전에 앞치마를 낚아채 가며 질책하듯 말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네가 좀 나가야 저 인물이 여길 그만 오지 않겠냐, 이거야.”

 “또 그러시네, 또.”

 엄마가 그렇게 다친 뒤, 매일같이 칼퇴근을 하곤 식당으로 귀가하는 저를 보면서도 못 마땅해 했던 그녀였다.

 별것도 아닌 일로 괜한 수선을 떤다며 타박했던 엄마.

 그런 그녀인데 저만으로도 모자라 도하까지 찾아와 식당일을 돕겠다 나서고 있으니,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은 당연했다.

 “살 좀 데인 걸 가지고 무슨 뼈라도 부러진 양 뭐 그렇게들 유난이야. 유미네서 삯 받고 설거지도 해주고 하는데 너까지 와서 왜 자리 차지하고 있느냐고. 게다가 저 고급 인력까지 척하니 달고.”

 엄마가 도하에겐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말하며 어느새 음료수 정리까지 마친 큼직한 뒷모습을 턱짓했다.

 “2도 화상이 좀 데인 거야? 됐어. 괜한 소리 그만하시고 손님들 들이닥치기 전에 움직이게요.”

 다경이 씨알도 먹히지 않은 얼굴로 엄마의 손에서 다시금 앞치마를 가로챘다. 그 순간, 다시금 팩 앞치마를 가로채 도로 걸어버린 엄마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만큼 했으면 됐어. 관두고 오늘은 그만 나가.”

 “엄마.”

 “난 그만 신경 쓰고, 오늘은 좀 나가서 데이트도 하고 그래.”

 이 상황에 날더러 나가서 데이트를 하고 오라니. 다경이 당황한 낯으로 입술을 뻥긋거렸다.

 “엄만 자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그냥 가자고 하면 안 나갈 거니까 장이라도 보고 오자면서 끌고 나가.”

 “엄마아!”

 “어여! 이 엄마 속 답답해 죽는 꼴 볼래?”

 결국 언성 마저 높이더니 그래도 꼼짝 않는 다경에게서 눈을 돌리며 갑자기 도하를 호출했다.

 “어이, 권 알바! 얘 데리고 근처 마트 좀 얼른 다녀와. 계란이며 뭐며 다 떨어져서 장사를 못 하게 생겼어.”

 “엄마.”

 “아, 네. 어머니.”

 어찌 된 상황인지는 알지 못하는 도하가 또 순진하게 넙죽 엄마의 말에 대답했다.

 “하···.”

 다경이 미동도 않은 채 버티고 서있자, 엄마는 다경이 벗어놓은 코트마저 어깨에 도로 둘러주며 “어여 다녀와.” 하고 그녀의 등을 떠밀었다.

 “어디로 가면 돼?”

 어찌 된 상황인지 모른 채 다경과 함께 차에 오른 도하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골목 들어오는 쪽에 식자재 마트 하나 있던데, 거기로 가면 되나?”

 “장 볼 거 없어.”

 어딘지 심란한 얼굴로 조수석에 앉아 있던 다경이 조용히 입술을 뗐다. 잠자코 듣고 있던 도하의 눈에 의아한 기색이 스쳤다.

 “뭐? 장 봐 오시라고 했잖아, 어머니께서.”

 이걸 말할까 말까, 잠시 망설이다가 다경이 결국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진짜 장 봐 오라는 게 아니라 그 핑계로 우리 내쫓으신 거야, 지금.”

 “내쫓았다고?”

 “응. 너랑 내가··· 자꾸 식당 와서 왔다 갔다 하는 게 마음 불편하시니까, 그래서 우리 내보내시려고.”

 “아니, 무슨···.”

 “아마 이대로 진짜 장 봐서 식당 들어가면, 들어가자마자 도로 등 떠밀릴걸?”

 도하가 생각지도 못했던 듯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도와드리겠다는 제게 흔쾌히 그러라 하셨던 터라 불편해하고 계실 거라곤 미처 생각조차 못 했다.

 설마, 본인이 불편함을 내색하면 제가 무색해 할까 봐서 그 마저도 말씀을 안하셨던 건가.

 “하··· 아니, 왜 이게 불편해하실 일이라고.”

 짐작하지 못했던 마음을 되짚으며, 도하가 난처한 얼굴로 관자놀이를 쓸어내렸다.

 “불편하시지. 아무리 네가 살갑게 군다 해도 어디까지나 딸 남자친구인데, 여기 와서 이러고 있음 엄마가 마음이 편하시겠어?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저만 해도 식당에서 당연하다는 듯 서빙을 하고 뒷정리를 돕는 도하를 볼 때마다 고마운 한편 미안함을 느끼곤 했다.

 종일 회사 일에 시달리고, 또 어떤 날은 먼 곳에 외근을 나갔다가 오기도 하는데 그러고도 피곤함은 내색지도 않은 채 궂은 식당일들까지 도와주고 있으니.

 다경의 말을 듣고 보자 불편하다는 그 마음이 아주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라서, 도하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 거기까진 내가 생각을 못했네.”

 그냥 마음 편하게 가족이라 생각하고 받아 들여주면 고맙겠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제 욕심일 뿐인 모양이다.

 여태껏 주변 도움 없이 서로만을 의지하며 모든 일을 헤쳐온 두 모녀에겐 가족이 아닌 타인의 맹목적인 도움은 고마움보다도 오히려 큰 부담으로 다가오는 걸까.

 “뭘 어떻게 하면 좀 편해지려나, 너나 어머니나.”

 도하가 근심 어린 얼굴로 창밖에 진 깜깜한 어둠을 바라보며 툭툭, 핸들 위를 두드린다.

 그런 그를 보며, 다경 또한 남모를 한숨을 삼켰다.

 그가 저와 제 엄마에게 부담을 주기 위해 보이는 친절과 도움이 아닌 걸 아는데, 이런 식으로 그에게 선을 긋는 것처럼 느껴질까 봐서.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보자, 또 괜스레 마음이 쓰인다.

 “도하야, 일단 그 고민은 나중으로 미뤄놓고···.”

 아무래도 제가 나서지 않으면 도하의 고민이 좀처럼 끝나지 않을 것 같아, 다경이 조심스레 핸들 위에 놓인 커다란 손을 가만히 감싸 쥐었다.

 “엄마도 저렇게 나오시니까, 오늘은 그냥 우리 못다 한 데이트나 하면 어때?”

 “데이트?”

 깊은 고민에 빠진 듯하던 그의 눈이 의아함을 띠며 다경에게로 향한다.

 “그··· 있잖아. 예를 들면, 밀린 숙제라던지.”

 언젠가 그가 능청스레 썼던 표현을 빌려다 쓰며, 다경이 발갛게 귓불을 붉혔다.

 “밀린 숙··· 아.”

 그제야 다경이 뭘 하자는 건지 깨달은 도하의 입술 새로 피식, 웃음이 터진다. 덕분에 안 그래도 열 올라 있던 다경의 귀가 녹아내릴 것처럼 뜨거워졌다.

 아··· 너무 밝히는 여자처럼 들렸으려나.

 사실, 그날 그렇게 삼촌이 다녀간 뒤로 둘이 시간을 가질 기회조차 없었던 터라 은근 저도 욕구불만이 올라와서 뱉어버린 말인데···.

 “뭐, 나야 당연히 좋은데.”

 뱉고 보니 민망해 조수석 창 쪽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저 안에 계신 우리 어머니께선 댁의 따님이 이렇게나 밝히는 줄 아실까 몰라, 응?”

 그가 그의 손 위로 겹쳐진 작은 손을 붙잡아, 엄지로 둥글게 문지르며 놀리듯 속삭였다.

 “그래서, 그럼 그냥 다시 들어가?”

 다경이 새침하게 눈을 흘기며 그에게 잡힌 손에 뺄 것처럼 힘을 줬다.

 “다시 들어가긴 어딜 들어가?”

 덥석 손을 붙잡아 그의 다리 사이로 가져다 댄 그가 음흉한 얼굴로 말했다.

 “여길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선.”

 “뭐, 뭐야···.”

 손을 얹자마자 느껴지는 딱딱한 감촉에 다경이 화들짝 놀라 당겨진 팔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피식, 웃음을 터트린 그가 순순히 붙잡은 손을 놓아주며 조수석에 앉은 다경의 벨트를 찰칵, 채워준다.

 “벨트 꽉 잡아. 지금 좀 맘이 급해서 차가 꽤 달릴 예정이거든.”

 동시에 말처럼 급하게 튀어 나간 차가 빠르게 골목을 빠져나갔다.

 벨트를 꽉 잡은 다경의 입가로 푸흐흐 웃음이 샜다.

 * * *

 여름부터 준비했던 신차 블리뉴의 홍보를 위한 프로젝트가 드디어 성공리에 마무리되었다.

 특히 다경의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구성이 된 이벤트는 상부로부터도 호평을 받았다.

 신차에 대한 내용을 퀴즈 형태로 제시한 이 이벤트는 소비자들에게 신차 출시에 대해 가장 빠르게 전달함은 물론이며 호기심까지 자극해 홍보 효과를 극대화했다.

 이로 인해 일회성 행사로 끝낼 것이 아니라 시리즈로 발행해보자는 의견이 나올 정도였다.

 팀 안의 가장 큰 프로젝트를 성공리에 마치고 어느덧 한 해를 마무리 짓는 시점. 마케팅 2팀의 하반기 워크샵이 잡혔다.

 이번 워크샵 장소는 강원도 강릉이었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자연을 보고 숨을 돌리자며 정해진 장소였다. 눈을 뜨면 바로 해돋이가 보인다는 정동진 앞의 호텔로 숙소까지 예약이 된 터라, 홀가분한 기분으로 워크샵에 임한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즐거워했다.

 아침 일찍 짐을 꾸려 강릉으로 출발한 팀원들은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한 정동심곡부채길에 도착했다. 숲을 가로 지르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 푸른 에메랄드 빛 바다를 감상하고, 함께 사진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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