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마왕 생존기-3화 (3/544)

〈 3화 〉 마계 # 2

* * *

애초에 어머니 여공작님은 이 공작령의 절대군주시다.

부르면 당연히 가야지.

거부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ㅡ스윽.

지도 뒤에는 간단한 메모가 적혀 있었다. 그냥 뭐 어떻게 오라, 이런 내용이 전부다. 공작령 최고 권력자를 알현하기 전에 잘 씻고 옷 제대로 갖춰 입으라 하는 것들.

거기까지 가는 길은 요새 비행장에서 와이번 특급을 타고 가면 된다고 한다. 통행증 보여주면 일사천리라는 모양.

보니까 통행증 이름이 또 특급 통행증이었다. 잘은 모르겠는데 존나 중요한 일인가 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 불안해진다.

"아무튼 기간은 다음 주까지인가."

그럼 오늘이나 내일 바로 출발해야 할 것 같은데.

벨라크루 공작령에는 동서남북으로 총 네 개의 요새가 있고, 영지 중심부에 수도 궁전이 있다. 그 궁전으로 가야 하니 일찍 출발해야 한다.

"근데 대체 왜?"

수많은 자식들이 있는 어머니 여공작이 구태여 이 남쪽 요새에 박혀 있는 날 콕 찝어서 만나자고 할 일이 없을 텐데... 말마따나 내 출신 문제인 것 같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니까.

"나 불안해서 심장이 너무 쿵쾅거려."

일단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샤워실로 들어갔다.

씻고 뭐 메이드들 불러서 옷 갖춰 입고. 그러고 길 안내 받아서 비행장으로 가면 되겠지. 가야 한다면, 그냥 갈 거다. 그래야 하는 입장이니까.

"옷이라."

원래 내가 이 남쪽요새 대표 병신이라 평소였다면 아무도 내 말을 안 들어줬을 것이다. 근데 공작령의 절대군주인 어머니 여공작님의 명령이 떨어졌으면 이야기가 다르지.

그렇게.

다 씻고, 적당한 옷으로 갈아입은 다음에 문밖으로 나갔다.

ㅡ끼익.

바로 복도가 눈에 들어온다.

내 방은 445호였다. 양옆으로 똑같은 방문이 쭈욱 늘어서 있었고, 복도에는 마족 메이드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쯧."

"벙어리 새끼네요."

돌아다니는 메이드들이 나를 보더니 인상을 찡그린다, 저 씨발년들이. 이 개새끼들 이거 볼 때마다 뚜드러 패고 싶을 정도다. 근데 냉정하게 말해서 내가 저 메이드들보다 약하다.

그럼 못 깝치지.

난 나보다 쎈 놈들한텐 안 깝친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거기. 메이드님. 잠깐 나 좀 봅시다."

바로 가장 앞에 있던 녀석을 부르니.

"...?"

고개를 갸웃한 메이드가 심히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다가왔다.

"무슨 일이지?"

고압적인 목소리.

"깔끔한 옷이 좀 필요한데. 좀 구해다 주시지요."

"옷을 구해달라고?"

ㅡ까딱.

메이드의 고개가 틀어진다.

그리고 크게 떠진 눈의 세로동공이 나를 포착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이거 보고 진짜 존나 무서워서 오줌 지리는 줄 알았다.

이 메이드는 말이 메이드지 진짜 마계에서 태어나고 마족식으로 살아온 마족이었다. 좆밥 한국인 출신인 내가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결코 아니었다.

"직접 구하는 게?"

그리고 메이드 역시 그것을 아는지 존나 쎄게 나오고 자빠졌다.

"제가 벙어리 새끼 옷을 챙겨줄 이유가 있을까요?"

"..."

씹년 진짜 존나 무섭게 구네.

나도 눈치가 있어서 대충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는지는 알고 있다. 지금 이 요새의 이 구역에서 지내는 것은 전부 다 내 또래의 아이들이다.

우리들은 저 메이드들의 시중을 받으며, 마족 교사에게 가르침을 받는다.

물론.

당연히 나는 대부분의 교육에서 열외된 상태였고 메이드들이 시중을 들어주지도 않는다.

하지만 상황을 보건대 원래대로였다면 나는 여기 있는 내 마족 또래들과 똑같은 대우를 받으며 살았을 것이다. 지나치게 모자라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것뿐이고.

바꿔말하자면, 원래의 나는 `대우`를 받을만한 아이였다는 뜻이다. 당연히 뭐 높은 등급의 알에서 태어난. 뭐 그런 존재니까 그럴 확률이 높겠지.

상식적으로 이 마족 놈들이 나 같은 무능한 친구를 이렇게 키워줄 리가 없지 않은가. 요새에는 노예처럼 일하는 녀석들도 존재한다. 존재하는 것을 넘어서 존나 많다.

그놈들도 전부 다 어머니 여공작께서 낳으신 알에서 비롯된 녀석들이었다... 대충 내 생각이 이런데, 지금 내 상황이랑 뭐랑 해서 100% 확신이 드는 것은 아니다.

"대답 안 하세요? 벙어리병이 다시 도지셨나?"

메이드는 거의 주먹을 쥐락펴락하면서 분노를 터트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구라 안치고 진짜배기 살기를 발하고 있다. 좆밥 마족인 나는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다른 건 됐고요. 여기. 옷 좀 가져오시죠. 깔끔한 걸로."

그래서 바로 특급 통행증을 내밀었다.

"어머니 여공작님의 호출을 받았으니까."

"뭣?"

"어머니 여공작님께 호출받았다고."

내가 내민 특급 통행증을 본 메이드가.

"허억...!"

눈을 크게 뜨더니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자리에 주저앉았다. 와. 이거 진짜 존나 잘 먹히네?

이렇게까지 반응할 줄이야.

마음 같아서는 지금의 권위를 이용한 김에 존나게 뚜들겨 패고 싶었는데, 지금 내가 뭐 하러 가는 지도 잘 모르겠고 이 권위가 사라졌을 때 보복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참기로 했다.

"빨리요."

"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난 메이드가 복도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내 방으로 가져오세요!"

그럼 옷 문제는 이제 끝냈다. 나는 바로 비행장 위치를 봐두기 위해서 복도를 걸었다. 일단 1층에 있는 메인홀에 구역 지도가 정리되어 있으니 거기로 가면 되겠지.

그렇게 요새 1층 메인홀에 도착한 순간이었다.

"어?"

나는 내 또래들과 눈을 마주치고 말았다.

"어! 야! 저기! 벙어리 큘스다!"

"어디? 아! 야! 가서 조져! 조져!"

"혈족의 수치!"

도저히 10살짜리 꼬맹이들이라고는 믿을 수가 없는 건장한 체격의 마족들.

좆됐다.

ㅡ파바밧!

놈들이 나를 향해 돌진해오기 시작했다!

"아이고 씨발 큰일 났다!"

즉시 몸을 돌리고 땅을 박찼다! 저 새끼들에게 잡히면 그냥은 안 끝날 것이다! 놈들은 말을 못 하는 나를 보고 맨날 뭐라고 소리치면서 줘 터트리던 일당이다!

"살려주세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잡아!!!"

"아니 이게 아니지! 야! 멈춰!"

바로 특급 통행증을 꺼내 들었다!

"뭐?"

"지금 저 새끼 뭐라고 한 거지?"

"감히 명령을 해?"

내가 되려 호통을 치자 놈들이 어이없다는 듯이 반응하면서 멈춰 섰다. 그러고는 곧 빈정거리면서 슬금슬금 다가왔다.

"뒤지고 싶은가 봐?"

"야. 이걸 봐."

"그게 뭔데?"

뭐긴.

특급 통행증이지.

"난 어머니 여공작님의 호출을 받은 몸이다. 비행장에 볼일 있어서 가는 중이니까. 방해하지 말자."

바로 통행증을 내밀면서 설명했다.

"뭐, 뭐? 어머니 여공작님?"

"이 새끼가 어디서 그딴 거짓말을?"

"어머니 여공작님 이름을 팔았다고?"

근데 이 새끼들 멈추기는커녕 갑자기 살기를 발하는 것이 아닌가. 하긴. 이 새끼들도 어머니 여공작님이 낳으신 알에서 나온 놈들이다. 한낱 벙어리 큘스가 엄마 이름을 파는 게 아니꼽겠지.

"구라 아냐. 이걸 봐. 이거 특급 통행증이다."

"통행증?"

통행증 이야기가 나오자 놈들이 머리를 들이밀면서 내 손에 들린 통행증을 바라보았고.

곧 녀석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네가 왜?"

"왜 네가 호출을?"

분노. 질투.

그리고 시기심이 묻어나오는 얼굴.

"어째서 큘스 따위가..."

근데 나도 이유는 몰라.

"나도 모르지. 그건. 아무튼 건드리지 마라. 호출받아서 가는 건데 문제 생기면 늬들이 책임져야 할걸."

어머니 여공작님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

"..."

"..."

꼬리를 내린 녀석들이 어금니를 꽉 깨물면서 돌아섰다.

"굿."

시발 진짜 우리 엄마가 진짜로 내 빽이었으면 좋겠네.

* * *

잘은 모르겠지만 어머니 여공작님의 명령이라고 생각하니 사고가 오직 그쪽에만 집중이 되는듯한 느낌이었다. 뭐랄까 정신을 좀 가볍게 통제 받는 듯한 기분이다. 본능인가? 그런 것 같은데.

아무튼 그런 이유로, 준비를 마친 나는 최대한 빠르게 수도 궁전으로 향했다. 와이번을 타는 것은 처음이라서 정말 고통스럽고 무서웠다. 근데 중간부터 재밌더라.

그리고.

거대한.

벨라크루 수도 궁전 앞에 도착했다.

과연 어머니 여공작님께서 지내시는 수도였다. 강한 마족들이 정말 많았고, 내가 있던 남쪽 요새보다 인구는 물론이고 문화 수준도 드높았다.

그중에서 가장 화려한 것이 바로 이 수도 궁전이다. 궁전 앞에는 경비들이 있었는데, 다들 큼지막한 뿔을 달고 있는 것이 아주 강해 보였다.

"존나 무섭게 생겼군."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것 같지만 일단 가야 한다.

그리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정지. 넌 뭐지?"

즉시 경비병이 무기를 겨누면서 위압감 있는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바로 특급 통행증을 꺼내 보여주면서 대답했다.

"안녕하십니까. 어머니 여공작님께 호출을 받고 온 큘스라고 합니다."

"뭐라? 어머니 여공작님의 호출?"

"여기, 특급 통행증입니다."

"확인을 하겠다."

"예."

통행증을 받아든 경비가 옆에 있던 초소로 들어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경비가 나오면서 내게 통행증을 돌려줬다.

"어머니 여공작님의 호출을 받으셨군요, 아우님. 들어가십시오."

"어... 예."

완전히 태도가 급변하는군.

공작의 호출을 받았다. 그렇다면 공작이 그 당사자에게 용무가 있다는 뜻이고, 공작령의 모든 존재들은 공작의 용무 해결을 위해 힘을 써야 한다.

이것이 우리 혈족들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이었다.

"그런데 아우님이라니."

역시 경비병도 어머니 공작님께서 낳으신 알에서 태어난 것이었군. 아무튼 궁전 부지를 걷고 있으니 안내원이 나타났다.

그렇게 나는 궁전 내부로 들어갔다.

* * *

"후우."

궁전에 들어온 뒤로는 긴장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알현일 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탓에 궁전에 있는 손님방에서 지내게 되었고, 나는 그동안 궁전 하인들에게 예절을 교육받았다.

근데 씨발.

궁전 하인들이 진짜 평범한 하인들이 아니었다. 하나같이 전부 다 강해 보이는 마족들이었던 것이다. 아마도 어머니 여공작님께서 신경 써서 부화시킨 존재들이겠지.

그런 험악한 어깨형님들이 내게 교육을 해준 탓인지 궁중예절이 아주 머릿속에 쑥쑥 들어올 지경이었다.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 예."

그리고 드디어 알현 시간이 되었다.

ㅡ쿵쾅쿵쾅.

심장이 터질 것 같다. 드디어 어머니 여공작님을 뵈러 간다. 엄마. 대체 날 왜 부르신 겁니까?

이거 시발 설마 날 잡아먹을 속셈인가? 이상한 의미로 잡아먹는 게 아니라 진짜 물리적으로 잡아먹을 생각일지도 모른다. 당장 바토리만 해도 처녀의 피로 목욕을 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인간도 그딴 짓을 하는 마당에 마족이라고 안 할 리가 없다.

ㅡ처억.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알현실 앞에 도착했다. 곧 나는 혼자 남게 되었고, 예법대로 들어오라는 명령을 기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ㅡ들어오렴.

실로 감미롭고.

매혹적인 목소리가 귓가에 꽂혀 들어왔다.

ㅡ끼익.

나는 홀린 듯이 알현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 *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