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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마왕 생존기-4화 (4/544)

〈 4화 〉 마계 # 3

* * *

궁전의 규모에 걸맞는 커다란 홀이었다.

홀은 어둠에 잠겨 있었는데, 오직 저 앞에 있는 어머니 여공작님만이 선명하게 보일 뿐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홀이 어두운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미모가 그녀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어둡게 만들었을 뿐.

"아."

그분은 마치 왕좌와도 같은. 화려하고 거대하고 퇴폐적인 왕좌위에 다리를 꼰 채 앉아서 날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그녀를 보자마자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과연 여신 같은 미모였다.

암흑을 담은 듯한 긴 머리카락과 그 머리 사이로 돋아난 뿔. 샛노란 눈동자는 황금 같았으며, 다리를 꼰 탓에 긴 다리와 허벅지가 부각되었다.

무엇보다 육감적인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는 드레스를 입고 있는 상태였다... 시꺼먼 금속으로 만든 왕관과 화려하고 아름다운 장신구들을 착용하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것들이 미모를 가린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심장이 멎을 정도로 아름답다. 그러나, 동시에 두려웠다. 아주 크고 깊은 두려움이 느껴진다.

마족 여성들은 치명적으로 아름답지만 괴물에 불과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저기 앉아있는 저것은 분명 극도로 두려운 존재일 것이다... 공포로 이루어진 손아귀가 심장을 움켜잡는 듯했다.

ㅡ투욱.

어느샌가 나는 무릎을 꿇은 채 이마를 박고 있었다.

"그 무엇보다도 아름답고 위대하신 어머니 여공작님을 뵙습니다."

교육받은 탓에 자동으로 흘러나오는 멘트. 솔직히 지금 존나게 무섭다. 주저앉아서 비명을 지르며 엄마를 찾아 울부짖고 싶을 정도로 두렵단 말이다.

근데 그 엄마가 가장 무섭다.

모순적인 상황.

무서워서 엄마를 부른다고? 무섭다는 개념이 바로 저 엄마한테서 비롯됐을 것 같은데... 저런 존재가 나의 어머니라니.

결코 그럴 리가 없다.

"어머? 말을 할 줄 아는 거니?"

"예?"

순간.

그 어둠을 가르고 들려온 목소리가 너무나 다정한 투여서 당황을 하고 말았다. 구체적으로 얼마나 놀랐냐면 진짜로 엄마랑 이야기하는 줄 알았을 정도다.

"예. 할 줄 압니다."

"벙어리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 그렇게 불린 게 맞습니다. 그런데 작년쯤에 겨우 말을 깨우쳤습니다."

"그러니? 기특하기도 하지. 잘했구나. 후후후."

저 부드러운 웃음소리가 귓가에 파고들자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만 같았다.

"..."

대체 뭐냐?

나는 도저히 지금의 감각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른 세계 출신인 내게 있어서 이런 감각은 너무나도 이질적인 것이었다. 나의 본능과 충동이 당장 저 여자에게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충성하라고 충동질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우리 아들? 이름이?"

어머니 여공작님은 그 감미로운 목소리로 나를 아들이라 칭하며 다정하게 물었다.

"큐, 큘스입니다. 큘스 벨라크루."

진짜로 나를 아들이라고 여기는 것인가? 믿기 힘든 일이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나란 존재는 그저 수많은 자식들 중에 하나일 터. 여왕개미는 일개미 하나하나를 딱히 신경 쓰지 않는다. 애정도 관심도 없다. 자기가 낳았지만 그저 부하로 부릴 뿐이다.

우리의 관계는 그런 것에 가까울 텐데?

"후후후, 큘스라고 하는구나. 귀여운 이름이야... 아, 이름 물어봐서 미안해? 직접 지은 이름이 아니라서 모르고 있었어. 이제 잊지 않을게."

"감사합니다. 분에 넘치는 영광..."

"일어설래? 무릎 꿇고 있지 말고."

ㅡ파앗!

딱 봐도 기분 안 좋아 보이는 말년중위 소대장이 내 이름 불렀을 때보다 빠르게 벌떡 일어나 차렷자세를 취했다.

"가까이 와보렴."

"예."

바로 왕좌를 향해 걸어갔다. 걸어가서, 왕좌로 이어지는 계단을 오른다.

나한테 이렇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이유가 있나?

역시 내 출신 때문인가? 역시 내게는 무슨 출생의 비밀이 있었던 것인가! 알에서 태어났다는 사실보다도 더욱 충격적인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어머니 여공작님 앞에 서게 되었다. 풍겨오는 매혹적인 향기와 미모 탓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시야가 몽롱해지는 듯하다.

"더 가까이."

"...예."

두려웠지만 거부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더 걸어갔다. 그녀의 손이 닿을듯한 거리까지.

그리고.

ㅡ스윽.

따뜻한 손이 내 얼굴에 닿았다.

"아...!"

어머니 여공작님이 내 얼굴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너무 포근하고 따뜻해서 의식이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설산에서 얼어죽기 직전에 온천을 발견한 듯한 느낌이다. 지금 난 거기에 들어가 있었다.

"잘생겼구나? 내 아들?"

미소 지은 얼굴로 말하는 그녀.

"저, 전부 어머니 여공작님 덕분입니다."

"후후후, 그렇겠지. 그런데 불편해 보이네? 뭐랄까, 마음의 벽이 느껴지는 것 같아."

여기서 마음 편히 먹을 수 있는 새끼는 미친 싸이코패쓰 새끼 말고는 없다.

"마마 앞에 서는 건데 말이야."

"그, 그것이! 미천한 제가 위대하신 어머니 여공작님 앞에 선지라 긴장을 좀 한 것 같습니다!

"으음... 미천하다니. 그렇게 선을 그으니까 조금 상처받을 것 같은데."

"허억!"

상처는 무슨 상처!

지금 날 놀리는 것인가!

"편하게 이야기하자? 응? 엄마랑 아들이잖니?"

"아, 알겠습니다!"

왜 이렇게 부모 관계를 강조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설마 그건가? 자기 자식을 제물로 바치는 뭐 그런 마법을 써야 하는데, 마땅한 녀석이 없어서 날 부른 것인가?

"흐응, 그럼 마마라고 불러보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마, 마마..."

"응응. 잘했어. 우리 아들 착하네."

ㅡ스윽.

내 얼굴을 만지던 그녀의 손이 내 머리 위로 옮겨진다. 놀랍게도. 지금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상태였다.

이해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이 여자가 이런 여자일 리가 없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자꾸 이렇게 친절하게 대해준단 말인가.

내가 아는 어머니 여공작님은 분명 아주 잔혹하고 강력하고 공포스러운 마족이다. 이 두렵기 짝이 없는 세상인 마계를 지배하는 공작 중에 한 명이지 않은가.

"그럼 문제. 마마가 우리 큘스를 왜 불렀을까?"

"그... 저로서는 위대한 어머니 여공작님의 뜻을 잘 헤아릴 수가..."

"또 격식 차리네? 그렇게 자꾸 선 그으면 엄마 진짜로 상처받는다?"

ㅡ화아아악!

"아니!"

순간 느껴진 살기!

안 돼!

이제 시발 어쩔 수가 없다! 내가 봤을 때 여공작님은 시키는 대로 즉각즉각 실행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렇게 해야만 해!

"그, 그게요! 엄마 그게! 솔직히 저도 왜 불렀는지 잘 모르겠어요! 아니 그게 좀 고민을 해봤는데 잘 모르겠다고나 할까, 하하하! 세상에 마상에 몹시 궁금하군요! 알려주세요 엄마!"

바로 진짜 엄마한테 이야기하는 것처럼 너스레를 떨며 아가리를 털었다! 진짜 누구한테 이렇게 말하는 것도 거진 10년 만이다! 마족으로 환생한 뒤에는 이런 식으로 친근하게 말할 존재 자체가 없었으니까...!

그래서 반응은?

"응?"

살짝 살피니, 여공작이 고개를 살짝 갸웃하고 있었다.

"후, 후후후. 아무래도 큘스는 성격이 조금 특이한 것 같네. 응. 마음에 들어."

그리고는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포근하게 웃으며 미소를 지었다.

시키는 대로 해서 기분이 좋아진 것인가? 잘은 모르겠지만 왜 갑자기 싸가지없게 말하냐면서 죽이지 않아 다행이다. 내 너스레가 잘 먹힌 모양이로군.

"정말 신기하네... 아무튼. 왜 불렀는지 말을 해줘야겠지. 큘스. 혹시 마왕강림제라고 들어봤니?"

"예?"

마왕강림제?

아.

번뜩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말을 깨우친 지 약 1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최근에 들어본 적이 있는 단어였던 것이다.

분명 무슨 축제 비슷한 것이라고 했던 것 같다.

조만간 시작된다고 다른 마족들이 이야기하던 것을 들었다. 세부적인 내용은 잘 모르는데 뭐, 대충 무슨 옛날에 중간계까지 지배했던 존나쎈 대마왕님을 기리기 위한 행사라는 모양이다.

지금은 마족들이 마계에서만 살고 있지만 당시에는 강력한 대마왕이 있던 탓에 중간계에서도 많이 살았다고 한다. 그런 배경을 대충 들어서 대략 감은 잡힌다.

뭐 국군의 날 행사 같은 거겠지.

성대하게 축제도 좀 열고 맛있는 음식도 좀 먹고 하면서 대마왕을 칭송하며 즐겁게 노는 것.

"당연히 들어봤죠. 그거 축제 아니에요? 뭐 무슨 대마왕님 기리는 축제라고 들었는데."

근데 왜 그걸 묻지?

설마 날 그 축제 진행요원으로 써먹으려고 하나? 아니. 그럴 리는 없다. 고작 그딴 일 따위에 이런 위대한 여공작이 개인 시간을 쓸 이유가 없지 않은가.

뭔가 좀 중요한 일일 것 같은데.

"응. 축제야. 알고 있네?"

"근데 잘 아는 건 아니고요. 정확히 뭘 하는지는 잘."

"그럼 알려줄게."

"네."

알려준다고 하는데 들어야지.

"마왕강림제는 축제가 맞아. 중간계까지 지배했던 위대한 대마왕님을 기리기 위한 축제지."

"아이고 그거참 설명만 들어도 좋은 날이네요! 대마왕님을 기리다니! 정말 기대되네요! 저도 어서 마음을 다 바쳐서 대마왕님을 기리고 싶습니다!"

뭔진 모르겠지만 중요한 일일 것 같으니 분위기를 맞춰줘야만 한다.

"아, 후, 후후훗... 우리 큘스가 말을 특이하게 하는 편인가 보네? 아무튼. 마왕강림제는 단순한 축제가 아니란다."

"그럼 무슨?"

"오히려 낡아빠진 축제라고 할 수 있는데... 아들? 마왕강림제때 무슨 일을 하는지. 정말 모르는 거야?"

"네. 그 제가 원래 말하기 듣기를 잘 못했어가지고요. 잘 몰라요. 그건."

"아들. 놀라지 말고 들어."

대체 뭔 말을 하시려고?

일단 오줌 지릴 준비 됐다.

"강림제 때는. 단신으로 강림해서 중간계를 정복한 대마왕님을 기리기 위해, 각 가문에서 차출한 적당한 마족들을 중간계로 내려보내는 의식을 실시해. 우리 마족들이 대마왕님 때처럼 다시 중간계를 지배하기를 기원하는 의식이란다."

"이야, 세상에! 정말 놀라운 의식이네요! 그런 의식이 다 있다니!"

너무 놀랍다!

"그런데 내려간 마족들은 어떻게 되죠? 축제 기분을 만끽하면서 룰루랄라 중간계를 관광하고 돌아오나요?"

엄마.

제발.

그렇다고 말해줘.

ㅡ줄줄줄.

어느샌가 식은땀이 줄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중간계에... 내려간다고? 내가 잘은 모르는데, 만약 나 같은 놈이 그런 중간계에 내려간다면 좀 큰일 나지 않을까? 아니. 죽지 않을까?

웬 마족놈이 인간 사는 세상에 떡 하니 있으면 죽이고 싶은 게 바로 인간들의 심리가 아닐까?

ㅡ도리도리.

그런데 어머니 여공작님께서는 고개를 저으셨다.

"흐응... 대마왕님은 후퇴를 하지 않으셨지? 도망치는 건 마족의 수치니까. 그러니 후퇴는 없어. 의식에 따라 내려갔다면 중간계를 지배하는 마왕이 되어야만 해."

"와아! 마왕이 그렇게 배출되는 거였네요! 그런데 그렇게 중간계를 정복했던 마족이 있나요?"

내 말에 어머니 여공작님께서는 슬프다는 듯 손가락으로 자신의 눈가를 훑으셨다.

"큘스..."

왜 그런 아련한 목소리로 날 불러...!

"우리 가문에서는 네가 강림제에 나가기로 했단다."

ㅡ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비명을 질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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