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마왕 생존기-5화 (5/544)

〈 5화 〉 마계 # 4

* * *

마왕강림제!

중간계를 정복했던 대마왕을 기리기 위해 벌이는 축제!

축제 기간 동안 마족들은 재밌게 즐기면서 신명 나게 놀아재끼게 되는데, 그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마왕강림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마계와 중간계가 거의 단절된바 마계는 중간계에 그다지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도 없는 상태인데, 그런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일정 기간마다 꾸역꾸역 어거지로 강림제를 열어서 중간계 정복의 꿈을 부풀리며 중간계에 마왕 후보생들을 밀어 넣는다고 한다!

이 마왕 후보생들을 쉽게 풀어 말하자면 그냥 의식을 위한 산제물이었다!

그렇게 중간계로 사출된 마족 중에 살아남은 새끼는 단 한 놈도 없다고 전해진다! 왜냐! 아무도 마왕이 되지 못했으니까! 그럼 죽어야지 씨발!

마족 이 씨발놈새끼들은 정도 없고 개념도 없어서 중간계로 간 놈들이 뒤지든 말든 전혀 상관을 안 했다! 지들이 보내놓고서 그냥 무관심이다! 마왕이 되면 좋은 거고 아니면 마는 수준의 감각!

그딴 알량한 감각으로 의식의 산제물들이 몽땅 다 죽어 나가는 마당에 그 지랄을 하고 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이런 개미친 의식을 봤나!

어머니의 설명을 듣고 보니 이 미친 마족놈의 새끼들은 사람이 죽건 말건 전통을 지켜야 한답시고 이 지랄을 떨면서 거의 천 년 동안 중간계에 산제물을 밀어 넣고 있는 중이랜다!

"이게 무슨!!!"

과연 마족놈들답게 생명 존중에 대한 생각은 안중에도 없어! 당연히 그런 의식을 해야 하니까 일말의 의심조차 없이 산제물을 바쳐오고 있던 거였다!

거기엔 문제의식도 전혀 없고 개선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없었다!!!

그리고 마왕 후보생들에게 지원도 딱히 없다! 그냥 강한 마족이 알아서 마왕이 되겠거니 하는 안일한 생각!

"아, 아니! 엄마! 제가 어떻게! 제가 거기에 나간다구요?! 제가요?!"

"응."

이건 말이 되지 않는다!

무언가 착오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어째서 접니까?!"

절망을 담아 물으니!

"그야 큘스가 무능하니까?"

여공작이 안타깝다는 듯한 얼굴로 그리 말했다!

"아니!"

내가 무능한 것은 사실이다! 마족으로서 내가 무능하지 않다고 말한다면 그건 진짜 개쌉구라일 테니까!

근데 이건 말이 안 돼!

나는 저 남쪽 요새 구석탱이에 박혀 있던 놈이었단 말이다!

그런 녀석을 구태여 찾아내서 그런 의식에 참여를 시킨다고? 하필 내가 걸려? 이 공작령에는 노예로 태어나서 노예로 삶을 마감하는 뭐 그런 녀석들도 존나게 많았다!

확률적으로 봤을 때 나보단 그런 녀석들이 걸리는 게 더 맞지 않나? 잔인한 생각이지만 지금 내가 죽게 생겼는데 어쩌겠나! 그게 맞을 것이다! 무엇보다 알을 낳는 여공작에겐 자식이 엄청나게 많다!

"아들... 미안해. 하지만 아들은 쓸모가 없잖니. 한 명을 솎아내야 한다면 우리 큘스가 제격이란다."

여공작은 굉장히 안타깝다는 얼굴로, 내 얼굴을 부드럽게 만져주면서 그런 터무니없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방금 전까지 날 아들 취급하던 엄마가 할 만한 말이 아니다!

"왜, 왜! 왜 하필 접니까?! 다른 애들은요!"

"어머, 다른 아이들이 대신 죽기를 바라는 거니? 훌륭한 사고방식."

솔직히 네!

내가 죽느니 나 대신 다른 녀석이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인간으로서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나는 이 마족놈들을 도저히 같은 가족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거니와, 병신 취급을 받으면서 산 탓에 정도 없다!

오히려 이 새끼들 죄다 죽어도 싸다고 생각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어. 말했듯이 우리 큘스가 가장 적당하단다."

"제가 적당할 리가 없잖아요! 그래도 이게 나름 중요한 행사 아닙니까? 거기에 저 같은 녀석이 참여한다면 엄마의 체면이 상할 게 분명합니다!"

"응... 그 이야기를 해줘야겠구나."

"예?"

머리를 짚는 여공작.

"사실 아들은 제법 괜찮은 출신이야."

"예?"

"당연히 중요한 축제인 만큼 괜찮은 아이를 보내야 마마의 체면이 산단다. 그런데 그렇다고 대천당과의 전쟁이 한창인 이 때에 이 말도 안 되는 고리타분한 의식에 진짜 괜찮은 아이를 보낼 수도 없고... 자연히."

말투는 다정했지만 내용은 냉정했다.

"가장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그런 쓸모없는 아이를 보내는 게 순리 아니겠니? 마침 의식 참가에 적당한 나이대였고. 그래서 큘스를 선택한 거야. 이렇게 큘스를 떠나보내게 돼서 마마도 가슴이 아파."

"어, 어억. 어어억...!"

진짜 토가 나올 것만 같았다!

마족 여성들은 치명적으로 아름답지만 괴물에 불과할 뿐이다! 자기 자식을 이렇게 내치다니!

그런데 내 출신이 괜찮다고?

그게 맞았다고?

"제, 제가 괜찮은 출신이라구요?"

"응."

확답.

그럼... 내게 뭔가 능력이 있는 건가? 개화하지 못한 그런 능력이? 어머니 여공작이 괜찮은 출신이라고 확답했으니 그럴 확률이 높다.

근데 왜 내 마력은 병신이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여공작이 날 불렀다.

"아들."

"...예."

"엄마는 알을 낳아."

예?

"그것도 혼자서."

"어... 그건 압니다."

가히 암흑의 여신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미모를 갖춘 어머니 여공작님은 서큐버스와 바포메트의 혼혈 출신이며, 잘은 모르겠지만 특수한 능력을 여러 개 지니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알을 낳는 것이다.

어머니 여공작님은 알을 낳을 수 있다. 그것도 혼자서. 남편도 없이 홀몸으로 낳은 알을 부화시켜서 자신의 부하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그 능력을 통해 공작령을 키운 것이겠지. 이해할 수 없지만 마족이니 그러려니 한다.

"보통 밤마다 알을 낳곤 해. 침대 위에서 무릎을 꿇고 있으면 자연히... 알들을 낳게 되지. 아이의 주먹만 한 알들이 계속해서. 어떨 때는 밤새도록 나올 때도 있어."

"..."

이건 좀 낯 뜨거운 이야기인데.

이런 미모를 지닌 존재가 그렇게 알을 낳는다고 생각하니 얼굴을 들 수가 없다.

"아들도 그런 알에서 태어난 존재야."

"제가... 좋은 알에서 나온 겁니까?"

내 물음에 여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의 약한 알들은 부화장으로 보내지지만, 마마니까 알 수 있단다? 알의 등급이 어떤지. 큘스는 제법 괜찮은 알이었어."

근데.

"그래서 따로 모아놨고, 그렇게 공들여서 부화를 시켰는데... 하아. 어찌 된 영문인지 마력이 너무 낮았어. 그래서 조금 키우다가 남쪽 요새로 보낸 거야. 실패작에 시간을 쓸 수는 없잖니? 가끔 그런 아이들이 있단다."

아 씨발.

그럼 단순히 내가 실패작이라서 마력이 낮았던 것인가? 그래서 쓸모없다고 여겨져서 남쪽 요새로 보내져서 키워진 거고? 정말 기구하기 짝이 없어서 말조차 나오질 않는다.

주저앉아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며 울고 싶을 뿐이다.

"아무튼 큘스의 출신은 제법 좋다는 거야. 그런 알에서 나온 아이라면 나름 체면이 서. 그래서 선택된 거고."

"..."

"안타깝지만... 무능한 것은 전부 큘스의 잘못이야. 열심히 노력해서 겨우겨우 말을 익힌 것은 정말 너무나도 기특하지만, 다른 아이들은 전부 2년 정도면 익히잖니?"

진짜 씨발!

환생한 탓에 마계어를 제대로 못 익혀서 이딴 식으로 스노우볼이 굴러간 거였다! 진짜 억울해서 환장하겠네!

"마마로서 가슴이 아프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야. 마계에서 약자는 도태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란다."

여공작은 이런 내 심정을 크게 신경 쓴다는 듯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으나, 그 내용에는 진짜 가차가 없었다!

그럼 난 이제 진짜로 거기 가서 죽게 되는 것인가? 내가 중간계에서 버틸 수 있을 리가 없다! 무조건 죽을 것이 분명해!

이제 비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아이고! 엄마!"

"으, 으응?"

나는 바로 여공작의 발목을 잡고 거기에 볼을 비벼대면서 매달렸다! 추하고 두렵지만 비는 것 말고 달리 할 것이 없다면, 나는 최후의 최후까지 거기에 희망을 걸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죽을 수는 없어!

"가슴이 아프시면! 제발! 제발 어떻게든 해주세요! 아니! 어떻게든 해주실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어머니! 이렇게 죽기는 싫단 말이에요!!!"

"참... 곤란하게... 이미 정해진 일이란다. 깔끔하게 포기하렴. 그래도 마지막으로 엄마와 이야기했잖니? 그 추억이 있다면 괜찮을 거야."

전혀 괜찮지 않아!

"안 괜찮아요! 당신이 그러고도 엄마야! 제발 살려달라고!"

"어머, 상처 되는 말을."

"상처는 지금 제가 진짜로 상처받고 죽게 생겼습니다! 제발! 엄마라면 좀 살려주세요! 제가 잘할게요! 다른 누가 있을 거 아닙니까! 제가 대기만성형이라 초반엔 병신이지만 후반엔 누구 보다 빛난다고요!!!"

빌고 또 빈다!

여공작은 지금 나를 냉정하게 솎아내고 있지만 그렇다고 동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동정조차 하지 않는다면 이런 엄마 놀이를 해줄 일도 없었으니까!

그래도 자기 핏줄이라고 조금 다정하게 대해주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계속해서 빌 것이다! 그 모성애를 자극하기 위해!

"엄마 제발...! 엄마는 피도 눈물도 없는 겁니까! 저 좀 살려주세요! 제가 이렇게 비는데 슬프지도 않습니까!"

"비록 마마가 필요에 따라서 자식들을 쓰고 버리긴 하지만, 그렇다고 슬프지 않은 건 아니에요. 지금도 보렴."

고개를 살짝 드니.

ㅡ스윽.

여공작이 그 가느다랗고 아름다운 손가락으로 자신의 눈가를 훑었다.

"이렇게 울고 있잖니."

"아...!"

울면 좀 살려달라고!

이건 시발 내가 인간 출신이라서 이해를 못 하는 게 맞는 거겠지. 이 마족놈들의 사고방식은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이딴 건 엄마가 아니야...! 으아아아앙!"

애초에 전생에서의 기억이 분명한 나는 이 미친 여자를 내 어머니로 인정을 할 수가 없었다! 내 어머니는 경기도 사시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전업주부 강미경씨란 말이다

결코 이딴 괴물이 아니다!

"마마 더 슬프게 할 거니? 그만 뚝 그치렴. 큘스가 불쌍하니까 이렇게 마지막으로 엄마와 시간을 가질 영광을 부여해준 거잖니?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 마마와 단 한 번도 이야기해보지 못한 채 삶을 마감한단다. 자, 뚝 그치고 일어나렴."

ㅡ화악.

순간 어떤 무형의 힘이 나를 감쌌고, 여공작의 발목에 얼굴을 비벼대던 나는 그 힘에 휩싸여 일어나게 되었다!

마법!

"마마가 안아줄 테니까."

"으아아악!"

그리고 여공작은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안아줬다!

이 미친년 진짜!

"아들. 쓸모가 없다면 도태될 수밖에 없단다. 큘스가 오늘까지 살아있을 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좋은 알 출신이었기 때문이야. 출신이 좋지 않았다면 말을 못 하는 시점에서 진작에 폐기되거나 노예계급으로 강등됐을 거라고 생각해."

이 냉정한 여자에겐 비는 것도 통하지 않는다!

슬퍼할지언정 결정을 번복하는 존재가 아니다!

"크흐으윽...!"

억울하게 죽었는데 또 이렇게 억울하게 죽게 된다고!

"하아... 이걸 어쩐담. 이렇게 유악한 성격이라니. 너무 특이해서 뭐라고 말을 할 수가..."

"흐윽, 흐으윽...!"

"그래도 이 마마의 아들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렴?"

"네...?"

"인간계로 내려가서 어느 정도 두각을 드러낸다면 엄마가 몰래 빼내 줄 수도 있으니까."

뭐?

두각이라고?

빼내 줘?

"엄마는 쓸모있는 아이는 허투루 안 쓴단다. 만약 큘스가 중간계에서 무언가 재능을 보인다면."

"살려주시는 겁니까...?"

"응. 그렇게 해줄게. 그러니까 뚝 그치자?"

"..."

그렇다면.

"진짜예요?"

"마마는 거짓말 안 해."

ㅡ두근.

분노와 슬픔과 긴장으로 미칠 듯이 뜨거워졌던 심장이 가라앉는다. 빼내 준다. 살려준다. 그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살기 위한 판단. 가능성은 낮겠지만.

방법이 없다면... 발버둥을 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렇다면 발버둥을 쳐야겠지.

"뚝 그쳤네?"

"...예."

"잘했어. 상으로 마마가 뽀뽀해줄게."

ㅡ쪼옥.

여공작의 입술이 내 이마에 닿았다.

"이제 힘낼 수 있지? 그럼 준비하렴. 안내해주라는 지시를 내릴 테니까, 강림제까지 잘 지내도록 해."

그것으로 알현 시간이 끝났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