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마왕 생존기-6화 (6/544)

〈 6화 〉 마계 # 5

* * *

* * *

"정말 특이한 아이네?"

저런 특이한 성격을 지닌 아이라니.

마계의 위대한 여공작인 케라시스는 여태까지 수많은 알들을 낳아왔고, 역시나 수많은 자식들을 거느리고 있었지만, 저런 느낌의 아이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자식들은 전부 자신을 맹목적으로 추종한다.

마계의 다섯 공작. 그 일석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전부 자신을 위해서 목숨까지 던져버리는 자식들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여공작 케라시스는 자식들이 없다고 해도 강하다. 마계의 최강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강하기만 해서는 마계를 다섯 등분 해 지배하는 공작이 될 수 없다.

절대적인 힘과 더불어, 그 힘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흐응."

자식들의 맹목적인 충성.

큘스라는 아이에게서는 그런 충성심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무슨 일일까? 실패작이라서 저렇게 되었을까?

무엇보다.

"어디에서 저런 인격이 형성되었을까?"

실로 이질적인 성격이다.

"궁금하긴 하지만."

그것이 위대한 여공작의 호기심을 자극했으나.

"사랑하는 자식에게 심한 짓을 할 수는 없지."

딱히 잡아서 심문을 하거나 해부를 해 조사할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다. 그래도 사랑스러운 아들이지 않은가. 방금 처음 만난 참이지만 그 관계성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마침 즐겁게 대화한 참이기도 했으니까. 어차피 의식에 참여시켜야 하니 그런 짓을 하지는 않는다.

"잘 할 수 있으려나?"

중간계에서 죽어갈 아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여공작은 자신의 가슴을 부여잡으면서 그 슬픔을 느껴보았다. 워낙 오랫동안 살아온 탓에 감정이 옅어졌지만... 역시 아프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가엾기도 하지."

오늘 처음 보는 얼굴이고, 정 따위는 없지만 이렇게 자식을 보내는데 마음이 아프지 않을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것뿐이다.

자식을 사랑한다. 자식이 죽는 것이 안타깝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결정을 번복하지는 않는다.

지금도 자신의 수많은 자식들 중 노예계급에 해당되는 아이들이 혹독하게 노동을 하고 있으나, 여공작은 그들을 구제해주지 않는다. 노예로서 살아가는 자식들을 떠올리면 역시 가슴이 아프지만 그 이상의 감정은 없다.

마찬가지로 지금 수많은 자식들이 마계 최전선에서 대천당의 천사들과 처절하게 싸우며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지만, 어쩔 수 없다.

해야 할 일일 뿐이다.

여공작에게 있어서 자식이라는 것들은 그런 존재였다.

쓸모에 따라 사용하고, 자신의 명령을 수행하며 살아간 끝에 최후를 맞이하는 존재. 안타까움은 느끼고 있지만 그런 것들을 결코 멈추지는 않는다.

물론 여공작 또한 자신의 이런 심리상태에 대해서 조금의 의아함을 느끼고 있기는 하다.

"진짜 자식을 낳는다면 조금 달라질까?"

시선을 내려, 자신의 아랫배를 바라본다.

ㅡ스윽.

그리고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흐응..."

실제로 다른 존재의 씨를 받아서 자식을 잉태한다면... 조금 다른 것이 느껴지지 않을까? 하지만 그것이 실현된 적은 없었다. 여공작 케라시스는 여지껏 단 한 번도 다른 수컷의 씨를 받아본 적이 없었으니까.

"강림제."

지금에 이르러 그 어떤 마족들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고리타분한 의식. 큰 의미도 없이 다른 목적으로만 사용되는 의식.

과거, 대마왕 오즈발카 팔로스는 단신으로 중간계를 침공하여 그 세계를 굴복시켰다. 지배했다. 군림했다.

중간계를 차지한 마족들은 그 어느 때보다 찬란했으며, 강력했다.

마족들은 그런 존재가 다시 나타나길 기원하며 강림제를 열었고, 의식을 실시했다.

"..."

몸이 달아오른다.

"하아... 하아..."

그런 위대한 존재가 다시 나타날 수 있을까?

만일 진짜로 중간계에 마왕이 강림한다면... 그래. 그런 마족이라면 자신의 남편으로 삼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후후후."

그리 생각하니 조금 부끄러워진다.

그녀 역시 마족이다. 잔혹하고 강력하고 냉혹한 마계의 군주지만, 대마왕이라는 말을 들으면. 가슴 속 깊은 곳이 요동침을 느낀다. 아주 오래전. 소녀였을 무렵부터 대마왕이라는 것을 동경했으니까.

"하아..."

물론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수많은 강림제가 진행될 동안 제대로 성과를 낸 마족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강림제가 고리타분한 의식이 된 것이었다. 성과가 없으면 자연스레 열화될 뿐. 지금도 마왕 강림을 기원하기보다는 다른 목적으로 쓰이지 않는가.

"마계 역시 열화되겠지."

신성천사왕이라는 절대 군주 아래 완전히 통합된 대천당의 천사들과, 대마왕 사후 분열되어 동포들끼리 이전투구를 벌이는 마족들.

마계가 존속되기 위해선 마왕이 탄생해야만 한다.

모두가 그것을 알고 있지만, 정작 그 마왕을 강림시키겠다는 의식이 그런 상태이니.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오늘은 조금 일찍 쉴까."

ㅡ화르륵.

여공작이 허공에 손짓하자 불길한 게이트가 생성되었다. 왕좌에서 일어난 여공작은 바로 게이트를 넘어 자신의 침실로 향했다.

ㅡ어둠만이 내려앉아 있는 공간.

어느샌가 여공작은 나체가 되어 있었다.

터질 듯 부풀어 오른 젖가슴과 잘록한 허리. 그에 대비되는 커다란 골반과 엉덩이는 요염했고, 하나같이 모성애가 넘쳐 흐를 듯이 육감적이었다. 보는 이의 정욕과 욕정을 미칠듯이 끓어오르게 하는 몸매는, 그녀가 수많은 자식들의 어미라는 것을 증명한다.

암흑조차도 여공작의 미모를 가릴 수는 없었다. 여공작은 자신의 침대 위로 올라가 등받이에 등을 기댔고, 다리를 살짝 벌렸다.

"하아... 하아... 읏, 으으응..."

알을 낳는 시간.

잔혹한 마계 여공작의 유일한 휴식 시간이다.

* * *

"미친년...!"

절망!

"개싸이코년!"

욕지거리밖에 나오지 않는다!

"잔인하다...! 그리고 잔혹하다! 나를 무슨 애완동물 안락사시키러 보내는 것 같은 감각으로 처분하려 하고 있다!"

여공작은 날 보면서 다정한 어조로 안타깝다느니 마음이 아프다느니 하면서 슬프다는 듯 진심으로 말을 했지만 그게 바로 싸이코스러운 면모였다!

세상 어느 엄마가 자식을 다정한 말로 다독이면서 죽이려고 하는가!

미친 새끼들!

정말로 미쳤다!

안 그래도 미친 마족 새끼들인데, 그중에서 최고 권력을 지니고 있는 존재라면 당연히 미쳐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마족놈들...!"

처음 환생했을 때부터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난 너희들을 증오해!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다!

진짜 뒤졌다! 진짜 뒤졌단 말이다!

"크흑...!"

구라 안치고 진짜로 쥐뿔배기도 없는 내가 중간계로 내려가서 팔자에도 없던 마왕질을 하게 생겼다!

차라리 씨발 친절하게 대해주지나 말지, 엄마인 척은 다 하면서 그렇게 냉정한 말을 쏟아낼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다! 그게 더 상처가 된단 말이다!!!

"사람살려...!"

도망칠 수는 없다. 내가 그래도 마계 생활을 10년 가까이 하지 않았는가. 도망 따윈 불가능이다. 꼼짝없이 중간계로 내려가야만 한다!

억울해서 미칠 것 같지만, 원래 약자의 운명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겠지. 결코 거스를 수 없다.

"어떻게든 해야 해."

그래도.

마지막으로 희망적인 말을 들었다.

"성과를 내면... 돌아올 수 있다."

여공작은 분명 그렇게 말했다. 중간계로 내려간 내가 어느 정도 싹수를 보인다면 몰래 다시 구해주겠다고.

솔직히 그렇게 구해져서 돌아온 곳이 이 미친 마계라는 게 좀 그렇긴 하지만, 여기서도 나름 10년 가까이 지내다 보니까 그래도 마계가 내 집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그 왜. 군대 있을 때 야간행군하다가 돌아올 때 막사 보이기 시작하면 드디어 집에 돌아왔다,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가. 딱 그런 감각이었다.

중간계에서 죽느니 마계에서 지내는 게 백배는 나을 것이다. 어차피 난 마족이니까. 물고기가 물에서 살듯 마족은 마계에서 살아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선... 뭐가 됐든 살아남아야 한다!"

중간계로 내려가서 마왕이든 뭐든 최대한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근데 솔직히 마왕은 개오바인 것 같은데. 마소대장이나 마중대장이면 몰라, 마왕까지 올라가는 것은 너무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하는 수밖에 없어."

생존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야 할 것이다.

"정보를."

뭐가 됐든 정보를 모아야 한다.

그것만이 살길이다.

절망에 빠져 징징거리기만 해선 안 돼. 그럼 죽음 확정이다. 이렇게 죽을 순 없단 말이다...! 별 좆도 아닌 일로 억울하게 죽었다가 환생했는데 이따구로 죽을 순 없지!

"...!"

다행히 이 궁전에서 지내는 것을 허락받은 상태다. 의식에 참가한다는 것이 확정된 한, 여공작의 권위를 빌릴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뭘 물어본다면 마지못해 대답해줄 가능성이 크다.

"근데 마왕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 거지?"

진짜 하나도 모르고 있는 상태다.

백지상태란 말이다.

그러니 우선 그것부터 좀 알아봐야 할 것이다. 마왕강림제는 어떤식으로 굴러가며, 마왕이라고 인정받는 기준은 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나 마족 큘스는 대체 뭘 해야 마력량을 늘리고, 전투력을 올릴 수 있는가...

"거기."

그리 생각하고 있으니 누가 날 불렀다.

역시나 멋들어진 뿔을 지닌 여성 마족. 순간 아름다움을 느꼈으나, 방금 전 여공작을 알현하고 온 탓에 그냥 평범해 보였다.

진짜... 아름답기는 했다.

"어머니 여공작님의 명령을 받았다. 안내해주도록 하지."

"예."

일단 안내를 해주려고 온 것인가?

따라가 보도록 하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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