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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마왕 생존기-10화 (10/544)

〈 10화 〉 마계 # 9

* * *

"자! 이건 기초 마력 입문서야! 중하위 혈족 어린이들이 생후 3년 차 정도에 배우는 거!"

카르티가 내게 책 한 권을 내밀었다.

"어!"

이거! 본 기억이 있다! 옛날에 봤던 책 중에 하나다!

나를 제외한 다른 마족 어린이들은 이걸 보고 뭔가를 막 하곤 했었다. 이게 바로 마력 입문서였군.

진짜 오랜만에 본다.

다른 애들이 이걸 보고 있을 때부터 난 따돌림을 당했다...! 마족 애새끼들이 서로 즐겁게 의사소통을 하고 있을 때 난 머릿속으로 들은 단어들이 뭔지 끊임없이 추론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구와 한국에는 없는 개념이 너무 많아서 당최 단어나 정확한 뜻을 대조하고 비교하고 맞히는 게 정말 힘들었지.

"근데 3년 차?"

"큘스오빠는 이런 걸로 자존심 상해하면 안 돼. 실제로 그 정도 수준이니까."

팔짱을 낀 카르티가 가르치듯이 말했다.

그래. 카르티의 말이 맞다. 항상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냉정하게 파악하고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을 테니.

"알고 있습니다, 스승님! 부디 전수해주세요! 무슨 일이 있어도 익히고야 말겠습니다!"

"좋은 의욕이야!"

카르티는 몹시 기분이 좋아 보였다.

"역시 책을 좋아하는 마족들은 무언가를 배우는 것도 좋아한다니까! 그럼 펼쳐봐!"

"네!"

바로 책을 펼치고 첫 페이지부터 읽어 내려갔다.

일단.

"오."

읽을 수 있다. 지금 나는 읽고 듣고 쓰는 거 전부 다 문제가 없으니까. 말머리에는 이 책의 개요와 집필 목적이 적혀 있었고, 쭉 훑어본 다음에 즉시 스킵하고 1장으로 향했다.

"이건?"

그리고 등장하는 마족 신체 해부도와.

알 수 없는 마법적인 그림들.

이게 기초라고?

"우리 혈족에 맞춰진 책이야. 전부 어머니 여공작님의 자식들만이 익힐 수 있지. 그건 오빠도 마찬가지일 거고. 일단 실습부터 할게? 여기 앉아줘."

"네."

자리에 앉고.

"몸에 힘을 빼고. 눈을 감아."

시키는 대로 한다.

"그 상태로 체내의 마력을 느끼면 돼."

"예? 그걸 어떻게 하죠?"

"그냥 해."

"..."

일단 해보았다.

나도 일단 지식으로는 내 몸에 마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으니까. 근데 도통 쓰는 법을 모른다. 느낌상 있다는 건 알겠는데 뭐 써보려고 해도 잘 모르겠더라.

그래서 근력 운동만 했지.

ㅡ...

잠시 집중해서 해왔던 짓을 다시 해봤다.

물론 뭐가 느껴지진 않는다.

"아무것도... 안 느껴져. 사실 나도 느껴보려고 혼자서 여러 번 시도해 봤어. 다 실패했지만."

"처음에는 다 어려워. 무엇보다 큘스오빠는 지닌 마력이 너무 작아서 느끼는 것조차도 어렵겠지. 원래 혼자서는 힘든 법이야."

뭐라고 물어보려던 찰나, 카르티가 위풍당당하게 소리쳤다.

"하지만 그러니까 교사가 있고 교육 체계라는 게 있는 법! 오늘은 카르티가 오빠의 교사가 되어줄게!"

"오오!"

"혼자서 하면 어렵지만, 카르티처럼 똑똑한 교사가 주변에서 도와주면 생각보다 쉽게 벽을 넘을 수가 있어! 특히나 이런 입문 단계에서는!"

오오오오오오!

원래 뉴비가 생으로 헤딩하면서 정보를 찾는 것보다 고인물이 알려주는 게 더 빠르고 정확한 법이었다!

"이렇게 체계적일 수가 있다니!"

"당연히 체계적이지. 대부분의 혈족들은 어머니 여공작님의 병사로서 쓰이니까. 전투를 위한 지식을 교육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야."

여기서 효율주의가.

"가만히 있어. 카르티가 도와줄 테니까."

"네!"

바로 카르티가 내 뒤로 가서 내 등판에 손을 대었다.

그러고 있으니.

ㅡ파앗!

무언가!

무언가가...!

"으, 크으어어...!"

무언가가 느껴진다!

"내, 내 안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다!"

등을 통해 들어와서 꿈틀거리고 있어!

모르긴 몰라도 지금 이 감각을 지구인들 중 누구 한 명한테 갑작스럽게 경험시켜준다면, 분명 내 몸에 도청 장치가 있다면 깽판을 칠 것이 분명했다!

"어억!"

그렇게 들어온 그 강렬한 기운이 미꾸라지처럼 꼬물대다가 내 몸 안쪽의 어딘가를 자극했다. 그것으로, 나는 그곳에 내 마력이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심장 쪽이다.

ㅡ스윽.

심장을 거친 기운이 내 마력을 이동시킨다. 그 감각이 제대로 전해져왔다. 바로 이것이 마력을 운용하는 감각인가.

"느껴져? 오빠의 마력이?"

"움직이고 있어..."

"그 감각을 잘 기억해. 이런 느낌으로 마력을 운용하는 거야. 앞으로는 이렇게 계속 사용하면서 감각을 익히면 돼. 그것이 1단계."

ㅡ스윽.

그리고 카르티가 내 등에서 손을 떼었다. 동시에 내 안을 휩쓸던 기운이 사라졌다.

"이얍!"

동시에 재빠르게 방금의 감각을 떠올리면서 체내의 마력을 느꼈고, 그것이 움직이는 것을 추적하면서 직접 운용을 실시해 보았다... 뭔가! 뭔가 답답하고 당장은 안되지만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가위 눌렀을 때 몸 움직이려고 하면 잘 안 되는데 될락 말락은 하는 그 느낌!

"감 잡았어! 나 감 잡았다! 카르티! 오빠 감 잡았어!"

"후후후, 이해가 빠르네. 감을 익혔다면 책은 알아서 해석할 수 있을 거야."

"고마워!!!"

"익숙해졌으면 소모하는 연습을 해. 호흡에 신경 쓰고... 이렇게. 이것도 도와줄게."

그렇게 카르티가 나를 지도해줬다.

나는 나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수업에 집중했다. 지금 카르티가 알려주는 것들은 기초 중의 기초. 마족이라면 노예 계급이 아닌 이상 누구나 다 하는 것이 정상인 수준의 기술이었지만, 내게는 그 무엇보다도 빛나는 희망의 끈이었다.

이걸 익혀야 내가 살 수 있다...!

익히기만 한다면 교사 없이도 혼자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내가 혼자 운동해서 체력을 기르던 것처럼! 그거면 돼!

* * *

"하아...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 이만 가봐야 해서."

"가는 거야?"

"여러 가지 일이 있어. 카르티에게는."

"흐흐흐, 머리 좋은 만큼 하는 일도 많겠지. 진짜 고맙다, 카르티! 덕분에 엄청 좋아졌어!"

"아깐 불쌍해 보였는데 지금은 즐거워 보이네."

"네 덕분이야!"

"후후후, 응. 카르티의 은혜를 잊으면 안 돼. 그럼 내일도 도서관으로 와. 아! 그리고 숙제 내줄게! 카르티가 선정한!"

"죽기 직전에 꼭 봐야 할 책!"

"응!"

큰 소리로 화답해주니 카르티가 크게 기뻐하며 대답했다. 정말 귀엽다니까. 어떻게 그 비인간적인 여공작한테서 이런 귀여운 아이가 나왔을까.

"그중에 하나 골라서 읽은 다음에 독후감 써와! 그러면 카르티가 또 다른 거 알려줄게!"

"진짜 기대하고 있어라. 전문가 논평하듯이 써올 테니까."

순간.

카르티의 고개가 갸웃했다.

"논평? 큘스오빠 그런 말을 알아?"

"어? 어. 알지. 아예 안 쓰는 말도 아닌데. 들은 적이 있어."

"그래? 아무튼! 내일 또 봐!"

인사를 한 카르티가 사역마들에게 정리를 명령했고, 나는 배웅을 받으면서 먼저 도서관을 나섰다.

"아."

진짜 10년 만에 착한 사람이랑 대화를 했다. 그 사실이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느껴졌다... 미래를 떠올리면 불안해지지만, 지금 그거 생각할 짬이 없어.

"오늘 배운 거 복기부터 시작한다."

오늘의 성취를 최대한 복기하여 내 것으로 만든다. 거기에 내 열정을 쏟아부어야만 한다. 그렇게 해야 난 마족 어린아이 수준에서 벗어날 수가 있는 것이다.

"정해둔 만큼 딱 하고 카르티가 준 소설책들 읽어보자."

지금 내 마력을 대충 3이라고 가정을 해보자. 그 3의 마력을 최대한 움직이고, 소모한다. 그리고 마력 입문서 책 보면서 공부해야지.

"후우."

바로 내 방으로 향했다.

"아니! 저건 설마 산제물이 아닌가!"

"우리 공작령에서 고르고 고른 최고의 쓰레기라네!"

"크하하하! 거기! 큘스라고 했나! 빨리 대마왕이 되어서 중간계를 정복해주게나!"

물론 가는 길에는 나를 알아보고 조롱과 비웃음을 보내오는 마족들이 있었지만, 전부 적당히만 상대해줬다. 지금 저거에 신경 쓸 짬이 없다.

"이 개불알털 같은 마족놈의 새끼들...! 내가 시발 가서 마왕만 되면 늬들은 씨발거 싹다 뒤졌다!"

할 일이나 하자!

* * *

"정말 특이한 오빠라니까."

산제물에게 그다지 큰 관심은 없었지만 막상 직접 보고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제법 흥미로웠다.

분명 상위급 알에서 태어난 혈족이다.

어머니 여공작님께서 낳으신 상위급 알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그 라인대에서 탄생한 남성 혈족들은 대부분이 비슷한 성격과 능력을 지니고 있다.

공격적이고, 폭력적이어야 한다. 대부분의 남성 혈족들은 전사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존재하니까.

"이 카르티에게 동정심을 느끼게 하다니."

그에 비해 큘스는 몹시도 이질적이었다. 비굴한 부분이 있는 것은 알겠지만, 다른 것은... 역시 특이하다.

"후후후, 독후감 안 써오면 혼내야지."

그렇게 잠시 큘스에 대한 것을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ㅡ끼익.

도서관의 문이 열리고, 굉장히 기이한 행색을 한 괴물이 양팔로 걸어들어왔다.

ㅡ투박투박.

양팔로 걸어들어온 이유는 순전히 다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아니, 다리가 없는 것뿐만이 아니라 하반신 자체가 없다.

아귀의 그것처럼 커다란 입이 달려있는 둥근 몸통에, 기형적으로 부풀어 오른 근육질의 팔뚝만이 달려있을 뿐인 존재.

사역마였다.

"까아아아아악! 까아아아아악! 카르티님! 카르티님!"

기괴한 사역마에겐 어린 천사의 성대가 부착되어 있었다.

"시끄러워. 포로들은?"

"포로오­들! 포로오­들! 심문 종료! 심문 종료!"

"수고했네. 요약 보고 해봐."

"대천당! 대천당에서 위치를 알아낸 것 같음! 초룡신수 투입계획! 천사 포로에게서 획득!"

"뭣."

"천사 포로에게서 획득!천사 포로에게서 획득!"

"하아... 아니길 바랬는데."

이마를 짚은 카르티가 한숨을 쉬었다.

"무능한 놈들. 이래서 오즈발카 녀석들이랑 일하기 싫었는데 말이야. 거기서 박살 나면 어쩌자는 거야?"

"명령 대기 중! 명령 대기 중!"

"...근데 진짜야? 카르티한테 거짓 보고하기 있기 없기?"

"거짓말 못하아암! 거짓말 못하아아암! 명령 대기 중! 명령 대기 중!"

"막아. 시간이라도 벌어야지."

"까아아아악! 방어 명령! 방어 명령!"

"오즈발카 놈들은 꼭 투입시켜 놓고."

"오즈발카 놈들! 오즈발카 놈들!"

"이만 가봐."

카르티가 손짓하자 꽥꽥 소리를 질러대던 사역마가 돌아섰다.

ㅡ쭈우욱.

사악마의 입안에서 혀대신 뿜어져 나온 천사의 팔뚝이 도서관의 문고리를 잡아 비틀었다.

"오오오오즈­발카 놈들! 오오오오즈­발카 놈들!"

"시끄럽다니까..."

사역마가 떠났고, 카르티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하아."

역시 독서만이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줄 뿐이다. 다시 책을 쌓아서 새로운 집을 만들어볼까? 책장에 꽂힌 책들을 모두 새로운 규칙으로 다시 정리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독서라.

"흐응, 큘스오빠 살고 싶다고 했는데."

대천당의 초룡신수가 투입된다면 당장은 시간 벌기 말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이제 천사들도 마족들의 강림 의식을 흉내낼 수 있게 되겠지. 그리 된다면 큘스오빠가 몹시 곤란해지지 않을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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