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마왕 생존기-12화 (12/544)

〈 12화 〉 마계 # 11

* * *

궁전에서의 시간이 흘러간다.

매일매일 도서관에 출첵을 하면서 카르티에게 마족으로서의 가장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지식들을 교육받았다.

일개 개병신에 불과했던 내게 이렇게나 신경을 써주다니. 카르티는 천사가 틀림이 없었다.

근데 마계에서 보는 천사들은 그냥 미친놈들이더라. 들어보면 우월주의에 빠진 극렬 파시스트 놈들이라는 말이 떠오르는데, 솔직히 직접 본 적이 없으니 잘은 모르겠다.

"그런데 카르티. 우리가 일단 그 남매라고 할 수 있잖아?"

"명목상으로는 그렇지만, 사실 남매까진 아니야."

"뭐?"

"그냥 혈족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맞을걸?"

"명목상이라고?"

명목이라니?

"우리 같은 엄마가 낳은 알에서 태어난 거 아니었어?"

"응, 그거 말인데."

카르티가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사실 우리들은 어머니 여공작님과 마족 유전자 일치율이 극단적으로 낮아. 도저히 자식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먼 소리야 이게."

유전자 일치율이 낮다고?

여공작 케라시스는 혼자서 알을 낳는다. 그 알에서 우리 혈족들이 부화한다. 그 과정에 다른 유전자의 개입은 없다.

순전히 여공작이 혼자 낳은 자식들이 아닌가... 아니. 근데 이건 또 모르는 일이지.

여긴 내가 살던 지구가 아니다. 그쪽 상식을 들먹이면 안 돼. 여긴 내가 모르는 세상이고, 마계였다. 마족과 마력이 존재하는 세상이다.

당연히 상식이 다르다.

"카르티 생각에, 혈족들은 어머니 여공작님의 진짜 자식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마력적인 작용으로 자궁에서 만들어진 존재일 거야."

"마력적인 작용으로 자궁에서 만들어진 존재? 그거랑 그냥 자식이 무슨 차이인데?"

"글쎄? 설명하기 어려워. 무엇보다 혈족들은 어머니 여공작님과 같은 종족이라고 할 수조차 없잖아?"

종족이 다르다?

"혈족에겐 알을 낳는 능력이 없어. 종족부터가 다른 거야."

"아."

그건 알고 있다. 알을 낳을 수 있는 것은 여공작 뿐이다. 다른 혈족들은 전부 평범하게 아이를 낳는다.

와 그러네.

그게 이상하긴 했어.

아예 다른 종족인 건가?

"종족이 다른데 진짜 자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건... 그렇네. 근데 카르티 같이 강한 혈족도 완전히 유전자가 다른 건가?"

"응?"

"아니. 카르티 아름답잖아. 어머니 여공작님이랑 많이 닮았는데."

실제로 카르티는 아름다웠다.

나보다 어리지만 요사스러운 미모를 지니고 있지.

설마 능력치 따라 유전자 일치도가 높아진다든지? 카르티같은 강한 상위 혈족은 나름 자식에 근접해있지만 저기 노예계급의 떨거지들은 아예 다른, 뭐 그런 가설이 머릿속에서 세워졌다.

"으, 으응..."

내 말에 카르티가 기묘한 눈초리를 보내왔다.

왜?

"큘스오빠... 카르티 같은 어린 마족한테 아름답다고 하는 거야?"

"아니! 이상한 뜻이 아니라 객관적인 사실을 말한 거지! 그런 표정 짓지 마! 난 이상한 마족이 아니라고!"

"뭐, 카르티도 자세한 것은 몰라."

모르는 건가.

"그런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은 오직 어머니 여공작님 뿐이고, 그분은 가장 위대한 마족이니까. 그분의 비밀을 알아내는 건 카르티한테도 어려워."

그래도 나이 치곤 좀 많이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럼 우린 결국 뭐야? 생명체나 마족인 건 맞는데 인공물인 건가?"

"인공물? 그건 아니야. 비교를 해보자면... 마계 마도학자들이 만들어내는 호문쿨루스들? 그것들이 바로 인공물이야. 혈족이랑 비슷한 점은 있지만 완전히 달라."

드럽게 어렵구만.

"그런가."

나는 그냥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내 상식이랑 너무 많이 달라서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냥 대충 자식 비슷하지만 자식은 아닌 존재라고 생각하면 되겠지. 따지고 보면 내가 여공작의 유전자를 물려받았을 경우, 이렇게 병신일 수가 없다. 마계 최강자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는데 병신일 리가.

"뭐 카르티 말이 맞겠지."

여공작 케라시스는 상위 혈족 뿐만이 아니라 노예계급 혈족의 알까지 낳을 수 있으니까. 다양한 알이 나오는데 유전자쯤이야.

"근데 그러면 어머니 여공작님 말고 다른 말로 불러야 하는 거 아냐? 뭐 대모님? 혈맹주님? 그런 말 있잖아."

"음... 어머니 여공작님한테 그런 식으로 선 긋는 말 하면 별로 좋은 꼴 못 볼 텐데."

"아."

그 비슷한 말 들은 적 있다.

아무튼 자식으로는 생각하고 있다... 그런 거냐? 어렵다. 마족의 세계는.

"아무튼 큘스오빠. 이제 곧 강림제 시작이야. 공부할 시간도 모자라."

"크윽...!"

곧 강림제가 시작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공부뿐. 강림제까지 남은 시간 전부를 공부로 불태우도록 하자. 그거 안 하면 내 몸이 불타.

* * *

결국.

"깨우쳤다! 기초 마력 운용법! 또한 깨우쳤다! 기초 흑마법!"

카르티의 열렬한 지도로 인해, 나는 강림제가 시작하기 거의 직전에 기초 시리즈를 뗄 수가 있게 되었다!

"축하해!"

ㅡ퍼엉!

카르티가 박수를 치자 작고 화려한 폭발들이 발생한다.

"이제 큘스오빠는 마족으로 치면 한 6살 정도야!"

"오우! 6살이라니! 너무 멋진걸! 근데 혈족 노예계급이랑 비교해 보면?"

"조금 나은 수준!"

진짜 여기까지 익혔는데 노예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라니. 마족들 평범컷은 진짜 빡쎈 것 같다. 사실 강한 종족이라고 했으니까. 평범한 마족을 평범한 인간이랑 비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근데 난 인간이랑 비교할 만 해.

쥐뿔만 한 마력이 좀 있고 기초 흑마법에 대한 지식이 머릿속에 있다는 것만 빼면 진짜 인간이랑 다를 게 없으니까!

하지만!

바꿔말하자면 평범한 인간보다는 낫다는 것!

그렇다면 난 살아남을 자신이 있어!

그렇게 나 자신을 믿고 세뇌한다!

"카르티! 고마워! 전부 다 네 덕분이다! 카르티 네가 없었다면 난 혼자서 헤딩만 하다가 결국 실패해 좌절했겠지! 네 덕분에 살았다! 정말 고마워!"

오늘까지 날 지도해준 카르티.

ㅡ화악!

나는 카르티에게 큰절을 올렸다.

어른이 꼬맹이한테 큰절을 올리는 상황. 너무나도 비인간적이지만 난 그딴 건 전혀 신경 쓰지 않아. 카르티는 내 은인이다. 난 은인에게 절조차 하지 못하는 버러지가 아니야.

"큘스오빠. 기뻐하긴 일러. 솔직히 시간도 없고 큘스오빠 배우는 속도도 느려서 지금까지 기초 수준밖에 못 알려줬어."

"괜찮아!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해!"

지금의 내겐 자신감이 있다!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 정도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큰 오산이야."

"음?"

"큘스오빠는 공작령 바깥으로 나가본 적이 없어서 현실을 몰라."

"어, 어어?"

"결국 죽게 될걸."

뭐.

왜 갑자기 이런 냉혹한 말을...?

카르티의 어조는 평소랑 비슷했다.

당연한 것을 말하는 듯한 목소리.

"아, 아니. 나도 다 알지. 그런 냉혹한 현실쯤은. 그래도 그냥 희망을 다지려고 말하는 거라고. 시작부터 난 어차피 죽어. 무조건 안 돼. 난 병신. 이러고 있으면 그냥 끝나는 거라니까? 마음이라도 좋게 먹어야지."

그래야지만 헤쳐 나갈 수가 있다.

인간은 정신으로 육체를 조종해서 움직이는 존재. 마음이 꺾여있다면 시작조차 하지 못한다. 그래서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하는 것이다.

"오빠... 카르티가 추천해준 동화에서 봤잖아."

하지만 카르티는 가엾은 것을 보는 듯한 눈초리로 대답했다.

"섣부른 희망은 더 큰 절망을 불러."

"아니 카르티! 오늘까지 잘 가르쳐준 네가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 날 도와준 카르티가 그렇게 말하기야?!"

왜 나한테 절망을!

희망적인 말을 해달라고!

"카르티는 큘스오빠가 가엾어서 도와줬을 뿐이야. 죽음이 확정된 채 발버둥 쳐야 하는 운명이잖아. 그래서 도와줬어. 그리고 그런 가엾은 큘스오빠한테 거짓된 말 같은 건 못해. 그건 너무하니까."

아냐...!

너무하지 않아!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그런 거라고!

"이 현실은 카르티처럼 상냥하지 않아... 냉혹하기 그지없어. 큘스오빠는 희망을 가진 채 죽어버릴 확률이 높아."

그 말에 난 오줌을 지려버릴 것만 같았다.

"카르티...! 내 일생일대의 은인인 네가 그렇게 말해버리면!"

ㅡ털썩.

다리의 힘이 풀린다.

"나의 마음이 부서져!"

부서진다!

나는 땅을 치면서 오열했다...! 너무 잔인한 말이야!

"제발 나의 작고 소중한 희망을 빼앗지 말아줘!"

행운의 파랑새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존재가 너무 차가운 말을 하고 있었다!

"빈말이라도 좋아... 내게 따뜻한 말을! 나는 죽을 때 죽더라도 마지막으로 들었던 그 따뜻한 말을 가슴에 품은 채 죽을 테니까! 그러니 내게 따뜻한 격려의 말을 해줘...!"

눈물이!!!

터져 나온다!!!

"후, 후후훗... 아, 으, 으읏...! 하, 하아... 훗, 후후후!"

돌연 들려오는 웃음소리.

"카르티...?"

"하아... 큘스오빠는 정말 특이한 것 같아. 하는 행동이나 언동이 전부."

ㅡ처억.

그리 말한 카르티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알았어! 그럼 카르티가 비장의 한 수를 가르쳐줄게! 자리에서 일어나! 큘스오빠!"

그리고는 당당하게 소리친다.

즐거워 보이는 얼굴로.

"비장의 한수라고...?"

"응!"

"오."

오오.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희망!"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마침내 마왕강림제가 시작되었다.

* * *

축제 분위기.

ㅡ캬하하하하하핫!

ㅡ흐하하하하하하하하!

ㅡ우핫! 우하하하핫!

ㅡ너어무 즐거워!

ㅡ대마왕 만세!

ㅡ크하하하!

ㅡ오엌! 오어어어엌! 오어어어어엌!!!

궁전의 복도는 물론이고 저 창문 바깥으로 보이는 수도의 모든 거리에서 웃음꽃이 만개한 상태였다.

들려오는 마족들의 웃음소리는 전부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겠지. 이 씨발럼들. 마왕강림제는 산제물로 정해진 당사자들 빼면 진짜 다 즐거운 축제니까!

"놀고 자빠졌다! 난 불안해서 미쳐 떨고 있는데! 다들 놀고 자빠졌어! 이 씨버랄 마족 새끼들!"

알에서 태어난 게 아니라 정상적으로 태어난 것 같은 혈족의 어린 마족들이 엄마아빠 마족의 손을 잡은 채 대마왕 사탕을 핥짝이고, 빵집에서는 대마왕 쿠키나 대마왕 브레드를 판매하고 있다!

심지어 포장마차에서는 명물 대마왕 주스를 팔고 있어!

"나도 먹고 싶다!"

시발 이 세상에서 나만 불안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고립된 것 같은 이 기분.

정말 억울하군.

오늘까지 미친 듯이 준비했고, 카르티한테 이런저런 것들을 잘 배웠지만, 그래도 불안감을 지울 수는 없다. 이제 곧 궁전의 하인들이 날 잡으러 올 것이다. 그러면 의식 준비하고 의식 진행하고 중간계로 사출 뿅이다.

"하아."

불안해 미칠 것 같다.

확 도망쳐버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ㅡ끼익.

문이 열렸다!

드디어 날 잡으러 온 것인가!

망태 할아버지에게 쫓기던 아이들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쿵쾅쿵쾅 뛰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문 쪽을 바라보았다!

"큘스오빠! 이제 의식 준비하러 갈 시간이야!"

"어? 카르티?"

"카르티가 안내해줄게! 카르티는 다 아니까!"

"크으!"

그래.

마지막으로 카르티 얼굴 봤으면 된 거지.

"후우. 그럼 출발하자, 카르티."

"따라와!"

바로 묵직한 마계 코트를 둘렀다.

정든 마계도 이제 안녕이다... 이 시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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