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 마왕 큘스, 강림하다! # 4
* * *
ㅡ빙글빙글.
한참 동안 즐거움에 취해 부릴이에게 비행기를 태워줬다. 부릴. 이 좆같은 부릴. 어감이 너무 귀여워서 그런 것일까, 부릴이가 귀엽게 보이기 시작했다.
즐겁다.
"케룩케룩!"
지금 이 중간계에 와서, 내 첫 부하를 얻은 것이다. 마왕은 본디 이렇게 몬스터들을 지배해 군림하는 존재. 그 첫 번째 타자가 바로 부릴이었다.
즐거울 수밖에 없다.
이건 아주 큰 성과다. 진짜 미칠 것 같을 정도로 엄청난 성과란 말이다. 이제 난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내 부하가 하나 생겼으니까. 그렇다는 것은 이제 부하에게 일이나 경계를 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그를 생각하니 전율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후우! 이제 그만 내려오자!"
"케룩...!"
ㅡ비틀비틀.
한참 동안 돌려준 탓인지 내려온 부릴이가 머리를 짚은 채 비틀거렸다. 아이만 한 소인이 그러고 있으니 확실히 귀엽기는 했다.
"아, 맞다."
일단 이 새끼 다친 상태다.
내 지배술이 먹혀들어가, 마력이 주입된 탓에 회복을 하고는 있지만 아직 완벽한 상태는 아니다.
녀석을 내 부하로서 써먹기 위해선 제대로 된 상태로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좋다.
지금부터 우선 목표를 설정하고 행동하도록 하자. 물은? 있다. 은신처는? 있다. 식량은? 있다. 조건은 아주 완벽.
"자, 그럼 들어가자. 우선 회복부터 하자고."
"케륵."
일단 부릴이를 만전의 상태로 회복시켜주는 것이 먼저다.
배가 고프면 마력 회복이 거의 안 된다. 밥을 잘 먹어야 마력을 회복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현재.
부릴이 덕에 열매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열매들이 많이 남았으니 그거 다 처먹으면 오늘은 어떻게든 버틸 수 있겠지. 그리고 뱃속에 뭔가 들어가면 마력이 회복될 터, 그걸로 부릴이를 치료해주면 된다.
"어서 들어가."
"케르륵."
부릴이가 케륵거리며 비트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게 고블린 울음소리인가? 케륵, 크륵? 놈이 뭐라고 하는 건지는 일단 전혀 모르겠는데, 같이 살다 보면 알 수 있지 싶다.
ㅡ와삭와삭!
부릴이가 들어온 탓에 더욱 좁아터지게 된 비트. 그 안에 들어오자마자 열매를 처먹었다.
"맛있다...!"
터져 나온 과즙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솔직히 달콤하지는 않았다. 뭐랄까, 생수병에 무슨 과일주스 조금 탓 것 같은 당도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제법 오래된 일이지만 내가 현대 지구에서 먹던 과일들은 전부 개량된 것인지라 그 달콤함이 강했다. 야생의 그것들은 따라갈 수가 없는 달콤함이다. 지금 이 열매들에선 그런 야생 본연의 맛이 났다.
"그래도 맛있어!"
어제 물밖에 못 먹은 탓에 아주 맛있게 느껴진다!
"부릴이 너도 먹어!"
"케룩케룩."
그렇게 나는 부릴이와 함께 열매들을 모조리 다 게눈감추듯이 싹다 먹어 치워버렸다.
"꺼억."
있는 대로 뱃속에 다 욱여넣으니 배가 터질 지경이었다. 좋다. 오늘 비트 보수하는 것은 포기하도록 하자. 괜히 배 채웠는데 그런 고강도 노동을 실시하면 배가 꺼질 것이고, 그러면 마력 회복에 큰 지장이 있을 것이다.
다시 열매를 채집하러 가도 되겠지만... 아직 회복 중인 부릴이를 끌고 가긴 어려울 것 같고, 그렇다고 기껏 얻은 첫 부하를 놓고 떠나버리기엔 많이 불안하다.
그러니 뭐.
"야. 오늘은 여기서 그냥 나랑 같이 코자자."
"케룩?"
이 비트 안에서 체력을 온존하는 수밖에.
"자라."
"케룩..."
자라고 명령을 하면서 부릴이의 눈을 감겨주니, 놈 역시 피곤했는지 그대로 힘을 풀어버린다.
"흐흐흐, 이 새끼. 자는 것 좀 봐."
"..."
잘 자네.
그것을 확인하고.
나 역시 긴장을 풀고 눈을 감은 뒤에 내 육체에 집중했다.
ㅡ고오오.
집중하고 있으니 체내의 마력이 느껴진다. 그것을 느끼면서,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마력이 최대한 움직이지 못하도록 집중한다.
마력 회복을 촉진하는 명상법이다.
물론 카르티가 알려준 명상법... 카르티. 카르티 생각이 나는구만. 끝까지 안 좋은 소리만 했지만 작고 귀여운 아이였다.
만약 지금 카르티를 볼 수 있다면 오늘의 성과를 아주 자랑하면서 알려줬을 것이다. 내가 고블린을 지배했다고 존나 자랑했을 거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명상을 이어나간다.
마력 회복 빡시게 하자!
* * *
"크으...!"
다음날.
좁아터진 곳에서 계속 있던 탓에 몸은 존나 뻐근했지만 마음만큼은 존나 상쾌했다.
"자, 부릴이도 따라 해. 크으!"
"케후우욱...!"
부릴이가 그 작은 아이 같은 몸으로 스트레칭을 흉내 낸다. 진짜 괴물 같은 피부에 매부리코. 얼굴은 무슨 쭈글탱이 같은 녀석이 저런 앙증맞은 행동을 하니 돌아버릴 지경이다.
"자, 아무튼. 부릴이. 몸 괜찮나?"
"케룩?"
놈이 내 말을 다 알아듣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불편한 점은 없었다. 아무튼, 나는 부릴이의 상처를 검사했다.
"흠... 어제보다 좋아졌군."
이 새끼도 열매를 처먹고 푹 쉰 탓에 몸 상태가 좋아져 있었다. 그래도 완전 100%는 아니다. 나는 바로 부릴이를 무릎 꿇렸고, 그 등 뒤로 가서 섰다.
"좋아."
"케르륵?"
솔직히 몬스터 치료법 따윈 모른다. 하지만 마력을 주입한다면 어떻게든 되겠지. 이건 시험해볼 가치가 있다.
그렇게.
ㅡ고오오...!
나는 정신을 집중하여 부릴이의 등판에 댄 손에 마력을 집중시켰다.
"케루욱...!"
그러면서 부릴이의 상태를 면밀하게 관찰한다. 놈은 지금 놀란 상태였지만 딱히 움직이지는 않았다. 그렇게 마력을 부릴이에게 주입해주고, 손을 뗀다.
"야. 어때?"
"케룩?"
바로 부릴이를 눕혀두고 상처를 확인한다.
"오...!"
좋아지고 있다!
확실히 효과가 있어!
이런 약한 몬스터에겐 단순히 마력만 불어넣어 줘도 자연 치유력을 상당한 폭으로 늘릴 수 있는 것이다!
"내겐 힐러의 재능이 있었군!"
이 정도면 완벽하다!
한 시간 정도 쉬었다가 행동을 시작하도록 하자.
"어. 부릴이 안에서 쉬고 있어. 난 잠깐 비트 보수할 테니까."
"케륵?"
"들어가라니까?"
"케륵케륵."
"뭐 들어가기 싫어? 그럼 거기 앉아 있어라."
바로 부릴이가 자리에 앉았다. 뭐, 앉아 있는 것도 휴식이다. 구경이나 시키도록 하자. 앞으로 부릴이한테 땅 파는 일을 많이 시킬 것 같으니까.
"그럼 쉬면서 잘 봐."
바로 손도끼를 꺼내 들고 비트 주변 땅을 팠다. 부릴이랑 둘이서 같이 지내려면 더 넓어야 한다. 근데 둘이서 같이 지낸다라? 마왕이랑 그 부하가 같이 사는 곳. 그것은 바로 던전이다. 던전이라고 할 수 있을 거다.
"던전이라."
진짜 마왕하면 던전인데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 비트 구덩이는 그냥 토굴일 뿐이다. 던전이라고 할 수는 없다. 언젠가 부하가 존나 많아지면 진짜 던전 같은 거 팔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좀 즐거워진다.
던전을 만들어야 하는구나.
보통 뭐 게임에서 보면 몬스터 굴 같은 거 있는데. 차라리 그런 거 빼앗는 쪽이... 어? 설마? 이거 부릴이가 있는 거 보면 주변에 뭐 고블린 놈들 사는 굴 같은 거 있는 거 아니냐?
"으음."
이건 나중에 다시 생각해봐야겠군. 중요하지만, 당장은 수행할 수 없다.
ㅡ퍼억!
다시 비트 구덩이를 증축하는 작업에 집중한다.
* * *
확실히 한 시간쯤 지나니 부릴이가 완전히 회복된 것 같았다!
정말 고무적인 상황이다! 부하로 부리게 된 고블린 하나가 개말짱해졌으니까!
"그럼 일과 시작하자! 부릴아!"
"케륵!"
내 외침에 부릴이가 펄쩍 뛰며 만세를 불렀다! 이 새끼... 감정표현 능력이 너무나 감동적이다! 리액션이 좋으니 나까지 즐거워지는군.
"케륵케륵."
뭐가 그리 즐거운 것인지 부릴이는 다쳤던 부위를 쓰다듬으며 기괴하게 웃었다. 애초에 얼굴이 고블린이라 제대로 웃어도 기괴해 보인다. 그래도 더 웃었으면 좋겠다. 웃으면 복이 오니까.
아무튼.
지금부터 할 일은 아주 중요하다.
"그럼 부릴아. 내 눈 똑바로 봐라."
"케륵?"
부릴이가 날 응시한다.
카르티가 알려준 바에 따르면 지배하는 대상의 눈을 보고 똑바로 말할 때 더 잘 알아먹는다고 했다. 나는 지금부터 부릴이가 내 말을 어디까지 알아들을 수 있는지 시험해볼 생각이다.
"부릴이 오른손."
"케륵."
바로 오른손을 드는 부릴이.
"좋아. 잘했다. 그럼 한 바퀴 돌아."
"케르케륵."
ㅡ총총총총.
부릴이가 한 바퀴를 돌았다. 좋다. 눈 보고 말하면 어지간해선 다 알아듣는 모양이다.
"그럼 뒤로 돌아."
"케륵."
바로 부릴이가 뒤로 돌아선다.
"부릴이 앉아."
"케륵?"
ㅡ스윽.
이번에는 부릴이가 앉지 않고 나를 돌아보았다.
"케륵케륵?"
그리고 다시 말해달라는 것처럼 울음소리를 낸다... 역시. 뒤돌아선 상태에서는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건가?
"어. 다시 앞을 봐."
"케륵."
부릴이 고개 원위치.
"다시 한다? 부릴이 앉아."
"케륵?"
다시 나를 돌아본다.
그 시선을 맞추면서 재명령.
"앉아."
"쿠르륵."
부릴이가 앉는다.
"좋아. 확실하게 알았다."
부릴이는 지금 내 `언어`를 알아듣는 것이 아니다. 나와 마주 보고 있을 때. 내 눈이나 내 얼굴. 내 입을 보고 그 의지를 읽어내는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일종의 마력적인 작용으로 돌아가는 거다.
"그럼 부릴이! 저기 있는 저 나무까지 뛰어갔다 와!"
"케륵!"
ㅡ타타탓!
바로 부릴이가 나무 앞까지 뛰어간다. 이런 명령은 쉽게 수행하는 건가? 곧 부릴이가 돌아왔다.
"잘했다! 부릴이!"
"케륵!"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좋다는 듯이 웃는다.
이 새끼 진짜 보면 볼수록 귀엽다니까.
"그럼 부릴이! 이번엔 저 나무 앞까지 가서 제자리 점프 두 번 하고 나무에 주먹질 세 번 하고 발차기 두 번 한 다음에 제자리 점프 세 번 하고 돌아와!"
이건 할 수 있을까?
"케륵!"
ㅡ파파팟!
부릴이가 다시 나무 앞까지 뛰어가서 점프를 두 번 하고 주먹질을 실시했다. 오. 기억력이 여기까지 닿나? 아니면 마력 때문에 기억하는 것?
그런데.
ㅡ멈칫.
주먹질을 하던 부릴이가 순간 멈칫한다. 그리고는 뭔가 알 수 없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머리를 싸매더니 내게 돌아왔다.
"케룩. 케륵케륵. 케르르륵. 케르켁."
"머라는 거야, 이 시발."
뭔가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데 나 못 알아듣는다고.
"케륵케륵. 쿠르륵. 크르륵."
부릴이는 내가 못 알아듣고 있다는 것은 꿈에도 모른다는 듯이 열심히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 뭐, 좋다. 대충 어떤 식인지 알았으니까. 그리고 말하는 것도 대충 느낌상 명령받은 거 까먹었다고 하는 느낌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