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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마왕 생존기-25화 (25/544)

〈 25화 〉 마왕 큘스, 강림하다! # 10

* * *

그렇게 낮시간을 통으로 사용하니 제법 만족스럽게 훈련을 끝마칠 수 있었다.

"케륵...!"

비장한 표정이 된 부릴이가 창을 잡아 든 채 차렷자체를 취했다. 아주 그냥 군기가 바짝 든 경비병이 따로 없었다.

"흐흐흐! 훈련병 부릴! 오늘 너는 첫 훈련을 아주 훌륭하게 끝마쳤다! 이 마왕 김큘스가 그것을 치하하는 바이다! 경례!"

"케르릉, 케륵!"

ㅡ처억!

ㅡ척!

즉시 부릴이가 받들어 창 자세를 취한다!

군대 위병소 받들어 총 하던 기억을 살려 적당히 만든 동작이었다. 똑똑한 부릴이는 그것을 무려 단 몇 시간 만에 익혀버렸다.

확실히 애가 똑똑하긴 똑똑하다. 원래 고블린종의 지능이 높은 것인가? 아니면 내 지배술이 통하고 있기에 보다 잘 이해하는 것? 잘은 모르겠지만 이만큼이나 할 수 있는 녀석이다.

계속 훈련을 시키다 보면 극적으로 유의미한 성과를 볼 것이 분명하다.

"좋아. 쉬어."

"쿠륵."

"오늘 훈련은 이걸로 끝이다. 부릴아. 앞으로 싸울 때는 그 창을 이용해서 싸워야 돼. 그래야 너보다 큰 놈들을 잡을 수 있어."

"케륵?"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것처럼 고개를 갸웃하는 부릴이.

사실 오늘 딱 하루 훈련한 것으로 뭔가를 극적으로 바꿀 수는 없다. 부릴이 이 새끼도 막상 전투명령 떨어지면 창 버리고 달려 나갈 것이 분명하다. 그러고는 손톱과 이빨을 사용해 싸우겠지.

지금 부릴이는 창술의 목적을 모른 채 그저 내가 알려주는 동작을 따라 하는 것에 불과하다.

"지속적인 훈련으로 그 본능을 억눌러야만 해."

그것이 바로 훈련.

훈련이라는 것은 바로 그런 것.

앞으로 지속적으로 훈련을 시키도록 하자. 일과 루틴이 딱 잡혔다. 아침에 훈련하고 정오 되기 전에 나가서 사냥과 열매 채집을 하고 돌아오면 될 것 같다.

"아무튼 부릴아! 열매 채집하러 가자!"

"케륵케륵!"

조금 있으면 어두워질 것이다. 사냥을 하기엔 좀 늦은 시간. 간단하게 열매 좀 채집에서 마족브레스로 겉을 살짝 구워 먹도록 하자.

그러면 해 떨어질 테니 명상 좀 조져주고 자면 되겠지.

* * *

그날 이후로 우리는 창을 몇 개 더 만들었다. 이게 소모품인 만큼 만들 수 있을 때 미리미리 만들어두는 편이 좋다.

창을 구비해둔 뒤에는 본격적으로 부릴이와 창술 훈련을 시작했고, 부릴이는 나름대로 창에 대해서 이해를 하게 되었다. 뒤지도록 설명하니 창으로 적을 찔러야 한다는 그 개념은 알아먹은 것 같더라.

"흠."

실제로 리자드를 사냥하러 갔는데 바로 튀어 나가지 않고 창으로 찌르려는 듯 자세를 잡긴 했다. 근데 고블린의 민첩함을 전혀 살리지 못했다. 부릴이는 그저 리자드 앞에서 내 구령을 기다렸을 뿐이었다.

ㅡ파파팟!

결국 리자드는 도망쳤고, 부릴이는 창을 겨냥한 채 그 뒷모습을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그랬었지."

지금은 내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이 더 큰 것 같다. 창을 이용해서 자율적으로 싸우라, 이런 건 아직 못하는 모양.

"그럼 부릴아. 오늘도 이 창으로 사냥하러 가보자."

"케륵케륵."

그래도 계속 연습하다 보면 될 터. 오늘도 부릴이와 함께 실전을 치르기 위해 던전을 나섰다.

"여기서도 좀 지내니 익숙해 지는구만."

"케륵."

옆에 부릴이도 있고. 군대에서 지긋지긋하게 시달렸던 벌레도 없다. 처음엔 잔뜩 쫄아 있었지만 아직 날 위협할만한 강한 몬스터는 보지도 못했고 말이다.

아, 페어리 봤던가.

여전히 조심하고 있긴 하지만 통 보이질 않으니 그래도 적응이 되긴 한다.

ㅡ저벅저벅.

그렇게 걷고 있을 때였다.

"켁...!"

돌연 부릴이가 내 옷깃을 잡으며 멈춰 섰다. 그럼 뭐겠나. 나는 즉시 부릴이와 함께 옆에 있던 나무로 가서 몸을 숨겼다.

ㅡ처억.

부릴이가 손으로 저쪽을 가리킨다.

그곳을 보니... 음?

ㅡ사박사박!

고블린 한 마리가 제법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달려 나가던 고블린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뭐 하는 고블린이지?"

"케륵?"

여기 와서 두 번째로 본 고블린이다.

당연히 다른 고블린이 있기는 하겠지. 따라갈까 싶었지만 뭔가 뛰고 있는 놈이라서 그런지 섣불리 건들 생각이 들지 않았다.

"흠."

저 고블린을 한번 미행해볼까? 운이 좋다면 고블린의 서식지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놈들의 위치를 알아둔다면 뭐 작전을 짜든 뭘 하든 해서 부하를 하나 더 늘릴 수 있을 거고.

"부릴아. 그럼 미행을... 엇!"

"케륵...?!"

"수, 숙여."

ㅡ꽈악.

바로 부릴이의 머리를 잡아 누르고 몸을 낮춘다.

나타났다.

페어리가.

ㅡ뽈뽈뽈.

페어리가 저쪽에서부터 날아오고 있었다.

예쁜 나비의 날개를 지니고 있는, 마치 인형처럼 생긴 요정. 진짜 말 그대로 팅커벨이었다. 지금 저 앞에서 움직이고 있는 중이니... 갑자기 방향을 트는 게 아니라면 들킬일은 없겠지.

방금 그 고블린이 저 페어리를 피해 도망치던 건가? 섣불리 움직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소란을 피웠다가 페어리의 표적이 되었다면 위험해졌을 수도 있으니까.

ㅡ뽈뽈뽈.

페어리가 날아가는 것을 쭉 관찰한다. 얼굴을 살짝 봤는데... 정말 인형처럼 귀여웠다.

ㅡ스윽.

아무튼 페어리가 곧 사라졌다.

"하아. 시발 저런 거 튀어나올 때마다 조마조마해서 뒤지겠네, 이거."

무슨 아오오니냐?

"아무튼 부릴아. 아까 그 고블린 한번 따라가 보자. 냄새 맡아서 추적할 수 있지?"

"케룩케그릉."

긍정하는 부릴이.

페어리도 살짝 다른 방향으로 날아갔고. 좀 돌아서 가면 고블린을 추적할 수 있을 것이다.

"케룩."

바로 저 앞까지 간 부릴이가 바닥에 코를 박은 채 네다리로 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땅에 코 박고 추적하는 거 보면 후각이 좋기는 해도 개처럼 좋지는 않은 모양이다.

나는 창을 꼬나쥔 채 부릴이를 호위했다.

* * *

그렇게 한참동안 추적을 하고 있을 때였다.

ㅡ케륵! 케르르륵!

ㅡ쿠르륵! 케쿠륵! 쿠르릉!

ㅡ케랴아악! 케략!

"음?"

이게 뭔 소리냐?

돌연 저쪽에서부터 무슨 소란스러운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자세히 들어보니 뭔가 고블린들이 사납게 울부짖는 소리 같았다.

"부릴아?"

"케륵...!"

흥분한 기색의 부릴이.

저 앞에.

다수의 고블린들이 있는 것이다.

"부릴아. 들키지 않게. 숨은 상태로 전진."

바로 부릴이와 함께 포복을 실시하고, 소리의 진원지 쪽으로 아주 천천히 기어갔다. 수풀과 덩굴을 천천히 헤치면서 전진하는 와중에도 고블린들의 사나운 울음소리는 끊이지 않았으며.

그리 마지막 수풀을 헤쳤을 때.

"케르르륵! 케륵!"

"케라아아악!"

"크르르륵!"

아주 놀라운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다수의 고블린. 열댓 마리가 넘는 고블린들이 한 곳에 뭉쳐서 패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서로 물어뜯고, 할퀴고, 올라타서 존내 팬다. 사방에 피가 튀어 있었다. 마치 전쟁을 하고 있는 듯했다.

"...!"

ㅡ부들부들...!

부릴이는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부들부들 떨면서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케르르륵! 케르르륵!"

"케크라아아아윽!"

"크르르륵!"

사납게 싸우는 고블린들.

전투.

투쟁.

고블린 부족간 전투일까? 서로 살기 위해. 서로 더 많은 열매와 사냥감을 확보하기 위해 죽자 살자 나와바리 싸움을 펼치는 것일까?

장엄함.

웅장함.

그러한 감정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장엄하고 웅장한 전투의 현장을, 마치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케르르륵!"

"케르릉! 케르릉"

한편의 다큐멘타리를 보는 듯한 기분이다. 다큐멘타리 속.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바나의 맹수들에겐 자비도 연민도 없었다.

하반신이 뜯겨져 나간 채 내장을 파먹히면서도 아직 살아있는 어미 가젤. 그리고 그 어미 가젤이 보는 앞에서 잔혹하게 찢겨져 나가는 새끼. 단번의 숨통을 끊어주겠다는 자비도, 어미 앞에서 자식을 찢어 죽이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는 없다는 연민도. 야생 하이에나에겐 그 무엇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살기 위해!

먹기 위해!

전력으로 사냥하고 찢어발겨 먹어 치운다!

잔혹하기 짝이 없지만 그것이 바로 야생이다...!

ㅡ케라아아아악!

지금 고블린들이 그러고 있었다! 물어뜯고, 손으로 복부를 파내 내장을 찢어발긴다! 고블린들은 지금 그리도 사납게 싸우고 있었다!

전율.

그저 전율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옆에서 포복을 한 채 입을 가리고 있는 부릴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수풀에 숨어서 그 전쟁의 현장을 쭉 관찰했다.

ㅡ사아악.

그러고 있을 때였다.

ㅡ뽈뽈뽈.

돌연.

ㅡ뽈뽈뽈.

돌연 페어리가 나타났다. 페어리. 날개 달린 요정. 아까 봤던 놈인데, 설마 그놈인가. 지금 그 페어리가 엉망진창인 고블린 전쟁터에 강림하듯 내려앉았고.

"케, 케륵?!"

"케륵!"

"케르르르륵!"

그것으로 전쟁은 끝이 났다.

ㅡ사악.

페어리를 목격한 고블린이 혼비백산하며 도망치려고 했다. 다친 몸을 이끌고,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도망을 치려고 했다.

그러나 늦었다.

ㅡ사라라락.

그 작은 페어리가. 날개를 펄릭이면서 무언가 가루 비슷한 것을 뿌리며 바람을 일으킨 순간.

"케르르..."

"캐룽... 캐룽캐룽..."

"구르릉..."

그 가루에 노출된 고블린들이, 마치 술에 취한 중년 취객 아저씨들마냥 헤롱거리면서 사방팔방으로 흐느적흐느적 걸어 나가기 시작한다.

피를 흘리는 고블린들이 단체로.

"꺄하하하하하하핫!"

그리고 터져 나오는 잔혹한 웃음.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알 수 있었다. 페어리는 지금 고블린들을 저 꼴로 만들어놓고 즐거워하고 있었다.

ㅡ휘청휘청.

설며 최면 상태에 빠뜨린 거냐?

고블린들이 휘청거리면서 무작위 위치로 걸어 나간다. 지속시간은 얼마나 되지? 이런 오지에서, 저렇게 취한 상태로 막 움직이다 보면... 금방 살해당할 것이다!

그래서였나!

그래서 부릴이가 페어리를 그토록 두려워했던 것인가! 당연하다! 저런 마법에 걸린다면 그냥 죽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불을 뿜거나 얼음을 날리는 것만이 살인마법이 아니다! 저런 것도 엄연한 살인마법이란 말이다!

ㅡ뽈뽈뽈.

그리 고블린들을 흩어놓은 페어리가 다시 어디론가 날아가기 시작한다. 놈은 분명 웃었다. 마치 장난치듯 고블린들을 저렇게 만들어놓고 흥미를 잃었다는 듯이 떠나고 있다! 저런 위험한 새끼랑은 상종도 하지 말아야 한다!

반드시 놈과 반대 방향으로 튀어야 했다!

"부, 부릴아. 가자."

"케륵..."

그렇게 다시 몸을 돌려서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하니.

"케, 케르륵... 케르륵..."

취한 고블린 하나가 눈을 까뒤집은 채 휘청이며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마침 우리와 동선이 겹친 모양이다. 이대로 피해서... 아니지.

"부릴아. 저 새끼 쫓아가자."

"케륵."

좋다!

쫓아가서 제압하도록 하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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