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 마왕 큘스, 강림하다! # 12
* * *
ㅡ후다닥!
"허억! 허억!"
"케르르륵!"
진짜 부릴이랑 미친 듯이 뛰고 또 뛰어서 도망을 쳤다!
그 요사스러운 여자에게서 멀어지니 머리가 맑아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설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언가 마법이나 요술 같은 것에 걸린 것인가? 그런 생각이 샘솟는다.
확실히 이상하긴 이상했다.
아름답기는 했다. 몸매 역시 내 취향이었고. 그리고 그런 여자가 알몸으로 젖가슴을 흔들어 대면서 유혹하듯이 웃어줬다.
"...!"
꿈 같은 상황.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충동.
하지만 나의 이성은 깨어 있었다.
위험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저항을 할 수가 없었단 말이다. 상황이 정말 꿈 같았다는 것은 안다. 그렇다고 무작정 다가가겠는가? 목숨이 더 중요한데.
무언가 최면 같은 요술에 당한 것이 분명했다.
"크하!"
"케르으윽...!"
그렇게 한참동안 달린 다음에야 자리에 주저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이쯤 튀었으면 됐을 거다.
하아... 진짜 심장이 터질 것만 같다. 방금은 진짜 존나 무서웠다. 이게 시발 말이 되냐?
대체 뭐지?
"숲의 귀신."
숲의 귀신이 날 유혹하려고 했던 것이다.
가까이 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건 내 생각인데 분명 살해당했을 거다. 그리하여 내 피와 살이 이 숲의 양분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숲의 귀신이라는 건 그런 존재니까.
유혹에 넘어갈 뻔했다.
"케륵! 케르륵! 케르릉! 케륵케륵!"
"어?"
그때, 내 옆에서 벌러덩 누워 숨을 고르던 부릴이가 내 옷깃을 마구 잡아당기면서 사납게 소리쳤다.
"케륵! 케르르륵! 케에에엥!"
이, 이건.
"서, 설마 화내는 거냐?"
"케륵케륵!"
화내는 것이 맞군.
"미안하다."
"케륵!"
"진짜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덕분에 살았다."
"케, 케륵케륵..."
바로 부릴이의 머리에 손을 얹어줬다. 그러자 부릴이의 기세가 누그러들었다.
부릴이 덕분에 살았다. 부릴이는 내가 요술에 걸린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날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먼저 도망가지 않았고, 날 깨물면서까지 정신을 차리게 했어.
얘가 날 살린 거다.
부릴이가 날 깨물지 않았다면, 나는 그 헐벗은 여자의 유혹과 요술을 이기지 못하고 다가가 그 품에 안겨 죽었을 거다. 진짜 부릴이한테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나올 지경이었다.
"너한텐 계속 도움만 받는구나...!"
"케륵!"
바로 부릴이를 끌어안고 춤추듯 회전했다.
"돌아가자. 오늘 정찰은 여기서 끝이다."
"케릉."
넌 내 영원한 친구야.
* * *
온몸의 진이 다 빠져버렸다.
돌아오니 몸에 힘이 없다.
그래서 적당히 씹을거리들을 좀 줏어먹고 바로 던전안에 들어가서 누웠다. 진짜... 지금 자면 내일 정오에나 일어나지 싶다. 너무 스펙타클한 하루였다.
"..."
그렇게 던전 안에 누워 있으니.
ㅡ배시시.
배시시 웃는 그 여자의 얼굴이 떠오른다. 뭐랄까... 정말 따뜻해 보이는 미소였다. 온기가 있어 보인다. 여공작과는 달리 진심 어린 미소.
그 외형은 제법 특이했다. 일단 기억상 귀 부분이 좀 이상했다. 무슨 엘프 귀 같은 게 아니라... 식물? 그런 걸로 된 귀였다. 특이한 특징이다. 그리고 또 잎사귀로 된 속옷과 덩굴을 두르고 있었지.
"엘프인가?"
아니. 엘프라고 하긴 좀 그렇지. 엘프는 귀가 그렇지 않으니까. 그러면 좀 적당한 이름을 붙여줘야 할 것 같은데... 숲의 정령 같은 존재일까?
"그럼 뭐 드라이어드라고 하자."
그 헐벗은 여자는 드라이어드다.
아무튼.
ㅡ출렁출렁.
드라이어드가 젖가슴을 흔들어주던 그 광경. 그것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제법 커다랬지. 손으로 다 쥘 수 없을 정도의 크기... 풍만했다. 그리고 아래도 벗은 상태였다.
"털이 없었어."
처음 보는 내 앞에서 속옷을 그렇게 훌렁훌렁 벗어재끼다니. 그 상태로 젖가슴을 흔들면서 웃어주다니. 자극이 너무 강하다. 너무 강한 자극이란 말이다.
"...아름답다."
드라이어드 시발.
생각하고 있으니 하반신에 피가 쏠렸다.
아주 격렬한 발기.
"아, 씨발."
미치겠네 진짜.
너무 오랜만에 맛보는 강렬한 자극이었다. 아직도 요술이 풀리지 않은 건지 그곳에 다시 가서 드라이어드의 얼굴을 보고 싶을 정도였다.
이러면 안 되는데.
씨발.
딸이나 칠까?
"부릴아."
"케륵?"
"잠깐 나가 있자... 아냐 시발. 힘 아껴야지. 다시 들어와."
나가려던 부릴이를 다시 붙잡았다.
내 팔자에 무슨 딸을 치겠다고. 지금은 딸칠 힘조차도 아껴야 할 시기였다. 그 소중한 에너지를 낭비할 수는 없지. 터질 듯 팽창된 내 물건을 무시하고 눈을 감았다.
명상이나 좀 하다가 자자.
* * *
"씨발."
몽정을 한 것은 군대 있을 때 이후로 처음인데.
"이런 씨발!"
존나 놀랍네! 내가 시발 이 나이 처먹고 몽정을 해야 되냐! 마족도 몽정을 할 줄은 몰랐다! 진짜 구라 안치고 마족으로 환생하고 나서 몽정하는 거 처음이다!
"부릴아! 나가자! 창 챙겨!"
"케, 케륵?!"
일단 가서 바지랑 팬티를 빨아야 한다. 진짜 억울해서 주저앉고 싶을 정도였다. 드라이어드 네 이년...! 왜 갑자기 나타나서 내 마음을 뒤흔드는 거냐!
이런 오지에서 처음 본 사람 같은 존재, 그것도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더욱 자극적이었다.
만일 그녀도 몬스터라면... 지배술이 통하지 않을까? 아니 시발. 내가 무슨 생각을.
"한심하군."
그런 여자 괴물을 지배할 생각을 다 하다니.
"..."
근데 지배하면 내 명령을 다 따를까?
"좆."
그런 생각을 하면서 부릴이와 함께 항상 가던 물가로 향했고, 곧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경계를 맡기고 바지와 팬티를 빨았다. 빠는 김에 상의도 좀 빨았고.
따라서 옷이 마를 때까지 자연스럽게 알몸일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서 나도 그 드라이어드처럼 커다란 잎사귀로 몸을 가렸다.
"무슨 소개팅 복장이냐?"
이대로 입고 가서 같이 차라도 한잔 마시자고 꼬시면 되냐?
"아악!"
"케륵?"
부릴이가 의문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한다.
아무튼.
"여기서 좀 쉬자. 부릴아."
"케륵케륵."
어디 모닥불이라도 피워서 옷을 말릴까 했는데.
ㅡ파사삭!
돌연 수풀이 흔들리는 것이 아닌가! 나는 잽싸게 나무창을 잡아 들고 그곳을 겨누었다! 그리고!
"꿕, 꿕꿔."
"어?"
웬 닭만 한 크기의 닭 같은 새가 뒤뚱뒤뚱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몇 번 봤던 놈이다. 도도새 비슷하게 생긴 녀석.
"안녕 도도야!"
"꿕?"
ㅡ파앗!
바로 땅을 박차 달리면서 놈에게 창을 내지르자!
ㅡ퍼억!
"꿕...!"
그대로 꿰뚫린 녀석이 추욱 늘어졌다. 좋다. 창으로 아주 훌륭하게 사냥 성공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이런 나약한 새 상대로는 마음껏 창을 사용해도 된다. 별로 가죽이 질기지도 않으니까. 창촉의 상태를 확인해보니 역시 흠집도 없었다.
"케륵케륵!"
"봤지! 부릴아! 창 이거 이렇게 쓰는 거다!"
"케륵!"
"니도 한번 해봐!"
"켁켁!"
바로 부릴이가 창을 잡아 들고 방금 내가 했던 것처럼 창을 내지르는 동작을 수행했다.
ㅡ파앗!
이거 좀 괜찮아진 것 같기도 하다. 훈련과 경험이 확실히 효과가 있다. 이제 고블린만 더 모으면 좋을 텐데.
"아무튼 궈 먹자. 부릴아. 나뭇가지 모아와라."
"케륵."
바로 돌을 모아 모닥불 터를 만들고, 부릴이가 가져온 불쏘시개들을 세운다. 그리고.
"마족브레스!"
ㅡ화르르르륵!
그대로 입에서 화염을 뱉어 불을 지른다. 그야말로 불쑈의 현장. 즉시 모닥불이 타올랐다.
"구워서 먹자."
"케륵!"
밥 먹는 시간이 최고로 좋더라.
그렇게 도도새를 구우면서 내 옷도 같이 말렸다. 아. 이거 여벌의 옷이 더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다.
"인간."
이 중간계에는 인간도 있다고 했다. 역시 속옷 같은 걸 구하려면 인간을 통해서 구하는 수밖에 없나? 하지만 어떻게? 지금 내 생김새는 그야말로 마족 그 자체였다.
이마 양옆 쪽에 난 두 개의 뿔과 긴 귀. 샛노란 눈동자와 세로 동공. 누가 봐도 마족이다. 어떤 미친 인간이 나랑 대화나 거래를 하려고 하겠는가. 룰루랄라 돈 들고 가면 그냥 살해당하고 다 빼앗길 지경이다.
"고민이 깊어지는구만."
"케륵케륵."
그때 부릴이가 구워진 살점을 집어서 내 입에 들어대었다.
"어. 새끼. 먼저 먹으라고?"
"케륵."
"기특해 아주."
바로 받아먹는다.
"음, 좋아. 부릴이도 먹어라."
"케륵."
역시 새를 구워서 그런지 맛은 있더라.
그리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끄르르륵... 야! 끄르르르륵... 야!"
"어."
뭔가 저쪽에서 이상한 울음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바로 부릴이의 반응을 살피니.
"케르륵...!"
흥분을 드러내면서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좆밥 몬스터라는 이야기다. 부릴이에겐 몬스터의 울음소리만 듣고도 그게 무엇인지 파악하는 능력이 있다.
"잡으러 갈까?"
"케륵!"
"좋아. 일어나자."
바로 팬티를 입고 수풀을 헤쳐 나갔다.
"끄르르르르... 야!"
이상한 울음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대체 어떤 새끼인지 면상을 좀 보고 싶을 지경이었다. 뭔가 맹수 같은 울음소리긴 한데.
그리 무성한 잡초를 해치니.
"세, 세상에."
녀석의 정체가 드러났다...!
"끄르르, 끄륵끄륵! 끄르륵!"
웬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꺼먼 괴물이 무슨 발작에 걸린 사람마냥 방방 뛰면서 곤충 같은 것들을 집어 먹고 있는 중이었다!
그 크기는 내 허리까지 간신히 오는 부릴이보다 더 작을 정도였는데, 그 이마에는 뿔이 하나 달려 있었고, 엉덩이에는 마치 악마 같은 꼬리가 달려 있었다!
"저, 저 새끼 저거 마계에서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마계 생태 피라미드의 최하층을 차지하고 있는 좆밥 마물!
임프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