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 던전의 주인이 되다! # 8
* * *
그리 드라이어드를 눕혀둔 뒤에 일과를 시작했다.
"케륵..."
"끄륵..."
"아오, 이 겁쟁이 새끼들아."
근데 이 새끼들 완전히 쫄아가지고 계속 눈치를 보고 있었다. 역시 상위포식자는 상위포식자라는 건가. 다들 드라이어드를 엄청 두려워한다.
그럴 필요는 없는데 말이지.
확실히 얘들이 두려워하는 걸 보면 아직 몬스터 지배술이 걸리지 않은 게 분명하긴 하다.
당장 코볼트 놈들만 해도 지배술이 걸리자마자 부릴이랑 임숭이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반대로 놈들 역시 코볼트들을 먹이로 여기지 않게 되었으니까.
"괜찮아. 괜찮으니까 빨리 일 시작해."
"케륵케륵..."
"부릴이 삽 들고."
아무튼 이제 삽이 두 개다. 작업속도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눈물이 앞을 가릴 지경이다. 어떻게 사람이 삽 두 개만으로 이렇게 감사를 느낄 수가 있지?
이곳에선 참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ㅡ퍼억!
ㅡ사악.
계속되는 삽질.
"..."
한 번씩 뒤를 돌아볼 때마다 드라이어드와 눈을 마주치게 된다.
"옆으로 돌아누웠어?"
옆으로 돌아누워서 날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코트를 이불처럼 덮은 채. 진짜 내가 마음에 들은 건가? 떠날 생각도 안 하고 그냥 저기서 구경만 하고 있다.
"...진짜 나랑 같이 살 생각인가?"
그, 그러면... 좀.
많이 좋을 것 같은데.
하지만 지금은 조심스럽게 대하도록 하자.
"음?"
그런데 드라이어드 주변에 꽃이 피어 있었다. 작은 풀들도. 저런 거 원래 없었는데? 마법인가? 역시 숲의 정령이로군. 자연의 사랑을 받는 것이 분명하다. 정말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다.
* * *
열심히 일을 하다 보니 밥 먹을 시간이 되었다.
이제 밥 먹고 나면 슬슬 어두워질 것이다. 그럼 그때 물가로 가서 씻고. 돌아와서 자면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일과 루틴.
"얘들아! 밥 먹자! 규일아! 니 동생들 데리고 먹을 거 가져와라!"
"규삿!"
규일이 규이. 규삼이. 사실 다 똑같이 생겨서 누가 누군지 구분이 안 된다. 그냥 그날그날 내가 규일이랍시고 지목하는 새끼가 바로 규일이가 되는 구조.
힘차게 대답한 규일이가 동생들을 데리고 가서 저장된 먹이들을 가져왔다. 뭐 열매랑 아까 먹다 남은 고기. 대충 그런 것들이다.
"그럼 불 피워서 먹자."
그런데.
"드라이어드?"
여전히도 드라이어드는 저쪽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바로 손짓을 해 그녀를 불렀다.
"이리 와! 같이 먹자!"
"샤아?"
"여기로 와."
ㅡ툭툭.
옆자리를 두들기니.
"샤, 샤아..."
자리에서 일어난 드라이어드가 조심스럽게 걸어왔다. 역시 바디랭귀지는 통한다니까. 언어가 안 통할 뿐이지 머리는 좋은 것 같았다.
근데.
"케, 케륵!"
"끄르르륵!"
"규사아앗!"
드라이어드가 다가오니 얘들이 염병을 떨면서 내 몸에 머리를 박아대는 것이 아닌가. 지금 무서워서 이러는 거다.
"야, 야. 괜찮다고. 가만히 앉아."
"케르륵!"
"야 임마. 형이 괜찮다는데. 빨리 안 앉아?"
"케룩..."
명령을 하니 억지로 듣기는 한다.
부릴이 이 귀여운 새끼 이거.
"샤아?"
드라이어드는 그런 몬스터들을 보면서 그냥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그렇게. 우리들의 불편한 식사가 시작되었다.
"케륵..."
"끄륵."
눈치를 보면서 열매와 고기를 먹는 내 부하들. 드라이어드는 내 옆에서 다소곳하게 무릎을 꿇고 있는 중이다.
"드라이어드? 이거 너도 먹어."
"샤아?"
그래서 일단 열매를 건네봤다.
"어. 먹어. 괜찮아."
"샤아아..."
얌전하게 받아 들고는.
ㅡ사각.
양손으로 쥐고 무슨 다람쥐마냥 살포시 깨물고는 오물오물 씹어먹는다.
"흐흐흐, 입 진짜 작네. 열매는 먹는 거냐? 다른 건?"
"샤아."
"고기 안 먹나?"
고블린 모가지 물어뜯어서 피맛은 보던데. 그래서 구운 도도새 고기를 조금 띠어서 줬다.
"이거. 구운 고기야."
"샤아?"
"먹어봐."
"샤아."
이것도 입에 갖다 대니까 얌전하게 받아먹는다. 그렇게 살점을 삼킨 드라이어드가.
"샤아샤아!"
ㅡ파닥파닥.
방실방실 웃으면서 나뭇잎 귀를 파닥거렸다.
"맛있어?"
"샤아!"
"흐흐흐, 많이 먹어."
이거 같이 밥 먹어주는 거 보면 확실히 우호적인 관계가 되었다고 봐도 괜찮겠지. 내 부하들은 밥을 먹는 내내 불안해했지만 나는 제법 즐거웠다.
그렇게 밥을 다 먹은 뒤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씻으러 갈 건데... 너는?"
"샤아."
"따라온다고? 그럼 같아 가지 뭐. 얘들아. 일어나라. 씻으러 가자."
"케륵..."
"규우..."
바로 물가로 이동을 실시한다.
"캬."
처음 왔을 때는 혼자였는데 이제 부하도 다섯에 옆에 미녀까지 있구만. 거기에 머리 위에는 노을까지 떠 있다. 이거 좀 살만한 것 같은데?
"야. 빨리 들어가."
"케륵."
물가에 도착한 뒤에는 바로 옷을 벗고 들어가 몸을 씻었다. 부릴이도. 임숭이도. 코볼트들도. 전부 익숙하게 몸을 씻는다.
"..."
드라이어드는 저 물가 앞에 선 채 우리를 구경하고 있는 상태다. 내가 옷을 벗어도 별다른 반응은 안보이더라.
그런데.
얘는 안 씻나?
"드라이어드?"
"샤아?"
"너는... 그. 안 씻나?"
만약 여기서 드라이어드가 씻는다면.
그녀의 나체를.
다시 볼 수 있는 게 아닐까?
"케르륵!"
"규삿삿!"
다 씻은 부하들이 먼저 물가로 나가서 몸을 털었다. 그럼 뭐 이제 나도 나가볼까 하는데... 돌연.
"샤아."
"어엇...!"
ㅡ사르륵.
드라이어드의 몸에 둘러져 있던 잎사귀 속옷 세트가, 저절로 해제가 되면서 바람에 날아갔다.
그것으로 드라이어드는 알몸이 되었다.
"..."
나는 그 몸매에 시선을 빼앗겼다.
커다란 젖가슴과... 거기에 붙어있는 분홍색 유두. 쫙 빠진 허리의 아래로 보이는 것은, 통통한 두 개의 둔덕이었다. 털이 없어서 몹시 야하게 느껴졌다. 그야말로 아름다운 몸매다.
"샤아샤아."
그렇게 드라이어드가 물가로 들어오더니 내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다가온다.
"저, 저기? 야? 잠깐만. 그게."
"샤아..."
알몸이 된 그녀가.
내게 천천히 접근해온다.
그리고는.
ㅡ촤악.
자신의 몸에 물을 끼얹으며 씻기 시작했다.
"으음?"
"샤아!"
평소에도 이렇게 씻는다는 듯, 물로 머리를 씻고 몸을 문질러 닦는다... 아. 시발. 다가오길래 기대했네. 지금 평범하게 씻고 있는 중이다.
"샤아샤아."
"..."
근데 내가 보고 있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 나체의 섹시한 여인이 겁도 없이 내 앞에서 저렇게 자신의 몸을 문질러대며 목욕을 하고 있다. 혼자서 허벅지를 쓰다듬는가 하면 젖가슴을 움켜잡고 문대기도 한다. 너무나도 자극적인 광경이다.
"크흡."
일단 물에서 나가기로 했다.
너무 가까워서 조금 버틸 수가 없다.
ㅡ촤학.
드라이어드는 여전히도 씻고 있었다.
"..."
정말... 아름다운 광경이다. 저렇게 아름다운 미녀가 나체로 씻고 있는 모습을 보고 홀리지 않을 남자는 없었다. 그녀의 몸매에 빠져드는 듯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ㅡ저벅저벅.
푹 젖은 드라이어드가 물가로 나왔다.
그러더니.
"샤아."
ㅡ고오오.
"헉...!"
그녀의 몸에서 연두빛 오라가 흘러나왔다...! 마치 반딧불이의 그것과도 같은 불빛에 휩싸인 것이다!
무슨 마법일까? 자세히 관찰해보니 그녀의 몸이 마르고 있었고, 피부가 뽀송뽀송해지고 있었으며, 머리칼에 윤기가 더해졌다.
동시에.
ㅡ사르륵.
어딘가에서 날아온 잎사귀들이 그녀에 젖가슴과 성기 쪽에 부착되면서 속옷의 형상을 이루었다.
"오오..."
샴푸도 린스도 바디워시도 없는 곳. 그런 곳에서 저런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저 마법이었다. 거기에 옷까지 저렇게 챙겨입다니.
"샤아샤아!"
그렇게 단장을 마친 드라이어드가 활짝 웃으면서 다가와 내게 달라붙어 왔다.
"허허, 거참."
"샤아샤아."
기분좋다는 듯 웃으면서 내 몸에 얼굴을 비벼대고 있는데... 아까 그 목욕하던 모습이 오버랩되서 미칠 것만 같았다.
"아, 아무튼 같이 가자는 거지?"
"샤아!"
"그럼 가자... 얘들아. 출발해."
"케룩..."
던전으로 돌아가자.
* * *
결국 드라이어드는 내게 딱 달라붙은 채 던전 앞까지 따라왔다.
"너 집은? 다른 곳에 집 없어?"
"샤아?"
"못 알아듣네. 아 씨. 이거 어카지."
같이 던전에 들어가서 자야 하나?
"같이 들어갈까?"
"샤아?"
말이 잘 안 통하니 불편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나는 먼저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물론, 드라이어드는 당연하다는 듯이 던전 안으로 따라 들어왔다.
"샤아샤아."
"이거 참. 음?"
그런데.
던전에 들어온 드라이어드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샤아!"
자기가 생각하기에 적당하다고 느낀 것인지, 딱 자리를 잡고 무릎을 꿇었다. 그 순간이었다.
ㅡ사르륵.
그녀의 주변에서 풀과 꽃이 피어난 것은.
"오, 오오...!"
흙바닥에서 갑자기 식물이 피어올랐다! 그것을 확인한 드라이어드가 거기에 누웠다. 그리고는.
"샤아샤아."
ㅡ탁탁.
자신의 옆자리를 두들긴다.
"뭐, 뭐? 거기에 같이 눕자고?"
"샤아, 샤아아. 샤아샤아."
ㅡ탁탁.
계속 두들기는 그녀.
"아, 그 침대 같은 거 만든 거구나."
그렇다면.
옆에 가서 누워야지.
"그럼... 눕도록 하마."
"샤아샤아."
"잠깐만. 마족브레스!"
ㅡ화르륵!
일단 눕기에 앞서 허공에 마족브레스를 한번 갈겨 양치를 실시했다. 불을 한번 뿜자 입 안에 있던 것들이 죄다 날아간 탓에, 극상의 상쾌함이 느껴졌다. 이게 진짜 편리하다니까. 양치질이랑 가글이 동시에 된 것도 모자라서 물로 한 사십 번 헹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샤아?"
"그럼 누울게."
아무튼 바로 드라이어드의 옆으로 가서 누웠다.
"이렇게 하면 되냐?"
"샤아!"
옆에 눕자마자 드라이어드가 날 끌어안았다!
"허억!"
이 여자 너무 적극적이야!
얼굴에 부드러운 감각이...!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케, 케르륵..."
"끄륵!"
"규삿삿!"
큘스의 다섯 형제들이 걱정스럽다는 듯이 다가왔다! 녀석들! 내가 괴물한테 잡힌 줄 아는 것이로구나!
잠깐 그리 생각했는데.
"샤아아아아!"
돌연 고개를 든 드라이어드가 위협을 실시한 순간.
"케랴아아아악!"
"꾸루루룽!"
"규샤샤샤샤샤샷!"
ㅡ후다다닥!
애새끼들이 죄다 던전의 최심부를 향해 후다닥 도망쳤다! 날 버리고! 이 개부랄같은 놈들!
아니 그보다 지금!
"드, 드라이어드야?"
"샤아? 샤아샤아."
내가 부르니 방금 전의 위협이 마치 거짓말이었다는 것처럼 다시 웃은 그녀가 나를 끌어안았다.
"이건."
설마.
설마 나랑 둘이서만 있고 싶어서 쟤들을 쫓아낸 건가?
"샤아..."
지, 진짜 교미 각이냐?
이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