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 홉고블린 놈들 # 1
* * *
진짜 존나 위험하다.
돌도끼에 가죽옷이라니? 저 새끼들 뭔지는 몰라도 신석기 시대 수준의 문명을 지니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락! 그릭!"
거기에... 맨 앞에 있는 녀석의 구령에 따라서 한 개의 분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는 상태다.
지휘를 하고 있다.
훈련이 되어 있다는 소리다.
분대장 하나랑 분대원 여섯 마리. 총 일곱 마리의 훈련된 군대. 지구 신석기 시대에 저런 느낌의 군대가 있었던가? 모르겠다. 뭐가 됐든 지휘와 통솔. 그리고 훈련이라는 것을 할 줄 아는 종족이다.
그것도 원시적인 도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오크?"
오크인가?
그 흔한 판타지 종족?
아니. 오크라고 명명하는 건 좀 그럴 것 같다. 놈들은 덩치가 고블린보다 조금 더 큰 수준이었으니까.
그리고 피부도 붉은색이다.
오크하면 초록 피부에 큰 덩치가 아니겠는가.
"홉고블린."
대충 그렇게 명명을 하도록 하자.
"그락! 그릭!"
"그락! 그릭!"
아무튼 홉고블린 놈들은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면서 어디론가 행진을 하고 있었다. 대체 뭘 하려고 저렇게 제식을 하면서 가는 거지?
훈련? 사냥?
아니면... 전쟁?
"..."
저런 무장과 훈련 수준을 갖춘 놈들과 전쟁을 할 만한 종족이 있다? 그것도 생각을 해 둬야 할 것이다. 물론 같은 종족끼리 싸울 수도 있겠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 홉고블린 분대를 유심히 관찰했다.
몬스터들의 가죽을 벗겨 만든 원시적인 의복. 디자인도 뭣도 없고 그냥 가죽에 구멍만 뚫어서 걸치고 있을 뿐이다. 기초적인 바느질을 한 흔적은 있다. 애초에 들고 있는 돌도끼도 자루에 잘 묶여 있는 상태였으니까.
보자... 그러면. 간석기를 만들 수 있고. 거기에 바느질도 할 줄 알며, 무두질도 할 수 있다는 소리다.
그냥 오지에 사는 인간 부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머리가 좋은 종족인 것 같다.
그리고 판단해보건대, 놈들은 무장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따로 보급품들 같은 것들을 챙기진 않은 상태다. 사냥이든 전쟁이든 어디 나가려면 보급품은 필수로 챙겨야 한다.
그런데 무기만 들고 행진하러 나온 걸 보면.
단순 순찰이나 간단한 훈련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의식이나 축제일 수도 있고. 그렇다는 것은 놈들의 본진이 제법 가까운 곳에 있다는 소리겠지.
"...그릭!"
곧 녀석들이 멀어졌다.
ㅡ스멀스멀.
나는 다시 포복을 실시해서 샤란이에게 돌아갔다. 나무 뒤에 숨어 있던 샤란이가 날 보고 나왔다.
"샤란아. 쟤들 위험해?"
진지하게 물으니.
"샤아샤아."
샤란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샤아. 샤아아. 샤아아아."
ㅡ파앗!
ㅡ촤학!
샤란이는 갑자기 막 허공을 할퀴는 척을 하더니, 그대로 달려서 도망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싸우지만... 도망친다?"
대충 그런 뜻 같은데.
확실히.
샤란이의 파워 할퀴기는 아주 강력하다. 고블린의 뼈와 살을 찢어버릴 정도다. 하지만 몇 번 사용하면 금방 지쳐버린다. 저런 군대 같은 놈들이 무장을 앞세운 채 진격해온다면 몇 마리는 죽일 수 있어도 그저 그뿐이겠지.
체력이 떨어지면 다구리를 맞고 죽게 될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개인으로선 군대를 이기기가 힘들다. 숲의 요정인 드라이어드도 홉고블린 군대는 피해야 한다.
"우리 이웃 중에 저런 전쟁광 새끼들이 있었다니. 미친 씨발놈들. 평화주의 몰라? 평화주의."
이거 많이 위험한 상황이다.
돌도끼로 무장한 훈련된 군대. 지금으로선 저런 분대 2개만 쳐들어와도 궤멸당할 것이 분명하다. 내 체급이 놈들보다 우월하긴 하지만 놈들이 무장을 한 이상 크게 의미가 없다.
최대한 열심히 싸운다고 쳐도 이대일 정도가 고작이겠지. 삼대일이면 절대 못 이길 거다. 만약 이긴다고 해도 존나 만신창이가 될 것 같다. 그리고 이 오지에서 만신창이가 된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
놈들이 쳐들어온다면 도망은 칠 수 있겠지만 애들도 몇 마리 죽을 거고 우리 던전도 탈취당할 것이 분명.
"대비를 해야 해."
군대를 지닌 놈들과 공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군대 특성상 적을 발견하면 어떻게 해서든지 무너뜨리려고 할 테니까. 그러라고 있는 군대지 않은가.
그리고 놈들과 생활환경이 겹친다면... 언젠가 반드시 충돌을 하게 되겠지.
"샤아."
"샤란아. 저 새끼들 미행 좀 해보자."
내 던전과 부하들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쌩쌩 돌아간다. 조금 위험하긴 하지만 지금 미행해두지 않으면 나중엔 더 어려울 것이다. 생존에 있어서 정보를 획득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바로 샤란이와 함께 홉고블린 분대를 추격했다.
* * *
"그라라락! 그락그락!"
"규사아앗! 규사아아앗!"
홉고블린 분대와 코볼트 무리의 전투.
ㅡ퍼억!
ㅡ퍼억!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이빨과 손톱을 앞세운 코볼트들로서는 홉고블린 군대의 돌도끼 찜질을 이겨낼 수 없었으니까.
"규사아악!"
"그라랑!"
물론 돌격해온 코볼트가 홉고블린의 팔뚝을 존나 깨물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전우들과 함께 싸우는 홉고블린들은 아주 빠르게 백업을 실시했다.
ㅡ퍼억!
"규륵...?!"
팔뚝을 깨물어대던 코볼트의 머리통이 깨졌다. 전우를 구한 홉고블린이 쓰러진 녀석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워준다.
"그락그락."
"그러억."
심지어 서로 안부 인사까지 나누고 자빠졌다.
"와 시발."
존나 본격적이다. 놈들은 결코 군대를 흉내 낸 오합지졸 집단이 아니었다. 진짜로 싸울 줄 아는 새끼들이다.
"..."
상황을 정리해보자.
구령에 맞춰서 행진하는 홉고블린 분대를 미행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놈들이 코볼트 굴을 발견했고, 발견 즉시 공격을 실시한 상태다. 아주 그냥 일사불란하기 짝이 없다.
"그락그락."
"그락."
진작에 약탈을 마친 홉고블린들이 작은 코볼트들의 시체를 끌고 나왔다.
정말 빠르고 신속한 역할 분담.
"그락그락. 그락."
분대장이 뭐라뭐라 지시를 내리고 홉고블린들이 움직인다. 참으로 놀랍기 짝이 없었다. 이 새끼들 진짜 노련한 군대다.
근데 왜 이딴 놈들과 진작 마주치지 않은 것이지? 이런 식으로 약탈을 하고 다니는 놈들이라면 진작에 한 번 만났지 싶은데.
설마.
외부에서 이사를 온 놈들일까?
다른 곳에 있다가 이 지역으로 이사를 왔을 수도 있다. 왜? 영역 싸움에서 밀려나서? 아니면 이 영역에 있던 강한 몬스터가 사라져서? 잘 모르겠지만 좋지 않다.
그때였다.
"샤아."
샤란이가 내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정면을 가리킨다.
ㅡ뽈뽈뽈.
갑자기 나타난 페어리.
"그, 그락?!"
놈을 발견한 홉고블린이 발작하듯 소리친다. 역시. 저런 군대 같은 녀석들이라고는 해도 페어리를 두려워하는 것은 매한가지인 모양이다.
"그락! 그락그락!"
"그라라락!"
일을 하던 홉고블린들이 순식간에 모든 것을 내팽개치더니, 그대로 두 마리씩 모여 흩어졌다. 바로 산개를 하는 것인가?
그리고는.
ㅡ쐐액!
페어리를 향해 존나게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락! 그라라락!"
"그라아아앙!"
"그락락!"
이 새끼들 페어리를 공격하고 있다!
"이크!"
짱돌들이 날아오자 곤란하다는 듯 소리친 페어리가 회피기동을 실시했다.
ㅡ뽈뽈뽈!
그리고는 완전히 도망을 쳐버린다.
"그라락!"
"그릭!"
만세를 부르는 홉고블린들.
"...!"
나는 그것을 보며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그 두려운 페어리를 아주 침착하게 쫓아낸 것이다. 이 완벽한 움직임을 봤을때, 놈들은 지금 이러는 것이 처음이 아니었다. 놈들은 페어리를 여러 번 격퇴해본 것이다.
확실하다.
두 명씩 빠르게 모이고 바로 흩어져서 집중사격을 실시했으니까.
전우조를 지키고 광역 최면을 회피하기 위해 진작에 페어리 대처 훈련을 했던 것이다...!
ㅡ처억.
나는 입을 가리고 감동했다.
이 새끼들 진짜 엄청나다.
페어리를 두려워하긴 하지만, 훈련받은 대로 대처를 한다. 거기까지 확인을 한 뒤에 샤란이와 함께 저 뒤쪽으로 후퇴했다.
"샤아."
샤란이는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놈들을 경계하는 거겠지.
"후우... 샤란아. 혹시 패어리 알아?"
ㅡ파닥파닥.
바로 쫙 펼친 양 손바닥을 붙여 파닥거리면서 페어리를 흉내 내보았다. 그것을 본 샤란이가 으르렁댔다.
"샤아...!"
경계를 하는 눈치.
아무래도 페어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다.
"샤아. 샤아샤아."
곧 샤란이가 내 손목을 잡고는 막 잡아당겼다.
"샤아샤아."
걱정스러운 얼굴.
돌아가자는 건가?
하긴. 얼마 전까지 야생소녀였던 샤란이다. 적을 미행하고 관찰하기보다는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샤아샤아. 샤아."
자꾸만 돌아가자고 하는데... 바로 샤란이의 손목을 잡아줬다. 지금 돌아갈 순 없다. 우리들의 안전과 미래를 위해 놈들의 정보를 최대한 많이 획득해야 한다.
"알겠어. 근데 기다려. 놈들이 어디로 가는지만 딱 보고 돌아가자. 알겠지?"
"샤아..."
알아들은 것일까?
ㅡ추욱.
샤란이의 나뭇잎 귀가 추욱 늘어졌다.
"아이고. 샤란아. 미안해. 그래도 우리가 살려면 중요한 일이니까. 딱 그것만 보고 가자."
ㅡ스특.
사과를 하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축 처졌던 귀가 다시 올라왔다. 그리 한참 동안 머리를 쓰다듬은 뒤에.
다시 홉고블린 분대를 미행했다.
* * *
그렇게 놈들의 본진에 도착했다.
"..."
움집.
아주 원시적으로 적당히 만들어진 움집들이 보였다. 뿐만이 아니다. 그 움집 마을에는 홉고블린 주민들이 돌아댕기고 있었다.
그 숫자만 해도 한 개 소대급.
"그라라락!"
"그락! 그락!"
"그라락!"
주민들이 코볼트들의 시체를 들고 귀환한 군대를 환영해줬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