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 홉고블린 놈들 # 2
* * *
이 새끼들 진짜 존나 잘살고 있다!
한 삼십여 마리가 모여서 마을을 이룬 채 살고 있었다니.
이거 마왕 체면이 말이 아니다. 저런 한낱 몬스터 놈들도 마을을 이룬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을. 마계공작령 출신 큘스는 아직 던전 하나조차도 제대로 완성하지 못한 상태다.
아무튼.
역시 위험하다.
이렇게 마을을 이룬 녀석들과 여태까지 마주치지 않았던 이유는 단 하나일 것이다. 놈들은 어디 다른 곳에서 이사를 온 거다. 그렇지 않고서야 여태까지 보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그리고 놈들이 이사를 왔다면... 필연적으로. 최대한 빨리 주변 정찰을 시도할 테지. 그러다 그 정찰 반경에 우리 집 던전이 얻어걸린다면?
전 쟁 이 야!
오우!
겁쟁이야!
오우!
갑자기 분노에 찬 엠블랙이 소환된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거기까지 판단을 마친 나는 녀석들의 전력을 분석했다.
"그락! 그락!"
"그라라락!"
우선 이 홉고블린 놈들에게도 아이. 어른. 여자. 노인들이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따진다면... 싸울 수 있는 전사들의 숫자는 약 3할 정도로 잡으면 되겠지?
그래도 열 마리 정도네, 씨발.
"..."
아예 지금 마족브레스로 움집에 불 지르고 도망쳐버릴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패스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지금으로선 공격해봤자 별다른 재미를 못 볼 것이다.
ㅡ스윽.
일단 움집의 위치 등등을 확인한 다음에 몸을 뺐다.
놈들과의 충돌은 필연적. 그렇다면 놈들을 몰살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가 없다.
우리들의 전력을 확충해야 해.
"샤란아. 이제 째자. 시간이 없다."
"샤아."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샤란이가 내 손목을 붙잡았다.
* * *
"근데 중간계에는 인간이 있다고 그랬는데."
인간은커녕 인간 할애비도 본 적이 없다.
저런 홉고블린 부족이 이 정글 속에서 마을을 이룬 것을 보면... 여기는 인간들 거주지랑 좀 많이 떨어져 있는 걸까? 그렇다면 좋은 일이다. 인간들이랑 충돌해봤자 좋은 일을 없을 테니까.
그런데 던전이 있으면 터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냐?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다. 돈 될만한 거 찾으려고 이 오지까지 오는 새끼들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터다. 잘은 몰라도 마족이면 뭐 생포해서 가져가면 돈 좀 쳐주지 않을까 싶은데.
시발.
이것까지 생각하기엔 지금 우리 상황이 많이 안 좋다.
우선 상황에 집중하자.
"아무튼. 너거덜이 알아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주변에 홉고블린 부족이 있다. 놈들과 충돌하게 될 것이 분명해."
"케륵."
"끄륵."
자리에 앉은 채 내게 집중하고 있는 부하들의 모습.
그 눈은 참으로 멍청했다.
애새끼들을 모아두고 홉고블린에 대해서 설명을 해봤지만 알아들은 눈치는 아니다.
"그럼 대충 알아들었다고 치고. 지금부터는 전시체재로 들어간다. 던전 확장공사는 잠깐 중지야."
"케륵?"
"지금부터는 병력확충이랑 집단 전투훈련에 집중한다. 야! 신삥아!"
"케륵!"
내 외침에 군기가 바짝 든 신삥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차렷자세를 취했다.
"케륵케륵."
그것을 본 부릴이가 만족스럽다는 듯 고블린미소를 짓는다. 훈훈한 광경. 하지만 이건 그냥 훈훈함을 느끼고 넘어갈 만한 일이 아니다.
"고블린들도 이렇게 완벽하게 훈련을 시킬 수가 있다."
그렇다면 홉고블린 군대처럼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보라. 우리 두 번째 고블린인 신삥이를. 여기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저렇게 각 잡힌 차렷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 새끼들을 천부적인 군인의 자질을 지니고 있어.
군인은 전사처럼 개인이 강할 필요가 없다. 그저 명령과 통제를 잘 따르기만 하면 될 뿐.
"나 육군병장 만기전역 김큘스가 너희들을 완벽한 군인으로 만들어주마."
군대는 군대로 물리쳐야 한다.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상식이다.
던전 확충공사는 잠깐 중단하고, 고블린 군대를 조직해보도록 하자. 우리 던전 크기를 생각했을 때... 우선 여덟 마리. 여덟 마리의 고블린을 지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샤란아. 네 도움이 아주 절실해."
"샤아?"
우선 샤란이는 이 고블린 같은 소형 몬스터들에게 있어서 아주 큰 공포의 대상이다. 그리고 공포에 빠진 몬스터에겐 내 지배술이 아주 잘 먹혀들어 간다. 그것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도록 하자. 금방 병력을 확충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식량문제 때문에 인원을 제대로 확충하지 않았지만 지금부터는 전시체재다. 병력을 빠르게 늘릴 필요가 있다.
"일단 샤란아. 오늘도 도구 만들기 놀이할까?"
"샤아!"
벌떡 일어난 샤란이가 총총총 나무로 다가갔다. 바로 창이나 삽을 만들어 줄 생각인 모양.
그런 샤란이를 제지한다.
"샤란아. 잠깐. 오늘은 다른 거 필요해."
"샤아?"
"잘 봐봐. 이렇게."
ㅡ스윽.
바로 흙바닥에 동그라미와 네모를 그렸다. 딱 고블린이 들 수 있을 만한 크기의 것으로.
"이건 방패라고 하는 건데, 동그란 거랑 네모난 거. 두 개 중에 만들기 편한 거 만들어줄래?"
"샤아...?"
"이걸 이렇게 막 드는 거야."
바로 방패를 드는 시늉을 하면서 설명을 덧붙였다. 똑똑한 샤란이라면 알아들을 것이다.
"샤아... 샤아! 샤아샤아!"
활짝 웃는 샤란이.
"오오! 알아들은 것이냐!"
즉시 샤란이가 나무로 다가갔다, 음? 그런데 갑자기 방향을 틀고는 다른 나무로 가는 것이 아닌가. 보니까 무슨 나무를 고르는 것 같았는데.
ㅡ고오오.
곧 샤란이가 마법을 전개하자.
ㅡ뿌득! 뿌드득!
나무 덩굴이 빠르게 자라나면서, 무슨 소용돌이처럼 말려들어 가기 시작한다.
"저기 무슨... 어! 아! 그거구만!"
ㅡ뿌득뿌득.
자라난 덩굴이 마치 달팽이의 소용돌이 껍질처럼 나선으로 말려들어 간다. 그렇게 동그란 모양의 덩굴 방패가 완성되었다. 구체적인 생김새를 비유하면... 그래. 골뱅이 문자. `@` 딱 골뱅이 문자 같은 느낌이다.
"샤아."
"역시 우리 샤란이 엄청 똑똑하다니까! 너무 이쁘다!"
ㅡ쪽쪽!
바로 샤란이를 끌어안고 볼에 뽀뽀를 박아줬다!
"샤아샤아."
그러자 샤란이가 기분 좋다는 듯이 내 볼을 핥아줬다. 아! 이제 이 정도 스킨십까지는 괜찮나 보구나! 이, 이렇게 범위를 늘리다 보면... 가슴 터치도 되지 않을까?
"케륵..."
"끄륵..."
"규삿..."
내 부하들이 날 바라본다. 무슨 상관이냐? 그렇게 하고 싶은 만큼 스킨십을 즐긴 뒤에.
바로 덩굴방패를 확인했다.
"호오."
이거 참 물건이다.
좀 질긴 덩굴이 감겨있는 형태라 나름대로 내구도가 괜찮아 보인다. 그리고 아주 센스가 좋게도 손잡이가 달려 있는 상태였다. 진짜 샤란이 너무 이쁘다. 덩굴 방패에 나무창이라니? 완벽하기 그지없다.
아무튼.
바로 훈련을 시작한다.
"자! 신삥아! 이거 방패 들어!"
"케륵?"
"부릴이는 창 들고!"
"케륵케륵."
내 명령에 신삥이가 방패를 잡아 들었고 부릴이가 창을 잡아 쥐었다. 참 훌륭한 한 쌍이다.
"니가 방패병이고 너가 창병이다. 그럼 신삥아. 여기 앞에서 방패 들고 서라. 부릴이는 그 뒤에 서고."
"케륵?"
ㅡ저벅저벅.
놈들이 내 지시에 따라 움직인다.
전방에는 방패를 든 신삥이.
그리고 그 뒤에는 창을 든 부릴이.
완벽한 한 쌍.
"케륵?"
놈들은 아직 이 진형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지만, 그건 훈련으로 가르쳐주면 된다!
"신삥이 방패 들어 올리고! 부릴이 전방에 창 겨눠!"
"케륵...?"
"야 임마. 진짜 못 알아듣니?"
어쩔 수가 없다.
바로 신삥이의 방패를 뺏어 들고 설명을 해줬다.
"야, 야. 신삥아. 방패 딱 이렇게 잡고. 몸 웅크려서! 방패로 니 몸을 가려!"
"케륵?"
"해봐."
"케륵케륵."
방패를 잡은 신삥이가 내가 했던 것들을 흉내 낸다. 좋다. 다시 부릴이를 뒤에 세우고, 그 창대를 잡고 위치를 잡아줬다.
"좋아. 이게 가장 기본적인 방진 자세다. 알겠지? 내가 방진형성이라고 말하면 이렇게 하는 거다? 방진형성. 알겠냐?"
"케르릉."
방진형성이라는 말을 계속 강조한다. 놈들도 듣다 보면 깨우칠 것이다.
"그럼 부릴아! 전방에 창 찔러!"
"케륵!"
신삥이의 뒤에 숨은 부릴이가 전방에 창을 내질렀다.
ㅡ쑤욱!
훌륭한 동작.
창술을 계속 가르쳐왔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동작이다.
"좋아. 아주 좋다, 제군들! 훈련상태가 아주 양호해! 앞으로 창병들은 그렇게 방패수 뒤에 숨어서 공격을 하면 된다!"
일종의 고블린 팔랑크스다.
팔랑크스 부대를 던전안에 배치해두면 길목이 좁은 던전의 특성상 아주 유효할 것이 분명하다. 원래 이런 팔랑크스 자체가 방어적인 진형이다. 던전을 방어하는 데 있어서 이거만 한 게 없겠지.
방진을 세워둔다면 설령 홉고블린 군대라고 해도 쉽게 돌파하지는 못할 것이다. 놈들은 돌도끼나 창을 들고 단체로 싸울 뿐이지 이런 고등전술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던전에 들어오자마자 벌집이 되겠지.
"대충 이렇게 싸울 건데... 아 시발. 알아듣지 못하니 원. 부릴아. 저 나무 끝으로 가고. 신삥아! 저 던전 앞으로 가!"
"케륵!"
일사불란한 움직임.
"그럼!! 방진형성! 방진형성!"
바로 명령을 내리자.
"케륵?"
신삥이가 두리번거린다!
이런 빌어먹을 녀석!
"케륵케륵!"
그때 부릴이가 소리치면서 신삥이에게 손짓을 했다. "케릉!" 그제서야 신삥이가 덩굴방패를 들고 허겁지겁 달려와서 부릴이 앞에 섰다.
ㅡ처억.
머리 좋은 부릴이가 바로 전방에 창을 겨눈다!
"케륵!"
그리고 확인해달라는 듯이 날 바라본다!
"조오오오아쓰으으으으으으으! 부릴이! 잘했다! 신삥이도 잘했어!"
바로 녀석들의 머리를 격하게 쓰다듬어줬다!
"케르르릉."
"케릉."
좋다는 듯 울음소리를 내는 녀석들!
이 새끼들 방금 조금 알려준 것으로 대충 개념을 이해했다! 이대로만 훈련시킨다면 내가 원하는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 분명!
"끄륵?"
"규삿?"
"근데 늬들은 뭐."
일단 고블린 소대 완성하면 그다음에 임프 소대도 만들 생각이다. 놈들은 화염을 던질 수 있다. 일자로 세워두고 동시에 던지기만 시켜도 뎀딜은 되겠지.
코볼트들은 뭐 땅 잘 파니까 일꾼들로 쓰면 될 거고.
좋다.
고블린 팔랑크스.
임프 척탄병.
코볼트 노동자들로 내 마왕군을 구성해보도록 하자!
"그럼 얘들아! 오늘은 단체로 나가서 전우들 늘려보자!"
"케르윽!"
지금부터 빡진지 진심 병력보충 시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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