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 홉고블린 놈들 # 5
* * *
"앞으로오오옷! 가앗!"
ㅡ처억!
"하나! 둘! 하나! 둘!"
"케륵! 켁! 케륵! 켁!"
내 명령에 따라 제식이동을 실시하는 고블린들.
ㅡ척척척척.
물론 존나 개엉망진창에 좆개판이었다.
제식이라는 걸 이해 못 한 부릴이는 왼발 왼손이 같이 나가고 있었으며, 다른 고블린들은 아예 넘어지거나 풀쩍풀쩍 쩜프를 해댔다. 발이 꼬이는 것은 다반사요, 어느 발부터 나가야 할지 몰라 멈춰섰다가 뒷 새끼랑 부딪히는 경우도 허다했다.
"케륵! 켁! 케륵! 켁!"
그런 와중에 구령만 잘 넣고 있으니 원.
"후우. 정지."
"케륵."
다시 정지 명령을 내린다.
약 1시간 동안 열심히 제식에 대해서 교육을 했으나, 역시 고블린들이라서 그런지 도통 알아먹지를 못했다.
제식은 진짜 중요하다.
나 진짜 군대에 있을 때는 제식 이 개씨발거 이동속도만 존나게 느려지고 피곤하기만 한 개쓰잘떼기없는 쓰레기보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솔직히 그건 사실이었다.
한국군이 실전에서 제식할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전쟁 나면 제식이고 나발이고 총 들고 싸우는데 말이다.
현대군이 제식을 하는 것은 그냥 군기주입 교육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실전에서 쓸모가 없는데 재미가 있을 리도 없고 의미를 찾을 수 있을 리도 없다.
근데 여기서는 아니다.
"진형."
던전 안에서 진형을 이루고 싸우려면 일사불란하고 정확한 움직임이 필수적이다. 팔랑크스 자체가 바로 그 진형을 유지하는 전술이니까.
진형이 깨지면?
그대로 모랄빵이 나는 거다.
진형의 이점을 살려서 싸우는 건데 그게 와해되면 그냥 막싸움에 불과하다. 근데 막싸움이라고? 홉고블린과 고블린들 체급 차이를 봐라. 막싸움으로는 절대로 못 이긴다. 그래서 전술이 필요한 거다.
이 세상에서 제식은 장난이 아니라 실전용 보법인 것이다.
"케륵! 케륵케륵!"
소대장 부릴이가 팔을 붕붕 휘두르면서 애들을 정렬시킨다. 그래도 이거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 정렬은 잘하는구나.
"그래 뭐. 어떻게 하루 만에 잘하겠니."
생각해보니 뭐.
훈련소에 있을 때도 그랬었다.
제식훈련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수료식 끝날 때까지 이상하게 걷는 놈들이 있을 정도였지. 일부러 그러는 건진 모르겠는데 자기 몸을 잘 조종하지 못하는 친구들도 많이 있었다.
심지어 상장받으러 나가는데 오른발이랑 오른손이 같이 나가더라... 인간도 그 모양인데 고블린이 별수 있겠나.
원래 제식훈련도 한 5일인가? 3일인가? 대충 그쯤 하지 않았던가? 기억이 잘 안 나긴 하는데 좀 오래 했던 것 같다. 아무튼 인간도 그 정도인데 고블린들은 더 많이 훈련해야 한다.
"자, 그럼! 본 마왕이 제식하는 법을 다시 한번 보여주겠다! 이렇게. 왼발!"
ㅡ처억!
왼발을 먼저 내딛는다. 여기서 오른손은 정지다. 창이나 방패를 들고 있는 손이니까.
"그리고 오른발!"
ㅡ처억!
다시 오른발을 내딛으면서 왼손을 쳐올린다, 그렇게.
"왼발! 왼발! 왼발! 하나! 둘! 하나! 둘!"
진짜 열과 성을 다해서 제식 시범을 보여줬다. 부릴이를 보니 이 새끼 대충 이해는 한 것 같은데, 흉내 내고 있는 거 보니까 심하게 버벅거린다. 자기 몸 통제가 잘 안되는 모양이었다.
"샤아! 샤! 샤아!"
그러고 있으니 샤란이가 내 옆으로 따라붙어서 제식을 흉내 냈다.
"세상에."
"샤아!"
세상 행복해 보이는 얼굴로 그 길고 아름다운 다리를 쭉쭉 뻗으면서 제식을 하고 있는데, 오우 야. 지금 야한 나뭇잎 팬티만 입고 있는 상태라서 엉덩이라인이 아주 그냥 죽여줬다... 이거 참.
저런 아름다운 몸매를 맨날 보고 있으니 참는 것도 일이었다.
지금 저렇게 속옷만 입고 있는 늘씬한 장신 미녀인 샤란이에게 베레모 같은 것을 씌워주고. 제식훈련을 시킨다면.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몽정 확정이다.
ㅡ홰액!
바로 머리를 흔들어 잡념을 떨쳐낸다! 샤란이는 존재 자체가 너무 자극적이다!
"그래! 샤란이 잘한다! 하나! 둘! 하나! 둘!"
"샤아! 샤! 샤아! 샤!"
아무튼 이게 샤란이는 제식이 바로바로 되는데 말이다.
"규삿삿!"
"끄르르륵!"
그러고 있으니 임숭이랑 규일이 패거리들도 이쪽으로 와서 날 흉내 내기 시작했다. 물론 좆도 안 비슷했다. 임숭이는 존나 무슨 게딱지 마냥 옆으로 삭삭삭 걸었고, 규일이 놈들은 죄다 네발로 걸으려고 했다.
정말 엉망진창 동물원이 따로 없군.
"야, 야. 정신 사나우니까 그만해 임마. 거 임숭아."
"끄륵?"
"너 놀지 말고 가서 열매 좀 캐와라. 규일이 패거리 데리고 가서. 규일아! 임숭이랑 가서 열매 캐와!"
"규삿!"
바로 녀석들이 무리를 이룬 채 요 앞으로 나갔다.
"흐흐흐, 귀여운 새끼들."
쟤네들만 보내는 것은 좀 위험하지만 슬슬 이 정도는 괜찮았다.
그 왜. 영역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우리가 여길 차지한 뒤로 하도 주변을 쏘다니고 다녀서 `영역` 개념이 확립된 것인지 이 주변에는 포식자라고 할만한 놈들이 없었다.
말하자면 이 던전 주변은 우리들의 나와바리인 것이다. 그러니 열매를 캐오라는 심부름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럼 제식훈련 다시 시작하자. 모두 위치로!"
"케륵!"
"지금부터 제식 이동을 실시한다. 앞으로 갓! 하나! 둘! 하나! 둘!"
"케륵! 켁! 케륵! 켁!"
"흐음."
방금 전보단 나아진 것 같지만 이 새끼들 진짜 손을 가만두지를 못하는군.
전열의 방패병 놈들은 아예 방패를 흔들면서 움직였다.
"야, 야. 안 되겠다. 오늘은 정지. 그냥 전투훈련부터 시작하자."
"케륵?"
"모두 위치로. 방패병들 방패 들어라."
내 말에 방패병들이 방패를 조금 들어 올려 자신의 몸을 가렸다. 아직 이 새끼들은 방패 쓰는 법을 잘 모른다. 그럼 알려줘야지.
ㅡ뚜둑.
나는 근처에서 나뭇가지를 하나 뜯어와서 던지기 편한 크기로 뚝뚝 부러뜨렸다.
"샤아?"
"어. 샤란아. 왜."
"샤아샤아."
그때 샤란이가 나뭇가지를 잡고는, ㅡ뚜둑. 자기가 직접 부러뜨려줬다. 녀석! 내 도움이 되고 싶은 것이로구나!
"흐흐흐, 샤란이 진짜 이쁘다니까."
"샤아."
아예 칭찬해달라고 머리를 들이민다. 바로 그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이대로 가면 자연스럽게 가슴을 만질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아무튼.
"자 방패병들! 지금부터 이거 던질 테니까 방패로 막아라!"
"케륵?"
"그럼 시작!"
ㅡ파앗!
바로 나무토막을 던지자.
ㅡ파악!
"케엑?!"
사호기의 이마에 적중한다! 놈이 비명을 터트리면서 이마를 부여잡았다.
"야이, 씨! 임마! 방패로 막아야지! 막으라고!"
"케엑!"
"다시 시작!"
그렇게 나는 계속해서 나무토막을 던졌다.
ㅡ파악!
ㅡ파악!
ㅡ파악!
"케엑!"
"켁!"
"케륵!"
아니 이 새끼들 진짜 방패 존나 못 쓰네! 방패라는 개념을 처음 알았어도 사용하는 걸 아예 모를 줄이야!
"모르면 맞아야지 이 시발! 야! 계속 간다!"
그렇게 한참 동안 나뭇가지를 던져댔고.
"케, 케륵!"
충격요법이 통한 탓일까?
ㅡ뻐억!
드디어 방패로 공격을 막아냈다!
"요시! 잘했어! 너희들이 바로 적응의 동물이로구나!"
계속 머리통을 처맞다보니 적응이 됐는지 방패로 나무토막을 막아내기 시작한다.
"흐흐흐, 그래. 역시 맞으면서 해야 효율이 는다 이거지?"
다 지들 맞기 싫으니까 들고 있는 걸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깨달은 것이다. 고블린들은 야생에서 살아오던 놈들이다. 결국 몸으로 체험을 해야 깨닫는다.
나는 나무토막을 몇 번 더 던졌고.
ㅡ빠악!
녀석들은 방패를 재주 좋게 들어 올려 그것들을 전부 다 막아냈다.
"잘했다! 이 새끼들 재능이 있어!"
"케, 케륵...?"
바로 달려가서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을 해줬다. 내 고블린들은 칭찬을 먹고 자라는 스펀지들이었으니까.
"케륵케륵!"
봐라. 바로 좋아하고 있다. 뒤에 있는 부릴이의 시선이 묘했지만 우선은 얘들부터 칭찬이다.
"자, 그럼! 이제 본격 훈련 시작이다!"
바로 긴 나뭇가지를 들고 왔다. 창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봉.
"이제 이걸로 존나 찌를 테니까 잘 막아보렴."
"케륵?"
"하압!"
ㅡ콩!
바로 녀석들의 방패 진형을 향해 봉을 내질렀다.
"케, 케륵?!"
그러자 눈에 띄게 당황한 고블린들이 서로 어깨를 비벼대면서 방패를 요리조리 놀렸다. 좋다.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진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에잇!"
그런 녀석들을 향해 계속 봉을 내지른다!
ㅡ콩!
ㅡ콩!
ㅡ콩!
"케륵!"
아주 훌륭하게 막아내는 방패병들! 와 시발! 애들이 훈련 잘 따라오니까 진짜 존나 재밌었다! 이게 이렇게 재미있다니!
"하하하하하! 하하! 하하!"
그렇게 신나게 봉을 내지르고 있으니.
"케, 케르르륵!"
"음?"
돌연 사색이 된 부릴이가 뛰쳐나오더니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는 파리마냥 손을 비벼대면서 뭔가를 빌어대는 것이 아닌가.
"케르륵! 케륵! 케르르륵!"
"뭐, 뭐라고? 니 지금 뭐하니? 부릴아?"
"케르르릉!"
사색이 된 얼굴로 빌어대는 부릴이... 대체 뭐지?
"아?"
설마?
이거 설마 내가 애새끼들 존나 두드러 패고 있는 줄 아는 건가? 왠지 모르게 빡이 친 내가 방패병들을 존나 패고 있다고 생각한 것? 그래서 빌러 온 거냐?
아니!
"야 임마! 오해야 이 새끼야! 형이 그러겠니! 훈련이라고 훈련!"
바로 해명을 했으나.
"케륵...?"
이 새끼 알아들은 눈치가 아니었다!
"아오 임마! 연습이라고 연습! 전투훈련! 니 시발 형이 기분 나쁘다고 애새끼들 다 줘패는 씹새끼라고 생각한 거냐! 어! 내가 그럴 리가 없잖아!"
"캐루룽?"
아나! 이건 좀 알아들었으면 좋겠는데! 내 심복인 부릴이한테 이상한 오해를 사고 싶지는 않았다!
"야 임마! 아니라고! 아니야!"
"케, 케르륵!"
"케르르륵!"
그러고 있으니 방패병 놈들이 방패를 내려놓고는 내게 달려와서 존나 애원을 해대기 시작했다.
"샤, 샤아. 샤아샤아."
심지어 샤란이 마저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내 어깨를 쓰다듬고 있었다.
"아이고! 얘들아 나 화내는 거 아니라고!"
이 오해를 대체 어떻게 풀어야 하냐!
* * *
그런 식으로 훈련의 나날이 지나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샤란이가 나무 장비도 더 만들어줬고, 포로로 삼았던 고블린들 역시 전부 다 내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그것으로 창과 방패로 무장한 고블린 팔랑크스 분대를 완성하게 되었다.
숫자.
여덟 마리.
이 정도면 충분히 분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좋아. 이제 당분간 병력 늘리기는 관두고... 보자. 일과 짜고. 훈련하고. 사냥하고. 그러면서 어둑해지면 개인수련하면 되겠다."
슬슬 흑마법도 공부해야 하고.
내 개인 단련도 해야 한다.
책을 펼쳐보니 임숭이마냥 손으로 불 쏘는거랑 뭐 언데드 일으키는 거랑 뭐랑 여러 개 있긴 하더라.
"마력추출술?"
그것도 더 써버릇해야 하는데. 지금 식량이 모자라서 시체를 마력결정으로 바꾸는 일은 아직 안 하고 있었다.
아무튼.
"샤란아. 아침 정찰 나가자."
"샤아."
일어났으니 이제 일과에 따라 샤란이랑 아침 정찰을 나가야 한다. 보니까 샤란이는 숲길을 느긋하게 걷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그럼 같이 해줘야지.
말고도 나와바리 관리는 철저하게 해줘야 한다.
"샤아샤아."
걷고 있으니 샤란이가 내게 팔짱을 껴온다.
"이거 완전 데이트네."
"샤아."
이대로... 샤란이를 어디 조용한 곳으로 끌고가서. 둘이서 조금 오붓하게 놀고 싶은 생각도 든다.
"샤아?"
하지만 샤란이의 표정이 너무 순수했다...! 이렇게 야한 몸을 하고 있는 주제에 극도의 귀염성과 순수함을 내보이고 있다! 이런 샤란이에게 그런 짓을 한다는 것이 뭔가 나쁜 일처럼 느껴졌다... 아무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샤란이와 같이 정찰 겸 아침 산책을 하고 있을 때였다.
ㅡ파앗.
순간 내 귀가 움찔거렸다... 뭐지? 귀가 움찔거렸다고? 조금 신기한 감각이라서 집중을 좀 해보니, 뭐랄까. 소리가 들렸다.
"...라락."
"...락."
희미한 소리.
ㅡ파앗!
순간의 판단.
바로 포복을 실시하고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나아가자.
"그라락."
"그락."
홉고블린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도 두 마리.
자루를 들고 있는 녀석들.
...정찰병인가?
여기 우리집이랑 좀 가까운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