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 홉고블린 놈들 # 6
* * *
그래. 드디어 때가 된 것이다. 이 지역으로 이사를 온 홉고블린들은 주변을 정찰하기 시작할 것이고, 그리하다 보면 언젠가 반드시 우리 집의 위치를 들키게 된다.
그리고 전쟁이 시작된다.
난 그것에 대비했다.
그러려고 만든 팔랑크스이지 않은가.
네 마리의 방패병과 네 마리의 창병이 던전 통로에 나란히 서서 진형을 이룬 채 방어를 한다면, 반드시 이길 수 있다. 팔랑크스는 굉장히 방어적인 전술이다. 방어전에서 질 리가 없다.
ㅡ꿀꺽.
하지만 역시 불안을 지울 수는 없었다. 저런 놈들이랑... 전쟁을 해야 한다니. 희생이 발생할 것이다. 놈들이 돌도끼로 방패병들의 방패를 부수고, 짓밟고, 돌격을 해온다면, 반드시 그리되겠지.
그런 예감이 든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
"그라라락."
"그락."
팔뚝이 생각보다 굵었다. 뭐 팔씨름하면 당연히 내가 이기겠지만, 아무리 봐도 고블린 수준에서 상대할만한 포식자가 아닌 것이다.
"..."
어쩌지.
샤란이랑 나.
상대방은 정찰 나온 홉고블린 두 마리.
전력은 이쪽이 월등하다. 홉고블린 피지컬이 고블린보다 강하긴 하지만 두려운 것은 그 강함이 아니라 녀석들의 군대.
지금 놈들을 습격해서 숫자를 줄여둘까? 놈들의 전력을 두 마리나 깎아 먹을 수 있는 기회다. 홉고블린 마을의 인구는 약 삼십 정도. 거기서 두 마리만 죽여도 거의 뭐 10%에 가까운 전력을 깎을 수가 있다.
ㅡ두근.
심장이 강하게 뛰었다.
놈들을 죽이고 전력을 줄여야 한다. 그런 판단이 들었다. 리스크는? 놈들의 침공이 앞당겨지는 것. 군대를 조직한 놈들인 만큼 정찰병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반드시 조사할 것이다.
뭐가 됐든.
난 선택해야 한다.
이 정찰병들을 죽여 놈들의 전력을 깎은 상태로 조금 더 빠르게 전쟁을 하느냐, 아니면 이 녀석들이 다른 곳을 구경하다가 돌아가기를 빌며 힘을 비축할 시간을 조금 더 버느냐.
극한의 이지선다.
"그락."
"그라라락."
ㅡ스윽.
그때 홉고블린들이 이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ㅡ스멀스멀.
바로 포복후진을 실시하여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 그 상태로 샤란이와 함께 나무 뒤에 숨어서 홉고블린들을 관찰했다.
"그락락."
"그락."
주변을 살펴보던 홉고블린들이, 어느 방향을 가리켰다. 뭔가를 발견했나? 아니. 분위기가 너무 평탄하다. 그냥 저기 한번 가보자고 가볍게 말하는 분위기.
그리고.
그 방향은 우리 던전이 있는 곳이었다.
ㅡ저벅저벅.
홉고블린들이 아주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방향을 가리킨 쪽으로. 우리 던전이 있는 쪽으로.
"..."
선택했다.
놈들이 우리 집 쪽으로 온다면 죽인다. 내 부하들이랑 함께 와서 죽인다. 이건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내 부하들에게 홉고블린들에 대한 정보를 줄 기회니까.
와라.
속으로 그리 생각하면서, 홉고블린들을 감시했다.
ㅡ스윽.
샤란이 역시 내 어깨에 턱을 올린 채 홉고블린들을 바라보았다. 참 편하게도, 샤란이 몸에 감겨 있던 덩굴에서 잎사귀가 피어나서 천연 길리슈트가 만들어진 상태였다.
진짜 매복 전문가다, 전문가.
지구에서 태어났으면 그냥 전문 저격수 해도 됐을 거다.
* * *
결국 홉고블린들은 존나게 걸은 끝에 우리집 근처에 도착하게 되었다. 얘들이 뭐 우리 흔적을 본 것인가? 그래서 여기까지 걸어온 것?
아무튼 놈들을 미행하는 내내 아리랑치기를 해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지만, 참았다. 나랑 샤란이 둘이서 싸우느니 내 부하들이랑 같이 싸우고 싶었으니까.
다구리를 칠 수 있으면 무조건 다구리를 쳐야 한다. 이건 내 지론이다. 혼자서 강한 거? 아무 쓸모 없어. 짐승새끼도 아니고 이기려면 결국 다구리를 쳐야 하는 법.
"그락."
"그라락."
놈들은 태평하게 걸었다. 미행을 당하고 있다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고 있는 태도. 주변을 경계하긴 하지만 아직은 느긋해 보인다.
하지만.
녀석들이 우리집 던전 입구를 발견하게 되자.
"그, 그락...?!"
"그락락!"
순식간에 분위기가 급변했다. 얼굴색을 싹 바꾼 녀석들이 눈에 띄게 당황하더니 잽싸게 도망칠 각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바로 샤란이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찌름과 동시에.
ㅡ파앗!
크게 쩜프하여 녀석들 쪽으로 달려가 소리친다!
"마왕 큘스! 등장! 크아아아악!"
동시에!
"샤아아아!"
샤란이가 내 옆으로 따라붙어 위협 포즈를 취했다!
"그, 그락?!"
"그라락?!"
갑자기 등장한 우리를 본 홉고블린들이 경악을 하더니, 던전쪽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좋다! 여기까지 몰이를 한 보람이 있군!
"부릴아! 애들 데리고 나와라! 전투준비!!!"
그리 소리친 순간.
"케라아아악!"
"케레에에엑!"
던전 안쪽에서부터 들려오는 울음소리. 곧, 나의 고블린 팔랑크스 분대가 각자의 장비를 꼬나쥔 채 달려 나왔다!
"그락?!"
나와 고블린들을 번갈아 쳐다보는 홉고블린! 아주 당황스러울 것이다! 전방엔 마왕! 그 뒤에는 마왕군! 순식간에 완전히 포위를 당한 상황이니까!
"케, 케렉?!"
"케르륵!"
뛰쳐나온 고블린들이 바로 진형 비슷한 것을 만들었다. 어설프긴 하지만, 완벽하다. 2인1조 구성으로 전방 방패와 후방 창 형식을 이루고 홉고블린을 포위하려고 했다!
하지만.
"케, 케르윽...!"
"캐루룽!"
순간 고블린 녀석들이 몸을 움찔거리면서 공포를 드러냈다. 당연하다. 자연 상태에선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니까. 홉고블린을 보고 본능적으로 쫄아버리고 만 것이다.
여기까지는 예상 범위다.
"새끼들아! 쫄지 마라! 내가 있지 않느냐!"
바로.
"마족브레에에에스!!"
ㅡ화르륵!
홉고블린 놈들을 향해 화염을 뿜었다.
"그라아악?!"
뿜어진 화염이 허공을 핥고 지나갔다. 물론 사정거리가 짧아서 닿는 일은 없었다. 그냥 화염 비주얼로 위협을 좀 했을 뿐. 아무튼 이 마족브레스로 홉고블린들은 더욱 겁을 먹게 되었고.
"케륵!"
"케르르륵!"
내 부하들은 사기를 되찾았다. 이 나의 위대한 모습을 보고 다시 용기를 얻은 것이다!
"공격해라아아아아앗!!!"
그리고 명령을 내린 순간!
"케륵! 케륵!"
"케륵! 케륵!"
"케륵! 케륵!"
부릴이의 구령에 따라 고블린들이 천천히 전진하면서 홉고블린들에게 창을 들이밀었다.
"그라아아악! 그라아악!"
"그라라락!"
홉고블린들은.
ㅡ부웅!
ㅡ부웅!
그저 돌도끼를 마구잡이로 휘둘러대면서 어쩔 줄 몰라 할 뿐이었다. 전방에는 불을 뿜는 사악한 괴물인 나와 드라이어드. 그리고 뒤에는 여덟 마리의 고블린 분대.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대패닉이다.
"그, 그락!"
그렇게 우리들은 천천히 포위망을 좁혀나갔고.
ㅡ푸욱!
ㅡ퍼헉!
결국 홉고블린 녀석들의 등판에 나무창이 박혀 들어갔다!
"그락...!"
"케르르르륵!"
ㅡ푸욱!
ㅡ푸욱!
ㅡ푸욱!
한방으로 끝나지 않는다. 고블린들이 미친 듯이 창을 찔렀고, 홉고블린들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한 채 픽 쓰러졌다... 승리!
"오, 오오! 오오오오오오오오!!!"
이겼다!
"이겼어!"
극한의 전율, 극렬한 쾌감!
ㅡ파치칫!
그 모든 감정이 나의 전신을 강타하고 지나갔다! 이겼다! 이긴 것이다! 그것도 아주 간단하게 이겼다!
단순히 포위!
포위를 한 것만으로 이 홉고블린 두 개체를 아주 간단하게 처치했다! 우리가 전술을 사용했기에 얻을 수 있었던 빛나는 승리!
"우리의, 승리다! 만세에에에에에!"
"케르르르륵!"
"케르르르르륵!"
"샤아아아아아!"
승리를 선언하자 고블린들이 일제히 만세를 불렀다.
"잘했다! 아주 잘했어!"
바로 나의 이 작은 영웅들을 칭송해줬다.
"케릉!"
부릴이가 폴짝폴짝 뛰었고, 다른 고블린들 역시 배를 까뒤집고는 바닥에 등을 비벼대며 꺅꺅거렸다.
"크윽...!"
눈물이 흘러나온다.
이번 전투로 얻은 것은, 정말로 많았다.
우선 사기와 승리경험. 고블린들은 자기보다 강한 상대를 무찔렀고, 그것은 자신감으로 이어질 것이다. 거기에 전투경험. 싸우는 법을 직접 사용해 터득했고, 마지막으로 적에 대한 정보. 홉고블린들의 정보를 획득했다.
"이길 수 있어."
홉고블린 군대가 쳐들어와도 이길 수 있다. 그것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그럼 얘들아! 이 새끼들 잡아먹고 놈들의 힘을 흡수하자!"
"케르으윽!"
적당히 멘트를 날리자 고블린들이 요리 준비를 시작했다. 나는 바로 홉고블린 시체에 다가가 쓸만한 것을 챙겼다.
"어디보자... 돌도끼랑. 자루랑. 어? 맞다. 이 가죽옷."
가죽옷.
생각해보니 놈들은 옷을 입고 있었다.
ㅡ꿀꺽.
절로 침이 넘어간다. 나는 홀린 듯이 홉고블린들의 가죽옷을 벗겼다. 이거... 전리품인데? 전리품으로 옷을 획득했는데?
"세상에!"
고기뿐만이 아니라 장비템까지 떨구다니!
이 새끼들 엄청나잖아!
가만 있어 봐. 우리가 홉고블린들 다 죽이면, 놈들이 입고 있던 옷이며 들고 있던 장비들. 그것이 죄다 우리 것이 되는 게 아닌가? 그러면 우리 고블린들에게 이 군복들을 입힐 수가 있게 된다!
"이겨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군."
그때.
"샤아. 샤아샤아."
샤란이가 미소를 지은 채 다가와서 내 얼굴에 그루밍을 해줬다. 그래. 너도 승리의 가치를 알고 있구나.
"어. 샤란아. 나도 사랑해."
바로 샤란이의 허리를 끌어안아 줬다.
이제.
밥 먹고 훈련 한 번 빡세게 하면 된다. 이제 충돌은 피할 수 없다. 머지않아 놈들이 쳐들어올 것이다. 시간이 없다. 조금 더 빡세게 훈련을 해야 해.
어차피 오늘 싸운 걸로 창질하는 법에 대해서 좀 깨달았을 것이다. 말하자면 실전을 경험하고 숙련도가 대폭 늘어난 상태.
고블린들의 창술 레벨이 두 단계쯤 증가했다.
그럼 훈련 더 잘 받을 수 있겠지.
"자! 그럼 밥 먹자!"
"케륵!"
"샤아!"
피가.
피가 끓어오르는 듯한 기분이었다. 승리를 한 탓인가? 아니면 내가 마족이라서? 아무래도 좋다. 승리와 성장. 그것이 내 눈에 보이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