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 내실을 다지자 # 10
* * *
우리는 이미 5대기처럼 신속하게 전투준비를 한 상황이었다.
내 앞에 배치되어 있는 고블린 팔랑크스. 저번과는 다르게 이번엔 진짜 창과 돌도끼로 무장하고 있는 상태다. 적어도 저지력은 비약적으로 상승한 상태지.
이 정도면 믿을 수 있다.
"케륵...!"
"케륵!"
그래도 긴장을 하긴 했다.
"긴장 풀어라. 내가 있으니까."
ㅡ스윽.
그런 고블린들의 어깨를 한 번씩 만져주면서 긴장을 풀어줬다. 마왕이 직접 터치를 해주는데 긴장이 안 풀릴 리가 있나. 부릴이를 시작으로 고블린들이 전의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케랴아아악!"
그러고 있으니.
"마왕님? 저거야?"
내 옆에 선 루미카가 아주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했다. 확실히 샤란이랑은 말이 통해서 그런가. 언어 취득 속도가 빨랐다.
"어. 저게 바로 바게스트다. 우리가 죽여야 할 녀석이지."
"본 적 없어. 저런 거."
"호숫가에 안 나타나는 건가?"
"그런 것 같네. 근데 정말 죽일 수 있어?"
"충분히."
반드시 죽일 것이다.
"크르릉!"
콧김을 내뿜은 바게스트가 던전 바깥 외곽 쪽을 어슬렁거리며 탐색전을 시작했다. 물론 우리는 던전 안쪽 통로에 자리를 잡고 있는 상태라 놈이 좌우로 왔다 갔다 하는 모습만 보일 뿐이다.
"마앙님. 바게스트 상처 있어여."
"흐흐흐, 그래. 샤란이가 낸 상처지. 내가 낸 것도 있고."
한 번씩 보이는 바게스트의 모습.
녀석은 지금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옆구리에 샤란이가 긁은 자국이 선명하고, 내가 창으로 찔렀던 앞가슴 쪽에도 상처가 나 있다.
풍성했던 털이 흉하게 타버려서 상처가 더욱 잘 보인다. 확실히 딜이 들어가긴 했다니까. 그럼 충분히 이길 수 있다.
"샤아. 샤아샤아."
그때 샤란이가 루미카한테 말을 걸었다.
"잠깐 샤란아. 둘이 대화할 땐 마계어로 해줘. 난 그 말 잘 못 들으니까."
"아, 마앙님. 습관적으로 말했다에여."
"알았어."
"루미카. 워터애로우로 맞출 수 있어여?"
"응. 맞출 수 있어. 자신 있는걸."
그렇다면 좋다.
"좋아."
문제없다.
함정도 충분히 만들어놨고, 바리게이트도 구축해 놨다. 고블린 팔랑크스의 앞쪽에 바리케이트를 배치해놨다. 그것도 아주 신경 써서 배치를 했지.
지금 던전의 배치도를 간략하게 표현해보자면 이렇다.
[▷ ■ ○ ■ △ ■ ☆ ★]
[적 함정 입구 함정 바리케이트 함정 팔랑크스 나]
우선 던전입구 앞에 함정을 설치해놨다.
이 함정들은 전부 구덩이 함정들이다. 발을 디디면 그대로 빠져서 나무창에 꿰이게 되는 함정이지. 베트남전에서 미군을 지독하게 괴롭혔던 함정을, 대 바게스트 용으로 크게 개량했다.
함정에 지붕을 잘 덮어놔서 거의 완벽하다. 걸리면 제법 아플 것이다. 그리고 던전 안으로 들어온다면, 다시 또 함정이 있다.
놈이 흥분해 달려온다면 그대로 끝장이다. 설령 함정을 피한다고 해도 바리케이트가 있는 이상 점프를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바리케이트 뒤에는 또 함정이 있지.
놈이 붕 떠오른 순간 루미카가 워터애로우를 발사할 것이고, 바게스트는 추락할 것이다.
그렇게 놈이 함정에 빠진 순간.
팔랑크스를 전진시켜 공격하면 끝이다.
"전술대로만 가면 돼."
물론 놈이 조심스럽게 걸어오면서 함정을 하나씩 부순다고 해도 괜찮다. 그러면 루미카로 공격하면 되니까. 놈에겐 원거리 방어 수단이 없는 것이다.
뭐가 됐든 여기는 나의 나와바리다.
결코 바게스트가 이득을 보면서 싸울 수가 없다. 개새끼도 지 나와바리에선 반을 먹고 들어간다. 잘 준비된 던전의 무서움을 똑똑히 보여주마!
"마앙님...! 오고 있어여!"
"그래! 보고 있다!"
"쟤, 쟤한테 쏘면 된다는 거지?"
헐벗은 여성들이 내 양옆에 달라붙어 긴장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루미카 말 잘하네?"
"으, 으응. 어느 정도는."
아무튼.
바게스트에 집중하자.
"크르릉...!"
어슬렁어슬렁.
녀석이 입구 쪽으로 천천히 걸어온다. 조금만. 조금만 더 오면 된다. 그대로 함정을 밟고 빠져준다면... 그런데.
"아닛!"
순간 바게스트가 던전 앞에서 멈춰섰다.
그리고는.
"크릉!"
함정을 내려다보면서 콧김을 내뿜는 것이 아닌가!
"저, 저 새끼! 비웃었어!"
내 함정을 비웃다니? ㅡ쿠웅! 녀석이 앞발로 함정 지붕을 타격하자, 함정의 모습이 전부 드러났다.
이 새끼 함정을 알아본 것이다!
"씨발럼!"
"마앙님 큰일이에여!"
"괜찮아. 아직은 괜찮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바깥이야 뭐 워낙 밝으니 눈치챌 수 있다. 하지만 던전 안은 어둡기 그지없다.
"봐라."
ㅡ화아악!
함정을 부숴 자신만만해진 것인지, 바게스트가 순간 자세를 낮추며 털을 부풀렸다.
그리고!
ㅡ파앗!
"크르러헝!!!"
기합성을 내지르며 점프해 함정을 뛰어넘고, 그대로 우리를 향해 돌진해오기 시작한다! 이 새끼! 첫 함정을 알아챈 것은 좋았지만 그걸로 방심했다!
"으, 으아아아아아아!"
나는 그 방심에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 일부러 겁에 질린 비명을 터트렸다. 일단은 연기지만, 반쯤은 진심이다. 그렇게 영혼을 담아 비명을 지르고 있으니 돌진해오던 바게스트가 던전 안으로 들어왔고.
그것으로.
ㅡ훌렁!
"크르릉?!"
녀석이 아주 훌륭하게 함정에 빠졌다!
"크러어어어어엉! 깨앵! 깽!"
함정 속에 빠진 바게스트가 고통 어린 비명소리를 내질렀다. 그 위로 모래 먼지가 자욱하게 퍼져 나온다.
"하, 하하! 병신! 걸렸구나!"
저기엔 나무창을 아주 야무지게 박아놨다. 저렇게 빠졌다면 치명상이 분명! 이것이 바로 던전의 무서움이다!
"마앙님! 성공이에여!"
"다행이야!"
샤란이와 루미카가 환호했다.
"케륵!"
고블린들 역시!
"크르르르르릉!"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곧 바게스트가 함정 속에서 빠져나왔다. 그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근데 그것뿐이지. 지금 몸통에 부러진 나무창이 존나게 박혀있는 상태였다.
"피도 철철 나는군!"
이 정도면 치명타지.
"그래서, 꺼질거냐?"
여기서 놈이 몸을 돌린다면 루키가가 워터애로우를 갈길 것이다.
"크릉!"
녀석은 피를 철철 흘리면서, 잠깐 멈춰선 채 자세를 낮추며 우리를 경계했다. 생각지도 못한 공격에 당한 것이다. 근데 도망을 치진 않는군. 아직 포기를 못 한 거냐?
그렇다면!
"얘들아! 비웃어라! 크하하하하하!"
비웃어줘야지!
도발을 해야 한다!
"샤앗! 샤아아아아앗!"
"케륵케륵!"
"케루룽!"
"끄륵!"
"규사앗!"
내 명령에 던전에 있는 모든 존재들이 즐거운 웃음소리를 내며 바게스트를 비웃었다. 개좆밥 중의 개좆밥인 임숭이랑 규일이까지 대동했다. 이걸 참을 수 있겠냐? 바게스트? 임프랑 코볼트가 비웃는데 참을 수 있냐고.
"크르러어허어어엉!!!"
곧 녀석이 분노에 찬 포효성을 내질렀다!
걸렸구나!
"크르르르르르!"
ㅡ부르르!
몸을 부르르 떤 바게스트가.
ㅡ풀쩍!
다시 한번 땅을 박차고 이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마치 어뢰처럼 날아오는 바게스트. 녀석은 순식간에 바리케이트를 뛰어넘었다.
"루미카!"
"...!"
하지만 루미카는 이미 마법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주변에 세워뒀던 물통에서 나온 물이 루미카의 손에 모여 구체를 이루었다.
ㅡ찌익!
ㅡ찌익!
ㅡ찌익!
연발로 나가는 워터애로우!
ㅡ푸훅!
"크릉!"
날아간 워터애로우가 바게스트의 얼굴 쪽에 박혔다. 동시에 피가 터져 나오면서 바게스트가 발작했고, 그것으로.
ㅡ쿠웅!
"크르릉?!"
녀석이 바리케이트 뒤쪽에 파둔 함정에 다시 한번 빠지게 되었다! 이 새끼 또 빠졌다!
"흐하하하! 이 무지성 돌격충 새끼! 바리케이트 뒤에도 함정이다! 얘들아! 전진! 전진! 이 새끼 함정에서 못 나오게 해! 함정 속에 처박은 채 끝장을 낸다!"
극한의 흥분!
아드레날린이 분출된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흥분하지 말고 빠르고 신속하게 행동해야만 한다!
"케르으으윽!"
"케랴아아아아악!"
내 명령에 팔랑크스가 전진했다, 그리고!
"크르으으응! 깨앵! 깨해애앵!"
고블린들이 함정에 빠진 바게스트를 향해 마구잡이로 창을 내질렀다. 함정에 빠진 탓에 다리를 다친 것인지, 바게스트는 몸을 비틀기만 할 뿐 제대로 나오질 못했다.
ㅡ푸욱!
ㅡ푸욱!
"깨해애애앵!"
제아무리 고블린들이라도 창을 잡은 이상 훌륭한 병사다! 창질은 아주 훌륭했고, 바게스트는 그저 고통에 신음할 뿐이었다! 오히려 발버둥을 칠수록 몸에 박힌 함정용 나무창이 더 깊게 박힐 것이다!
이대로 끝장을 내주마!
"계속! 계속 창질해! 못 올라오게 막아야 한다! 저 새끼 올라오면 좆돼! 저 안에서 죽여라!"
"케르으윽!"
"그럼 오른쪽 끝! 잠깐 비켜줘!"
바로 팔랑크스의 오른쪽에 자리를 잡고.
"마족브레스으으으으!"
ㅡ화르르륵!
함정에 빠져 발버둥 치는 바게스트에게 브레스를 내뿜는다!
"캐해애애애애애앵!"
순식간에 불타오른 바게스트!
"통구이로 만들어주지!"
바로 함정 옆에 있던 줄을 잡았다. 이 줄은 옆에 세워진 나무판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 끈을 잡아당기자.
ㅡ쿠웅!
나무판이 엎어져, 함정에 뚜껑에 덮어버렸다.
"크릉?!"
이제 막 머리를 내민 바게스트가 나무판에 정수리를 맞고 다시 내려간다...! 함정 속에 완전히 가둬버렸다! 이제 내가 나설 차례!
"샤란아! 미카야! 일단 힘 아껴!"
그리 소리를 치며 땅을 박차 점프하고!
ㅡ쿠웅!
그대로 내 몸무게로 뚜껑을 짓누른다!
"크르흐으으응?!"
뚜껑 바로 밑에서 바게스트가 느껴진다.
"이 새끼! 받아라!"
바로 뚜껑 중앙에 뚫려있는 구멍 안으로 창을 찔러넣고, 존나 사정없이 쑤셔주자!
"깨해애애앵!"
비명이 터져 나온다!
"얘들아! 계속 밑에 찔러! 못 나오게 해!"
"케르르륵!"
"나도 찌른다아아아앗!"
ㅡ휘적휘적!
불길에 휩싸인 바게스트가 이 나무 뚜껑 바로 밑에서 존나게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나는 찔러 넣은 창을 마구잡이로 돌렸고, 창병들 역시 바게스트가 나오지 못하도록 존나게 창질을 했다.
"크르흐으으으응!"
들려오는 것은 오직 비명소리 뿐.
너무나 잔인한 공격이었다. 존나 찌르고, 굽고, 또 존나 찌른다. 처형도 이런 처형이 없었지만.
"감히 이 마왕에게 대적하려 한다면 이렇게 될 뿐이지! 크아아아아아아아!"
마왕인 나는 그것을 기꺼이 행한다!
이대로면 죽일 수 있어!
그리고 바로 그때.
"크르러어어엉!"
순간.
ㅡ화악!
내가 붕 뜨는 것이 느껴졌다. 잠깐. 지금 이 새끼... 날 날려 보낸 것인가? 힘을 폭발시켜서 몸체를 일으켰다?
ㅡ쿠웅!
"으아아악!"
나는 그대로 날아가 바리케이트에 부딪히고 말았다...! 아이고! 아악! 고통이 느껴지지만 억지로 씹어 삼킨다! 별로 아픈 것도 아니다. 바리케이트에 박혀있는 창은 던전 바깥쪽을 향한 채였으니까. 난 문제 없다.
하지만 큰일인 점은.
"크르르르르르르르!"
개씹창이 난 바게스트가 함정에서 빠져나왔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머리가 내 쪽을 향해있는 상태!
"크헝!!!!!"
"조, 좆됐!!!"
바로 바게스트가 악에 받친 얼굴로 내게 달려들었고, 나는 급한 대로 뚜껑을 잡아 들고 방패로 삼아 내 몸을 가렸다!
ㅡ콰아아앙!
"꺄아아아아아악! 샤란아! 미카야아아!! 사람살려어어어어엇!!!"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