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 내실을 다지자 # 11
* * *
"크르르러엉!"
ㅡ쿠웅!
나무 뚜껑을 잡은 손아귀에서 막대한 충격이 전해져온다. 개씹창이 나 완전히 넝마처럼 변해버린 바게스트가 내는 힘이 이 정도라고? 절로 오싹해진다. 단 한 번만 실수했어도 난 이미 죽었을 거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이럴 줄 알았으면 함정 좀 더 파둘걸! 아니면 안에 박아둔 나무창의 숫자를 늘렸어도 괜찮았을 거다!
아무튼 생각을 하자!
바게스트도 거의 죽기 일보 직전의 상황이다...! 내게는 샤란이와 루미카가 있다! 이대로 버티기만 하면 돼!
"마앙님!"
저쪽에서부터 샤란이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동시에, 루미카가 워터애로우를 쏘는 소리 역시 들려왔고.
"케랴아아아악!"
"케르륵!"
부릴이와 고블린들이 함성을 내지르는 소리 역시 들려온다!
"노, 놈을 죽여라! 놈을 죽여!"
지금 다들 날 살리기 위해 몸을 던지고 있다!
ㅡ쿠웅!
그러는 와중에도 바게스트는 머리와 앞발을 이용해 내 뚜껑을 타격해왔다.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잡고 버텨야만 한다.
ㅡ콰앙!
"이 새끼! 안 되겠다!"
바로 뚜껑 중앙에 뚫려 있는 창질용 구멍 쪽으로 입을 가져다 댄 다음.
"마족브레스으으으!"
ㅡ화르르륵!
그대로 화염을 분출한다!
"깨해애애애앵!"
이게 진짜 좆도 없는 흑마법이긴 하지만 지금은 할 수 있다면 뭐든지 다 해야 한다. 진작에 흑마법 좀 익혀둘 걸 그랬다. 바게스트 새끼 죽이고 나면 반드시 흑마법을 수련하도록 하자.
ㅡ쿠웅!
"크흑!"
그렇게 뚜껑 하나에만 의지한 채 바게스트와 힘 싸움을 하고 있으니.
ㅡ푸훅!
ㅡ촤학!
ㅡ찌익!
"깨해해해행!"
저편에서부터 사나운 소리가 들려온다.
고블린들이 창을 찌르고, 샤란이가 할퀴기를 시전하고, 루미카가 워터애로우를 발사하는 소리다. 그에 따라 내 뚜껑을 압박하는 힘이 약해졌다.
"케랴아악!"
진짜 감동스러워서 눈물이 다 나온다. 너무 고맙다. 나를 살리기 위해 싸워주는 저 사랑스러운 존재들에게 무한한 감사가 느껴진다. 그렇다면 살아야지. 무조건 살아남아야만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기회를 노렸고.
ㅡ파악!
곧 뚜껑의 밑쪽으로 바게스트 놈이 몸을 뒤쪽으로 돌리려고 하는 정황이 포착되었다.
"너!"
아예 날 포기하고 뒤쪽으로 몸을 날릴 생각인가?
그렇겐 못 하지!
ㅡ꽈악!
바로 옆에 널브러져 있던 창을 잡아 쥐었다. 바리케이트가 부서지면서 떨어져 나간 나무창이었다. 그것을 잡고, 방패로 사용하던 뚜껑을 옆으로 치워버리니.
"크르러헝!!!"
바게스트의 엉덩이가 내 눈앞에 펼쳐졌다!
이 새끼 완전히 몸을 돌린 것이다! 날 포기하고 저 뒤에 있는 내 부하들을 죽일 생각이다! 그것을 생각하니 전신의 피가 끓어오른다. 결코 그렇게 둘 순 없다.
"감히."
바게스트의 엉덩이는 완전히 개박살이 나 있었다. 살은 다 찢어져 너덜거리고,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으며, 뼈까지 보일 지경이다. 놈의 생명력은 말 그대로 간당간당하다.
죽일 수 있다. 이길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오직 바게스트의 엉덩이만을 시야에 담는다!
ㅡ파치칙!
극한의 집중력을 펼치자 눈에서 안광이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쪼개진 시간. 녀석이 엉덩이를 부르르 떨며 힘차게 땅을 박차려 했고, 나는 그것보다 빠르게 자세를 잡았다.
그 상태로!
"내게!"
녀석의 항문을 조준하고!
"등을 보이느냐!"
전신의 힘을 끌어모아 땅을 박차.
ㅡ콰앙!
마치 성문에 공성추를 때려 박는 것처럼!
"죽어어어어어어어어엇!!!"
몸을 정면으로 쏘아내서 힘차게 창을 내질러, ㅡ쐐애애애액! 창끝을 녀석의 항문에 처박는다!!!
ㅡ푸후우우우우우우우욱!
깊숙하게.
아주 깊숙하게 들어가는.
나의 나무창.
"꺃?!"
박아넣은 나무창에서부터, 내장의 떨림이 전해져온다. 그 강렬한 떨림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주 빠르게 식어갔다. 힘이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빠져나간 힘이, 바게스트의 몸무게를 감당할 수 없게 만든 그 순간.
ㅡ털썩.
녀석이 썩은 고목처럼 쓰러졌다.
"..."
고요한 침묵만을 남긴 채.
"하아... 하아..."
그제서야 숨이 터져 나왔고, 나는 앞을 볼 수 있었다. 땀과 먼지투성이가 된 나의 부하들이 눈을 크게 뜬 채 날 바라보면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ㅡ휘청.
다리가 휘청였지만.
ㅡ쿠웅!
강렬하게 진각을 밟아 중심을 잡는다.
그리고.
"이겼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아주 힘차게 포효한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이겼다!
이 강력한 맹수를, 오직 우리의 힘만으로 처치했다! 온갖 전략을 다 때려 박고, 최후의 최후까지 발악을 하며 공격을 한 끝에! 마침내 녀석의 항문에 내 창을 찔러 넣어 절명을 시켰다!
"크아아아아앙아아!"
포효를 멈출 수가 없었다! 극한의 전율! 쾌감! 그 모든 것들이 나의 뇌수를 사로잡았다!
이로써 한 번 더 승리하고 살아남았다!
"마앙님!"
"케륵!"
"마앙님 괜찮아여?!"
"케륵! 케르르륵!"
바로 내 부하들이 시체를 타넘고 내게 뛰어온다. 샤란이는 거의 울려고 했다.
"어. 괜찮아. 크게 안 다쳤다. 야! 우리가 이겼어! 우리가 이겼다고!"
그리 안심을 시켜주면서, 내 부하들의 상태를 파악한다.
"얘들아! 다친 곳 없니!"
"케르륵!"
"샤란이는 괜찮아여! 고부리들도 다 안아파여!"
"다행이야!"
안 다쳤다니 무엇보다 안심이다. 진짜 전략을 잘 짜긴 했지. 완벽하게 배치한 함정으로 우리의 피해를 최소화한 것이다.
"루미카는?"
바로 저쪽에 서 있던 루미카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현재 양손으로 입을 가린 채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뭐라고 말을 한다.
"머, 멋있어..."
멋있다고?
"흐흐흐, 멋있긴 했지. 루미카 거기서 쉬고 있어. 그럼!"
지금부터!
"녀석의 힘을 추출한다!"
바게스트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온갖 함정에 다 걸리고, 우리의 집중폭딜을 전부 받아낸 녀석은 완전히 걸레짝이 된 상태였다.
옛날에 다큐멘타리를 본 적이 있다. 초원의 원주민 수십 명들이 코끼리 하나를 레이드하는 내용이었는데, 제아무리 코끼리라고 해도 수십 명의 원주민들이 미친 듯이 투창을 던져대고 있으니 수 초 만에 선인장처럼 변해 쓰러지고 말았다.
바게스트는 그 코끼리보다 더욱 처참한 상태로 죽어있었다.
"넌 강했지만 어리석었지."
정글에만 살아서 나 같은 지성체의 전략을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처참한 꼴로 죽게 된 것이다.
아무튼 바로 마력추출의 술을 전개했다.
ㅡ화르륵!
오른손이 불꽃에 휩싸인다. 그 상태로, 그 손을 바게스트의 상체 쪽에 집어넣었다.
ㅡ휘적휘적.
그리고 심장을 찾아낸다. 진흙탕 속에 빠진 돌덩이를 하나 찾는 듯한 기분. 얼마 지나지 않아 심장에 손에 잡혔고.
ㅡ쀼드득!
바로 그것을 뽑아냈다!
"크흐!"
뽑아낸 심장이 녹아내리며 마력석으로 변모했다.
"오오!"
"마앙님! 반짝이에여!"
반짝반짝 빛나는 마력석. 이건 홉고블린의 그것보다도 더욱 찬란했다. 더 큰 힘이 담겨 있다는 뜻이다.
"샤란아! 이거 먹으면 내 하양이가 더 많아져!"
"샤란이 너무 좋아여!"
"그럼 먹을 테니까 나 좀 지켜줘라!"
"네 마앙님!"
바로 마력석을 섭취한다.
ㅡ뿌득.
씹자마자 퍼져나가는... 짙은 마력의 맛. 이건 무슨 감각이지? 뜨겁다. 뭐랄까, 입안에 불을 머금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만큼 에너지나 넘쳐나는 것이 느껴졌고.
ㅡ꿀꺽.
잘게 부숴 삼킨 순간.
"흡?!"
마치 식도가 불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위장까지 내려간 마력석의 가루가 열기를 내뿜었다!
"크오오오오오!"
속이 타버릴 것 같은 이 느낌...!
못 참는다!
"아이고 배야아아아아!"
"마앙님!"
고통!
이건 설마 그런 건가?!
무협지에서 흔히 나오는 주화입마! 영약을 잘못 처먹어서 체내에서 기운이 날뛴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크흑!"
"마앙님! 괜찮아여!"
샤란이의 말에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나는 바로 자리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그 상태로, 천천히 호흡을 하고, 고통을 억누르면서 날뛰는 마력을 느꼈다.
과연 바게스트다.
체내에 품고 있던 힘이 아주 크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겠지. 수사자보다 큰 괴물이었으니까.
"마앙님...!"
샤란이가 내 어깨를 잡아주는 것이 느껴진다. 그것이 몹시 따스했다. 그렇게 나는 체내에서 날뛰는 마력을 가라앉히며, 그것을 흡수하기 위해 노력했다.
"...!"
말 그대로 운기조식이다.
아주 신중하게. 그리고 천천히. 우리 모두의 목숨을 걸고 얻은 전리품을 잃어버릴 수는 없다. 무조건 다 흡수하겠다는 일념으로 기운을 갈무리했다.
* * *
"어."
눈을 뜨니 던전 천장이 보였다.
시발 내가 언제 잠들었지? 분명 운기조식을 하고 있었는데? 아니 잠깐! 이거 잘 된 거 맞냐?!
"엇!"
바로 상체를 일으키니!
"마앙님!"
밖에 있던 샤란이가 뛰어왔다.
"어! 샤란아! 무슨 일이야!"
"마앙님 일어났어여?"
"어... 일어났다."
"마앙님 어제 앉아있다가 잠들었어여."
"그러니?"
주변을 보니 대충 정리가 되어 있었다. 내가 잠든 사이에 다 정리를 해놓았나 보다. 이 기특한 녀석들.
"내가 얼마나 잤어?"
"하룻밤 잤다에여."
많이는 안 잤네.
"아무튼 샤란아. 고맙다. 우리가 다 열심히 싸워서 이긴 거야."
"네 마앙님."
샤란이가 빙긋 웃더니 내 얼굴을 핥아주기 시작했다. 일단... 몸에 이상은 없다. 오히려 에너지가 넘쳐난다.
"샤란아. 다른 애들은?"
"일하고 있다에여. 루미카는 우물 파고 있어여."
"그래. 잠깐 나가보자."
"네 마앙님."
샤란이와 함께 던전 바깥으로 나갔다. 뭐 제법 깔끔하다. 함정은 다 노출되어 있었지만.
"케륵!"
"어 부릴이. 잘 있었니?"
"케르으으윽!"
부릴이가 울면서 내 종아리를 끌어안았다.
"녀석. 뭐 형이 뒤지기라도 했니? 울지마 임마."
"케루룽!"
머리를 만져주며 진정을 시켜준 뒤에 우물을 보았다. 그러니 물속에서 루미카가 튀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ㅡ푸확!
"어. 루미카. 잘 잤어?"
"...마왕."
"어."
"몸 괜찮아?"
조금 수줍은 듯한 태도로 묻는 루미카.
"어. 괜찮아. 문제없다. 워터애로우 고마워. 덕분에 이긴 거야."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네..."
말끝을 흐리며 시선을 피하는 루미카.
"음? 왜?"
"아, 아냐! 아무것도! 그래서 물 마시게?"
"아니. 내 모습 좀 보게. 잠깐만 나와줄래?"
"응..."
뭔가 태도가 좀 조심스러운데.
ㅡ촤학.
루미카가 우물에서 나왔다. 나는 바로 우물에 비친 내 모습을 확인했다.
"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뿔이었다. 뿔이 조금 자라있었다. 구체적으로 새끼손가락 한 마디의 반절만큼.
"오오!"
이건 좀 많이 커진 건데? 그리고 몸매도 좀 더 탄탄해진 느낌이다. 근육에 살이 붙었다. 그렇다는 것은... 역시.
ㅡ고오오.
체내의 마력이 한층 강화되었다. 족장을 죽이고 그 힘을 취했을 때 만큼이나 눈에 띄는 변화다.
"확실해."
나는 한층 더 성장한 것이다.
"흐하하하하하!"
"마앙님. 좋아여?"
"어! 제대로 성장했다! 이 정도면 하양이도 더 많이 줄 수 있을 거야!"
내가 성장했으니 당연히 하양이의 질이 더 좋아졌을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샤란이가 폴짝폴짝 뛰면서 환호했다.
ㅡ출렁!
가슴 역시 출렁이는군.
"저기, 마왕?"
"어. 루미카야."
"열심히 했으니까... 하양이 또 줄 거지? 응?"
"당연히 줘야지. 조금 있다가 샤란이랑 같이 먹게 해줄 테니까. 지금은 기다려."
"...알았어."
얼굴을 붉힌 루미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우물 속으로 들어갔다. 좋다! 그러면!
"성장한 것도 확인했으니 내 부하들을 치하해야지. 내 부하들 전부 헤쳐모여!"
"케륵!"
즉시 내 부하들이 와서 쭉 섰다. 부릴이부터 시작해서 고블린들. 그리고 임숭이랑 규일이 놈들까지.
"자, 얘들아. 우리가 그 존나 짱쎈 괴물 죽인 건 알고 있지?"
"케륵!"
"다 너희들이 있었기에 거머쥘 수 있었던 승리였다. 그러니 그 기쁨을 나눠야겠지. 차례대로 마력 주입을 해줄 테니 가만히 서 있어라!"
"케륵!"
"끄륵!"
"규삿!"
마력 주입 소리에 다들 환호성을 내지른다.
그렇게 나는 부릴이부터 쭈욱, 한놈 한놈에게 전부 마력을 주입해줬다. 물론 부릴이는 조금 많이 줬다. 나머지 애들은 마력을 좀 쪼개서 줬고 말이다. 물론 그럼에도 내 성장폭이 제법 됐기에 모두에게 마력을 다 주입해줄 수 있었다.
그리 마력을 다 주입해주고 보니.
"케륵?!"
"케, 케륵!"
"케르륵!"
"끄륵?!"
어?
갑자기 애새끼들이 몸을 뒤틀더니!
ㅡ파앗!
내가 보는 바로 앞에서 덩치가 조금씩 더 커졌다!
전원이!
"아니 이 새끼들 뭐야!"
부릴이가 홉고블린 만해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