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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마왕 생존기-83화 (83/544)

〈 83화 〉 인간놈들 # 5

* * *

수녀와 눈을 마주친 순간 마치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적당히 긴 금발을 지닌 젊고 아름다운 수녀다. 수녀 특유의 베일과 달라붙는 듯한 느낌의 수녀복을 입고 있는 상태인데, 몸매가 드러난 탓에 그쪽으로 시선이 갈 뻔했다.

그녀의 눈매는 날카로웠다.

적안인가? 적안에 날카로운 눈매 때문에 사납고 불량스러워 보인다. 약간 일진수녀 같은 느낌이다... 미색 따위는 아무래 좋다. 지금 내가 당황한 것은 그것 때문이 아니다.

ㅡ...

순간 느껴진 것은.

무언가 알 수 없는 불길한 기운.

얼굴 피부가 좀 따갑게 느껴질 정도로 불길한 기운이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 수녀에겐 마치 내가 지닌 마력과도 같은, 어떤 특별한 힘이 있다는 것을.

내가 마력으로 이런저런 흑마법을 부릴 수 있는 것처럼 저 수녀 역시 그런 스킬을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나는 판단했다. 보니까 수녀는 검을 쥐고 있었다. 여전사 타입이다. 여성의 체력과 근력은 남성보다 약한 편이지만, 저 수녀는 저런 여성적인 몸매를 지니고 있음에도 위험해 보인다.

"어, 어어? 저, 저 새끼 뭐야?"

하지만 수녀 역시 나처럼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나의 모습을 보고.

"어...?"

"저 녀석은?"

수녀의 양옆에 선 모험가들 역시 날 보고 당황했다. 나도 당황하고 너도 당황했다. 외눈박이 마을 사람과 세눈박이 마을 사람이 서로 만나면 이런 느낌일까.

"요정! 숲의 요정입니다, 수녀님! 하악! 하악!"

내게 쫓기던 남자가 숨이 넘어갈 것처럼 헐떡이면서 소리쳤다.

"숲의 요정이라고? 저게?"

"옆에 있는 건 확실히 요정 같다만..."

두 인간 전사가 의문을 표했다.

"개소리."

그러나 수녀는 날카로웠다.

"니 눈엔 저게 요정으로 보이냐?"

"그게..."

설마 마족에 대한 것을 알고 있는 것인가?

ㅡ찌릿.

수녀가 다시 나를 노려보았다.

그것도 아주 공격적인 시선으로.

"야. 너."

적의에 찬 목소리.

"넌 뭐냐? 느껴지는 기운도 그렇고."

ㅡ처억.

수녀가 자신의 이마 옆쪽을 가리켰다.

"여기 대가리 쪽에 난 뿔도 그렇고. 존나 수상하고 사악해 보이는데."

"..."

"설마 너. 그, 마족 같은 거냐?"

아니 씨발! 어떻게 알았지!

이, 일단 변명을 좀 해보자!

"네? 하, 하하하! 마족이라니요! 농담도 무슨 그런 농담을! 수녀님. 마족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 달린 이 뿔은 기형입니다. 기형. 제가 조금 기형이라서 마을에서 쫓겨났거든요... 흐흐흐."

그리 능청스럽게 말을 하니.

"허억...!"

"어어...!"

수녀를 제외한 다른 모험가들이 식겁을 했다.

왜?

이 새끼들 기형이라고 차별하나?

"사람입니다, 사람. 저 사람이에요."

"이 개새끼가."

"네?"

"누굴 병신으로 아나."

수녀는 계속 날 노려보면서 그런 심한 말을 했다. 이 년... 싸울 생각이다. 후퇴도 도망도 아니다. 놈은 지금 싸우는 것을 선택했다.

차라리 도망을 쳤으면 했다. 정면으로 싸우는 것보단 도망치는 적을 추적해 죽이는 게 더 쉬울 테니까. 하지만 이젠 정면으로 승부하는 수밖에 없다. 놓쳐선 안 돼. 모조리 다 죽여야 한다. 내 정체를 들킨 이상 한 놈도 살려 보낼 순 없어!

냉정하게 전력을 분석한다!

불길하고 위험해 보이는 수녀 한 명. 그리고 그녀의 파티원으로 보이는 평범한 모험가 두 명. 내가 추격하던 지친 남자 하나.

적들의 숫자는 총 네 명이다.

그에 반해 우리의 숫자는 고블린 소대 열네 마리에 나랑 샤란까지 헙쳐서 총 열여섯이다. 고블린 방패병은 다섯이고, 나머진 전부 창으로 무장한 상태.

수녀의 힘은 잘 모르겠지만 싸우면 이길 수 있다!

"사람이라고? 대가리에 그딴 뿔을 달고 그런 소리를 하면 믿겠냐?"

"그게 진짠데요. 기형이라고 했잖아요."

"아앙? 아가리 닥쳐, 이 새끼야."

"흐흐흐, 너무하시네. 수녀님치고 입이 너무 험하신 거 아닙니까? 그것도 오늘 우리 처음 만난 것 같은데."

입에서 인간어가 술술 나온다.

생각해보니 나는 언어를 습득하는 능력이 아주 탁월한 것 같았다. 그러니까 타차원에서 환생해도 그쪽 말을 깨우치지.

제대로 된 여건도 없이 도태된 채 혼자서 마계어를 취득한 나다. 루미카 같은 훌륭한 가정교사가 있는데 인간어를 배우는 건 금방이다.

"니 같은 새끼들한텐 험하게 말해도 된다고 신께서 말씀하셨다. 아무튼 잘 걸렸어. 뭐가 됐든... 여기서 좋은 꼴 볼 생각하지 마라."

ㅡ휘익.

수녀가 한손검을 잡아 돌리면서 선전포고를 실시했다.

좋은 꼴이라. 지금부터 누가 험한 꼴을 보게 될까. 적의가 부풀어 오르면서 투지가 샘솟는다. 아까부터 수녀가 풍기는 기운이 너무나도 불쾌했다. 당장 치워야만 해.

"크르르...!"

숨을 내쉬고 있으니 입에서 절로 가래 끓는 소리가 난다...!

"수, 수녀님! 아, 아무래도 위험해 보이는뎁쇼!"

"하, 하아...! 녀석이 제 동료들을 다 죽였습니다! 도망쳐야 해요!"

"그래요! 수녀님! 일단 튑시다!"

싸울 생각으로 가득한 수녀랑은 달리, 모험가들은 내 모습을 보고 겁에 질린 듯했다. 고맙다. 겁먹어줘서 고맙다. 겁먹은 적은 죽이기 쉽다.

"야. 여기서 튀면 우리 다 뒤져. 도망쳤다간 다 같이 사냥당한다."

"그게..."

"정신 차려!!!"

"허억...!"

"싸워야 해. 남자잖아? 설마 이 가녀린 수녀님을 버리고 도망칠 생각은 아니겠지?"

"..."

겁먹은 남성 모험가들에 비해 수녀는 당차고 용맹했다. 약간 불량한 느낌인데다가 욕도 존나 하던 만큼 제일 호전적이다.

제발 아가리 턴 만큼 강한 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근데 혼자서 다 썰 정도로 강한 건 아닌 것 같다. 수녀 역시 내 군대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케륵...!"

"샤아...!"

아무튼 내 고블린들과 샤란이 역시 살의를 드러냈다.

"제, 제길! 수가 너무 많습니다! 수녀님!"

"고블린들이 뭔 창이랑 방패로 무장을 하고 있어...!"

역시 수 차이 때문인가.

수녀가 기운을 북돋아 줬지만 그럼에도 겁을 집어먹은 상태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은 없다. 뿔 달린 녀석이 무슨 고블린 군대를 끌고 왔는데 나 같아도 무섭겠다.

그렇다면.

그 공포심을 이용해볼까.

이기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릴 필요가 없다.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이용한다! 내가 유리한 상황이니 조금 허세를 부려도 괜찮을 터!

"흐흐흐, 저기. 잘생긴 청년분들."

"뭐?"

"뭐라고?"

"듣지 마! 약마의 유혹이다! 야, 야! 정신 차려!"

뭐라고 말을 하자 수녀가 앙칼지게 소리쳤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모험가들에게 말했다.

"수녀의 말은 무시하십시오. 도망치면 살려드리겠습니다. 여기서 싸워서 다치거나 죽어봤자 뭐가 남겠습니까? 사는 게 우선이에요. 만약 싸우게 된다면 한쪽은 반드시 죽을 겁니다. 살아남은 쪽도 다칠 거고."

"듣지 말라니까!"

"주머니에 있는 돈도 다 못 썼는데 죽을 수야 없겠지요? 도망치십시오. 싸우지 않는다면, 살 수 있습니다. 싸우게 된다면 전 당신들을 죽일 겁니다. 반드시."

적당한 말.

도망치면 좋고 아니면 마는 거다.

물론 살려줄 생각은 없다. 한 놈이라도 도망치게 해서 전력을 분산시킨다면 대박이다. 약해진 적을 분쇄하고, 도망친 놈이야 쫓아가서 죽이면 되니까.

"저 새끼가 우릴 살려줄 것 같아! 개수작이라고!"

수녀가 열변을 토로하지만.

"..."

"..."

모험가들은 이미 눈치를 보고 있었다.

"자. 여기서 싸우고 싶은 사람은 저 수녀님밖에 없는 것 같군요. 싸우고 싶은 사람만 싸운다. 그러면 되지 않겠습니까? 어서 돌아가십시오. 싸워봤자 좋을 거 하나 없습니다."

"아가리를 참 잘 놀리는구나, 이 악마 새끼야."

아주 공격적으로 말을 하는 수녀.

이렇게 보니 제법 반반한 미모를 지니고 있다. 가슴도 제법 큰 것 같군. 일부러 허세를 부려서 말을 했지만, 지금 나조차도 내 허세에 설득되었다.

"수녀님만 하겠습니까."

여유가 생기기 시작한다.

"그럼 오 초 드리지요. 도망친 자는 쫓지 않겠습니다. 오. 사. 삼."

삼 초까지 센 순간.

"으하아아악!"

"너, 너도 도망치라고!"

두 명의 모험가가.

도망쳤다.

"야! 잠깐!"

"이 새끼들아! 튀지 말라고!"

내게 추적당하던 놈과 수녀 파티의 한 명이다. 수녀와 다른 모험가가 당황해 소리쳤지만, 놈들은 땅을 박차 질주할 뿐이었다.

"크르르르르르하하하하하하!!!"

희열이!

희열이 몰아친다! 아가리를 한번 털어준 것으로 적들의 전력을 50%나 날려 먹었다! 통했다! 내 허세가 통했다! 네 명을 죽이는 것보단 두 명을 죽이는 것이 더 쉽다!

"전군! 전진하라!!!"

ㅡ크에에에에에에!

즉시 마계어로 포효하면서 명령했다!

"케라아아아악!"

"케르르륵!"

"케륵!"

수녀와 다른 한 명이 당황한 틈을 타 고블린들이 땅을 박차고 전진한다! 그 창을 앞세우고, 방패를 든 채로!

"샤란아! 내 옆에 붙어! 나 따라와라!"

"샤아!"

"남자부터 죽인다!"

약한 놈부터 죽이는 것이 전투의 기본!

"수녀님!"

"이런 씨발! 저 개새끼들이! 일단 맞서 싸워! 내가 퇴로를 뚫어볼 테니까!"

이 대 십육?

너넨 다 뒤졌어!

ㅡ파파팟!

"케랴아아악!"

"케루루룽!"

고블린 진형이 고속으로 전진했고, 나는 진형의 오른쪽으로 우회하여 달렸다. 둘은 나란히 서 있는 상태. 우선 수녀 오른쪽에 서 있는 남자부터 처치한다!

"샤아아아!"

그런 내 옆으로 샤란이가 따라붙는다. 완전히 세로동공이 된 채 손톱을 길게 빼든 상태다. 샤란이의 할퀴기는 아주 강력하지!

"으아아아아아아!"

자신이 표적이 된 것을 깨달은 모험가가 내 쪽으로 칼을 겨누면서 기합성을 내지른다. 지금쯤 도망치지 않은 걸 후회하고 있겠지. 그런 적이라면 내 먹잇감일 뿐이다.

"내가, 이런 씹!!"

수녀는 그를 도우려고 했지만 이미 고블린 진형이 코앞까지 진격해온 상태다! 그 모든 전황을 파악하면서!

"마족브레스으으으!"

입에서 불을 내뿜으며 칼을 내지른다!

"으하아아악! 이 괴물새끼가아앗!"

ㅡ채앵!

두 철검이 서로 강렬하게 부딪치며 쇳소리를 낸다! 극한의 긴장감! 이렇게 서로 칼을 맞대는 것은 처음이다! 절대로 칼에 맞지 않게 주의를 하며 힘 싸움을 하려고 했는데.

ㅡ채챙!

"흐억?!"

녀석의 칼이 내 칼을 휘감는듯한 느낌이 들면서, 거리가 화악, 좁혀져 왔다. 이 상황에 내 쪽으로 온다고?!

"이 괴물새끼! 칼은 그렇게 쓰는 게 아니다!"

놈이 소리를 지른 순간!

ㅡ촤하아아아악!

샤란이의 할퀴기가 작렬했다.

"샤아아아!"

"억...?!"

피가 튀면서 남자의 자세가 무너진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주저 없이 녀석의 모가지 쪽에 칼을 박아 넣는다.

ㅡ푸훅!

"꺽!"

동시에.

ㅡ푹!

ㅡ푸훅!

접근해온 고블린들이 창을 내지른다. 그 창이 모험가의 몸통에 박혀 들어간다. 하나를 죽였다. 그럼 이제 남은 것은 수녀뿐.

수녀 쪽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ㅡ촤하아악!

내가 본 것은.

"케라아아아아악!"

방패째로 쪼개지면서 날아가는 고블린 방패병이었다!

"치, 칠돌아아아아아아아아!"

"이 개 같은 악마 새끼들! 다 죽여주마!"

수녀는 올려 베기 자세를 취한 상태였다. 서, 설마 고블린을 베어서 저렇게 위로 날려 보낸 것인가?

무슨 힘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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