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화 〉 픽시 먹고 레벨업 # 11
* * *
"네! 수녀님!"
"샤아!"
ㅡ척척척.
이번에 우릴 가르치는 것은 레이카다. 바로 그녀의 말대로 간격을 벌려서 섰다. 레이카는 우리를 쭉 바라보았고, 날 노려보면서 칼을 잡았다.
"수녀님?"
"지금부터 동작 보여줄 테니까. 똑같이 따라 해. 병신 아니면 다 하는 거니까 두 번 말 안 한다."
"알겠습니다."
곧바로 레이카가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ㅡ쐐액.
허공을 베는 동작을 취했다.
"오오!"
보니까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 검술 같은 느낌이 났다. 사실 나 같은 사람이 봐봤자 뭘 알겠나? 일단은 동작을 따라 하는 게 먼저다. 확실히. 칼을 막 쓰는 나에 비해 다른 점이 보이는 것 같았고 말이다.
"이제 따라 하면 되겠습니까?"
"그럼 내가 뭐 때문에 보여줬을 거라고 생각해?"
의욕에 차 물으니 레이카가 다시 까칠하게 말했다.
"뭐, 그렇겠지요. 그럼 샤란아. 루미카. 똑같이 한번 해보자."
"샤아!"
ㅡ파앗.
그렇게 셋이서 동시에 허공을 베었다.
레이카를 따라 하면서.
잘 됐을라나?
"야. 틀렸어."
"예?"
"틀렸다고. 존나 병신이냐? 칼 처음 잡는 애새끼도 그 지랄로 베진 않겠다."
"아니. 좀 친절하게 알려주세요."
"니 같은 병신을 보면 좋은 말이 안 나와. 다시 해."
아직 적의가 다 지워지진 않았군. 이거 음문으로 징벌을... 그 순간.
"샤아. 레이카. 마앙님한테 친절하게 말한다에여."
"뭐, 뭐?"
샤란이가 레이카에게 다가가더니, 갑자기 레이카의 손을 잡고 깍지를 끼면서 그리 말했다.
"이, 이거 놔!"
"화내지 마여. 레이카 기분 나빠여?"
"아니... 그게... 이것 좀."
"샤란이랑 손잡기 싫어여?"
"왜 잡냐고!"
"대화하려고 잡았어여."
"..."
샤란이는 손을 잡은 채 레이카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거 완전히 샤란이의 페이스에 말려들었는데?
"큿."
레이카는 샤란이의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고개를 옆으로 틀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가만 보면 나한텐 까칠하게 굴어도 다른 애들한테 그런 적은 없단 말이지.
"흠."
아무래도 악의가 없어 보이는 샤란이를 대하는 걸 아주 어려워하는 모양이었다. 아니. 악의가 없는 것을 넘어 샤란이는 레이카를 동료로 삼으려고 한다. 그러니 잘 대해준다.
지배하려고 하는 악한 존재인 나랑은 다른 것이다. 그러니 대하기 어려운 거겠지. 감옥에 갇힌 죄수도 나쁜 간수는 싫어하지만 옆에 착한 간수가 있다면 마음에 들어 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레이카의 심성은 진짜 고운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여자를 무자비하게 유린한 것이다.
"레이카. 샤란이 싫어여?"
"그야 당연히..."
"샤란이는 레이카 좋아여."
"개, 개소리를..."
당황했군.
일단 나서보자.
"샤란아. 괜찮아."
"샤아?"
"말은 좀 사납게 해도 잘 알려주고 있잖아? 그 정도는 괜찮으니까. 일단 내 옆으로 오자."
"샤아... 마앙님이 그렇다면."
바로 샤란이가 내 옆으로 돌아왔다.
"레이카 수녀님? 샤란이 슬프게 할 겁니까?"
"너, 넌 좀 닥쳐! 아 씨발! 빨리 자세나 다시 잡아! 알려줄 테니까!"
시뻘게진 레이카가 소리쳤다.
그럼 다시 시작해보자.
ㅡ쉭!
ㅡ쐐액!
이후로 레이카는 군말 없이 다정하게 검술을 알려줬다.
"진짜 씨발 개답답하네! 좀 말하는 대로 움직이라고! 그리고 칼 휘두를 때 날을 눕히지 마! 칼 옆면으로 때릴 생각이냐?"
"아니 그게. 이게 오늘 처음이라서."
"아오 진짜 씨이발! 내가 어쩌다가 이딴 새끼한테 졌을까! 왜 내가 니 같은 새끼의 섹스노예가 된 건데? 어!"
근데 좀 많이 답답해하긴 한다.
"가만히 있어!"
"앗! 갑자기 제 몸을 만지시다니!"
"자세 잡아주는 거라고, 이 븅딱아!"
레이카는 성질을 내면서도 내 몸을 직접 잡고 교정해줬다. 그럼 다정한 거 맞지. 스킨십까지 포함된 강의인데 말 그대로 다정한 강의다. 아무튼 이렇게까지 열정을 내는 것을 보면 확실히 내게 지배되긴 한 모양이다.
"레이카 수녀님. 자꾸 심하게 구시면 밤에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읏♥"
그 말 한마디에 레이카의 얼굴이 풀어지며 신음성이 흘러나온다.
"...핫!"
잠시 느끼던 레이카가 정신을 차리고 버럭 화를 냈다.
"씨발 진짜! 진지하게 안 해!"
"아니. 계속 진지하게 하고 있습니다."
"지랄!"
"좀 믿어주시지."
사실 레이카가 말하는 게 좀 그래서 그랬지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게 하고 있는 상태였다. 무기를 다루는 법을 배우고 있는 상태니까. 어떤 상황이든 무기를 다룰 수 있다면 내 생존률이 올라간다.
생존을 위해서 배우는 건데 진지하게 하지 않을 리가 없다.
ㅡ쐐액!
ㅡ처억.
알려준 대로 칼을 휘두르고, 전진을 하거나 후퇴를 한다. 그것을 연습한 뒤에는 레이카가 말한 대로 베기 동작을 거듭하고 반복해서 감을 익힌다.
첫날이라 좀 어려운 것도 있긴 하지만 내겐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거야 하다 보면 늘 테니까... 아. 그리고 흑마법도 수련해야 하는데. 검술에 대한 감을 잡으면 흑마법이랑 연계를 하는 방법도 연구를 해봐야겠군.
당장 전투 중에 마족브레스를 쓰는 것만 해도 엄청났으니까.
그런 미래의 일들을 생각하며 계속해서 검술을 수련했다.
"샤아! 레이카. 이렇게 한다에여?"
"...잘하네."
"나도 좀 봐줘. 이렇게 찌르면 되는 걸까?"
"동작은 문제없는데..."
샤란이랑 루미카한테는 진짜 친절하구만.
아. 근데 이건 친절하다기보다는 낯을 많이 가리는 사람이 어색하게 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거 앞으로 며칠 동안 셋이서 같이 재워볼까? 샤란이랑 루미카는 매일 나랑 같이 자는 편이지만 레이카랑 친해지게 하려면 셋이서 자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아니면 내가 며칠 동안 레이카를 데리고 자도 되겠고. 지금 레이카는 임시감옥에서 혼자 자는 상태였으니까.
"레이카 수녀님. 저한테도 좀 다정하게 말해주세요."
"니가 병신이라서 그건 안 되겠다. 칼이나 휘둘러."
"그래도 진짜 이렇게 보니 완전히 우리 마왕성의 일원이 된 것이..."
"닥쳐!"
그렇게 헐벗은 여인들과 함께 레이카에게 검술을 배웠다.
잎사귀 비키니만 입은 샤란이와 조개 비키니만 두른 루미카. 그런 섹시하고 육감적인 몸매를 지닌 여인들이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참 행복하다.
ㅡ쐐액!
ㅡ출렁출렁.
칼을 휘두름에 따라 젖가슴이 흔들린다.
볼만한 광경이로군.
"검술 알려달라고 하지 않았냐? 병신새끼. 젖탱이에 시선이 가?"
"어허. 레이카 수녀님. 자꾸 그러면 속옷도 다 벗길 겁니다."
"저급한 새끼. 닌 존나 개새끼야. 알아?"
"글쎄요. 제가 개새끼인진 잘 모르겠습니다."
"훌륭한 범죄자 마인드. 박수쳐줄게."
ㅡ짝짝.
처음으로 박수를 받는군.
"근데 레이카 수녀님. 이건 무슨 검술입니까? 수녀원에서 이런 것도 해요? 그럼 뭐 수녀검법인가?"
"지랄은... 수녀원에서 배우는 건 호신술 정도다. 뭐, 검술도 조금 있겠지만."
"그게 이겁니까?"
"난 수녀원 들어가기 전에 따로 배운 게 있던 거고."
"그럼 다른 수녀들은 칼을 잘 못 다루겠네요?"
"..."
"대답 좀요."
"그래. 못 다룬다. 됐냐?"
수녀원의 수녀들은 그 신성력을 사용해 상처를 치료해주거나, 포교를 하고 수녀원을 운영하며 예배를 보는 일을 주로 한다는 모양이었다.
다들 레이카 수녀랑 비슷한 나이 또래에 젊은 여자들이다. 전투력은 약하지만 다양한 능력이 있지.
다른 수녀도 사로잡으면 좋겠군.
"또 역겨운 생각 하고 있지?"
"어떻게 아셨습니까?"
"닌 눈만 봐도 견적이 나와."
"아무튼. 다시 검술 연습이나 시작하죠."
"...자세 잡아라."
그런 식으로 자세를 잡고. 검을 휘두르고. 싸우면서 걷는 법 등을 연습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휴식 시간이 되었다.
"후우."
이거 좀 힘들구만.
의자에 앉으니 옆에 루미카가 와서 내 머리에 물을 뿌려줬다.
ㅡ쪼르르.
"아, 시원해."
"마왕. 괜찮아."
"음? 루미카?"
"지금은 조금 까칠해도 같이 지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마왕을 좋아하게 될 거야.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저렇게 예쁜 문양이랑 뿔도 생겼잖아?"
레이카 일로 좀 걱정을 했나 보군.
"걱정 안 해. 루미카 말대로 될 거니까. 그래도 고맙다."
"고맙긴."
"그럼 다시 시작하자. 마지막 타임이야."
"응."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칼을 잡는다.
우리는 오후까지 칼을 휘둘렀다.
"후우! 감사합니다, 레이카 수녀님. 오늘 이렇게 친절하게 알려주시니 검술이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는군요."
"그게 들어온 거냐? 세 살짜리 애새끼도 니보단 잘할 것 같은데?"
"말은 참. 아무튼 친해진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뭐, 뭐래! 이 개새끼가 자꾸 좆대로...! 됐어!"
ㅡ홱!
그리 소리친 레이카가 몸을 돌려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밤에 진득하게 놀아줘야겠군. 샤란아. 루미카. 그럼 우리도 이제 들어가서 쉴 준비 하자."
"네 마앙님... 샤아? 마앙님! 저기!"
"어?"
샤란이가 가리킨 곳을 보니.
"케르으윽! 뫙님! 저 왓슴다!"
"끄르륵! 쩌 왔따!"
부릴이와 임숭이가 귀환을 하고 있었다!
"내 새끼들! 왔냐!"
보니까 부릴이는 부하로 쓸 녀석들을 잔뜩 납치해온 상태였고, 임숭이 역시 이것저것 식량을 많이 챙겨온 상태였다!
"마왕아! 오늘 위험한 일 없었어!"
"딱히 이상한 점도 못 찾았고!"
ㅡ부웅!
붙여놨던 픽시 역시 무사히 귀환했고!
"잘했다! 다들 작전 잘 성공했구나!"
"케르륵!"
"끄륵!"
아주 생산적인 날이었다! 픽시들도 훈련시키고 우리도 검술을 배우고. 거기에 부릴이가 부하 파밍도 해왔으며, 임숭이가 식량도 잘 챙겨왔다!
"부릴이는 언제나 잘하고! 임숭아! 오늘은 단독부대로 가는 첫 외부 작전인데 아주 잘했어! 진짜 완벽했다! 부상자도 없고 식량도 아주 잘 구해왔구나!"
"끄르르륵! 쩌 칭짠 받았따!"
좋아하기는.
ㅡ방방!
그래도 방방 뛰는 버릇은 못 고쳤나보다.
"흐흐흐!"
아무튼 뭐.
대충 그런 나날들이 흘러간다.
큘스 마왕성의 일상들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