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화 〉 리자드맨 놈들 # 6
* * *
의미 그대로 우리는 행군을 실시했다.
ㅡ저벅저벅.
말그대로 마왕군 중대 하나가 행하는 행군. 이렇게 많은 병사들이 줄을 맞춰 걷고 있는 걸 보니 마음이 참 충만해진다.
"괜찮네."
딱히 힘들지는 않다. 군장도 그리 무겁지 않고. 인간과는 달리 몬스터들은 이 울창한 정글에서 비교적 쉽게 식량을 획득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뭐 그래서 순수하게 행군에 몰빵하는 것보단 속도가 느리지만 어쩌겠나. 장점 하나가 있으면 단점도 하나가 있는 법이다.
"네놈은 대체 어디서 이런 군사적인 지식을 얻은 것이지? 네가 살던 마계에서 가르친 것인가?"
행군을 하고 있으니 바네사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물었다.
"물론입니다. 지옥 같은 마계에서는 남자라면 누구나 2년씩 마왕군에서 복무를 하지요."
"역시 그랬군!"
바네사가 이해가 된다는 듯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녀석들이 바로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인간들은 대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정체 불명의 적이 인간세상을 침략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다들 제대로 모르고 있다. 바네사는 그것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 그래요! 마족이라는 건 전설에서나 나오는 존재...! 다들 그렇게 알고 있어요! 대비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때 아이린이 지 혼자서 깜짝 놀라더니 머리를 부여잡으면서 소리쳤다.
"이대로 가다간 마족들이 인간세계를 침공하고 말아요! 강력하고 사악한 마족들이 우수수 떨어진다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여자들은 그런 마족 전사들의 성노예가 되어버려요!"
뭣.
"꺄아아악! 마족 한 마리당 인간 여자를 수십 명씩 거느리면서...! 세상에세상에!!! 음란한 촉수로 가득한 방에 갇힌 채 며칠내내! 아니! 몇년 내내 영원토록 성고문을 당하고 말 거에요!!!"
돌아버리겠네.
"아이린? 맞을래?"
내 마음을 대변하듯, 레이카가 아이린에게 다가가 주먹을 치켜들었다. 보아하니 수녀원 있을 때도 저렇게 막 대했나 보다.
"아니, 왜 자꾸 때리려고 하세요! 뿔 생기더니 레이카도 마족처럼 변해버린 건가요!"
"니도 마찬가지야 이년아!"
"아악!"
귀를 잡아당기자 그대로 제압이 되어버린다. 저런 음탕한 여자도 흑마법을 금방 다루던데 나는 대체 왜.
"후우."
뭐 대충 그런 느긋한 분위기 속에서 행군을 이어나갔다. 애초에 지금 이 정글 안에 우리의 적이 될만한 놈들은 없으니까. 좀 풀어진 분위기 속에 행군을 해도 상관없다.
"마앙님. 샤란이 아직도 쭈쭈 안나와여."
"아이고, 샤란아. 계속 기다리고 있었어?"
"샤아."
"괜찮아. 금방 나오게 될 테니까."
레이카는 내게 당한 탓에 체질이 변모한 것이다. 그렇다면 샤란이 역시 금방 그렇게 될 수 있다.
"앞으로 많이많이 주물러줄게. 나도 샤란의 우유 마시고 싶으니까."
"빨리 마앙님한테 쭈쭈 주고 싶어여."
"흐흐흐, 나도 어서 빨고 싶구나."
그런 대화를 하고 있으니 어쩐지 레이카가 날 노려보는 듯한 기운이 느껴졌다. 근데 돌아보니까 착각인 모양인지 그냥 평범한 시선.
"레이카 수녀님?"
"꺼져."
"예."
또 젖 물려달라고 하고 싶은데... 아, 이거. 과일로는 그 달달한 맛을 느낄 수가 없단 말이지.
"아무튼. 세리뉴. 이대로 쭉 가면 돼?"
"응. 아, 그런데 가면서 우리 옛날 집 한번 들를 거야."
"가는 길에 있으면 상관없어."
가자.
* * *
그렇게 픽시마을 쪽에 도착하니.
"그락."
"그락락."
마을 앞에 웬 홉고블린 녀석이 하나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저 새끼들?"
아주 오랜만에 보는 놈들이다. 우리 마왕군 최고아싸 무투리를 영입해온 이후로 통 본 적이 없던 새끼들이다.
보니까 픽시들의 빈집을 차지했던 모양.
"어, 어어?! 저 녀석!"
"우리 집을 점거했나 봐!"
"남의 것을 마음대로...!"
그것을 본 픽시들이 분개했다.
"저 나쁜 놈들! 다 죽여야 해! 빨리 가자!"
"잠깐만 기다려."
"왜!"
"리자드맨이랑 싸우러 가는데 힘 뺄 필요가 없다. 지금은 우리 목적부터 완수하자고. 쟤들 혼내주는 건 다음에 해도 되니까."
"으으...!"
내 말에 납득을 했다는 듯, 세리뉴가 주먹을 꽉 쥔 채 이를 갈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알았어. 지금은 리자드맨들이 먼저니까. 일단 쟤들은 그냥 넘어가야겠네."
"그래. 바로 그거다."
할 일이 있는데 다른 곳으로 세는 건 좋지 않다. 그리고 여기서 괜히 또 박살을 낼 필요는 없다.
리자드맨을 성공적으로 복속시킨다면 홉고블린들 역시 그렇게 만들 가능성이 있으니까.
"복속."
정복왕이 정복왕인 이유는 간단하다. 정복왕은 정복을 했지 전멸을 시키지 않았다. 다 죽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야. 정복할 수 있다면 정복해야만 한다.
숲의 종족들을 복속시켜 세력을 키우는 것을 거듭한다면, 그래. 인간들을 능히 상대할 수 있을 터다.
"그럼 얘들아. 우회하자. 세리뉴. 다시 안내해줘."
"알았어."
그렇게 픽시마을을 우회하면서 행군을 하고 있으니 곧 해가질 시간이 되었다.
"숙영지 편성 실시!"
"케륵!"
"끄르륵!"
그동안 땅을 오지게 판 경험이 있기에 숙영지를 편성하는 것은 몹시 간단했다. 나라시 까고 배수로 파고. 그리고 나뭇가지 꺾어와서 기둥을 만든 다음에 샤란이 도움으로 지붕까지 척척 만든다.
"그럼 임숭아!"
"끄륵?"
"바네사 붙여줄 테니 가서 식량을 구해와라!"
"끄르르륵?! 인간이랑 깥이 임무한다?! 끄르르륵! 모왕님! 쩌 싫다아앗!"
"야, 야. 이것도 익숙해 져야지. 아무리 인간이라도 우리 식구면 같은 편이야 임마."
"끄르르륵! 식구...! 알겠따! 임숭이 한다!"
"흐흐흐, 좋아."
바네사가 붙으면 뭐 멧돼지만 한 몬스터가 나타나도 걱정 없다.
"크읏...! 몬스터와 함께 작전이라니!"
"이쪽에선 뭐가 나올지 모르니 임프 애들 잘 좀 지켜주시지요."
"제길!"
바로 임프들이 식량을 구하기 위해 나섰다. 우리는 마저 숙영지 만들고 밥 먹을 준비하면 된다. 그리고 뭐 밥 먹고 아침에 일어났다가 다시 행군하면 되겠지.
"보급. 보급이 중요하다니까."
당연한 말이지만 내가 만약 본격적인 전쟁을 하게 된다? 그럼 이런 현지보급은 거의 할 수가 없게 된다. 뭐가 됐든 식량을 생산해서 비축을 해놔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농경지를 만들어서 작물을 재배한 다음 그것을 창고에 쌓아놔야 한다는 소리다.
"시발."
마왕군이라는 것도 밥을 먹어야지만 굴릴 수가 있다. 아직은 부대 규모도 그렇게 큰 것이 아니고, 우릴 전문적으로 위협하는 적도 없어서 괜찮지만, 인간들과 본격적으로 싸우게 되면 우리도 그에 상응하는 준비를 해야 한다.
"이거 던전이 아니라 성이 필요하겠는데..."
"마앙님? 성이 머에여?"
"아. 있어. 동굴 같은 게 아니라 돌로 된 벽을 쌓아서 만든 집 같은 거야."
"샤아... 샤란이는 마앙님이랑 있으면 어디든 좋아여."
"나도 그래!!!"
근데 어떻게 농경지를 확보하지?
애초에 인간세계 전체가 내 적이라고 한다면 상대 자체가 안된다. 거기에 잘은 모르겠지만 천사 같은 놈들도 있다.
이거 마계에서의 지원이 없으면 게임 자체가 안될 것 같은데... 뭐, 지금은 할 걸 해야지.
뭐 대충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끄르륵! 모왕님! 쩌 왔다!"
식량을 구하러 간 임프들이 도착했다.
"인간이 큰돼지 짭았따! 돼지여자다!"
"누가 돼지여자란 거냐! 이 무례한 시껌댕이 녀석이!"
"내가 더 계급 높따!"
"이 자식이!"
이거 임숭이가 바네사를 완전히 봉으로 보는구만? 근데 사실 계급만 보면 임숭이가 더 높긴 하다.
여기사는 약간 그 특수보직이지.
"바네사님. 임숭이 때리면 안 됩니다?"
"하지만 날 모욕했다!"
"그건 제가 따로 위로 해드리지요. 그러니까 용서 좀 해주세요."
"따, 따로 위로?!"
"예쁜 바네사님이 마음 넓게 넘어가 주시죠."
"큿! 싸워봤자 좋을 일은 없을 테니 넘어가겠다! 결코 위로 따위를 받고 싶은 것은 아니니 허튼 생각은 하지 마라!"
"예, 예."
좋아.
"그럼 얘들아! 밥 먹자! 부릴아! 임프들이 잡아 왔으니 너희들이 요리해라!"
"케르르륵! 알씀다! 뫙님!"
바로 고블린들이 요리를 준비했다. 뭐 요리라고 해봤자 간단한 거지만.
"후후후, 이렇게 보니까 꼭 놀러 온 것 같아."
옆에 선 루미카가 그리 웃으면서 내 손목을 잡았다.
"보니까 그런 느낌 들긴 하네."
부하들과 함께 어디 놀러 왔다라... 언젠가 그런 날이 올까? 부하들이랑 한꺼번에 휴가 써서 어디 마음 놓고 놀러 간다든가 하는 그런 날이.
"..."
모르겠네.
* * *
숙영을 하고 일어나서 다시 행군을 시작했고, 그런 식으로 이동을 하다 보니 곧 리자드맨들의 서식지에 닿게 되었다.
"늪지대인가."
리자드맨들이 사는 곳은 다름이 아니라 불쾌한 늪지대였다.
"으으... 물 더러운 것 좀 봐. 마음에 안 들어."
"흐흐흐, 이 깔끔쟁이 같으니라고."
루미카는 물에 사는 요괴지만 아무 물이나 좋아하지 않는다. 깨끗한 물을 좋아하지.
"뭐 나무도 좀 빽빽하고. 세리뉴. 여기서 리자드맨 놈들 집 찾을 수 있어?"
"으응... 위치를 정확하게 아는 건 아니라서... 여기서부터는 그냥 직접 찾아야 할 것 같애."
"그럼 그냥 찾아야겠구만. 여기에 자리 만들 테니까 픽시들 투입 실시 준비해. 이인 일조로 정찰 좀 하고 움직일 거다."
"알았어!"
발이 빠질 수도 있기 때문에 여기선 날 수 있는 픽시들을 보내야 한다. 나는 바로 세리뉴와 함께 조를 편성했다.
"좋아! 그럼 우리 픽시 정찰조! 항상 안전하게! 방심하지 말고 주변 살피는 거 잊지 말고!"
"응!"
"용맹하게 출격하라!"
"출겨어어억!"
ㅡ부우웅!
즐겁게 대답한 픽시들이 부웅 날아올랐다.
"그럼 얘들아. 여기서 잠깐 픽시들 기다리자. 부릴아. 물에 발 넣지 말고. 주변 잘 봐야 한다?"
"케루룽... 뫙님. 여기 뭔가 불길함다."
"나도 좀 불길하긴 한데, 진짜 불길한 곳이면 사티로스랑 삐까뜨는 리자드맨들이 살 수가 없겠지. 그러니까 물만 조심해라."
"케르륵! 알씀다! 뫙님!"
설마 악어라도 나올라나?
뭐 물 근처에 안 가도록 조심하면 될 것이다.
그렇게 픽시들을 기다리고 있으니.
ㅡ꺄아아악!
저쪽에서 픽시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얘들아! 전투준비 해!"
설마 리자드맨이 나타난 것인가?!
비명소리가 들린 방향을 보니!
ㅡ부우웅!
두 마리의 픽시들이 허겁지겁 날아오고 있었다!
"픽시야! 왜!"
"마, 마왕아!"
나를 본 픽시가 뒤를 가리켰다.
"저기!"
저기라고?
"존나 큰 개구리야!"
"저런 씨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