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화 〉 충돌! # 3
* * *
ㅡ부우웅!
픽시들이 날아오르고 고블린들이 진군한다. 임프들 역시 입을 꾹 닫은 채 저편으로 나아갔다.
전투준비는 대략적으로 다 끝냈다.
지금이라면 인간 수색대 정도는 문제없이 격멸 가능할 것이고, 인간 부대 하나 정도라면 쉽게 상대가 가능하겠지. 거기에 몇 가지 비장의 수단도 있는 상태다.
반드시 이길 것이다.
그리고 그 승리를 경험치로 삼아 내 군대를 더욱더 강력한 정예 병단으로 만들 것이니! 그리하면 나는 진정한 마왕이 거듭나는 것이다!
"그럼 규일아! 규일이는 공사하던거 마저 하고! 인원 반 쪼개서 나머진 식량 좀 구해오자!"
"규삿삿! 알겟슴니다!"
"큐사삿!"
코볼트 공병대는 던전에 남아서 작업이다. 그렇게 규일이를 보낸 뒤에 그녀들에게 말했다.
"수녀님들? 오늘은 다 같이 전투 훈련 좀 하겠습니다."
"뭐? 전투훈련? 우리보고 인간이랑 싸우라는 거냐?"
레이카가 퉁명스럽게 대답했지만.
할 말은 바로 Yes.
"물론입니다. 인간들이 쳐들어 온다면 예외는 없습니다. 전부 다 같이 힘을 합쳐서 인간들을 베어야 합니다."
"응 개소리."
레이카는 평소처럼 시큰둥하게 반응하며 딴청을 했으나 아이린과 라이자는 달랐다.
"아, 아무리 그래도 그럴 수는... 인간들을 적대하다니 너무해요!"
"맞아요! 이번만큼은 아이린의 말이 맞는데..."
아주 거북해하는 상태.
물론 알고 있다. 마족이 된 지 얼마나 됐다고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다 버리겠나? 나도 오래 걸린 마당에.
"당연히 어렵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 쪽에서 공격을 해온다면 그냥 죽을 생각입니까? 그렇진 않겠지요. 강도가 덤비면 당연히 맞서 싸워야 하는 겁니다."
"그건."
그리 말하자 여성진들이 동요를 하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싫어도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그동안 대인전투에는 참여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싸움은 달라. 다 같이 힘을 합쳐야만 살 수 있다.
"아,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는 마십시오. 일단 수녀님들이랑 바네사님의 마음은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 무리한 일은 시키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럼 무슨 일을 시킬 생각이지?"
비키니 아머를 입은 바네사가 말했다.
"간단합니다. 그냥 제 친위대가 되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먼저 어디로 가서 인간들을 죽여라. 전선에 나가서 싸워라. 인간들을 암살하라. 이런 명령은 하지 않겠습니다."
배려가 아니라 단순히 효율의 문제다. 나와는 달리 아직 인간이라는 정체성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그녀들은 인간들과 싸울 때 주저할 것이고, 그것은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진다.
그런 상태의 여자들을 최전선으로 보낼 수는 없다.
그러니 후방배치다.
"그저 절 지키면서, 저희들을 죽이러 오는 인간들만 상대하면 되는 겁니다. 이건 그거죠. 자기방어. 그냥 제게 붙어 다니면서 자기방어만 해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까?"
친위대로서 끌고 다닐 것이다.
"마앙님은 제가 지킬게여!"
순간 샤란이가 손을 들면서 그리 반응했다.
"흐흐흐, 요 기특한 것. 진짜 우리 샤란이 너무 기특해."
"샤아아아."
바로 웃으면서 볼살을 주물러주자 샤란이가 아주 편안한 얼굴이 되어 내게 몸을 기대었다.
"큿...!"
"저, 저...!"
그러자 여성진들이 뭔가 못마땅한 얼굴을 하면서 눈을 부라리는데, 이건 질투였다. 내게 상을 받고 싶다면 내 말을 따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 다들 샤란이처럼 이쁨받고 싶은 겁니까? 말만 하십시오!"
"닥쳐라!"
"닥쳐!"
바네사와 레이카가 동시에 소리쳤다.
"살벌하군요. 뭐 아무튼. 제 친위대가 되어 스스로와 저만 지켜주시면 됩니다. 아이린님. 알겠습니까?"
"으, 으응... 스스로를 지키는 것 정도라면... 어쩔 수 없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럼 동의한 겁니다."
"에?! 잠깐!"
"이견은 받지 않겠습니다. 아이린님. 제게 반항하면 묶어놓고 성고문을 할 겁니다."
"꺄아아아아악! 싫어! 시키는 대로 할게요!"
역시 쉽다니까.
무엇보다 아이린이 넘어오면 라이자도 세트다.
"큿! 어쩔 수 없군! 죽을 수는 없으니, 그 정도만 하겠다!"
바네사의 힘찬 대답.
레이카야 뭐 더 들어볼 것도 없다. 막상 사태가 닥치면 날 잘 지켜줄 테니까. 그동안의 태도로 알 수 있다.
그럼 마지막으로.
"리리엘님? 리리엘님은 알아들었습니까?"
"뭣!"
천사는 어떨까? 들어보니 레이카한테 꽉 잡혔다는 모양인데. 제법 얌전해진 상태라고 한다.
"열등한 인간 놈들이 덤빈다면 처단할 뿐이다!"
이 나치 같은 성격이 여기선 도움이 되네.
"좋습니다."
아무리 인간과 싸우길 주저한다고 해도 직접 죽이려고 달려오는 모습을 보면 당연히 생각이 바뀐다. 인간이라고 해서 모든 인간들과 동맹인 건 아니니까.
이걸로 정리 완료.
"그런 전투훈련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렇게.
ㅡ척.
바네사의 지도에 따라 우리는 모두 칼을 잡고 훈련을 실시했다. 바네사의 구령에 따라 칼을 휘두르는 것을 반복했고, 대열을 맞추거나 단체로 이동을 하는 등의 소부대 전술 훈련도 시행한다.
"바네사님. 요인 호위 훈련도 부탁드립니다."
"내가 왜 네놈 같은 녀석을 호위해야 하는지 모르겠군!"
"아 빨리요."
"시키니까 하겠다!"
참 순하다니까.
그렇게 날 호위하면서 이동하는 훈련까지 다 했다. 바네사가 잘 지도한 탓에 수녀들 역시 잘 따라왔고 말이다. 여성들은 전부 다 내 친위대다. 앞으로는 이런 종류의 훈련도 많이 시킬 거다.
"후우."
정찰과 훈련. 그리고 물자의 확보. 전쟁을 하려면 전부 다 철저하게 해야 하니까.
그런 식으로 오전 시간 동안 몸으로 하는 훈련을 마쳤고, 점심을 먹고 난 뒤에는 다 함께 흑마법을 수련했다.
"다크볼트읏!"
"다, 다크볼트!"
ㅡ화르륵!
수녀들이 쏘아낸 다크볼트가 바위에 처박힌다. 그러자 사방으로 사악한 화염이 비산하면서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호오. 역시 괜찮군요. 흑마법 재능이 보입니다. 그럼 레이카님. 저한테 다크큐어 좀 써주시겠습니까?"
"어디에?"
"어깨에다가요."
그리 말한 순간.
ㅡ꽈악!
레이카가 내 어깨를 꽉 잡아 쥐었다!
"아악!"
비명 터져 나옴과 동시에 레이카의 손에서 마력이 전해져오기 시작한다. 다크큐어. 이것은 마력을 주입함으로써 대상을 회복하는 흑마법이다. 그래도 명색이 수녀들인데 치유는 할 수 있어야지.
수녀들은 지금 다크볼트와 다크큐어. 총 두 가지 흑마법을 익힌 상태다.
"크으... 완벽합니다."
"더 해줘?"
"자지에 해주시겠습니까?"
"이리 대, 이 씨발. 터트려버리게."
"에이. 터트리긴요. 그럼 레이카님이 못쓰잖아요."
"뭣?! 닥쳐!"
성희롱을 해주자 금세 시뻘게진다.
아무튼 그런 식으로 훈련을 하고 있으니.
"그라라락!"
"슈라라락!"
저쪽에서부터 홉고블린과 리자드맨 전령이 달려오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루에 한 번씩 전령을 보내기로 한 상태니까 올 때가 됐지.
"정지.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 많았... 음?"
근데 이 새끼들 전령이 아니라 족장들인데?
"쥬라기 아니냐? 그리고 니는 혹부리지."
"그락! 그렇다!"
"슈라라락! 급한 일 있어서 직접 왔다!"
"뭔데?"
설마 인간이라도 본 건가?
둘이서 쌍으로?
아니 뭐 거리가 그렇게 먼 건 아니니 둘 다 찾아도 이상할 건 없다. 이미 둘한테 인간들을 주의하고, 주변 정찰을 착실히 하라고 명령을 내린 상태니까.
"쥬라기. 먼저 말해라."
"슈와아악! 초록색 인간들! 초록색 인간들 나타났다! 놈들 강하다!"
"뭐?"
초록색 인간?
"자세히 말해봐."
그렇게 쥬라기에게 설명을 들었다.
초록색 인간.
그것은 인간만 한 키를 지닌 어떤 종족이었는데, 덩치가 크고 근육이 발달한 외형을 지녔다고 한다.
"오크?"
딱 생각나는 건 그것밖에 없는데.
"바네사님. 이거 오크 아닙니까?"
"오크? 마족들은 그리 부르나?"
아는 게 있는 모양이군.
"아, 예. 오크라고 부르죠. 오크라고 불러 주세요."
"알겠다. 초록 피부의 근육질 종족이라면 하나밖에 없다. 오크가 맞는 것 같군. 제법 강한 몬스터 종족이라서 나올 때마다 토벌을 하고 있지."
그래?
"나름대로 강한 몬스터니까. 숙련된 병사라고 해도 1:1로는 오크를 이기가 힘들다. 하지만 인간보다 지능이 높은 것은 아니지. 집단전으로 가면 충분히 격퇴할 수 있다."
그러니까.
개인 피지컬은 좋은 종족이지만, 머리가 나빠서 집단전으로 가면 털린다는 건가? 이거 진짜 오크구만.
"혹부리. 너도 봤다는 거냐?"
"그락! 그, 그렇다! 위험하다!"
"흠."
숲속 친구들이 다 경계할 정도로 강한 종족이라는 건가... 이거 인간들이 쳐들어올락 말락 하는 마당에 오크까지 나타나다니.
곤란한데.
어떻게 할지 고민을 좀 해봐야겠군. 리자드맨들이 두려워할 정도로 피지컬이 좋은 적들이라면 싸웠을 때 얼마나 피해를 볼지 알 수가 없다.
충돌은 피해야 할 것 같은데.
"일단 두 눈으로 직접 봐야겠어."
그리 결정을 내렸다.
"쥬라기. 혹부리. 놈들과 충돌하게 될 것 같으면 부족원들을 이끌고 이쪽으로 도망쳐라. 알겠냐?"
"슈와아악! 알겠다!"
"그락락!"
그럼 내 정찰병들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도록 하자.
* * *
픽시, 고블린, 임프들. 정찰을 보냈지만 전부 인간은 발견하지 못했다. 아직 수색대가 여기까지 들어오진 않은 모양이다.
그래도 하나 건진 게 있다면.
"뫙님! 초록색 떡대새끼들 나타났슴다! 존나 큼다! 뫙님이랑 비슷함다!"
오크를 찾은 것이다.
그 정보를 획득한 즉시 오크들에 대해서 알아봐야 한다고 생각했고, 부하들을 푹 쉬게 했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내 친위대 몇을 추려서 이끌고 오크 수색에 나섰다. 안 나타나던 오크가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어디 다른 지역에서 이사를 왔을 수가 있다. 당연히 수색을 해야만 한다.
어차피 인간들을 발견한 것도 아니니 수색할 시간은 있어. 이럴 때 딱 알아놔야 변수에 대처할 수가 있다.
그리 움직이고 있으니.
"샤아? 마앙님. 저기서 느껴진다에여."
"좋아. 조용히 미행하자."
제법 빨리 찾을 수가 있었다.
"오."
과연.
오크는 진짜 오크였다.
인간이랑 비슷한 키. 그리고 근육질의 몸매. 특이하게도 팔뚝은 근육질이지만 배가 불룩 나와 있었다. 거기에 거북목도 존나게 심해 보였고.
얼굴은 뭐, 그냥 못생겼다. 턱이랑 어금니가 튀어나와 있는 상태다. 도구는... 홉고블린이랑 비슷한 정도인가? 돌을 엮은 몽둥이를 들고 있다.
"그런데 자지는 작네요?"
"뭐?"
순간 아이린이 그런 말을 했다.
"아."
깜짝 놀라 되물으니 입을 가리는 아이린. 확실히. 오크는 지금 뭘 입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성기까지 다 보이고 있는데, 푸짐한 덩치에 비해 작긴 했다.
"아이린님? 지금 뭐라고?"
"아, 아니! 아니에요!"
"쉿!"
"읏."
바로 자지부터 관심을 가지는 수녀라니... 놀랍군.
아무튼 오크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열매를 따먹고 있었고, 그리 여유를 좀 부리다가 다시 이동을 실시했다.
"샤아."
그동안 제법 강해진 샤란이가 옆에 있었기에 미행은 몹시 간단했다.
그렇게 얼마나 미행을 했을까.
"취익!"
"취익, 취익!"
"취이이이익!"
오크 부족을 발견할 수 있었다.
"..."
이제 딱 자리를 잡은 것 같은 느낌의 부족. 새로 입주를 한 가족들이로군. 아무튼 부족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오크들은 저마다 취익 거리면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수가 제법 되는데... 왜 갑자기 이사를 온 거냐?
어디서 밀려났나?
확실히 이건 큰일이다. 아무리 그래도 저런 규모의 오크 부족과 생활권을 공유하고 있다면 아주 위험할 테니까. 지배? 딱 봐도 강한 종족이다. 우리가 쌈싸먹을 수 있었던 다른 종족과는 완전히 다르다. 놈들을 지배하려면 부대의 몇할을 잃을 각오를 해야 한다.
뭔가 대책을 강구해야... 아니 잠깐?
ㅡ츠팟.
순간 무슨 생각이 내 뇌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거."
이용할 수 있겠는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