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화 〉 충돌! # 9
* * *
바로 짐을 챙기고 출발했다.
"한낱 오크에 불과하지만 정말 가엾게 느껴지는군. 모든 혐의를 뒤집어 씌우다니."
옆으로 따라붙은 바네사가 그런 말을 했다.
"네놈은 명실상부 사악한 마왕이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애초에 오크 죽이는 건 인간들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잖아요. 나타나면 그냥 죽인다면서 뭘 저한테 그러십니까?"
"그건 그렇지만... 의도가 사악하다는 것이다. 의도가. 저런 걸 준비하다니."
ㅡ처억.
바네사가 가리킨 짐.
그 짐 안에는 몇몇 전리품들이 들어 있었다. 그렇다. 희생자들의 갑옷이다. 그중에는 바네사가 입고 있던 옷도 들어있다.
마찬가지로 모험가나 수녀들이 지니고 있던 옷이나 잡동사니도 담겨 있지. 말 그대로 유품 등을 담아놓은 망자의 종합선물 세트다.
심지어 그것들을 전부 피와 진흙으로 더럽혀 놓은 상태.
오크 부족에서 이런 게 발견되었다면 조금 더 디테일함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뭐 전리품을 다 넣은 게 아니니 의심은 할 수 있겠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오크가 다 안 가져갈 수도 있으니까.
솔직히 좀 아깝지만 어쩌겠나. 디테일이 있어야 안전하니 행할 뿐이다.
"아무튼 이걸로 고비를 잘 넘기면 더 안전해지는 겁니다. 사실 뭐 오크들을 사냥해서 먹는 거나, 이렇게 이용해서 죽이나. 결과는 똑같은 것이지요. 우리가 좀 더 오래 생존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요."
"궤변에 불과한 말!"
아무래도 오늘의 바네사는 기분이 좋지 않은 듯했다.
"아니. 바네사님 왜 이렇게 기분이 안 좋습니까? 제가 요즘 안 만져줘서 그런 겁니까?"
"뭐, 뭐랏?! 따, 딱히 그런 것은...!"
바로 바네사의 얼굴이 시뻘게진다. 욕구불만이다, 욕구불만. 요즘 시간 없다고 안 만져줬더니 시위를 하는 거구만.
"흐흐흐, 알겠습니다. 다 끝나면 느긋하게 만져드리지요. 저도 그동안 아름다운 바네사님을 가만히 냅둬서 불편했습니다."
"다, 닥쳐라앗...!"
귀엽기는.
"아, 그보다. 새로 들어온 루비는 어떻습니까?"
"말을 돌리기는! 뭐어, 소심해서 그런지 잘 따르는 편이다. 리리엘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타입이더군."
"리리엘이 뭐라고 하진 않습니까?"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지도하는 중이다."
그렇다니 다행이네.
뭐 대충 내 옆쪽에 자리를 잡은 바네사와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쭉 걸었다. 아무리 그래도 전투 방면에서는 바네사가 제일 전문가니까.
"케륵, 뫙님! 거의 다 왔슴다!"
"오. 그래? 어디쯤인데?"
"조금만 더 가면 오크 영역임다! 케륵!"
"그래, 그래. 도착하면 니가 애들 정지시켜줘라."
"케륵!"
이제 곧 있으면 도착이다.
"샤아. 마앙님."
"음? 샤란이 왜."
"오크가 공격해오면 어쩐다에여? 씨우면 곤란 아니에여?"
"그렇긴 하지."
이건 타이밍이 중요하다.
현재 인간정규군이 우리 정찰 범위 내까지 진군한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오크들이랑 불편하게 엮이게 되면 곤란해질 수가 있다.
그렇다고 가만히 냅둬선 안된다. 오크들이 적당히 난동을 피우고 있는 편이 좋으니까.
그러니 딱 최소한의 자극만 하고. 이 짐들을 짬처리 한 다음에 바로 도망쳐서 대문을 잠그도록 하자.
"모두 주목! 이제 곧 오크의 영역이다! 오크를 발견해도 섣불리 공격하지 말고 방어 중점으로 간다! 알겠나!"
"케륵!"
그렇게 우리들은 오크 영역으로 진입했다.
* * *
그리고.
"취익!"
"취이이익!"
오크 두 마리와 마주하게 되었다.
"경계병인가."
이인조 오크가 조잡한 무기를 겨눈 채 우리에게 적의를 내비치고 있었다. 영역으로 진입하다 보니 딱 마주친 상황.
"취이이이이익!"
일단 우리 숫자가 더 많기 때문에 섣불리 공격은 해오지 않는다. 그러나 겁을 먹은 기색이다. 당연히 숫자가 많으니 불리하다고 여길 지능은 있겠지.
"흐흐흐."
근데 바로 안 도망치는 점이 좀 신기한데... 대치 상황이라서 그런가? 아무튼 덩치도 크고 배도 나왔고 팔뚝도 큰 놈들과 이러고 있어봤자 재밌을 일은 없다.
그래서.
"부릴아. 짐 열어라."
"케륵."
나는 바로 미끼로 쓸 아이템들을 잡아 들고 샤란이와 바네사의 호위를 받으면서 오크들에게 다가갔다.
"취익!"
"취이이이익!"
그러자 오크들이 험악하게 취익거리는 소리를 내며 지랄을 했다. 물론 가볍게 무시해주고 녀석들에게 어느 정도 접근한 다음.
ㅡ툭.
아이템을 떨궜다.
"알아듣진 못하겠지만, 이것들 너 가져라."
말은 못 알아들어도 바디랭귀지는 가능할 터. 떨어뜨린 물품들을 가리키고 입을 뻐끔거려주자, 오크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취익?"
"기져가라고."
말을 전한 뒤에 다시 돌아가서 새로운 아이템들을 더 가져와 떨궜다. 그렇게 가져온 템들을 모두 쌓았고.
"그럼 들고 가. 선물이니까."
"취익...?"
우리는 적절한 거리까지 후퇴했다.
"케륵. 뫙님. 좀 아깝슴다."
"나도 그래. 아무튼 좀 보자고. 어떻게 하는지."
그 자리에서 오크 경계병들을 관찰한다.
"취익, 취익."
"취익취익."
오크들은 뭔가 지들끼리 취익대기 시작하더니, 떨어진 아이템들을 줍고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의문을 표했다.
"취익? 취이익?"
"취익취익."
시발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답답하네. 아무튼 그렇게 대충 관찰을 하고 있으니.
"취익."
오크들이 장비 몇 개를 들고 돌아가기 시작했다.
"좋아!"
이걸로 희생자들의 아이템이 부족 내부로 흘러 들어갈 것이다!
"샤아! 마앙님! 작전 성공이에여!"
"흐흐흐! 그래!"
"그럼 철수한다에여?"
"아니. 일단 좀 더 보고."
폭력 사태도 한번 일으킬 생각이다.
* * *
그런 식으로, 우리들은 오크들이 아이템들 운반하는 작업을 계속해서 관찰했다.
돌아갔던 경계병들이 패거리 몇을 더 끌고 오더니 본격적으로 아이템을 챙겨가기 시작한다.
"흠?"
근데 전부 가져가는 것은 아니다. 확인하더니 흥미가 안 끌리는 것들은 그냥 버리는 모양. 저것들은 그대로 버려두거나 나중에 다시 회수하면 될 것이다.
"취익, 취익."
그렇게 오크들이 아이템을 다 챙겨갔고, 마지막으로 확인을 할 생각인지 딱 두 마리가 더 나타났을 때.
"얘들아. 다시 가자."
우리는 다시 오크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취익...?"
우리가 나타나자 오크가 손짓발짓을 하며 저들끼리 소통을 했다. 그러나 아까보다는 경계가 풀어진 기색이었다. 그야말로 느슨해진 상태.
"취익취익."
주저하면서도 우리를 향해 천천히 다가온다.
우리가 선물을 줬다는 걸 이해한 것일까? 오크에게 그런 지능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근데 유감이지만 그건 선물이 아니다.
암살용 폭탄 같은 거지.
서부 개척시대. 백인들은 인디언들에게 선물을 준답시고 천연두 환자가 쓰던 물품들을 건네줬다. 인디언들은 의심 없이 선물을 받았다. 아주 좋다면서. 이번 백인들은 다른 백인들과는 달리 경우가 되어 있다면서 즐겁게 춤을 추며 인디언백인 동맹이 영원하길 노래했다.
그 결과 인디언들은 모조리 천연두에 걸려 몰살당하고 말았다.
참 어리석은 일이다. 생사가 갈린 전쟁임에도 불구하고 선물 따위에 마음을 허락하다니. 전장에서 어리석음의 대가는 오직 죽음뿐이다. 마음 따위 허락해선 안 됐다.
죽고 죽이는 것이 역사이자 세상의 본질이다. 거기엔 정의도 도덕도 선도 없다. 타인을 해하고 죽이는 것만이 지성체의 본질이란 말이다. 세상에 절대적인 신이 있는 것도 아닌데 선악과 진리 따위가 있겠는가? 정의가 있다면 그건 한정된 자원을 놓고 생존을 위해 다투며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이겠지. 다른 정의가 있을 리가 있나.
"취익."
천천히 우리에게 다가온 오크를 보면서, 나는 명령을 내렸다.
"전원. 창 거꾸로 든다. 실시."
"케륵!"
"케륵!"
내 명령에 고블린들이 잽싸게 창을 거꾸로 잡았고.
"공격! 존나게 패라! 죽이지는 말고 걸레짝이 될 때까지 패버려!!!“
ㅡ파앗!
명령을 내린 즉시 땅을 박차고 달려나간다!
"케랴아아아아아악!"
"케르르륵!"
그것을 본 오크들이 경악했다.
"취익?!"
"취이이이익?!"
다가오다 말고 날벼락을 당한 상황. 물론 돌도끼를 잡아 들고 대항을 하려고 했지만, 무기의 길이도. 병력의 숫자도 이쪽이 압도적이다.
"케랴아아악!"
"취이이이이이이익!"
두 마리의 오크는 그렇게 내 고블린들에게 죽도록 처맞으며 비명을 질러댔다.
"취익! 취이이익!"
ㅡ뻐억!
ㅡ뻑!
복날 개처맞듯이 처맞는 오크들. 죽이진 않는다. 다른 오크들이 부상당한 녀석들을 끌고 돌아가야 하니까.
죽이는 것과 부상만 입히는 건 천지차이.
죽었다면 지능 낮은 오크들이라고 해도 그 자리에서 존나게 발광하면서 폭주하겠지만, 부상만 입은 상태라면 돌아가서 냉정하게 이번 일에 대한 방침을 정할 것이라는 게 내 예상이다. 말하자면 이성을 챙길 시간을 좀 주는 거다.
그렇게 오크들이 시간을 들여 본격적으로 전쟁준비를 실시한다면.
그때쯤 인간정규군들이 나타나겠지.
"완벽하다...!"
오크들은 몰살에 우리의 혐의는 사라지고 인간정규군 역시 피해를 입을 것이다! 완벽하기 짝이 없는 작전! 오크 부족 따위 몰살당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게 내 부족이냐! 난 내 부하들만 지키면 돼!
"그만! 이제 그만 패고 철수한다!"
"케륵!!!"
명령을 내리자 고블린들이 걸레짝이 된 오크들을 뒤로하고 이쪽으로 돌아왔다.
"신속하게 후퇴! 샤란이는 가면서 우리 흔적 좀 지워주고!"
"샤아! 근데 길어서 다는 못한다에여!"
"할 수 있을 만큼만 해줘!"
"네 마앙님!“
이것으로 준비는 마쳤다.
이제 돌아가서 던전 입구를 막은 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후 상황을 관찰하면 될 뿐이다.
"후우... 마음이 편치 않군. 마왕의 농간에 의해 인간과 몬스터들이 서로 싸우게 되다니."
"바네사님도 이제 마족이지 않습니까. 받아들이세요."
"그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겠지."
"에헤이. 그러지 마시고."
ㅡ꽈악.
바로 엉덩이를 만져주니 바네사가 소리쳤다.
"하읏...! 저, 정말 음란한 짓을 일삼는군! 돌아가는 것에 집중이나 해라! 운이 따르지 않는다면 당장 오크가 공격을 해올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내 손을 쳐내거나 하지는 않는다.
"예, 예. 그래야지요."
"마앙님. 샤란이 엉덩이도 만져주세여."
그쯤 되니 부러워진 것인지 샤란이가 내게 달라붙어오며 그런 말을 했다.
"흐흐흐, 알았어. 돌아가서 해줄게."
"샤아. 샤란이가 엉덩이춤 춰줄게여."
"너 무 좋 아 !"
할 일은 다 마치고 놀도록 하자.
"뫙님."
"어. 부릴이 왜."
"저도 엉덩이 땐쓰 보여드림까? 케륵."
"필요 없어 임마!!!"
"케루룽~"
지랄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