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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마왕 생존기-168화 (168/544)

〈 168화 〉 충돌! # 10

* * *

예상대로 오크들은 바로 쳐들어오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무장 정찰을 실시하는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역시 죽이는 것보단 줘패버리는 편이 더 낫다니까. 누가 죽은 게 아니기 때문에 나름대로 이성을 챙길 수가 있었다는 점이 바로 내가 노리던 바였다.

아무튼 그것까지 확인한 뒤에, 나는 다시 던전의 입구를 틀어막았다. 저번처럼 나무뿌리를 자라나게 하고 진흙으로 덮은 다음 주변과 동화되도록 데코레이션을 한 뒤에 샤란이에게 정리를 시키는 것으로 마무리.

그것으로 완벽하게 던전이 감춰줬다.

어차피 우리에겐 베트콩 땅굴이 있다. 대문을 막아도 이동에는 별다른 지장이 없단 말이지. 게다가 지하에는 식수원이 있기 때문에 버티는 것에도 문제는 없다.

거기에 식량도 비축해놨고.

"좋아."

할 수 있는 준비는 싹 다 했다.

나머지는 결과를 기다릴 뿐.

일단 비상 대책으로 땅굴을 이용한 탈출 작전을 짜두긴 했지만, 그걸 사용할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진짜 좆망이다. 부하들 대부분을 잃게 되는 것도 모자라 내 정체도 들킬 테니까.

"제발."

따라서 지금 해야 할 것은.

"기도뿐."

하지만.

마족인 나는 누구에게 기도를 해야 하나?

"칭."

칭.

"칭기스 칸."

제국의 주인이자 도살의 귀재인 칭기즈 칸. 그도 어릴 땐 개호구딸딸이 새끼에 불과했다. 뒤질 위기도 몇 번이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세계의 절반을 지배했지.

"내게 힘을 줘, 칭기스 칸."

그래서 나는 칭기즈 칸에게 기도했다.

* * *

그리고.

인간 정규군이 나타났다.

"..."

눈깔이 빠질 것 같은 기분.

현재 소환한 이블아이를 세리뉴가 잡고 있는 상태였다. 직접 움직이게 하느니 픽시를 시켜 움직이게 하는 게 더 안정적이니까.

아무튼 지금 세리뉴는 샤란이가 만들어준 길리슈트를 착용한 채 울창한 나무의 잎사귀 속에 숨어서 CCTV 역할을 하는 중이었다.

"인간 놈들 너무 많아...! 나 무서워...!"

세리뉴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이블아이의 귓구멍에 대고 조용히 외쳤다. 현재 이블아이와 감각이 연동되어 있어서, 그 뭐라고 해야 하지?

누군가가 안면속에 들어가 있는 오른쪽 눈깔에다 대고 말을 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세리뉴의 기분은 잘 안다. 하지만 내 쪽에선 말을 해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난 눈을 몇 번 깜빡여줬다. 안심하라는 의미에서 네 번을.

"하아."

그래도 세리뉴는 임무를 수행한다. 들고 있는 이블아이를 천천히 겨누면서, 저쪽에 있는 인간들의 주둔지를 보게 해줬다.

"흠."

저들이 바로 인간정규군이다.

무장상태는 제법 좋은 편이다.

퀼티드 아머에 둥근 챙모자 같은 투구와 장화를 장착하고 한손검과 라운드 실드로 무장을 하고 있다. 허리에 찬 벨트에는 다용도 파우치나 수통 등이 달려 있는 상태.

진짜 본격적인 군대로군.

저런 새끼들이랑 붙는다? 그대로 좆망이다. 아직 우리 몬스터 군대는 인간 군대를 상대할 수 없는 것이다. 적어도 고블린들 체급이 인간급으로 커져야 가능할 듯.

그래도 뭐 철로 된 갑옷은 두르지 않은 상태다. 일반병한테 그런 거 다 주려면 비용이 막대할 테니까.

좋다.

이대로 인간들이 오크들을 발견하기만 하면 된다. 여기까지 진군해왔고, 오크들은 전투를 준비하며 정찰을 실시하고 있다.

머지않아 둘이 충돌할 것이 분명하다.

"하, 진짜."

미칠 듯이 긴장이 되는군. 세리뉴를 저기에 보내 놓은 것도 많이 불안하다. 하지만 해야 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마왕. 땀 흐르고 있어."

"찬물로 좀 식혀주라."

"응."

루미카가 헝겊을 찬물로 적셔 내 얼굴을 닦아줬다.

"그렇게 불안해?"

"솔직히 존나 불안해. 들키면 끝장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그렇게 열심히 준비했는데. 잘 될 거야."

"그래... 그래야지."

내가 걱정하는 모습 보여봤자 좋을 건 없으니까.

"마앙님. 괜찮아여. 무슨 일 있으면 샤란이가 지켜준다에여!"

ㅡ처억!

샤란이가 싱긋 웃으면서 주먹을 치켜들었다.

"흐흐흐, 그래. 샤란이만 믿으마."

애교를 부리는 샤란이를 보고 있으니 마음속 불안감이 조금 사그라들었다.

"샤아샤아."

샤란이에게 꼬리가 있다면 엄청 흔들리고 있겠지. 바로 샤란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약간 대형견 같은 타입이라니까.

뭐, 그렇게 마음을 안정시키고 있으니.

"야."

레이카가 들어왔다.

"레이카 수녀님?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그리 묻자.

"..."

뭔가 내 시선을 회피하면서 입을 우물거린다. 뭔가 할 말이 있는데 잘 안 나오는 건가?

"그..."

"그?"

"아, 씨발. 뭐라고 해야 되지? 하아. 그, 그."

그.

"그... 만약 싸우게 되면 우리도 싸울 수밖에 없으니까. 뭐, 그 점은 걱정하지 마라. 죽을 생각은 없거든."

"오오! 절 위해 인간들과 싸워주시는 겁니까!"

"목숨 걸린 일이면 어쩔 수 없지. 그러니까..."

"네! 너무 걱정 안 하겠습니다! 레이카 수녀님 사랑해요!"

"닥쳐!"

그 말을 남기고 레이카가 다시 돌아갔다.

츤츤대기는.

"후후후, 레이카도 많이 착해졌네? 마왕."

"그러니까."

아, 이거 뭐 아직 저러긴 해도 내 명령을 따른다는 것은 확실하다. 아무튼 그러면서 한쪽 눈을 감은 채 이블아이의 시야에 집중했다.

그러고 있으니.

"아...! 저, 저기!"

세리뉴가 나만 들을 수 있는 소리로 작게 소리쳤다.

"뭔가 갑자기 막 움직여! 뭐 찾았나봐...!"

오크인가.

바로 눈을 세 번 깜빡여서 제자리에서 죽은 듯이 있으라고 명령했다.

"오크를 찾은 건가?"

제발 그랬으면 좋겠군. 그리 기원하고 있으니 이블아이의 시야가 뒤틀렸다. 제한 시간이 되어서 녹아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

이젠 세리뉴가 땅굴로 무사히 귀환하길 빌어야 한다. 진짜. 지금쯤 벌벌 떨고 있을 텐데. 그걸 상상하니 마음이 아려온다. 안 그런 것 같아도 세리뉴는 겁이 많으니까.

제발 무시해라.

* * *

밤.

"나 존나 무서웠어! 엉엉엉!"

무사히 돌아온 세리뉴가 엉엉 울면서 내 품에 안겨들었다. 나는 그런 세리뉴의 등을 쓸어주면서 위로해줬다.

"무서운데 잘 참아줬다, 세리뉴. 덕분에 상황을 알게 되었어. 꾹 참고 임무 수행해줘서 고마워."

"그런 거 다신 하고 싶지 않아!"

또 시키는 건 무리인가.

"알았어. 이제 안 시킬게. 오늘은 쉬어라."

"흐윽... 응."

"괜찮아?"

"집에 오니까 괜찮아졌어... 그래도 피곤해. 이블아이 녹아내렸을 때부터 얼마나 불안했는지 몰라."

"그래그래. 가서 쉬자. 무슨 일 있으면 깨워줄 테니까."

"응."

그리 세리뉴를 픽시 내무반으로 안내해줬다.

"좋아."

이제 밤이다. 지금부터는 픽시를 이용할 필요가 없지. 이블아이 혼자서 뽈뽈뽈 날아댕겨도 잘 모를 테니까.

"땅굴로 간다. 샤란아. 따라와."

"네 마앙님."

바로 샤란이와 함께 땅굴로 갔다. 좁은 통로를 지나고 지나 출구 쪽으로 간 뒤에, 그곳에서 이블아이를 소환하고.

"출격."

바로 출격을 시켰다.

ㅡ파닥파닥.

내 시야가 이블아이와 연동된다. 조종하는 건 여전히 어렵지만 그래도 좀 나아졌다.

ㅡ화악.

그렇게 날아오른 뒤에, 사방을 살피면서 특이점을 찾는다. 그런 내 눈에 무언가가 감지되었다.

"횃불."

저기에 횃불을 든 인간 무리가 모여 있다. 방향으로 따지면... 오크 부족이 있는 쪽!

"좋아!"

인간들이 오크 부족을 찾은 것이다! 바로 이블아이를 조종해 그쪽으로 다가갔다.

ㅡ파닥파닥.

속도가 그리 빠른 게 아니라 많이 답답하다. 하지만 마음속은 희열로 가득 차 있었다. 인간들이 오크 부족과 충돌했다! 거기에 횃불까지 든 것을 보면 밤을 틈타 야습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

이거 완전 토벌하려고 전력을 다 쏟는단 뜻이 아닌가!

그렇게 일정 지점까지 다가가니.

"떨어지지 마라!"

"전우조 항상 확인해!"

"대열 맞추고! 절대로 벗어나지 마라!"

"오크 새끼들 싹다 조져버리자!"

병사들의 고함소리가 들려온다. 횃불을 든 병사들과 무장을 한 병사들이 대열을 이룬 채 오크 부족을 향해 전진하고 있었다.

"취이이이이익!"

"취이익!"

그리고 어디선가 나타난 오크들이 산발적으로 공격을 해온다. 물론, 야습을 당한 야만종들이 이런 훈련된 군대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ㅡ푸욱!

ㅡ푹!

라운드 실드로 정면을 가린 병사들이 오크들에게 검을 찔러 넣는다. 그리고 후열의 창병들이 공격을 보조해주자.

"취, 취이이이이익!"

"취익취익! 취이이익!"

습격해온 오크들이 금세 쓰러졌다.

가만 보니 주변에 오크들 시체가 제법 널브러져 있는 상태였다. 완벽하다. 아주 완벽하게 계획이 흘러가고 있다. 인간들이 오크들을 대신 토벌해주고 있다.

한가지 예상을 벗어난 점이 있다면, 인간들 피해가 거의 전무해 보인다는 점뿐이다. 오크들을 상대하면서 조금은 죽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인간시체는 보이지 않는다.

하긴.

이렇게나 훈련했는데 죽을 리가 있나.

"후우... 샤란아. 우리 산 거 같다."

"인간들 오크랑 싸워여?"

"어! 싸우고 있어!"

"샤아!"

안도감이 들자 마음이 평안해진다. 나는 다시 이블아이를 조종하여 다른 쪽을 관찰했다.

ㅡ화르륵.

오크 부족은 이미 불타고 있었다. 시체도 아주 많다. 병사들이 불을 피워두고 부족을 수색 중이다.

"역시 다 오크들이 죽인 건가?"

"아무리 그래도 기사가 당할 리가 없는데..."

"기습이라도 당한 거 아니오?"

병사들이 저마다 그런 말을 하면서 수색을 하고 있다. 병사들도 일련의 실종사건에 대해서 의문을 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가, 갑옷! 갑옷을 찾았습니다!"

저쪽에서 다른 외침이 들려온다.

내가 넘겨준 템들이다.

"..."

천천히.

근처 나무에 달린 가지 위에 착지하여 그 광경을 면밀히 관찰한다.

ㅡ타타탓!

저쪽에서 부사관 정도로 보이는 자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당장 가져와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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