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1화 〉 오크가 이사한 이유...! # 2
* * *
방학은 끝.
다시 본격적인 일과를 시작한다.
"이상으로 아침 점호를 마치겠다!"
명령 하달을 전부 마친 뒤에 점호를 끝낸다. 동시에 던전의 구성원들이 우루루 움직인다.
아침 먹고 나면 본격적인 일과 시작이다.
"세리뉴! 밥 먹고 나면 홉고블린들한테 가축 키우는 법 좀 알려줘!"
"응! 알았어! 이제 걔들한테 그거 키우는 거 다 짬 때리는 거지?!"
가르쳐준 속어를 아주 잘 쓰는 세리뉴.
"물론이다! 걔들 좀 숙련되면 픽시들은 가축관리 안 해도 돼!"
"야호! 다 짬 때려야지! 이제 가축 안 키울 거야!"
왜 이렇게 신났냐. 가축 돌보는 게 그렇게 귀찮았나? 뭐, 근데 이렇게 순수하게 신나서 좋아하는 모습 보니까 너무 귀엽다. 픽시들의 전매특허 폴짝폴짝 뛰면서 왕가슴 흔들기까지 나온 상태다.
아무튼.
던전 안에는 가축을 기르는 용도로 만들어둔 방이 있다.
일종의 양계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약간 조류 비슷한 소형 몬스터들을 풀어다가 기르는 중이다. 알도 낳고 새끼도 까고 그래서 쏠쏠한 편이다. 먹이는 그냥 근처 풀만 뜯어다 줘도 잘 먹더라. 아니면 우리가 먹다 남은 잔해 같은 것도 잘 먹는 편이고. 키우는 난이도는 아주 낮다.
앞으로 홉고블린들은 이런 생산 겸 잡일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무투리."
"그락."
"너는 다른 홉고블린 몇 마리 데리고 장비 제작하는 일에 집중해라. 뭐 가죽 옷이나 모자. 창. 그런 거 만들어."
"그락락."
샤란이도 만들고 있긴 하지만 혼자 해서는 모자라다. 무투리는 여태까지 옷 같은 거 많이 만들었으니 믿을만 하지.
"다른 거 시킬 건 없어?"
무투리가 돌아가자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세리뉴가 물었다.
"세리뉴. 그거. 그거 뭐냐. 그거 지금 안 하고 있지?"
"응. 장비는 다 들여놨는데 지금은 안 하고 있어."
일단 픽시들도 생산특성이 좀 있는 편이다. 유충을 이용한 양잠과 정령을 이용한 제철등의 특성이 있지.
요즘 시간 없어서 가동 중지 상태였는데, 그것도 홉고블린들한테 짬때리도록 하자.
"그것들 홉고블린들한테 가르칠 수 있겠냐? 실로 옷 만드는 거랑 정령으로 철 뽑아내는 거."
저품질의 철이긴 하지만 내 마력으로 강화하면 된다.
"응! 가르칠 수는 있을 거야!"
"철 뽑는 것도?"
"어차피 정령을 쓰는 거라 괜찮아! 일만 시키는 건 쉬우니까! 관리는 내가 하면 되고!"
"그럼 그것도 홉고블린들한테."
"짬 때리는 거지! 야호!"
아주 그냥 싱글벙글이로군.
그렇게 세리뉴에게 지시를 마쳤다.
홉고블린들은 생각보다 머리가 좋다. 뭐 여태까지 봐왔던 종족들. 코볼트. 임프. 고블린. 리자드맨. 사티로스. 이런 놈들 중에서는 제일 지능이 높은 편이지.
그래서 이제 홉고블린들은 완전히 생산과 잡일 쪽으로 돌릴 생각이다. 픽시들이 잘 가르친다면 이제 알아서 굴러가겠지. 그렇게 새로 발견되는 홉고블린들도 싹 다 납치해서 그 라인에 투입하면... 던전의 편의성이 증가한다.
이쯤 되면 홉고블린들도 식민지인들이 아니라 내 정규군대로 편입시켜줘도 될 것 같다. 그건 성과를 본 뒤에 결정하도록 하자.
그렇게.
"케륵!"
"끄륵!"
일과대로 고블린들이 전투 훈련을 시작했고, 임프들이 수렵을 하러 나섰다.
"리리엘! 집중해라!"
"이, 이런 건 이미 옛날에 다 한...!“
"조용!"
내 섹시 친위대원들도 바네사의 지휘에 따라 소부대 전술훈련과 체력단련을 실시하고 레이카의 지휘 아래 흑마법 수련을 행한다.
진짜 너무 자연스럽고 성실한 일과 루틴이다.
이런 평온한 나날이 계속된다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 터.
"규삿. 그럼 방 만들러 가겟슴니다."
"그래! 우리 귀여운 규일이 고생하고!"
"규삿삿!"
땅굴은 대략적으로 다 구축을 했으니 이제 코볼트들은 새로운 방 제작과 지하감옥. 그리고 2층 확장 등의 일을 하면 된다.
내부 인테리어는 다음에 하자.
* * *
며칠 뒤.
정찰을 보냈던 부릴이가 코볼트들을 잡아왔다.
"큐싸아아아앗!"
심지어 어미 코볼트랑 새끼들까지.
"와! 부릴아! 이것들 다 어떻게 잡았냐! 어미 코볼트를 잡았어?!"
지금 내 던전도 어미 코볼트를 무찌르고 빼앗은 것이었다. 어미 코볼트의 피지컬은 상당한 편인데 말이다. 키도 나랑 비슷할 정도고.
"케륵륵! 별거 아님다. 이 부릴이한테 걸리면 죄다 쓱싹임다. 케륵. 놈이 달려오자마자 그냥, 콱! 케륵! 다 케륵케륵 제압하고 잡았씀다!"
그리 말한 부릴이가 인중을 쓸면서 케륵케륵 웃었다. 이 귀여운 새끼 같으니라고.
어미 코볼트는 상처가 좀 있긴 하지만 완벽하게 구속이 된 상태다.
"흐흐흐! 이 완벽한 새끼! 야! 장하다! 우리 부릴이!"
바로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코볼트들의 상태를 더 확인했다. 어미 코볼트를 지배해본 적은 없지만 지금이라면 가능하지 싶다.
"근데."
생각해보니까.
어미 코볼트들은 어떻게 새끼를 낳는 거지? 일단 코볼트에게도 발정기 같은 게 있는 건가? 그래서 암컷을 임신시키고 그러는 것?
새삼 궁금하네.
"흠... 부릴아. 잠깐 애들 시켜서 규일이 좀 데려와 봐라."
"케륵? 알씀다. 거기 너. 이리 와라!"
"케룩케룩."
"케륵! 명령권자 뫙님! 가서 코볼트 소대장 호출해온다! 실시!"
"케룩!"
부릴이의 능숙한 지시에 고블린 하나가 헐레벌떡 뛰어갔다. 부릴이 이거 카리스마가 좀 있다니까.
아무튼.
"규삿삿. 불럿슴니까?"
곧 규일이가 평소처럼 긴 주둥이를 벌름거리면서 다가왔다.
"어. 그래. 잘 왔다. 부릴아. 그리고 규일아. 형이 좀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다."
"케륵? 뭠까?"
"무엇이 궁금함니까? 규삿."
"너희들은... 그."
이거 막상 물어보려고 하니까 좀 낯간지럽네.
"암컷 필요 없냐?"
"케륵?"
"규삿?"
일단 몬스터들에게도 성욕은 있을 터였다. 당장 기르는 가축들도 지들끼리 떡치고 알 낳고 그런다. 근데 내 마왕성의 몬스터들은 그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단 말이지.
아, 당연히 여성들 제외하고다.
"암컷이 필요함까? 케륵?"
"규삿삿. 저는 삽이랑 부하 더 필요함니다."
하지만 부릴이와 규일이는 암컷이 필요 없냐는 내 물음에 흥미가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오히려 왜 그런 걸 물어보냐는 듯한 반응.
암컷에 관심이 없는 건가?
몬스터라도 발정기는 있을 텐데?
"그럼 질문을 바꿔서. 형이 여자들이랑 노는 거 보면 무슨 생각드냐?"
"케륵. 뫙님이 암컷이랑 노는 거 말임까?"
"어."
"솔직히 잘 모르겠슴다. 케륵. 마력회복 하려고 하는 거 아님까?"
이건... 성적인 부분에 대해서 완전히 무관심한 건가?
몬스터들도 짝을 원한다. 그건 당연한 생명의 법칙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후손을 남길 수가 없으니까. 근데 얘들한텐 그런 기색이 없단 말이지. 설마 나이가 안 차서? 발정기 때가 아니라서?
그게 아니라면.
어쩌면 내 마력의 영향을 받은 것일지도 모른다.
성욕에 대해서 무관심해지는... 그런 영향인가? 그럼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부하들을 고자로 만들어 버린 것인가? 그리 생각하니 오싹해졌다.
"...규일아."
"규삿."
"저 어미 코볼트 보면 무슨 생각 들어?"
ㅡ큐싸아아아앗!
제압된 채 구속된 어미 코볼트. 현재 임신한 상태인지 배가 볼록하다. 녀석은 우릴 보며 울부짖었다.
"규삿삿. 부하 더 만듬니다. 좋슴니다."
"그 이상의 생각은?"
"모름니다. 규삿."
어미 코볼트를 보고도 딱히 생각이 없단 말이지.
"흠... 뭐. 그래 됐다."
시큰둥한 반응이라.
이건 따로 연구를 해봐야겠는걸. 아무튼 이 어미 코볼트는 우리 마왕성을 위해 더 많은 새끼를 낳아줘야 한다.
"마족지배술."
ㅡ콕.
날뛰는 어미 코볼트의 이마에 지배술을 주입해준 순간.
"큐싸아앗...?!"
잠시 움찔거린 어미 코볼트가 얌전해졌다. 대충 느껴진다. 나를 따르게 되었다는 사실이. 그동안 나도 많이 강해진 거겠지. 앞으로 새끼들을 더 많이 낳아줬으면 좋겠구나.
"그럼 부릴이. 규일이. 해산."
"규삿."
"아, 뫙님."
"음? 부릴이 왜."
해산을 시키려고 하니 부릴이가 날 올려다보았다.
"케륵, 말하는 타이밍을 놓쳤슴다. 지금 말해도 됨까? 케륵."
"어. 그래. 당연히 말해야지. 뭔데?"
ㅡ스윽.
바로 부릴이에게 귀를 가져대 다니, 부릴이가 거기에 합을 맞춰 내 귀에다 대고 속닥속닥 말했다.
"뫙님. 조금 이상함다. 케륵."
"왜."
뭐가 이상해?
"케륵, 그... 몬스터들이 오고 있다? 오고 있슴다."
그게 뭔 소리야.
"자세히 설명해봐."
"케륵케륵."
부릴이의 말은 이러했다.
이번에 잡아 온 코볼트 어미. 이 녀석은 그 오크 부족이 있던 방면 쪽에서 발견되었다는 모양이다. 뭐 그럴 수도 있겠거니 싶긴 한데, 우리가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이 주변에는 이런 종류의 몬스터들이 거의 없다.
거기에 얼마전까지만 해도 오크들까지 있던 상태다. 일반적으로 이런 코볼트 같은 게 발견되기란 어렵다.
"근데 코볼트 뿐만이 아님다. 케륵. 잡진 못했지만 다른 몬스터 종족도 봤슴다."
"아니. 진짜?"
"케륵."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부릴이.
문득.
'오크들이 이사를 온 이유'에 대한 의문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오크 부족의 규모는 대충 봐도 두 개 소대급 정도였다. 소대라고 하면 좆밥같지만 오크들은 일반적인 인간보다 피지컬이 좋은 놈들이다.
그만한 대인원이 이사를 왔다? 근데 그걸 넘어서 그쪽 방면에 몬스터들이 좀 나타나고 있다?
"영역싸움에서 밀렸다?"
그런 해석이 가능하다.
영역싸움에서 패배했기에 오크들이 이쪽까지 내려온 거다. 그리고 다른 몬스터들 역시 그 '영역싸움의 승리자'를 피해서 내려왔을 가능성이 높다.
마치 우리가 이 주변의 몬스터들을 몰아냈던 것처럼.
"이거... 오크가 문제가 아닐 수도 있겠는데?"
"케륵?"
"부릴아. 일단 그쪽으로 정찰가는 건 그만둬라. 고블린 소대만 갔다가 개판날 수도 있으니까."
"케룽? 뫙님. 그 정도는 대처할 수 있슴다. 저 부릴이 아님까. 위험하면 도망도 칠 수 있슴다."
부릴이가 자신감을 내비쳤지만 두 개 소대급에 달하는 오크 부족을 쫓아낼 정도의 녀석이라면 부릴이가 여기서 벌크업을 10번쯤 더 해도 무리일 것이다.
"촉이 안 좋아서 그래. 다음에 형이랑 애들이랑 해서 다 같이 한번 확인해보러 가자."
그리 말하면서 위험의 근거를 좀 말해주니 부릴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케륵. 알씀다. 뫙님 말 듣고 보니까 위험해 보임다."
"그래. 애들한테 전파해주고."
뭐가 오크랑 몬스터들을 도망치게 만들었을까.
가서 확인 좀 해봐야겠군.
뭐 그래도 인간보단 낫지 싶은데.
* * *